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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4

CES 2023
방송 미디어 기술 트렌드

글. 최형욱(퓨처디자이너스 대표)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가전 박람회 CES를 통해 선보이는 신기술들은 방송영상산업을 포함한 여러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며 변화를 만들어냈다. CES 2023에서는 또 어떤 새로운 기술의 트렌드를 만나볼 수 있을까? 미디어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CES 2023을 내다본다.

기술의 진화와 미디어의 변화

해마다 1월 초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전 세계 기술과 산업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행사,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국제 가전 박람회)가 열린다. 1967년부터 시작되어 주로 라디오나 아날로그 TV, 오디오나 비디오 기기들을 위주로 다루며 방송과 통신 중심의 소비자 가전 산업을 이끌어 온 전시회였다. 이후 백색가전, 디지털 시대의 디지털 AV(audio-visual, 시청각)가전으로 진화하면서 시대의 조류를 가장 먼저 선보이는 세계 최대의 소비자 가전 박람회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제는 IT·정보기기를 넘어 전기차를 비롯한 모빌리티, 그리고 로봇과 인공지능까지 신기술의 모든 것들이 전시되고 논의되는 자리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바로 방송 통신 산업의 변화를 끌어내는 신기술들이 여전히 CES를 통해 소개되고 있고, 실제로 다양한 기술이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CES 2023은 ‘Be in IT(BE the one IN the middle of IT all)’라는 주제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불확실하고 급격한 사회 변화를 기술과 협력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자 중 하나인 하워드 막스(Howard Marks) 회장은 최근 서한에서 ‘불확실하지만 거대하고 급진적이며 상전벽해와도 같은 변화가 오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지금 세계는 매우 크고 중요한 변곡점들 위에 서 있다. 방송 통신을 비롯한 미디어 산업도 예외가 아닌 것이, 코로나19 기간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급진적이고 급격한 변화를 겪었고 시청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물론 파편화된 디지털 채널에서의 습관과 패턴도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CES를 통해 방송 미디어 산업이 신기술과 융합되어 어떤 변화의 트렌드를 만들어낼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TV의 미래, 스트리밍

CES에서 처음 소개되었던 AV가전은 공중파를 수신하여 화면에 띄우는 TV였다. 하지만 양방향 인터넷 환경으로, 또 초고속 모바일 환경으로 진화하면서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원하는 영상을 소비할 수 있게 되면서 TV의 개념은 원래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변했다. OTT를 비롯하여 스트리밍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들이 보편화되었고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기반의 동영상 플랫폼이 거의 모든 기기에서 작동하면서 미디어의 중심축이 이동하였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훌루, 아마존프라임비디오, 애플TV플러스 등 다양한 OTT 서비스들이 집집마다 깊숙이 파고들었고 별도의 셋톱박스가 아닌 하나의 TV 속에 여러 서비스로 내재화됐다. 그리고 전통적인 TV가 아닌 기기에도 이와 같이 스며들게 되면서 TV라 불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기기 사이의 경계 또한 흐려지고 있다. TV 또한 더 큰 화면과 더 높은 해상도, 선명하고 생생한 색 재현, 그리고 얇은 스크린과 베젤 없는 디자인 등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TV는 그 외형을 떠나 콘텐츠 허브로서의 가치가 더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TV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주목해볼 만하다.

먼저 글로벌 OTT 공룡들의 거센 행보가 가속될 것이다. 거대 플랫폼화되고 있는 서비스들은 더 이상 특정 지역, 특정 언어만의 서비스가 아니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능력과 이용자의 규모를 기반으로 그 세를 불리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빅테크 기업들이 OTT 영역으로의 확장을 시도하며 경쟁은 심화하는 반면, 이용자의 규모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어 이를 극복하려는 다양한 합종연횡이 심화할 것이다. 특히 멀티플랫폼 간 콘텐츠 수익화 전략과 함께 IP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과 투자가 이어져야 하는 상황이며, AST(Free Advertising Streaming TV)와 같은 새로운 시도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또한 고객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시도들이 분주한 시행착오의 시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고객정보 기반 맞춤 광고 시장이 각국의 규제로 큰 제약을 받는 시기에, 많은 미디어 업체들은 이 국면을 타개할 방안들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CES에서도 어떻게 고객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나은 서비스와 함께 더 진화된 광고 및 수익모델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논의들이 이어질 것이다.

