• vol.26 2022 Winter

    하늘에서 콘텐츠가 비처럼 내려와

N Story 4

콘텐츠, 해독이 필요한 시대

장시준 본부장(한국교육학술정보원 디지털교육정책본부)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서 소비자는 개인의 선호에 맞는 콘텐츠를 찾아나선다. 그러나 수많은 콘텐츠 중 자신의 필요에 맞는 콘텐츠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선호도가 높은 콘텐츠에 해설을 부가하는 리뷰형 요약 콘텐츠와 가볍게 소비되는 짧은 콘텐츠가 주목받는 최근의 현상도 콘텐츠의 범람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명과 암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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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한 콘텐츠의 범람은 삶의 피로를 가중한다. 사회 전반의 경쟁이 격화되고 노동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여가와 웰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나, 우리는 휴식 기간에도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가벼운 콘텐츠의 선호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또한 선택을 고민하는 과정 없이 플랫폼이 추천해주는 콘텐츠를 몰아보고, 정주행하는 콘텐츠 소비 방식이 여가 활용의 일상적인 패턴이 되고 있다.

    콘텐츠는 다양해지는데, 선택과 활용 방법은 획일화되는 것이다. 일상의 생산적 활동은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무비판적 콘텐츠 시청과 댓글 달기, '좋아요' 누르기, 멘션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 소수의 크리에이터를 제외하면 디지털 플랫폼 활용은 플랫폼에 개인 데이터를 제공하는 무급 노동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의 고도화는 자칫 사용자의 확증 편향을 강화한다.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과는 반대로 사용자들이 자신의 취향과 편견에 근거한 좁은 세계에 머무르게 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가짜뉴스와 극렬 팬덤 문화의 범람은 이러한 콘텐츠의 소비 성향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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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기술은 사용자 정보를 기반으로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기업의 전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처지이다. 말하자면 정보 불균형 상태다. 넷플릭스는 태거(tagger)라는 콘텐츠 분석 전문가를 통해 알고리즘을 정교화하고 있는데, 이들은 새로 유입되는 콘텐츠를 분석하여 메타데이터를 생성하고 분류체제를 고도화한다. 이러한 시스템엔 소비자의 취향을 세분화하고 데이터화하여 최적화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소수의 태거들이 분류한 알고리즘에 갇혀 이용자가 단순한 콘텐츠 소비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위험성 또한 병존한다.

    유튜브 역시 개인의 취향 데이터에 기반하여 끊임없이 추천을 제공하여 한번 접속하면 계속해서 콘텐츠를 소비하게끔 유도한다. 이처럼 콘텐츠 거대기업은 축적된 사용자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이용자들을 자신의 플랫폼에 계속해서 머무르게 한다. 이러한 기술 과잉의 시대에 미디어와 콘텐츠를 올바르게 활용하고 소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역량과 기술적 안목이 필요하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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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전부터 인쇄 기술의 발전과 도서의 대량 보급에 따라 문자 해독 능력은 근대 시민 역량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이어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한 20세기의 대중 매체 발전은 영상미디어의 수용 태도와 역량을 중심으로 하는 미디어리터러시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디지털 기술의 빠른 성장에 따라 디지털리터러시, 멀티리터러시 등으로 역량의 개념이 넓어지고 있다. 수용자 중심의 미디어 활용에서 사용자 개념이 강조되기 시작하였으며,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접근성의 문제로 리터러시의 개념이 확장된 것이다. 콘텐츠의 생산과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온·오프라인 미디어에 대한 이해, 해석, 비판 능력과 함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표현, 생산 능력과 시민으로서의 윤리 의식 등이 최근의 리터러시 연구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들이다.

