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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1

새로운 한류
신화를 쓰기 위한 제언

글. 진달용(사이먼프레이저대(Simon Fraser University) 특훈교수)

아시아를 중심으로 시작했던 한류 열풍은 이제 국가를 초월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글로벌 대중문화로서 한류가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는지 지금껏 성취해 온 것을 돌아본다. 더불어 새로운 성공 신화를 써나가고 있는 한류가 앞으로도 지속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비서구 기반 대중문화 현상으로서 한류의 성과

얼마 전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료 교수가 점심을 같이 하던 중에 “올해 들어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본다”며, 현재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NA)를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하고 있다고 했다. 대중문화연구나 한국에 관한 연구를 거의 하지 않던 동료 교수로부터 한국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류의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동료 교수는 그러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를 통해 매우 복잡하면서도 흥미 있는 한국 사회의 일단을 알게 됐다”면서도 “영어 자막이 오리지널 텍스트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따라서 “원래 의미의 50% 정도만 이해를 한 것 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해당 교수의 말은 한류의 현주소를 제대로 짚어주었다. 북미에서의 한류는 이제 한인교포나 유학생, 더 나아가 아시아 국가로부터의 이민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백인사회에도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류의 진일보한 성장을 위해서는 영어 자막 등 보다 세심한 서비스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도 알게 해주었다. 한류의 현재와 미래가 중첩되어 파노라마를 불러일으키는 순간이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한류는 이제 30년이라는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비(非)서구 기반 대중문화 현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류는 초창기 드라마와 영화를 시작으로, 2020년대에는 게임과 K-Pop, 그리고 웹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문화를 전 세계 수용자들과 교감하는 글로벌 현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한류는 소셜미디어, OTT 플랫폼과의 융합을 통해 신속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2021년 9월에 전 세계 수십 개 국가에서 동시에 방영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오징어 게임> 역시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류는 비서구 지역 기반 대중문화의 선두주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같은 비서구 국가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사례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에서 한류는 분명 글로벌 대중문화사에서 중요한 사례로 여겨지고 있다. 멕시코나 브라질의 텔레노벨라1)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긴 하지만, 해당 국가들의 대중음악이나 영화, 그리고 게임 등은 글로벌 무대에서 알려진 것이 사실상 많지 않다. 인도의 발리우드(Bollywood) 영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졌어도 인도의 대중음악이나 드라마 등이 전 세계에 수출되지는 않고 있다. 그나마 일본이 애니메이션부터 영화, 그리고 J-Pop까지 여러 대중문화 형태를 해외에 수출하고 있으나 이중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애니메이션과 콘솔게임 등에 그친다. 드라마와 J-Pop은 주로 아시아 일부 국가들에서만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류 열풍을 이해하는 열쇠, 초국가적 근접성

K-방송영상콘텐츠는 위에서 열거한 국가들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으로 글로벌 수용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한류의 글로벌화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달성되었기 때문에 어떤 요인들이 작용했는가는 시기별로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한류 초창기에는 대중문화 콘텐츠가 동북아시아 위주로 전파되고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문화적 근접성(cultural proximity)이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그리고 홍콩 등이 비슷한 지리적, 언어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당 국가들에서 한류가 인기를 끌었다는 분석이다. 한류는 그러나 2000년대 후반 들어 전 세계적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면서 문화적 근접성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해졌다. 언어와 지리적 요인이 전혀 다른 북미와 유럽, 그리고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한국 대중문화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류 열풍은 문화적 근접성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이야기하는 초(超)국가적 근접성(transnational proximity)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 인기를 누린 <오징어 게임>은 현대 사회 및 자본주의의 폐해를 잘 묘사하고 있고,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과 기회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BTS가 청소년들은 물론 많은 세대를 어우르며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 역시 사랑과 희망이라는 음악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국가적 근접성 요소들이 한국의 역사와 현실에 근거한 탄탄한 스토리, 그리고 뛰어난 연기력과 음악성을 통해 투영되고 있어 한류 인기는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한류의 인기에 소셜미디어와 OTT 플랫폼 등 뉴미디어와의 융합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1980~1990년대 일부 아시아 국가들에서 인기를 끌었던 J-Pop의 경우 아직도 CD 판매와 공연을 통해 수익을 확보하는 전통적인 방식에 매달려 있는 반면, K-Pop은 신곡을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발표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오징어 게임>과 <지금 우리 학교는>, <킹덤>과 같은 영상콘텐츠 역시 넷플릭스라는 OTT플랫폼을 잘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한류가 3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낸 성과는 전 세계 대중문화계에서 신화로 거론될 정도이다. 전 세계 문화계는 무엇보다 탄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뛰어난 문화 생산자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으며, 뉴미디어를 제대로 활용하는 능력을 가진 한국 문화 콘텐츠가 앞으로도 더 발전된 형태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일본과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은 한국의 문화 산업 정책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한류의 발전 방향을 지켜보고 있다. 한류는 앞으로도 성장세를 지속할 것인가부터, 한류 성장을 위해서 어떤 요인들이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지속가능한 한류 생태계를 위해

