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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to ONE Insight 1

알을 깨고 나올
새로운 오리들의 러닝메이트

‘미디어오리’ 김나리 대표 인터뷰

글. 구현모
(미디어 뉴스레터 <어거스트> 발행인)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아무런 아이템 없이 게임을 시작하면 어떨까? 필드에 나가자마자 90%의 플레이어가 몬스터에게 사냥당하고, 게임을 포기할지 모른다. 많은 게임사가 이용자 이탈을 막기 위해 다양한 튜토리얼 코스를 제공하고 적이 들어올 수 없는 마을을 만드는 이유다. 튜토리얼 없이 매 순간이 실전인 스타트업계에서도 부화 시설 같은 마을이 있다면 좀 더 많은 스타트업이 더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오리’는 이제 시장에 들어선 미디어 스타트업과 이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종사자를 위한 인큐베이터다. 닷페이스, 어피티 등 미디어 스타트업과 협업하고 국제앰네스티와 거꾸로캠퍼스 등 다양한 곳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미디어오리의 김나리 대표를 만났다.

다양한 미디어 실험을 위한 인큐베이터

미디어오리가 진행하는 ‘인큐베이팅’의 영역은 어떤 것일까.

  • 김나리

  • 실무적으로는 초기 미디어 스타트업이 갖고 있는 문제 해결을 돕고자 해요. 내부 커뮤니케이션일 수도 있고, 함께 콘텐츠 제작 실험은 물론이고 비즈니스 구축 실험도 할 수 있죠. 성장 가능성 있는 팀을 발굴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도와서 성장시키고 함께 러닝메이트로 뛰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 미디어 스타트업 영역에 더 많은 투자와 창업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만드는 일이 인큐베이팅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디어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이 필요한 이유와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미래 세대를 위한 미디어 교육이 궁금했다.

  • 김나리

  • 미디어오리에는 크게 4개의 축이 있어요. 인큐베이터, 교육, 컨설팅 그리고 오리지널 숏다큐멘터리 채널 ‘인터브이’예요. 인큐베이터로서 미디어오리는 광의의 개념으로 저널리즘 실험을 하는 분들을 위해 존재해요. 1인 크리에이터를 위한 양성소는 아니에요. 진부한 말이지만, 미디어와 플랫폼은 급변하고 있고 이 순간에 새로운 실험과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허브를 지향하죠.

미디어오리의 김나리 대표는 창업 이전까지 미디어 전문 임팩트투자사 ‘메디아티’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주 전공은 투자가 아니었다. 2013년 선댄스 영화제 외국어 영화 부문 연출상을 수상한 <The Machine Which Makes Everything Disappear>의 필름 에디터를 맡는 등 아트하우스 장르에서 이름을 떨쳤다.

  • 김나리

  • 제가 좋은 인큐베이터를 2번 경험했어요. 하나는 유럽에 있는 독 인큐베이터(dok.incubator)예요. 후반 작업 단계에 있는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들을 한군데에 모아서 여러 가지 워크숍을 진행해요. 다큐멘터리 필름 에디터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지역의 배급사가 와요. 서로 여러 도움을 줄 수 있고, 네트워킹으로 커뮤니티도 형성돼요. 인큐베이터가 없었다면 필름 메이커들이 각개전투해야 하는데, 모여 있으니까 네트워크 효과도 생기고 좋았죠. 두 번째는 메디아티예요. 문자 그대로 다양한 초기 미디어 스타트업들이 입주하고, 네트워킹하고, 서로 도움을 주면서 성장했잖아요. 이 두 가지를 겪어보니 어디서나 인큐베이터가 꼭 필요하겠구나 싶었죠.

    메디아티에 처음 왔을 때, 미디어 스타트업을 지향하는 수많은 분들을 보고 ‘이 분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인큐베이팅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죠. 대학 시절에 독일로 유학 가서 필름을 전공한 저로서는 뉴미디어가 상당히 어색했어요. 제게 뉴미디어는 백남준이었거든요.(웃음) 스스로 자격이 있는지를 되묻기도 했어요. 이젠 달라요. 이젠 나 아니면 누가 이 인큐베이팅을 할까 싶어요. 스스로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언론사들이 5~6년 전부터 뉴미디어에 도전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는 물론이고 틱톡 등 신생 플랫폼에도 스스로 적응해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새로운 미디어 실험을 위한 컨설팅과 인큐베이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 김나리

  • 내부 조직은 분명히 프라이드가 있어요. 그와 동시에 바깥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죠. 지금처럼 격동하는 시기에 무언가를 새롭게 해보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주는 신선한 충격도 필요해요. 새로운 에너지죠. 저희에게 오는 분들은 팀 단위의 새로운 시도가 필요할 때 컨설팅을 의뢰해요.