    올해 개정 중인 2022 교육과정에서는 기존의 교육과정에서 강조했던 언어 소양, 수리 소양과 더불어 '디지털 소양'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과정에서는 디지털 소양을 '디지털 지식과 기술에 대한 윤리 의식을 바탕으로,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이해·평가하여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생산·활용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건전한 콘텐츠 소비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역량은 정보에 대한 비판적 수용 능력과 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할 수 있는 큐레이션 역량이다. 2021년 OECD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주어진 정보로부터 사실과 의견을 판별해내는 역량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원인으로는 주요 국가에 비해 부족한 교육 시간을 꼽고 있었다.1) 이러한 점에서 디지털 사회에서 균형 잡힌 시민, 소비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디지털리터러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기본 소양으로서의 디지털리터러시는 크게 네 개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첫째, 디지털 정보의 활용과 생성 영역이다. 여기에는 자료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정보를 분석하고 표현하며, 디지털 콘텐츠와 자료를 생성하는 역량이 포함된다. 둘째는 디지털 기기의 활용과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영역으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고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 등의 원리를 이해하는 기초 역량이 해당한다. 셋째, 디지털을 활용하여 의사소통하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정보윤리와 정보보호 역량에 기반한 시민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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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중등교육에서는 디지털 도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생활과 밀접한 학습주제를 교육과정과 연계하는 융합적 교육 방법이 보편화되고 있고, 정보교육도 강화되는 추세이다. 그러나 디지털리터러시 향상을 위한 평생교육적 접근은 여전히 미흡하다. 정보격차의 양상 중 세대 간 격차가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2)은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성인의 디지털리터러시 교육을 위해서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새로운 기술과 도구에 대한 이해와 기초적 활용, 디지털 범죄와 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대비, 문화적 다양성의 수용 등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역량들을 체계적으로 정의하여야 한다. 교육 방법의 측면에서는 콘텐츠 소비 생활과 연계된 문제해결형 교육프로그램 개발, 노인 등 정보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교육 지원 확대, 해커톤을 통한 시민참여형 대안 솔루션 도출 등의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선순환적인 콘텐츠 생태계의 구축

  • 콘텐츠산업은 기술집약적이면서도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빅데이터의 활용, AR, VR, 메타버스와 같은 첨단 기술이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에 활용되고 있다. 콘텐츠의 대량 생산과 빅데이터 기반의 알고리즘을 통한 콘텐츠 제공 체제 확대에 따라 기술과 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플랫폼 기업으로 산업이 집중되고 있다. 반면 산업의 근간이 되는 콘텐츠 제작 영역은 인간의 감성과 손길이 개입되어야 대중에게 소구할 수 있기에 근본적으로 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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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나 거대 플랫폼으로의 콘텐츠 집중은 생산자와 유통자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직장에 소속되어 있던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대체되고 있으며, 플랫폼 기업이 부담해야 할 노동권과 관련된 법적 쟁점들은 소규모 사업자 또는 개인에게 넘겨지고 있다. 이에 따라 상대적 약자인 콘텐츠 제작자들의 노동환경은 갈수록 악화할 우려가 있다. 이미 웹툰 작가 등 콘텐츠의 직접적 생산자들이 플랫폼에 종속되어 지나친 경쟁과 고강도 노동에 내몰리고 있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개선 조치들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선순환적인 콘텐츠 시장 형성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거대 플랫폼에 종속된 콘텐츠 생산과 유통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이들의 고용과 계약 형태를 점검하여 법률적 사각지대를 해소하여야 하고, 유급휴가 확대, 근무 시간과 임금의 현실화, 주당 작업 분량의 조정 등 콘텐츠 노동자들의 작업환경과 처우 등 노동권에 대한 플랫폼 기업들의 인식개선과 법제도 보완이 요구된다.

    콘텐츠의 증가로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라이프 스타일도 크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콘텐츠 '범람'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자동화된 기술에 의한 개인 취향의 종속, 지나친 콘텐츠 소비로 인한 중독, 플랫폼 기업의 독점 등의 이슈가 이에 해당한다. 범람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가기 위해서는 소비자이자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역량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시적으로는 생산자, 유통자,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 민주적 합의 과정을 토대로 건강한 사회문화를 만들어가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1)
  • OECD PISA(2021), 「Developing Literacy Skills in a Digital World」 에 따르면 OECD 37개국 청소년의 디지털리터러시 주요 변인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청소년의 디지털 역량은 26위, 디지털리터러시 교육경험은 35위로 나타남.
  • 2)
  • 과학기술정보통신부(2021), <2020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인의 역량 수준을 100으로 보았을 때, 저소득층은 92.5%, 장애인은 74.2%, 농어민은 69%, 고령층은 53.7%였으며, 연령별로는 20대가 134.1%, 30대가 133.5%, 40대가 118.4%인 반면 50대는 95.1%, 60대는 59.8%, 70대 이상은 14.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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