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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2

OTT에서의
공동규제 실험

글. 심영섭(경희사이버대 교수)

영상콘텐츠 소비가 다변화하면서 등장한 OTT 서비스는 편리함과 재미를 가져옴과 동시에 콘텐츠의 유해성을 판단해야 하는 고민도 함께 가져왔다. 그간 법안이 미비해 OTT를 둘러싸고 논의의 지점이 됐던 각종 규제에 대해 짚어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해본다.

방송에는 있고 OTT 콘텐츠에는 없는 것

디지털 기술 발달과 미디어 환경 변화로 인해 영상콘텐츠산업은 수평적으로 확장되고, 지리적으로도 내수와 외수시장이 통합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전통적인 방송사업자와 유사하게 영상콘텐츠를 집합한 뒤, 편성 및 배열하여 제공하는 새로운 플랫폼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OTT로 불리는 이 서비스는 이용자에게 다양하고 풍부한 즐거움과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자칫 유해한 콘텐츠에 이용자가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방송과 달리 OTT를 비롯한 새로운 미디어 영역은 아직 법적 개념 정의도 없고, 규제의 틀도 명확하지 않다.

지난 4월 25일 영상물등급위원회가 공개한 ‘자가등급평가시스템’은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웨이브, 티빙, 쿠팡플레이와 같은 OTT 사업자가 새롭게 수급한 영상콘텐츠에 자체적인 등급을 부여하는 데 유용하며, 작품별로 데이터베이스화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OTT 사업자들이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연령별로 등급 분류하여 유통함으로써, 신속하게 유해성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평가시스템과 자율규제 권고는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약칭 ‘영화비디오법’)에 근거하지만, 영화비디오법은 사업자의 자율규제와 행정규제를 연계하는 협치를 제도화하지 않고 있고, 상호협력을 통한 내용심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또한, 온라인을 통한 영상물 유통과 방송사업자가 제공하는 콘텐츠에 대한 등급 부여, 사후적 유통에 대한 규제 권한은 방송통신심의 위원회에 있다. 아직도 OTT를 비롯한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에 대한 제도 마련은 미비하고, 공적규제기관은 자율규제기구에 권한을 위임하는 데 소극적이다.

‘표현의 자유’와 내용심의

방송과 영상콘텐츠에 대한 심의는 사회 규범과 품격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규제를 원칙으로 하며, 방송의 사회적 영향력과 여론 형성 기능,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 공적 책무 수행에 근거하여 실시된다. 통상 내용심의는 표준(standard)에 위반되는 행위의 위법성을 판단하거나, 숙의(deliberation)를 통해서 유해성을 판단한다. 표준에 위반되는 위법성 판단은 주로 사법적이고 행정적 영역이지만, 숙의는 이성적 판단을 통해 가장 바람직한 문제 해결에 대해 합의하는 사회적 실천 과정이다. 그래서 숙의는 도덕적 윤리적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행정규제기관의 공적규제보다는 자율적인 규제가 바람직하다.

방송프로그램과 영상콘텐츠에 대한 심의는 현재 두 개의 경로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사전등급분류를 통해서 연령별 시청을 제한하는 제도이고, 둘째는 송출된 방송프로그램이나 유통된 영상콘텐츠의 위법성과 유해성을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심의제도이다.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사후심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공적규제를 하지만, 영상콘텐츠에 대한 사후심의는 아직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 다만 OTT를 통해서 유통되는 콘텐츠에 대한 사전등급부여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맡고 있고, 저작권법 위반이나 위법적 내용물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후적으로 통신심의를 통해 삭제와 접속차단 조치를 한다.