지속가능한 미디어 생태계를 위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큐베이팅에 헌신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현실이 궁금했다. 수익구조와 컨설팅 및 교육 업무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었다.

  • 김나리

  • 작년 기준으로 보면 50% 이상 수익은 미디어 컨설팅에서 나와요. 기존 미디어 컨설팅은 외부 인력을 쓰는 에이전시 개념에 가까운데요, 저희는 내부에서 인력을 키워나가고자 하는 클라이언트들이 많습니다. 어떤 구조로 팀을 설립하고, 어떤 방향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잡을지 등을 함께 고민하죠. 혹은 현재 운영하고 있는 콘텐츠의 문제 해결을 바라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기존 콘텐츠의 색깔을 바꾸거나 퀄리티를 높이고자 하시는 분들이에요. 하나의 프레임워크로 접근하기보다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에 따라 솔루션을 도출합니다.

    비즈니스의 나머지 한 축은 교육사업이에요. 자체 유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고, 외부 협업 교육도 진행했어요. 이전까지 미디어 교육들은 레거시 기업 내부에서 뉴미디어 업무를 맡으신 분들을 겨냥했어요. 기업들도 많은 경험이 쌓였고, 잘하고 계시기에 이젠 다른 관점의 교육이 필요해요. 미디어 및 콘텐츠 예비종사자를 위한 교육과 미디어 스타트업 창업을 위한 교육이죠.

구글에 ‘콘텐츠 교육’을 검색하면 수많은 사업체가 나온다. 직장인을 위한 교육은 물론이고 은퇴 세대를 위한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도 많다. 하지만 미디어 스타트업 창업을 위한 교육은 나오지 않는다. 미디어오리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 김나리

  • 지금까지 운영하던 교육 프로그램은 예비종사자와 현 종사자를 나누어 투트랙으로 진행하고자 했어요. 전자의 경우, 레거시 미디어와 미디어 스타트업에서 일하고자 하는 분들이 오셔서 함께 워크숍을 하고 실제 미디어 스타트업과 연계해서 피드백도 주고받는 자리가 될 수 있죠. 후자는 실제 종사하시는 분들이 서로 고민을 나누고, 해결할 수 있는 워크숍이에요. 뉴미디어 업계에 있다 보면, 계속 새로운 포맷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이 있어요. 이전 TV 방송국의 경우, 하나의 포맷을 찾고 그 안에서 계속 새로운 소재를 찾았다면 이 업계는 새로운 포맷 자체를 찾아야만 하죠. 여기서 느끼는 번아웃을 극복하고 새로운 발상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자리예요.

    거기에 더해 장기적으로는 미디어 펠로우십을 준비하고 있어요. 미디어 스타트업과 공조하여 새로운 콘텐츠 실험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 프로그램을 졸업하신 분들을 미디어 스타트업에서 모셔가는 그런 선순환 구조를 바라고 있어요. 펠로우십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력이 되었으면 해요. 내년 상반기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고, 참여할 운영사를 찾고 있습니다.(웃음)

미디어오리만의 경쟁력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

미디어오리의 오리지널 콘텐츠 <인터브이 오리지널>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미디어 인큐베이터가 직접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점이 독특했다. 더 특이한 점은 이들의 콘텐츠가 타 유튜브 콘텐츠와 달리 매우 느릿하다는 점이다.

  • 김나리

  • 타깃이 무엇을 좋아할지 고민하고, 영상 진행이 무조건 빨라야 한다는 식의 콘텐츠 실험은 많이 나왔어요. 이렇게 하다 보면 무조건 점점 자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제작자분들과 워크숍을 하다 보면, 실제로 만들어보고 싶은 콘텐츠는 느릿느릿한 숏다큐인 경우가 많아요. 인터브이도 그 관점에서 만들고 싶은 콘텐츠고, 만들고 있어요. 단순 취향 반영만은 아니에요.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기존 유튜브 콘텐츠의 빠른 리듬에 피로감을 느낄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했고, 전체 시장으로 보면 유튜브와 극장 및 OTT 사이 경계가 흐려질 지점이 생길 거라고 봤어요.

