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산업에서 IP 확보는 콘텐츠의 2차 수익 창출과 권리 보호를 위해 중요하지만, 제작사들이 이를 통해 실제 수익을 거두기 위해선 자본력과 비즈니스 모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유통과 판매를 담당할 전문 사업자의 역할이 필수적이다.글. 김윤지(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드라마, 영화를 비롯해 영상산업계 전반에 걸쳐 IP 확보가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았다. 한국의 영상 제작 수준이 높아지고, 해외 주목도도 늘었지만 높은 수익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한 해법으로 IP 확보가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제작사들의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 못한 원인을 IP 확보 여부로 진단한 것이다. 정부의 여러 정책들도 제작사들의 IP 확보에 중점을 두어 발표되었다. 하지만 최근 영상산업계에 제작자본 축소 등 여러 위기들이 닥치면서 과연 IP 확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근본 해법인가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모두가 IP 확보를 이야기하게 된 이유
콘텐츠 사업자에게 IP 확보가 중요한 까닭은 기본적으로 해당 콘텐츠를 여러 판매처에 판매할 권리를 갖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해당 콘텐츠의 2차 사업 다각화를 위한 결정 권리와 수익권, 배분권도 갖는다. 콘텐츠를 만든 사업자가 이런 권리를 갖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오랫동안 영상산업계에서는 이것이 당연하지 않았다. 제작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선판매를 하는 과정에서 IP도 함께 넘기는 관행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1차 구매하는 방송사 등은 제작사에 제작비를 제공하면서 IP를 비롯한 제반 권리들까지 확보하곤 했다.
이렇게 조달한 제작비가 IP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을 때에는 사실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방송사들도 제작사로부터 IP를 확보해 일부 수출을 통한 2차 판매를 하곤 했으나, 드라마로 높은 수익을 거두는 경우가 드물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지 못했다. 무엇보다 제작사들이 IP를 확보해도 이를 통해 또 다른 수익을 거둘 방법도 드물고 직접 나서기도 어려워 IP 확보에 큰 관심이 없었다. 즉, IP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제한될 때에는 IP 확보가 그리 중요한 과제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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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작비 조달 방식과 IP
자료: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2023.12.27.)
IP 확보 논란에 불이 붙은 것은 넷플릭스 등과 같은 글로벌 OTT가 등장한 이후다. 2021년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인 한국의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제작사가 IP를 OTT에게 제공하고 전체 제작비를 조달하는 오리지널 제작 계약을 해 추가 수익을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채널 방영을 통한 광고수익 외에 별다른 수익 창출이 없었던 방송사와 달리 높은 수익을 올리는 글로벌 OTT가 등장하면서 IP의 가치가 달라지기 시작한 셈이다. OTT의 등장으로 비로소 IP는 제작비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런 가능성 때문에 모두들 IP 확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그들에겐 IP를 확보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논의에 앞서 생각할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IP를 소유한 사업자가 제작비 이상의 수익을 거두는 경우가 실제로 많이 늘었는가, 누가 IP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가능성이라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실제로 IP로 제작비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경우가 드물다면 소유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기 어렵다. 최근 TV 시청률 저조로 광고 수익이 떨어지면서 방송사 등에서 과거처럼 IP 소유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차피 IP를 보유해도 큰 수익으로 이끌지 못하고, 제작비 전체를 지불할 여력도 없어지자 방송사들도 제작비의 일정 부분에 해당하는 방영료만 지불하고 드라마를 편성하려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사업자는 사정이 분명 달랐다. 코로나19 이전의 넷플릭스는 거대 영화사, 방송사업자들보다는 후발 주자였고, 넷플릭스만의 독특한 라이브러리를 채우기 위해 독점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절실했다. 때문에 다른 OTT나 방송채널에서는 방영되지 않는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IP를 모두 소유하는 오리지널 콘텐츠 수급 계약 형태를 선호했다. 관리의 측면에서도 특정 기간 방영권을 보유하다 다시 해지하는 형태를 반복하는 것은 꽤 번거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오징어게임>과 같이 큰 성공을 거둔 콘텐츠가 탄생했을 때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굿즈를 제작하거나 게임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펼치기 위해서라도 이들에게 IP는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사업을 실제로 신속하게 진행할 능력과 자본을 갖추고 있어 더욱 그렇다.
