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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wave 1

유튜브 음악 시장의
빈틈을 읽다

‘UMAG’ 설현진 대표 인터뷰

글. 조영신(SK브로드밴드 경영전략그룹장)
사진. 이대원(싸우나스튜디오)

“안녕하세요?”
스무 석 남짓한 자리에서 모든 이들이 일어나 인사를 건넨다. 여러 스타트업을 다녀봤지만 처음 보는 광경이다. 그러고 보니 젊다고 이야기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다들 소년·소녀 같다.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니 반갑기도 하지만, 그만큼 외부 손님이 낯선가 싶기도 했다. 설현진 대표와 주먹을 살짝 치며 인사를 나눴다.

영상 사업을 거쳐 음악 사업까지

여기서 잠깐 퀴즈. 인디 밴드가 자작한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제작해서 유튜브에 올렸다. 이 경우 인디 밴드는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가 답이다.

해당 인디 밴드가 음원을 발매한 뒤에 유통사에 맡겼고, 그 유통사가 유튜브에서의 유통 권한을 다른 주체에게 넘겼다면 유튜브에서 해당 저작물에 대한 권한은 인디 밴드에게 없다. 인드 밴드는 저작물에 대한 수익을 배분 받을뿐이다. 유튜브의 저작물 관리를 사업화한 음악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UMAG’가 그곳이다. 2022년 상반기에 여러 투자사로부터 약 51억 원의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 작년 연말부터 스타트업 시장이 움츠러들었고, 대표적인 음악 플랫폼 사업자인 스푼도 추가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낯선 음악 스타트업이 51억 원가량의 투자를 받았다는 건 신선한 소식이었다.

인터뷰 사진 촬영 중인 설현진 대표를 보면서 마련된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유난히 보라색의 네온이 강력한 UMAG 로고도 보였다. 자리에 앉는 설 대표에게 그동안의 이력을 물었다. 신사업은 대부분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스스로 걸어온 길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변주의 결과가 결국은 스타트업이란 과실로 이어진다. 한 번도 관련 업종에 있어 보지도 못한 사람이 뜬금없이 그 자리에 초대되었다면 그건 설립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

“온라인 동영상 시장에서 잔뼈가 굵었어요.”

싸이월드에서 UCC 서비스 운영기획을 하면서 사회에 나왔고, 호핀(hoppin) 사업에 이어서 Mnet <보이스 코리아>의 온라인 PM을, 그리고 CJ ENM의 MCN 사업 부서에서 실무를 익혔다. 이 때의 인연으로 딩고(Dingo)를 운영하는 ‘메이크어스’와 ‘트레져헌터’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그동안의 이력을 종합하면 온라인/유튜브/음악으로 귀결된다. UMAG가 유튜브 관련 음악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이라는 것이 설명되는 대목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빈틈’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오고 갔다. 일종의 ‘만렙’이다. 시장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투자도 받았던 MCN이 수익성 문제로 고전하는 것도 체험했다. 메이크어스나 트레져헌터에서 대부분의 IP는 크리에이터가 쥐고 있었다. MCN의 부침 속에서 지속적으로 투자를 받으며 성장 중인 샌드박스는 도티라는 강력한 IP를 보유한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전후방 크리에이터를 묶어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메이크어스나 트레져헌터는 그러지 못했다. 실제로는 그들도 오리지널 IP를 확보하고 싶어 했지만, 이를 확보할 수단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IP가 있어야 한다’고 각성한 그 순간부터 축적된 개인기가 발현되기 시작했다. IP는 값비싼 자산이다. 그렇기에 크리에이터 확보 등 여러 우회 방법을 선택하기 쉽지만, 이건 설 대표가 이력을 쌓으면서 하지말아야 할 아이템이라고 결론 난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IP를 구매하고 확보할 ‘쩐(money)’도 없다.

여기서 빈틈을 읽었다. 국내에 진출한 유튜브는 저작권을 엄격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대형 사업자들은 알아서 저작권을 등록하고 관리하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자기 권리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유튜브로서도 목구멍의 가시였다. 태동 때부터 저작권 침해 논란이 심각했던 유튜브는 성장하면서 창작자의 저작권을 확보하고 금전화시키기 위해서 여러 장치를 만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를 본격적으로 관리하지는 않았다. 일종의 도구(tool)를 제공해서 저작권을 가진 창작자가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등록(content ID)하도록 했을 뿐이다. 일단 등록이 되면 유튜브 내에서 해당 콘텐츠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이력을 추적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수익화할 수 있다. 이 분야에서 2017년까지 중소 사업자를 대신해서 일을 대행해 주는 사업자가 없었다. 어쩌면 이를 통해 IP를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을 하는 곳이) 없기도 했지만, 음악 산업에 계신 분들이 의외로 이런 일을 가볍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유튜브와의 관계가 돈독한 설 대표였다. 유튜브를 찾아가서 저작권 업무를 대행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일종의 유튜브 승인사의 위치를 얻었다. 오늘날 UMAG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유튜브 유통 대행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콘셉트를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유통업을 하겠다고 해서 그 누구도 이를 절로 알고 대행을 맡겨주지는 않는다. 유튜브를 설득해서 동의를 했으니, 이제는 나에게 유통권 대행을 맡길 고객을 찾아야 한다.

“저한테 맡겨주시면 없던 매출을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별도 수익화 비용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 음원들을 유튜브에서 저희가 관리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저에게는 이 권한을 관리할 수 있는 라이선스가 있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주장은 할 수 있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선례가 있어야 하고 증명이 있어야 시장이 움직인다.