더 나아가 멀티플랫폼을 넘나드는 스트리밍 사용자경험(UX, User Experience)도 매우 중요하게 논의되면서 전통적인 TV 채널이나 방송사 중심의 UX가 아닌 콘텐츠 중심, 사용자 중심으로 일관성 있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특히나 자동차 관련 엔터테인먼트가 플랫폼의 범위 안에서 고려되기 시작하면서 집, 모바일, 이동 수단 등 모든 환경에서 끊김이 없는 스트리밍 UX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A.I.가 만드는 합성미디어(Synthetic Media)

OpenAI사가 제작한 그림 인공지능 ‘달리(Dall-e)’나 A.I. 챗봇 ‘Chat GPT’와 같은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미디어 산업은 물론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충격적인 인상을 주었다. ‘로봇 저널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그 가능성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압도적으로 고도화된 품질의 결과물을 창작하거나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의 등장을 직접 확인하게 된 것만으로도 경외를 자아내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이미지나 텍스트는 물론 음악, 영상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에 미디어 분야는 콘텐츠 제작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기존의 프레임이 깨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버추얼 휴먼이나 아바타를 만드는 기술들이 광고나 영상 콘텐츠에 활용되고 있으며 이들만의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경우 자체 브랜드 영향력을 이용하여 디지털 기반의 미디어 지형에서 활발한 활동과 수익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소셜미디어나 단방향 콘텐츠를 넘어 다양한 사업화가 가능하다. CES에서도 이러한 트렌드를 여실히 보여주며 버추얼 휴먼을 기반으로 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다방면에 걸쳐 출품되고 있고 미디어에서의 적용이 빈번하게 시도되고 있다.

창작자 기반 경제의 중요성

유튜브나 틱톡 같은 동영상 플랫폼들 덕분에 창작자 중심의 경제는 이미 튼튼히 뿌리내렸다.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를 지나 소비자가 직접 생산과 유통에 뛰어들고 그 안에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들이 대중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미디어 산업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한 방향으로 흐름이 이어졌다면 이제는 생산과 소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그 대상과 방법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유튜버나 틱톡커들이 만든 콘텐츠가 전통적인 미디어 산업에서의 제작물보다 질적으로 우수한 경우도 빈번하고, 웹툰이나 웹소설의 영상화도 이제는 특별하지 않은 일이 되어 가고 있다.

메타버스에서의 창작자 경제도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제페토나 로블록스의 아바타들을 활용하여 드라마를 제작하거나 가상현실 기반의 채팅에서 상황극,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들이 점점 더 많이 시도되고 있다. 눈의 움직임이나 표정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탑재된 VR 헤드셋이나 몸의 움직임 파악이 가능한 센서 등을 통해 아바타의 표정이나 표현이 더 정교하고 자연스러워지면, 콘텐츠의 질도 더 나아질 수 있다.

또한 많은 미디어 업체들이 NFT를 이용하여 새로운 사업모델을 구현하고 있는데, 이는 동시에 크리에이터들에게도 큰 기회로 부상하고 있다. 창작자들은 영상이나 제작된 디지털 저작물에 NFT를 적용하여 희소성과 소유권을 부여할 수 있게 되면서 작품에 대한 권리와 그에 따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다소 낯선 개념이었던 암호화폐와 NFT, 그리고 아직은 모호한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탈중앙화 자율조직)을 하나로 묶어 논의하고 있기에 보다 구체적인 경제적 가치와 기술적인 완성도를 검증하기엔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유용한 변화임은 분명하다.

콘텐츠에 빠지다, 실감미디어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을 활용하여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거나 영화를 감상하는 실감미디어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평면 디스플레이를 넘어 가상현실 헤드셋과 스마트폰 기반의 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해마다 CES를 통해 가상현실 기기나 증강현실 관련 기술들이 선을 보여왔으나 최근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올인원 VR 헤드셋 시장이 이러한 움직임을 견인하고 있다.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몰입감 있는 콘텐츠와 체험형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양방향 미디어 등이 등장하고 있고, 주류 미디어와 연계되는 트랜스 미디어를 구현하는 시도들도 있다. 시점과 규모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스토리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포맷의 콘텐츠도 등장하고 있어 새로운 XR(eXtended Reality, 확장현실) 디바이스의 대중화 시기에 따라 많은 시도가 나올 수 있다.

이렇게 CES 2023을 통해 소개되는 신기술뿐만 아니라 최근 함께 부상하고 있는 기술 트렌드들은 기존 미디어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 산업과의 융합은 콘텐츠 지형과 생태계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이 CES의 주류 카테고리는 아니지만, 업의 경계가 지워지고 있고 콘텐츠 간 구분 또한 모호해지고 있는 만큼 방송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의 변곡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필자 소개_ 최형욱

    시어스랩 CSO & 부사장, 라이프스퀘어 innovation catalyst & CEO,
    퓨처디자이너스 대표, Pan Asia Network Co-foun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