이런 점 때문에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들은 IP를 완전히 소유하는 계약 방식을 선호해 왔다. 형태는 다양하다. <오징어게임>과 같이 현지 제작사에 의뢰해 제작한 뒤 독점적인 배포권과 관련 사업에 대한 권한을 넷플릭스가 온전히 갖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다른 방송사나 제작사에서 제작이 완료된 콘텐츠의 독점적 배포권을 구매하는 ‘라이선스 오리지널’ 형태도 있고, 이미 첫 시즌이 공개된 콘텐츠의 이후 제작권을 인수해 다음 시리즈를 제작하는 것과 같은 형태도 있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넷플릭스는 모두 계약 이후에는 IP의 모든 권리를 넷플릭스가 취하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확보해 왔다.
시장 환경의 변화로 넷플릭스도 권리를 나누는 형태 도입
그런데 최근 넷플릭스도 제작비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제작사와 권리를 나누는 공동제작 형태의 오리지널 콘텐츠 계약을 늘려가고 있다. 과거에는 잘 취하지 않던 방식으로, 두 가지 환경 변화 때문이다. 첫째는 OTT 사업자들의 경쟁 심화로 인한 콘텐츠 제작비 축소 경향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며 OTT 산업의 성장세가 가파를 때는 시장 확대가 중요해 사업자마다 엄청난 제작비 투자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엔데믹 이후 OTT 산업 성장세가 초기보다는 완만해지면서 과거와 같은 투자를 계속 감당하기는 어렵다는 공감대가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사업자들은 기존 투자 형태에서 벗어난 다양한 사업 방식을 모색 중이다. 경쟁사와 합종연횡, 제휴를 통해 스트리밍 번들을 출시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미 디즈니 계열사인 훌루가 맥스, 파라마운트+의 콘텐츠를 모두 볼 수 있는 번들상품을 출시했고, 월트디즈니컴퍼니는 워더브러더스디스커버리(WBD)와 디즈니+, 훌루(Hulu), 맥스(MAX)의 콘텐츠를 모두 볼 수 있는 번들상품 출시를 발표했다. 예전처럼 각자 투자하는 방식으로는 넷플릭스를 상대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넷플릭스도 이런 사업자들과 경쟁하기 위해 제작비를 더욱 효율적으로 쓰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영화의 경우 극장 흥행력이 떨어진 점을 반영해 구매단가가 이전보다 떨어졌다. 시리즈를 제작할 때도 한 시리즈 내에서 편수를 줄여간다. 16부작은 보기 힘들고 12부작, 8부작, 6부작이 늘어난 이유다. 시리즈 성공 여부에 따라 이후 시리즈 제작을 하지 않기도 한다. 제작비를 모두 지불하지 않고 제작사와 권리를 나눠 투자비를 줄이는 방식도 이 때문에 늘어났다.
두 번째 변화는 넷플릭스가 이미 전세계적으로 독과점 위치를 차지한 덕에 ‘독점 공급’의 필요성이 줄었기 때문이다. 과거 넷플릭스가 다른 사업자들과 치열하게 경쟁할 때는 자사 OTT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중요했다. 그런데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1가구에서 OTT를 2개 이상 구독하는 비율이 증가하면서 시장 1위 사업자인 넷플릭스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웬만한 소비자들이 넷플릭스는 기본으로 구독하면서 추가로 다른 OTT를 구독하는 경향이 늘어나게 되자, 핵심 콘텐츠가 아니라면 반드시 오리지널 콘텐츠로 계약할 필요가 줄어든 셈이다. 이에 따라 IP를 부분적으로만 확보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른 OTT에도 판매할 수 있게 길을 터주면서 제작비를 줄이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쓰고 있다.
