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Special
Issue 1

한국 예능만의 힘,
글로벌 경쟁력이 되다

글. 서병기(헤럴드경제 대중문화선임기자)

최근 여러 OTT에서 한국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그간 드라마에 중점을 뒀던 K-콘텐츠가 다양한 장르로 뻗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어디쯤에 와있으며 어떻게 나아갈지, 세계화에 앞선 과제는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K-예능도 <오징어 게임>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K-콘텐츠산업은 글로벌화와 디지털화를 수레의 양 바퀴로 해 맹렬하게 굴러가고 있다. 이 두 현상을 가속화하는 것은 SNS와 넷플릭스 등의 OTT 서비스 환경이다. 한국 콘텐츠는 BTS, 블랙핑크와 같은 K-Pop, <기생충>,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의 영화와 드라마로 이미 글로벌 콘텐츠가 됐다. 글로벌 OTT 콘텐츠의 세계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의 TV 쇼 부문에서 한국 드라마가 1위에 오르는 게 낯설지 않다. 한국에서는 신인인 배우도 이런 작품에 출연하면 SNS 팔로워의 수가 수백만 명으로 늘며 해외에서의 인지도가 생긴다.

한국 드라마는 아니지만, 부산 영도 출신인 재일 한국 가족의 4세대에 걸친 이민 수난사를 그린 애플TV플러스의 <파친코>도 크게 히트해 시즌 2 제작이 확정되면서 한국의 이야기가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주연인 배우 이정재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에서 K-콘텐츠의 소재나 주제가 다양하다고 인정해주는 것 같다. 그리 많지 않은 제작비로 완성도를 높이는 데 대해서도 놀라더라”는 말을 했다.

이처럼 글로벌 플랫폼에서 K-드라마는 연이어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예능 프로그램은 아직 글로벌 콘텐츠라 할만한 대박 프로그램은 나오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들이 아직 한국 오리지널 간판예능을 배출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예능 콘텐츠의 속성 때문이다. 드라마와 영화는 장르적인 이해가 우선되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그 무엇이 존재하지만, 나라마다 웃음 코드가 조금씩 다른 예능은 국경을 넘어서는 데 1인치의 벽이 있다. 예능은 문화상품이 국경을 넘어서면 이질감으로 자국에 비해 소비자의 호응도가 떨어지는 ‘문화할인율(Cultural Discount)’이 높은 편이다. 언어의 이해는 물론이고 콘텐츠에 담긴 문화와 직관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 전략은

다른 장르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다고 볼 수 있는 예능 콘텐츠가 글로벌하게 경쟁하려면 전략과 작전이 필요하다. 어떤 내용을 담을지와 함께, 포맷을 갖춰 수출하는 예능 등 대략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 우선 염두에 둘 것은 ‘어떤 예능을 보여줄 것인가’이다. 이는 지금까지 OTT에서 어떤 오리지널 예능이 가장 성공했는지를 참고로 삼을 수 있다.

그나마 글로벌 OTT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한국 예능은 넷플릭스의 데이팅 리얼리티 쇼인 <솔로지옥>이었다. <솔로지옥>은 2021년 12월 말 비영어권 TV 부문 8위로 시작해 1월 10일 주 자체 최고 순위 4위를 달성하며 흥행 신호탄을 쐈다. 18개국에서 TOP 10에 진입했으며 4주간 6,220만 누적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

지상파·케이블 방송에서 제작하는 리니어형(linear, 선형) 예능과 OTT형 예능은 콘텐츠 생태계가 다르기 때문에 둘은 점점 분화하면서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리니어형이 먹방, 여행 등 리얼리티, 음악 오디션이 많다면 OTT형은 추리물, 연애 매칭 프로그램, 서바이벌 오디션이 주류다. OTT형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이 찾아오게 만들어야 하고, 다음 이야기, 다음 회차를 극도로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누가 범인인지, 누가 우승할지, 누구와 매칭이 될지에 대해 호기심을 제공해야 한다.

이 같은 생태계적 상황을 반영하면서 글로벌 OTT에서 한국이 강점을 가진 예능 장르를 꼽는다면, 데이팅 리얼리티 쇼와 음악 오디션 서바이벌이다. 데이팅 리얼리티 쇼인 <솔로지옥>, <환승연애>(티빙), <나는 솔로>(ENA PLAY, SBS Plus), <에덴>(iHQ) 등은 외국에도 통할 가능성이 높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남의 연애다. <솔로지옥>의 경우 국내에서는 출연자인 송지아가 이슈를 독점했지만, 방송되는 국가마다 선호하는 외모나 스타일이 다양하게 나타나 그에 맞게 섬네일이 달라졌다. 외국, 특히 서양에서는 한국 연예인이 누군지 잘 모르니 글로벌 OTT에서는 스타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데이팅 리얼리티는 비연예인들로도 승부가 가능하다. OTT 예능은 공개하기 4~6개월전 제작을 완료해야 하는 특징이 있어 제작 시기에 화제가 된 인물을 섭외한다고 해도 방영 시기에는 그 화제성이 약해질 수 있다. 따라서 프로그램 색깔과 맞는 사람을 섭외해야 한다.