국가는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자율적 실천을 보장하면서도, ‘시장의 실패’로 인해서 발생하는 유해콘텐츠로부터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문제나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금지된 행위를 하는 경우에 대한 처벌 등을 위해 규제제도를 두고 있다. 예컨대 헌법 제21조 제4항에서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다른 헌법 조항이 제한하거나 침해할 수 없도록 헌법유보조항을 두고 있고,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률을 통해서 기본권을 유보할 수 있다는 법률유보원칙을 두고 있다. 영상콘텐츠에 대한 사후적인 심의제도는 이러한 유보원칙에 따른 조치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후심의를 운영할지는 입법자의 재량에 달려있는데, 우리나라는 행정기관을 통한 공적규제에 종국적 결정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영상콘텐츠와 같은 내용심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규제가 가져올 최소침해원칙을 위반할 여지가 크다. 그래서 개인·기업·산업계 등이 규제의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규칙을 만들고 이를 스스로 실행함으로써 규제의 합리화 및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율규제제도가 필요하다. 자율규제는 행위자들이 직접 규칙을 정해서 책무를 실천하기 때문에 자발적 참여를 기대할 수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한 속도와 해결책 모색이 신속하다. 자율규제는 규제의 예측가능성과 함께 합리성, 정당성을 확보하고 효율성을 찾기 위한 정부와 민간의 협치도 가능하다.

자율규제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목표는 동일사안 동일규제를 위해 과도한 사회적 비용지출과 경직된 제도운영이 가져올 비합리성, 비효율성을 줄여준다. 자율규제는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갈등 해결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고, 학습 효과로 인한 사전 예방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율규제제도는 행정규제와의 협치를 통해서 공동규제 방식으로 제도화가 바람직하다.

공동규제는 국가가 권한 일부를 민간에 위탁하지만, 법률을 통해서 규제기준을 엄격하게 명시하고, 협력 기관이 제재를 결정한 사안이더라도 심각한 위법사항은 행정규제기구가 직접 처리한다. 공동규제는 행정기관과 민간기관이 상호협력을 통해서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에 ‘규율화된 자율규제(Regulierte Selbstregulation)’로 정의한다. 행정기관은 법령에 따라서 민간에 위임한 권한을 규율로 제시하고, 그 규율을 민간기관이 자율적으로 규칙과 제도로 설계하여 실천하는 형태이다. 행정기관은 규율을 제시하지만, 자율규제 제도 운동에 직접 개입하지 않기에 협치라고 할 수 있다. 공동규제는 미디어처럼 국민의 기본권이 행정집행의 효율성보다 우선해야 하는 영역에서 규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고, 제도운영에 대한 정당성을 얻는 데 유리하다. 그러나 행정기관이 아닌 민간위탁형 자율기구가 행정집행을 대행하는 제도이기에 규제를 위한 합의 과정이 지난할 수 있고, 기구 운영을 위한 기회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공동규제 기관은 실질적으로 행정기관의 역할을 하지만 자체수익이 없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서 공동규제를 수행하는 기관에 정부가 일정하게 비용을 지원하기도 한다. 공동규제가 효율적이려면 자율규제기구가 실천하고 신속히 해결한 문제에 대해서는 행정규제기관이 성과에 대한 보상(incentive)을 명확히 하고, 자율이행에 대한 기피나 태만에 따르는 처벌(penalty)을 최소화하는 협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율규제기관의 성과에 대해서는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고, 자율이행 기피나 태만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다.

OTT 콘텐츠에 대한 공동규제

OTT에 대한 공동규제를 위해서는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 사업자에 대한 법적 정의가 먼저 필요하다. 바람직한 것은 동일사안에 대한 단일법안 제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복수의 규제기구가 행사하는 권한도 조정해야 한다. 방송과 OTT에서 송출되거나 탑재되는 방송프로그램과 영상콘텐츠에 대한 사전등급 담당 기관과 사후적 심의기관의 권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로는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사전등급제도를 위해서 자율규제기구와 공적규제기구의 협치가 가능하도록 자율규제기구 인증제도와 관리·감독 제도를 영상산업기본법이나 미디어법에 규정해야 한다. 또한, 사후심의에서도 방송과 OTT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자율규제 실천을 행정제재에서 감경하는 법적 구속력도 필요하다.

  • OTT에 대한 공동규제 제도

지금처럼 무한 확장하는 미디어 서비스 영역을 공적규제로 모두 담당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제는 공적영역과 민간영역이 협치를 통해서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제도 설계를 고민할 시기이다.

  • 필자 소개_ 심영섭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엉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와 언론인권센터 이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미디어정책과 제도를 연구하며, 『메두살렘의 상징권력(시간의물레)』와 <국내외 OTT 서비스 시장 현황 및 규제 정책 연구>, <스마트 인터넷 및 융합미디어 내용규제 방안 연구>, <여론다양성 규제의 패러다임 변화>등의 연구보고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