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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point 3

<파친코>와 <브로커>가
던지는 ‘경계’에 관한 질문들

글. 노창희(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

K-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콘텐츠의 국경이 지워지고 있다. 애플TV플러스의 <파친코>는 재일 한국인이라는 지극히 한국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해외 자본과 제작진이 투입돼 화제를 모았다. 글로벌 콘텐츠의 시대, K-콘텐츠는 경계를 지나 훨훨 날 수 있을까?

국경 지운 협업, 어떻게 봐야 하나

제75회 칸영화제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 박찬욱이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했고, 송강호가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두 작품은 해외 아티스트가 참여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하나인 탕웨이다. 박찬욱이라는 거장과 탕웨이라는 중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만나 <헤어질 결심>이라는 작품이 탄생했다.

개인적으로 <헤어질 결심>보다 관심이 갔던 작품은 2018년 칸영화제에서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브로커>다. 해외 배우가 국내 작품에 참여한 경우는 많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같은 거장이 한국 작품을 연출한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브로커>는 CJ ENM이 배급과 제공을 맡았고, <기생충>, <버닝>, <곡성> 등에서 촬영을 담당했던 홍경표 감독이 참여한 작품이다. 또한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아이유와 같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참여한 영화이기도 하다. 일본의 거장이 국내 정상급 아티스트들과 협업하여 만들어진 작품이 <브로커>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같은 거장이 국내 제작진과 협업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1세기를 전후로 해서 이뤄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당시만 해도 우리보다 문화적 수준과 다양성이 높던 일본 대중문화가 국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양국이 가진 문화적 소프트 파워의 위상은 20년 전과 판이하다. 대한민국의 달라진 위상은 미디어 문화산업 분야에서 국경을 초월한 협업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다.

제3자가 바라본 가장 한국적인 소재

그런 의미에서 <파친코>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의 안팎이 모두 경계를 넘나든다. 원작 소설 『파친코』와 드라마 <파친코> 의 극중 배경이 모두 한국, 일본, 미국의 3개국을 오가며 전개된다. 윤여정, 이민호와 같이 잘 알려진 배우뿐 아니라 선자 역을 맡은 김민하를 포함해서 많은 국내 출연진이 등장하지만, <파친코>는 기본적으로 미국 자본으로 미국의 제작진이 만든 미국 작품이다.

다른 지면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드라마 <파친코>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탈경계’적인 작품이다(노창희. 2022. 3. 25). 원작자 이민진은 재미교포 1.5세다. 이민진 작가 어머니의 고향은 부산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이 『파친코』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드라마를 연출한 코고나다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으로 정체성 측면에서 경계에 놓여 있는 창작자라고 할 수 있다.

<파친코>는 평단과 이용자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평단의 반응을 확인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로튼 토마토에서 98%의 신선도를 기록했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용자들의 반응도 좋고 애플TV플러스를 이용하는 트리거로 작용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역할은 좋은 오리지널 작품에 플랫폼이 기대하는 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부러워할 만큼 대한민국의 콘텐츠 제작 환경은 좋아졌지만 그것만으로 <파친코>와 같은 대작을 만들 수 있을까? 나의 잠정적인 대답은 ‘어렵다’다.

투자 자본 등의 측면에서 경계에 놓여 있긴 하지만 K-콘텐츠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는 작품이 전 세계적인 반향을 얻어내는 것은 이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경우 <기생충>과 같이 비평적인 측면과 상업적인 측면 모두에서 큰 성취를 거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스트리밍 환경에서 특정 플랫폼에 가입을 유도하고 이탈을 방지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드라마 장르의 사례 중 해외 자본의 투자 없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경우는 아직까지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파친코>의 성공에서 눈여겨볼 또 다른 부분은 글로벌 OTT 사업자가 높아진 K-컬처의 성취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Lee, 2017/2018, 11쪽).” 이제 유명한 문장이 되어 버린 『파친코』 원작의 첫 문장은 드라마를 본 이용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보편적인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파친코>는 ‘자이니치’라고 불리는 재일 한국인의 애환을 다루는 특수한 작품이지만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선자와 같은 자이니치들의 경험은 특수하지만, 개인은 역사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보편적 사실은 전 세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여성의 관점으로 동아시아의 역사적 격변을 다룬 원작 『파친코』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드라마 <파친코>는 이를 영상으로 훌륭하게 번안해내는 데 성공했다.1)

글로벌 협업은 피할 수 없는 흐름

<파친코>가 <오징어 게임>을 비교했을 때 다른 지점을 살펴보자. <오징어 게임>의 경우 제작비를 투자받고 IP는 넷플릭스가 소유하지만 제작의 전 과정에 국내 제작사 및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파친코>는 국내 배우를 출연시키긴 했지만 제3자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정서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보편적인 울림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오징어 게임>이나 <파친코>의 사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K-컬처가 거둔 성과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그만큼 글로벌한 관점에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 미국 토크쇼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The Late Show with Stephen Colbert)>(CBS)에 출연한 <파친코> 주연 배우 김민하

    출처 : CBS

제작비가 높아지면서 글로벌 플랫폼에 대한 제작비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또한, 제작비 상승에 글로벌 플랫폼의 국내 투자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내수 시장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고려할 때 앞으로도 글로벌 사업자와의 협업은 불가피하다. <파친코>와 같이 대한민국과 관련된 의미 있는 콘텐츠들의 제작도 계속 이뤄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글로벌 사업자와의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그 필요성이 다시 한번 환기된 바 있는 IP 확보, 웹툰 이외의 좋은 원천 서사의 발굴 등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이 고민해야 할 것들은 여전히 많다. 글로벌 플랫폼들이 국내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기회인 동시에 도전이 될 수 있다. <파친코>는 과거보다 월등히 높은 문화적 위상을 갖게 된 대한민국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 질문에 대한 창의적이고도 유용한 다양한 답안지가 필요한 때다.

  • 필자 소개_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유료방송, 공영방송 등 전통적인 방송통신미디어의 산업 및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OTT 산업 및 정책과 콘텐츠·문화산업과 관련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주경제, 한국대학신문, 이데일리, 아이뉴스24 등에 미디어, 콘텐츠, 문화와 관련된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스트리밍 이후의 플랫폼(스리체어스)』, 『코로나19 이후의 한류(공동저자,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산업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방송영상산업의 재구조화(공동저자, 시간의 물레)』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