한류의 미래 성장을 위해서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류 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한류는 지금까지 여러 문화 형태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초창기 드라마와 영화, 중반기의 K-Pop과 온라인 게임, 그리고 성장기의 웹툰과 모바일 게임 등 그때마다 다른 문화 형태를 발전시키면서 성장을 견인해 왔다. 문화 콘텐츠 형태의 다양성을 확보하면서 어느 한 축이 위기를 맞이하더라도 다른 분야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을 이어올 수 있었다. 한류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한류 동력원을 찾아 나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현재 각국에서는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을 토대로 한 문화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향후 OTT 서비스 플랫폼은 가상 현실이나 증강현실과 결합해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 수용자들도 대중문화를 단순히 보거나 듣기만 하는 대신 다양한 감각을 동원해 콘텐츠를 체험하려는 욕구가 높아질 것인 만큼, 한류 역시 이를 대비해야 한다.2)

두 번째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강조이다. 새로운 문화의 발굴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문화 형태가 다른 문화로 거듭 태어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실행의 장이 되어야 한다. 웹툰이 드라마와 영화로, 영화가 웹툰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그 예다. 다양한 문화 형태가 융합하여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한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웹툰을 원작으로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도 방영된 <지금 우리 학교는>

국내 OTT 예능의 글로벌화는 언제쯤?

세 번째, 향후 한류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플랫폼과 같은 뉴미디어의 발전에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다. 한류 생산자들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은 물론 웨이브나 티빙 같은 국내 플랫폼에 크게 좌우되고 있으며 한류 수용자들은 소셜미디어와 OTT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OTT 플랫폼의 개발은 물론, 해외 플랫폼과의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내외 OTT 플랫폼의 전략적 이용과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과 관련, 지적재산권(IP)의 중요성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외국계 OTT 플랫폼과의 관계에서 콘텐츠 제작비만을 제공 받는 비합리적인 방식이 아닌 지적재산권을 보장받는 형태의 계약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잘 알려진 대로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로부터 제작비를 제공 받았으나 IP는 확보하지 못해 추가 이익 확보에 실패했다. 반대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국내에서의 인기를 토대로 뒤늦게 넷플릭스에 라이선스 형태로 방영되면서 IP를 지켜낸 사례다. 한류의 성장은 IP를 어떻게 활용하거나 보호할 것인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작가와 감독 등 문화 생산자들의 창의성을 보호하는 한편, 문화 산업의 자본축적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디지털 경제 시대에 IP 확보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 한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3)

한류는 비서구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글로벌 대중문화로 성장하고 있다. 한류의 상업화는 물론 탈 국적화 등 비판적 요소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나, 크게 보면 현존하는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류가 일시적으로 반짝하는 추세가 아닌 신화로 지속되기 위해서 한류 생산자들은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글로벌 수용자들은 한류의 적극적인 지지자로서 기능하고, 문화 정책가들은 한류를 뒤에서 묵묵히 밀어주어야 한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때다. 한류는 과거 신화가 아니라 미래 신화로 이어져야 한다.

  • 필자 소개_ 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 대학 특훈교수이며,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Global Professor)이다. 주요 연구 영역은 초국가적 문화연구(한류), 디지털 플랫폼과 디지털 게임, 글로벌라이제이션, 문화 정치경제학 등이다. 저서로는 『한류 신화에 관한 10가지 논쟁』(한울아카데미)등이 있다. 33권의 학술서와 200편 이상의 학술 논문과 북 챕터를 출간했다. 2022년에 국제 커뮤니케이션 학회 석학회원(ICA Fellow)으로 선정되었으며, 사이먼프레이저 대학의 The Transnational Culture and Digital Technology Lab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