음악 서바이벌 오디션은 <복면가왕>(MBC)과 <너의 목소리가 보여>(Mnet)에서 알 수 있듯이, 프로그램을 포맷 자체로 수출하는 방법이 있다. 한국에서는 재목이라 일컬어지는 가수도 외국에서는 우리가 그의 노래를 통해 받는 느낌 그대로를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특한 구성을 갖춘 음악 서바이벌 예능의 포맷 수출도 좋은 방법이지만, 프로그램 그대로 수출될 수도 있다. 가령 채널A의 <청춘스타>는 인기 투표 부동의 1위였던 일본인 출연자 카즈타에 힘입어, 일본 최대 OTT 플랫폼인 아베마(ABEMA)와 동시 방영했고 큰 성과를 거뒀다. 넷플릭스의 <먹보와 털보>, <신세계로부터> 역시 국내에서만 촬영했기에 글로벌한 효과를 내기 힘들었지만, 이승기와 대만 스타 류이호가 아시아 각국 팬의 집을 찾아가는 넷플릭스 여행 예능 <투게더>는 아시아 전역에서 반응이 왔다.

<런닝맨>(SBS) 같은 리얼리티는 한국에서 이미 정점을 친 예능이지만 동남아에서는 여전히 인기다. 이는 나라에 따라 ‘시간차 공격’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솔로지옥>에서 피부가 하얀 출연자를 ‘순수하다’고 묘사한 것과 같이 인종 차별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부분에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리티 갖춘 한국 예능 제작 본격 시동

그런 가운데 넷플릭스가 7월 12일 ‘넷플릭스 한국 예능 상견례’를 열고 K-예능 제작 계획을 밝혔다. 드라마에 편중된 한국 콘텐츠 투자에서 예능의 비중을 늘리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한국을 언급하지 않고는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논할 수 없다”면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상상 이상의 훌륭한 예능 콘텐츠를 제작하는 한국 창작자들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코리아에서 예능 및 논픽션을 담당하는 유기환 매니저는 “넷플릭스 예능은 걸음마 단계다. 2022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다양한 포트폴리오의 한국 예능을 지속적으로 공개할 것”이라고 전했다. 유기환 매니저는 “100% 사전 제작 방식이 TV나 유튜브 콘텐츠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밝힌 후 “우선 한국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호응을 얻었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에서 먹힌다면, 글로벌에서도 통할 것이다”고 말했다.

향후 공개될 넷플릭스 예능 4편에 대한 소개도 이어졌다. 리얼 음악쇼 <Take 1>, 유재석-이광수-김연경 3인이 장인을 찾아가 전통 노동을 체험하는 <코리아 넘버원>, 100인이 벌이는 극강의 서바이벌 게임 예능 <피지컬:100>, 데이팅 리얼리티 <솔로지옥> 시즌 2를 제작한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외 다른 글로벌 OTT 또한 드라마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면서도, <SNL코리아>(쿠팡플레이), <더 존: 버텨야 산다>(디즈니플러스) 등 한국 예능 제작에도 나서고 있다.

국내 OTT 예능의 글로벌화는 언제쯤?

국내 OTT의 경우 다양한 예능을 제작하고 있는데도 글로벌 진출이 본격화한 상태가 아니어서 해외에서 부각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티빙은 미스터리 어드벤처 예능 <여고추리반>을 시작으로 꾸준히 오리지널 예능을 선보여왔다. 2022년에도 <얼라이브>, <서울체크인>, <전체관람가+: 숏버스터>, <결혼과 이혼 사이>, <제로섬게임>, <환승연애> 시즌 2, <마녀사냥 2022>와, 공개를 앞둔 ‘웹툰 OST 오디션 프로젝트’ <보물찾기>, <청춘 MT>를 합하면 무려 11개에 달한다. 웨이브도 2020년 5개, 2021년 8개, 2022년 3분기 현재 기준 7개 등 매년 오리지널 예능 투자를 늘리고 있다. 역대 웨이브 오리지널 중 가장 높은 시청 시간을 기록한 콘텐츠는 ‘치열하고 처절한 서바이벌 예능’ <피의 게임>이다. 2022년 좋은 성과를 보인 웨이브 예능은 <메리 퀴어>와 <남의 연애>다.

K-예능도 글로벌 경쟁력이 있다. K-예능은 세계 시장에서도 독특한 포인트가 있고, 다양한 주제를 흥미롭게 담아낸다는 평가다. 하지만 전략과 시스템 보완이 필요하다. 넷플릭스의 <범인은 바로 너>가 유재석 등 스타들을 내세웠지만 글로벌한 반응이 나오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기존의 지상파 예능을 넘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예능을 꾸준히 제작하는 국내 OTT는 글로벌 진출이 선결과제다.

K-예능은 <솔로지옥>으로 일반인 리얼리티 쇼의 본격 시작을 알렸다. 한국 데이팅 예능이 보기 좋은 젊은 남녀의 출연,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이뤄지는 ‘과몰입’ 유도, 빠른 진행과 세련된 연출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솔로지옥>의 김재원 PD는 “외국에서도 표현이 더 직접적이고 감정에 더 솔직하며 전개가 빠른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평했다”고 전했다.

K-콘텐츠 중 예능은 드라마에 비해 적은 제작비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콘텐츠이다. 우리의 강점을 잘 살리는 제작으로 이어진다면 글로벌 경쟁력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IP 비즈니스 시대에 예능 포맷 수출을 권장하면서 정작 포맷 아이디어를 제공한 크리에이터에게 저작권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현실은 바로잡아야 한다.

  • 필자 소개_ 서병기

    연세대 한국어학당 강사, 종합광고기획사 오리콤 AE와 서울신문사 기자를 거쳐 현재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로서 문화 콘텐츠 산업 현장 곳곳을 취재하며 글을 쓰고 있다. 『유재석처럼 말하고 강호동처럼 행동하라』 (두리미디어), 『방탄소년단과 K팝』 (성안당) 등을 출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