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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point 2

퀴어는
콘텐츠가 될 수 있는가

글. 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하위문화로 일컬어졌던 BL, 퀴어 관련 주제들이 드라마나 예능을 통해 미디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급변하는 콘텐츠 시장에서 퀴어 콘텐츠의 등장 배경과 함의를 알아보고 퀴어라는 용어의 역동성과 퀴어는 콘텐츠가 될 수 있는지까지 다각도로 살펴본다.

퀴어와 콘텐츠

많은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중 가장 첫 번째 작품인 <응답하라 1997>(tvN)에서는 기존의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애정 관계가 하나 존재한다. 당시 이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윤윤제(서인국 분)와 함께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강준희(이호원 분)가 등장했는데, 우정인줄로만 알았던 둘의 관계가, 이후 준희가 윤제를 좋아하는 것으로 밝혀지며 반전을 선사했던 것이다. 준희가 바라보는 윤제는 우정이 아닌 성애적인 대상으로 묘사되었다.

준희가 윤제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 전선이 대중들에게 ‘반전’으로 비춰진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연애나 사랑이 사회적으로 남성과 여성 간의 감정 교환으로만 표현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외의 젠더, 혹은 성애적 관계는 늘 존재해왔지만 미디어를 통해 재현되긴 어렵다. 종종 그들 간의 친밀한 관계성은 ‘사랑’이나 ‘연애’ 혹은 제도상의 ‘결혼’이라는 용어로 정의되지 못하고 다른 형태의 감정으로 치부되거나 사회적 관계의 측면에서 가시화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정상 가족’에 대한 프레임 안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다양한 연애나 사랑, 가족의 형태가 존재한다고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이런 관계를 아예 인지하지 못하거나, 불편하게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최근 들어 주변에 다양한 형태의 섹슈얼리티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을 만큼 미디어 재현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특히 퀴어(queer)라는 용어는 현대에 들어와서야 대중에 널리 퍼졌다. 이전까지 대중문화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BL(Boy’s Love)장르도 공공연하게 언급되고 있다. BL 웹소설이 원작인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 에러>는 지난 2월 첫 공개 후 반년 이상 플랫폼 TOP 10에 자리할 정도로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인가. <하트시그널>(채널A), <환승연애>(티빙) 등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감지됐다.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인 <남의연애>는 러브 버라이어티에서 당연히 이성 커플이 등장해야 한다는 문법을 뒤집고 남성들‘만’ 등장해 애정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뿐만 아니라 같은 플랫폼에서 제작된 <메리퀴어>도 성소수자들의 현실적인 연애 스토리를 다루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콘텐츠 오픈 당시 웨이브 신규 유료 가입 경로 순위에서 <남의연애>와 <메리퀴어>는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퀴어’라는 단어가 대중화됨에 따라, 용어의 사용에 학문적이고 역사적인 이해의 관점 혹은 감각을 망각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남의연애>, <메리퀴어> 포스터

우리는 퀴어를 동성애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거나(특히 남성 동성애) 동성애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혹은 그들의 문화를 지칭하는 단어로 단순화하기 쉽다. 그러나 퀴어와 동성애 혹은 동성애자는 동일한 범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퀴어 이론가 애너매리 야고스(Annamarie Jogose)는 퀴어란 “문화적으로 주변화되어 있는 성 정체성을 통틀어 일컫는 것(Jagose, 1996/2012:7)”이라 정의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주변화되어 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거나 가시화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다양한 섹슈얼리티 범주를 지칭1)한다.

당신의 몇 개의 OTT를 구독하십니까?

현재 미디어 산업은 글로벌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글로벌 OTT의 경우 구독자를 유입하고 이들을 플랫폼에 고착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취향의 다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이러한 미디어 산업 생태계의 변화는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이 이제 ‘주류 문화’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이용자들은 OTT를 통해 다양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끊임없이 찾고 이를 소비하고자 하는데, 이렇게 변화된 이용자들의 미디어 관습은 기업들의 ‘롱테일 전략’과도 연결된다. 여기서 롱테일 전략이란 미디어 수용자의 세분화와 관련하여 앤더슨(Anderson, 2006)이 주창한 개념으로 전통적인 다품종 소량체제가 아닌, “긴 꼬리 부분에 위치한 여타의 수많은 콘텐츠 옵션 하나하나는 소수의 수용자들에게 이용되고 그 총합은 히트한 콘텐츠의 수용자를 능가하는 현상(Anderson, 2006)”을 뜻한다.

젠킨스는 팬덤을 연구한 자신의 저서 『팬, 블로거, 게이머(Fans, bloggers, and gamers)』에서 주류 밖으로 내몰린 하위 주체들이 그들의 관심사를 대변한 공간을 인터넷을 통해 마련할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이러한 공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비주류 주체, 그리고 이전까지 미디어에서 재현되지 않았거나 못했던 소수자들이 자신의 텍스트를 전유하고, 유통할 수 있는 ‘참여’ 가능성을 높인다.

동시에 소셜미디어 확산과 같은 초연결사회로의 전환은 기존의 주류 콘텐츠의 ‘배급’을 ‘유통’의 형식으로 변화시켰다(Jenkins, Ford &rmp; Green, 2013). 이는 대중이 이미 완성된 메시지들의 단순한 소비자이기를 그치고, 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의 가공이나 공유, 재구성, 혼합에 다양한 방식으로 관여하는 문화의, 보다 참여적인 모델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Jenkins, Ford &rmp; Green, 2013, 3). 젠킨스는 수용자와는 다른, 팬 커뮤니티의 문화적 생산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참여문화(participatory culture)’라는 용어로 설명한 바 있다(Jenkins, 1992).

무엇보다 현재 미디어 이용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전시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미디어 생태계 변화는 퀴어나 BL 콘텐츠가 산업에서 공식적으로 가시화될 기회를 제공하는 데 한몫했다.

미디어+퀴어=?

2021년 넷플릭스는 아넨버그 포용정책 센터(Annenberg Inclusion Initiative)에 위탁하여 조사된 <다양성/포용보고서(Inclusion/diversity report)>를 발간한 바 있다. 넷플릭스가 이러한 보고서를 발간한 데는 자신들이 단순히 ‘잘 팔리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제작인력을 포용하고, 다양한 이용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브랜드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넷플릭스의 정치적인 위치 선점은 제작사와 이용자 모두 소수의 정체성과 취향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 매년 다양성/포용성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 넷플릭스

    출처: 넷플릭스

그럼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퀴어는 과연 콘텐츠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내려보자. 콘텐츠 산업에서 거대 미디어 기업들은 하나의 콘텐츠 제작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기획에 투자하고, 자본을 투여하며, 광고와 협찬을 진행한다. 반면 퀴어라는 개념은 단순히 경험적인 측면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지지 않았던 섹슈얼리티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사회적으로 ‘언급될 수 있음’ 혹은 ‘언급되지 못함’의 역사를 추적해 나가게 만드는 역동적인 힘을 가진 용어다. 그러므로 퀴어는 손쉽게 ‘상투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퀴어는 실제로 그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자신과 비슷한 존재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한다. 다양한 퀴어 콘텐츠를 통해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퀴어 콘텐츠는 다각적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것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생산된다는 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 필자 소개_ 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