  • 저희는 내부에서 제작할 때 ‘프로타고니스트(영상 속 주인공)를 사랑하라’고 해요. 아이템을 찾고, 섭외하고, 그 프로타고니스트를 사랑하다 보면 좀 더 좋은 질문이 나오죠. 이 관점에서 제작 과정에 크게 관여하지는 않고 좀 더 좋은 인터뷰어가 되자고 말해요.

미디어오리 홈페이지를 보면, 멤버들의 이력이 화려하다. 어떻게 이 멤버들을 모으고, 경영해나가는지 궁금했다.

  • 김나리

  • 우선 컨설팅 프로젝트의 경우, 클라이언트마다 요구가 다르기 때문에 태스크 포스(task force, 사업 계획 달성을 위한 별도 임시조직) 방식으로 운영해요. 저희 네트워크에 있는 전문가 중에 이 프로젝트에 잘 맞는 분들과 협업하기도 하죠. 회사 직원 대부분이 주니어라서 시니어가 필요할 때는 외부 전문가분들과 파트타임 프리랜서 등으로 협업을 하기도 해요.

    미디어오리 내부에 안착하시는 분들은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해요. 따로 수습 기간을 운영하지 않아요. 30분을 보나, 3달을 보나 결과는 같다고 생각해요. 들어온 분들에게는 무한 신뢰를 주며 ‘내부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일할 수 있게 도와요. 대신 사람마다 맞는 위치가 있기 때문에 처음 3개월은 아무런 책임 없이 회사의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해볼 수 있게 기회를 드려요.

훌륭한 아트하우스 필름 에디터로서의 경험은 인간 김나리만의 독자적인 자산이다. 이 대체 불가한 자산이 지금의 김나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경영은 다른 영역이다. 직접 부딪친 경영은 어땠을까.

  • 김나리

  • 창업 초반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제일 부러웠어요. 하나는 공동창업자가 있는 부류였고, 하나는 경영학과 나오신 분. 독일에서 10년 넘게 필름 에디터로 살다 보니 공인인증서 사용도 할 줄 몰랐고, 택배도 부쳐본 적이 없었어요. 되게 무능했죠. 사업에 필요한 스킬은 당연히 없었어요. 창업하면 발로 뛰어야 하는 일은 물론이고, 이전까지 해보지 않은 일을 계속 해야만 해요. 난 경험이 없는데 계속 새로운 무언가를 판단해야만 하죠. 수만 가지 의사결정과 디테일을 결정하는 동시에 여기서 발생하는 모든 리스크를 책임지는 게 창업이기도 하고요. 다행히 전 직관도 강하고, 의사결정도 빠른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직관적으로 차별받지 않고 노력하고 성공할 수 있게 독일로 향했고, 생존을 위해 직관적으로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왔어요. 이런 경험이 분명히 도움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코로나19 관련한 매뉴얼도 직관적으로 빠르게 제작하고, 경영적으로도 대응하고요.

아트하우스 필름 에디터였고, 미디어 임팩트투자사의 일원으로서 많은 미디어 스타트업을 지켜봐 온 김나리 대표. 이제 미디어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의 대표인 김나리에게 미디어 스타트업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 김나리

  • 우선 경영에 맞춰보면, 사업은 대표 따라가는 것 같아요. 대기업도 그렇고, 중소기업도 그럴 거예요. 그렇기에 대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해요. ‘가장 나다운 경영’을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좋아요. 무엇보다 회사의 성장이 궁극적인 목표가 돼야 하고요.

    더불어 미디어 스타트업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파급력 자체로서 존재한다고들 해요. 예를 들어, 영화사는 제작한 콘텐츠가 곧 프로덕트지만 미디어 스타트업은 프로덕트가 곧 콘텐츠일 필요가 없어요. 미디어 스타트업은 오리지널 콘텐츠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이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새로운 사업을 꾸릴 수도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브랜드 사업인 거죠. 다양한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어요. 혹시 미디어 스타트업 창업이 더 궁금하시면, 미디어오리로 오시면 돼요.(웃음)

필자 소개

  • 구현모
  • 미디어 뉴스레터 <어거스트> 발행인. 콘텐츠 스타트업, 플랫폼 및 콘텐츠 기업을 거쳤으며 현재 미디어 뉴스레터 운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성공하고 싶습니다.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