IP 확보를 위한 펀드 투자, 현재 방식으로 가능할까
이렇게 시장 환경이 변모했기 때문에 IP 확보를 둘러싼 논의도 변화해야 한다. 한국 콘텐츠를 사고자 하는 사업자들은 분명 줄어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작비 전체를 온전히 제공하며 IP 전체를 요구할 수 있는 사업자는 이전보다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 제작사들의 경우 과거나 현재나 IP를 확보하고도 제대로 활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지 못했다는 현실도 중요하다. 구슬은 꿰어야 서말인데, 꿸 수 있는 재주를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구슬만 쥐려 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제작사가 IP를 확보하고 수익화를 펼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제작사가 자본력을 어느 정도는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제작사에게는 IP를 매개로 1차 제작비를 조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IP 권리는 나누고 제작비는 온전하게 감당하려는 구매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IP를 확보하려는 제작사라면 제작비의 일부는 책임질 자본은 확보하고 있어야 협상력을 쥘 수 있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포착하고 펀드 등을 조성해 제작사의 자본력을 보강하면 IP 확보에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각종 펀드를 대규모로 조성해 드라마 제작에 자본이 흘러갈 수 있는 정책들을 내놓았다. 다만 펀드 투자금은 지원금이 아니라는 점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펀드 투자자들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야 투자를 실행할 수 있다. 제작사가 IP를 확보하는 대신 덜 조달되는 제작비에 펀드가 투자하려면 해당 콘텐츠를 통해 또 다른 수익을 올릴 구조가 있어야 한다. 즉, 제작사가 IP를 확보해 수익을 거두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구매를 다각화하거나 사업 다각화를 통해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모델이 없다면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유통 사업자에게 되도록 높은 값에 IP까지 함께 팔아 버리는 것이 차라리 수익 측면에서는 나을 수 있다. IP만 소유하고 제작비도 건지지 못한다면 제작사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IP 확보를 위해 펀드 조성을 중심으로 내건 정부의 정책은 잘못된 상황 판단을 한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펀드 조성을 통한 자금 지원책은 과거 영화산업에서는 자본의 물꼬를 틔우는 효과적인 정책이었다. 실제로 영화산업에서는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런 정책 영향으로 벤처투자자들로부터 영화 제작 자본의 70% 내외를 조달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와 드라마의 투자 제작 시스템이 다르다는 점에서 정책의 효과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영화산업의 메인투자배급사와 같은 판매·유통 전담 사업자 필요
한국 영화의 메인투자 시스템은 크게 3대 축으로 구성된다.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사, 이 영화를 투자하고 배급해서 수익을 올리는 투자배급사, 그리고 부족한 자본을 제공하는 투자사다. 영화의 경우는 영화 제작이 결정되면 투자배급사가 중심에서 일부 메인 투자를 진행하고, 나머지 투자금을 투자자에게 조달해 오는 역할을 수행한다. 투자배급사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극장 배급 등을 통해 판매망을 확보하고 티켓 판매 수익을 거둔 뒤 이를 투자자와 제작사에 분배하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즉 제작사는 제작만, 투자자는 투자에만 집중하고, 완성된 영화를 판매, 유통하는 역할을 투자배급사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사들은 메인투자배급사의 이런 역할을 신뢰하기 때문에 투자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투자-제작-수익 배분의 선순환 형태가 자리잡을 수 있었다.
반면 드라마에서는 현재 이런 역할을 할 사업자가 없는 상태다. 드라마 제작사는 영화 제작사처럼 규모가 영세해서 제작 이외의 투자 유치, 판매 등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 IP를 확보해 수익을 거두었던 일부 드라마 제작사들은 영화산업의 메인투자배급사가 한 것과 같은 투자 유치, 해외 OTT 판매 등을 직접 수행해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작사들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영화산업의 메인투자배급사 역할을 전적으로 맡을 사업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드라마의 경우 판매 창구가 대부분 해외일 가능성이 높아 전문적으로 유통과 판매를 담당하는 역할이 영화보다 더 중요하다. 이들을 통해 판매 수익을 높일 수 없다면 아무리 펀드가 크게 조성되어도 투자가 이뤄질 수 없다.
현재 드라마 제작 구조에서는 국내 OTT나 스튜디오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적합해 보인다. 이들이 제작사와 IP 권리를 나눈 상태에서 추가 판매와 유통을 통해 2차 수익을 높일 수 있어야 투자자들도 안심하고 시스템에 들어올 수 있다. 혹은 제작 초반부터 PPL과 굿즈를 미리 기획해 2차 사업자들을 제작 초기부터 결합시키는 방법을 고안할 필요도 있다. 다양한 사업 기회를 제공해 부가시장 사업자들을 부분 투자에 참여시키는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 역할 역시 제작사들이 직접 수행하기는 어려워 유통, 배급과 함께 전담할 사업자가 자리 잡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들을 확립하려는 노력 없이 현재의 상태에서 IP 확보는 다소 공허해질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가 IP를 확보하는 것과 우리가 IP를 확보하는 것의 차이를 인지하고, 우리에게 부족한 점들을 메꾸어 나가야 하는 단계인 것이다. IP를 누가 가져야 하는가가 아니라, IP를 통해 수익을 높이고, 수익을 나눌 구조를 갖추는 것에 논의의 핵심을 옮겨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참고자료
-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2023, 영화·OTT 산업 위기론과 투자, 2023.12.27.

-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경제학부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겨레신문사 「이코노미21」 기자를 거쳐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거시경제와 중소기업 경제, 콘텐츠산업을 연구하고 있다. 한류의 경제효과, 수출효과 등을 연구했고 문화경제학과 한국 콘텐츠산업 전반에 관한 글들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박스오피스 경제학(2016)』, 『한류노믹스(2017)』(공저),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2022)』(공저), 『한류외전(202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