결국 첫 시작은 싸이월드에서의 인연으로 풀었다. 신생 사업자가 콘셉트가 좋다고 사업의 문턱을 넘어설 수는 없는법이다. 설 대표가 싸이월드에 재직하던 시절 동료로 있던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동요를 직접 작곡·작사하는 분인데, 설 대표의 이야기를 듣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고 한다. 그런 뒤에 작은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를 가지고 누군가를 설득하러 다니고, 다시 결과를 만들고 설득하러 가는 과정을 5년에 걸쳐 반복했다. 2020년에는 7만여 개의 곡을 확보했고, 2022년에는 13만 개가 되었다. 2017년 200곡에서 시작해서 5년 만에 650배가 상승했다.

IP 확보, 성장의 계단이 되다

IP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아직 IP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대행 수수료 정도만을 핵심 수익원으로 하고 있을뿐이다. 여기서 진부하지만 디지털 경제의 핵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데이터’다.

저작권을 가진 음원에 대한 권한을 대행한 뒤, 실제 그 음원이 어디서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를 찾는 과정에서 데이터는 흥미로운 제3지대를 보여줬다. △음악의 소비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음악은 넌버벌(non-verbal, 비언어적인) 장르여서 자막 등 별도의 추가 작업이 필요 없으며, △해외에서는 아이돌 음악뿐만 아니라 K-뮤직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과 선호가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확보한 라이선스를 누가 이용하는지 파악한 뒤, 사용료를 요청하는 비즈니스모델에서 한발 더 나아가 확보한 라이선스를 실제로 유통해서 수익을 증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유튜브 음악 채널이다. 기존 대형 기획사들이 제공하는 것과는 달리 이른바 니치(niche)라고 볼 수 있는 시장이 보였다. 그게 바로 뉴에이지와 재즈였다.

“K-Pop도 중요하지만, 유튜브에서 얼마만큼 이 브랜드가 가치가 있는 채널로서 성장하느냐가 중요하더라고요. 그런데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습니다.”

재즈 IP를 많이 가지고 계신 분을 만났다. 재즈 ‘덕후’인 그 분은 일일이 본인이 해당 IP를 하나둘씩 구매해 오셨다고 한다. 다만 구매한 IP를 어떻게 수익화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 시기에 설 대표의 제안은 시의적절했다. 그렇게 시작한 채널 사업이 지금은 30여 개로 확장했고, 총 가입자 수도 250만 명에 이르는 단계로 성장했다. 초기 저작권 대행은 수수료 수익을 가지는 정도의 사업모델이었지만, 이제는 채널 수익을 확보하고 이를 권리자와 5:5로 나누는 사업모델이 되었다. 수익성과 성장성 모두 후자가 훨씬 나은 상황으로 진화한 것이다. 하드디스크에 잠들어 있던 음원을 재해석하여 ‘BeiGe Mellow 베이지멜로우’, ‘GRASS COTTON 그래스코튼’ 등의 음악 브랜드 채널을 구축했고, 해외 접속자 비중을 최대 70%까지 늘렸다. 콘텐츠를 제공하신 분들의 수익도 이전 대비 700% 이상 커졌다. 콘셉트별 콘텐츠 기획과 다국어 운영을 통한 글로벌 시청자 공략이 제대로 통했다.

UMAG에서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들

일종의 2단계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채널이 성장하면 권리자의 수익이 증가한다. 저작권 유통 대행을 맡기는 사람들의 수익이 개선되면 대행을 맡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셈이다. 투자자들은 이 관계를 읽었다.

음악은 동영상과 다르다. 일단 체류 시간이 길다. UMAG의 내부 자료지만 음악 채널에는 인당 대략 50분 정도 체류한다고 한다. 음악의 특성상 광고의 숫자를 늘리지는 못하지만, 광고 하나의 단위 가격이 높다. 또한 해외 이용자의 수와 국내 이용자의 수가 7:3 정도로 해외 이용자가 월등히 많다. 저작권자는 과거 대비 서너 배는 수익이 개선되었다. 이래저래 좋은 관계인 셈이다. 여러 음악 채널 브랜드를 모아 선순환 구조를 일으키려는 기획을 일종의 브랜드 어그리게이터 모델(Brand Aggregator model, 잠재력 높은 브랜드를 모아 성장시키는 사업모델)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채널이 성장하면서 IP를 보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IP를 보유하기 위해서는 IP를 구입하거나, 자체 제작을 해야 한다. 사는 것은 자본의 문제이고, 자체 제작은 자본과 안목의 문제다. 그런데 채널이 성장하면서 이곳저곳에서 자신의 콘텐츠도 유통해달라는 요청이 오기 시작했다.

“채널의 브랜드 매체력이 커지니까 음악을 하는 국내외 아티스트들이 혹시 내 음악도 여기에 노출이 될 수 있느냐를 물어봐요. 저희는 유통을 맡기라고 부탁하거나, 정말 좋은 아티스트일 경우에는 저희랑 같이 음반 제작을 하자는 제안을 드려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조금씩 자체 음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전체 보유한 음원 수 대비 한 자리 수 비중에 불과하지만, 지금의 성장 속도라면 그 규모도 조만간 의미 있는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설 대표의 설명이었다. 어쩌면 힙합 씬처럼 UMAG도 여러 채널과 레이블을 보유한 사업자가 되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저런 숫자와 앞으로 꿈꾸는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아직은 이 글에 담기에는 무리다. 누군가의 꿈도 분명히 재산권이 될 수 있는 것이라, 이 부분은 언젠가 시리즈B 투자를 받았을 때 다시 찾아뵙고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다. ‘성수동’과 ‘레트로(retro)’란 힌트만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