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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진보
열린 축구를 구현하다

글. 윤다빈(동아일보 기자)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처음 선보였던 비디오 판독(VAR)은 영상 기술을 활용한 보조 심판으로, 경기 중 실시간 녹화된 영상을 판독하는 기술이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경기장 곳곳에 설치한 12대의 카메라에 인공지능 센서가 탑재된 공인구로 공과 선수의 위치를 포착하는 영상기술이 도입됐다. 공정성을 높여 보는 재미를 더한 월드컵 중계 기술을 알아본다.

보는 재미를 더한 월드컵 첨단 기술

2022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가뜩이나 좋아하는 축구를 이제는 사랑하게 됐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의 16강 진출, 리오넬 메시의 트로피 입맞춤처럼 행복한 소식이 많았다. 또 기술 변화를 잘 활용한 팀들이 강팀을 꺾는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면서 축구가 열린 스포츠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 관중이나 시청자도 중계 기술 발전으로 현장의 박진감을 생생히 느끼게 됐고, 경기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접하게 되면서 축구를 보는 모두가 시합의 주체가 되는 시대도 열렸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첨단과학 기술 경연장이 되고 있다. 위치추적, 인공지능, 빅데이터 같은 첨단 기술이 저마다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오심도 축구의 일부’라거나 ‘심판의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흘러간 유행가처럼 아련한 추억이 됐다.

특히 최근 열린 세 차례 월드컵은 이제는 첨단 기술이 축구의 일부라는 점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매의 눈을 뜻하는 ‘호크아이(Hawk-Eye)’라고 이름을 붙인 ‘골라인 판독 기술’이 도입됐다. 골문에 설치된 6대의 카메라가 다양한 각도로 공을 찍어 골라인을 넘어갔는지 판단한다.

축구 경기에서는 골라인 근처에 심판이 없기 때문에 애매하게 공이 골라인 근처에 머물 경우 골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보완책으로 심판을 6인으로 늘리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결국 기술로 해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호크아이는 오심을 크게 줄이며 축구계 안팎의 호평을 얻었다.

한 번 축구계에 들어온 과학기술은 ‘축구의 신’ 메시의 드리블처럼 부드럽게, 킬리안 음바페의 역동적인 공간 침투처럼 파죽지세로 축구 문화를 바꿔놨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는 비디오 판독(VAR, Video Assistant Referees) 기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됐다. VAR을 관할하는 심판은 비디오실에서 각종 카메라를 통해 송출되는 모든 경기 화면을 지켜보고, 오심 가능성이 있을 때 주심에게 알려준다. 주심은 판정이 번복될 가능성이 있을 경우 직접 비디오 영상을 확인한다.

호크아이와 달리 VAR 기술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오심 가능성을 대폭 낮추고, 선수들이 주심의 눈을 속이는 비신사적인 행동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성과는 있었다. 과학수사로 완전범죄가 사라지듯 축구에서도 결국 숨겨진 반칙이 발각되고, 억울한 판정이 바로 잡히면서 ‘권선징악’을 실현했다.

하지만 VAR 판독 과정에서 경기 흐름이 툭툭 끊어지면서 축구를 지루하게 만드는 ‘빌런’ 역할을 했다. VAR 화면을 통해 결정된 오프사이드 판정이 과연 신뢰할만한지도 늘 시빗거리가 됐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의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 손흥민 선수마저 자신의 첫 에세이집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브레인스토어)에서 “선수들은 VAR이 경기 흐름을 끊는다는 생각이 강해서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을까.

국제축구연맹(FIFA)은 절치부심했다. VAR 관련 논란을 뿌리 뽑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이번 월드컵에선 반자동 오프사이드 기술(SAOT, Semi-Automated Offside Technology)을 내놨다. 장비의 수준도 이전보다 훨씬 진화했다. 경기장 지붕에 12개 카메라를 설치하고, 선수 개개인의 위치와 신체 부위를 초당 50회 빈도로 촬영해 정확한 위치를 계산한다. 월드컵 공인구에 탑재된 센서는 공의 위치를 실시간 추적하고, 미세한 움직임을 3차원으로 감지한다. 사람의 눈으로 도저히 식별할 수 없는 팔, 다리, 머리 등의 미세한 차이를 잡아내기 시작했다. 과장을 좀 섞자면 마치 소수의 감독자가 모든 수용자를 감시하는 감옥인 ‘판옵티콘’의 축구장 버전처럼 느껴진다.

공인구에 내장된 센서와 경기장에 설치된 12대의
카메라를 통해 선수들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다.

출처: FIFA 공식 유튜브 채널

기술 발전이 가져온 축구의 민주화

축구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가장 보편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공 하나만 있으면 성별, 인종, 나이, 계층, 체격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그 매력이 극대화됐다. 한국, 일본, 호주 등 아시아 3개 팀이 토너먼트 단계에 진출했다. 한국은 경기를 지배하는 능동적인 축구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26명의 월드컵 엔트리 중 3분의 2 이상인 19명이 유럽파인 일본은 스페인, 독일을 꺾고, 크로아티아와 접전을 펼치면서 선진축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아프리카 대륙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한 모로코는 또 어떤가. 축구는 유럽과 남미의 전유물이라는 통념을 보기 좋게 깨부쉈다. 모로코는 수비와 공격의 간격을 최대한 줄이고 역동적인 움직임과 질식 수비로 강팀을 줄줄이 집으로 돌려보냈다. ‘수비 축구’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프랑스와의 4강전에서는 높은 점유율(61%)을 기록하는 공격적인 축구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관중과 시청자도 중계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높은 수준의 축구를 즐길 수 있게 됐다. SAOT 기술을 통해 오프사이드 결정이 확정되면 경기장 전광판에는 선수와 공의 위치를 정확히 묘사한 3D 애니메이션 영상이 구현된다. 경기장에 가지 않은 시청자도 방송 중계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관중과 시청자들이 심판과 동일한 화면을 보고 경기 상황을 판단하는 혁신이 이뤄지면서 행위자와 관찰자 간 정보 격차가 줄어들었다.

축구 패러다임 변화는 약자들에게 기회가 되기도 했다.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2대1로 꺾는 역대급 이변을 일으켰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경기에서 SAOT 기술을 잘 이용했다. 아르헨티나가 공간 패스를 넣는 순간 전체 수비수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면서 오프사이드 함정을 팠다. 아르헨티나는 전반전에 3번이나 골을 넣었지만 모두 SAOT 기술에 의해 노골 판정을 받았다. 메시의 절묘한 패스도 SAOT 기술이 밝혀낸 미세한 차이에 의해 오프사이드가 됐다. 번번이 골이 취소된 아르헨티나는 경기 흐름을 내줬고, 사우디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경기를 역전시켰다. 새로운 기술에 능동적으로 대응한 언더독의 유쾌한 반란이었다(물론 메시는 이 경기 이후 오프사이드에 걸리지 않는 절묘한 움직임과 패스를 선보이며, 그새 SAOT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 축구의 신의 위대함이란).

기술 변화, K리그에 남겨진 과제

대한민국-가나전에서 조규성 선수가 이를 악물고 수비진 사이를 높이 솟구쳐 헤딩골을 넣었을 때 처음으로 남자에게 설렘을 느꼈다. 포르투갈전 추가시간에 손흥민 선수가 70m 드리블 끝에 패스한 볼을 황희찬 선수가 꽂아 넣었을 때의 환희는 더 말해 뭐하겠는가. 경기가 끝나고 둥글게 모여선 우리나라 선수들이 16강 진출이 확정된 뒤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포츠 영화 특유의 클리셰인 ‘극적 해피엔딩 결말’을 욕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영화도 이렇게 만들었다면 욕을 먹었을 게 뻔하다.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축구를 사랑해야 할 너무나 많은 이유가 생겼다.

다행히 월드컵이 끝나도 축구는 이어진다. 이제 곧 K리그의 시간이다. 이번 대한민국 월드컵 국가대표팀 26명 엔트리 중 K리거는 12명에 달했다. 해외에서 뛰는 선수 중에서도 김민재, 이재성, 황인범 등 대부분이 K리그에서의 활약을 기반으로 해외로 진출했다.

필자 주변의 축구 팬 중에는 ‘K리그는 안 본다’는 이들이 있다. 속도가 느려서 재미없다고 한다. 손흥민 선수가 뛰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5G 속도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K리그는 2G급으로 인식되니 오죽 답답할까.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이런 이들을 잘 설득해 경기장을 데려가면 생각보다 경기가 빠르고 재미있다고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무슨 이유일까. 중계 기술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중계 기술이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경기장에 배치되는 중계 카메라 숫자가 적고, 화면의 역동성이 떨어진다. 중계를 통해 시청자가 공유받는 정보도 부족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VAR 영상을 중계 화면에서 실시간 공유한다. VAR 영상 공개가 판정의 신뢰성을 높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K리그는 여전히 심판들만 VAR 화면을 볼 수 있다. 앞으로 K리그에 SAOT 기술은 도입될까? 도입된다면 과연 관중, 시청자도 그 화면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내년부터 OTT 플랫폼인 쿠팡플레이가 K리그를 유료 독점 중계한다. K리그도 이제 누구나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리그에서 돈을 내야 하는 리그로 바뀌는 것이다. 유료 시청자의 눈은 무척이나 까다롭다. 그들의 높은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월드컵 이후 높아진 K리그에 대한 관심도 금방 사그라들 것이다. K리그도 기술 변화에 발맞춰 관중과 시청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고 했다.

  • 필자 소개_ 윤다빈

    동아일보 정치부, 사회부를 거쳐 지금은 산업부에서 일하고 있다. 거창한 세상 담론을 쫓는 흉내를 내고 있다. 행복은 축구에서 얻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