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흥행한 게임 IP를 산업이 가만히 내버려둘 리 없다. 비디오 게임 <마인크래프트>의 영상화는 오래전부터 시도됐지만 시작부터 극복 불가능한 난관에 부딪친다. 애초에 스토리도, 엔딩도 없는 게임이라 영상 ‘스토리텔링’의 뼈대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게임 출시 10년이 넘어서야 시도된 영화화 프로젝트가 택한 방안은 세계관은 채택하되, 거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새로 쓰는 길이었다. 그리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잭 블랙 주연의 영화 <마인크래프트 무비>(2025)는 평단의 혹독한 비판에 시달린다. IMDB 평점 6점대, 메타크리틱 40점대, 로튼토마로 신선도 40%대의 낮은 점수는 평가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이 영화에 초대됐으면, 뇌를 끄고 보세요.”라는 대사를 공식 캐치프레이즈로 삼을 만큼 제작진이 애초에 목표로 삼았던 방향조차 단순하고 유아적인 스토리에 가까웠다. 원작 게임을 즐겼던 팬들은 물론 전문가들 역시 일제히 긴 튜토리얼 같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설명 같은 영상화라며 혹평을 쏟아내기에 이른다.
재밌는 건 그 이후의 반응이다. 제작사조차 흥행 참패를 예상하며 차일피일 개봉을 늦췄던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소위 대박이 났다. 4월4일 북미 개봉 이후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린 이 영화는 지난 14일까지 전 세계 5억 6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처음으로 5억 달러를 넘기며 2025년 최고 흥행작 반열에 올랐다. 아무도 예상 못 한 이례적 흥행세의 근간에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관람 문화가 자리한다. ‘치킨 조키!’라는 대사를 따라 하며 극장에서 난동을 피우며 영상을 찍는 것이 북미 Z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이 되어 버린 것이다. 현재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을 중심으로 ‘치킨 조키’ 밈이 번지고 있는데, 일부 극장에선 극장 질서를 해치고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금지하거나 경찰이 출동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정작 극장과 제작사 워너브라더스는 이런 현상을 반기는 분위기다. 극장 산업 전반의 침체 속에서 젊은 관객들의 관심을 모아줄 새로운 활력을 제공한다는 이유다. 『뉴욕포스트』에선 참여형 관람 문화의 지평을 열었던 1998년 <록키 호러 픽쳐 쇼>을 언급하며 <마인크래프트 무비>의 밈 현상이 “Z세대의 록키 호러 픽쳐 쇼”라고 평하기도 했다¹⁾. <마인크래프트> 게임 캐릭터 중 하나인 ‘치킨 조키’는 메인 시나리오와 크게 연관이 없다. 희귀한 이벤트 몹(캐릭터) 중 하나인 치킨 조키를 만나는 순간, 배우 잭 블랙이 소리를 지를 뿐이다. 보너스 이벤트 같은 그 장면 하나가 밈의 근원이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의미와 서사가 희박해질수록 자유도가 올라간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영화적인 문법의 완성도 차원에서 보자면 명백히 실패한 각색이다. <마인크래프트> 게임이 가지고 있는 자유도와 상상력을 옮기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리지널 스토리도 조악하고 유치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젊은 관객들은 영화 텍스트 자체와 무관하게 외부적인 맥락을 끌고 와서 이 난장판의 서사를 즐긴다. 마치 픽셀을 그대로 옮긴 것 마냥 그래픽이 조악했던 게임 <마인크래프트>에 열광했던 (2010년 무렵), 놀이라는 본질에 집중했던 어린이들처럼 말이다.

[그림 1] 영화 <마인크래프트 무비> (출처:워너브라더스) / <라스트 오브 어스> 시즌 1 (출처: HBO)
애초에 게임 IP를 영화화하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졌던 이유는 단순하다. 첫째, 영화산업이 (그 규모와 자본으로 인해) 스토리텔링 콘텐츠의 최종 단계처럼 인식되었다. 둘째, 게임과 영화의 겉모습이 매우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갈구하는 (산업으로서의) 영화가 소설에서 이야기의 원천을 발견해 왔던 것처럼, 게임 분야 역시 성공이 보장된 소재의 또 다른 창고의 연장선에서 접근했던 것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찾아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이렇게 단순한 접근으로 시작된 게임 원작의 영화는 무수히 나왔고, 끊임없이 실패했다.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잘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착각은 게임과 영화의 외형이 닮은 탓이 크다. 이 오래된 오해가 수많은 게임 원작 영화들을 실패로 몰고 간 결정적 원인 중 하나다. 게임과 영화는 (수많은 실패가 증명하듯) 전혀 다른 감각을 기반으로 하는 매체다. 출력값은 ‘영상’으로 유사해 보이지만 그에 이르는 경로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게임의 종류도 다양하므로 여기선 비디오, PC게임으로 한정하겠다.
게임과 영화의 근본적인 차이를 하나만 꼽자면 다름 아닌 자유도, 다시 말해 행위의 주체성에 있다. 내러티브 영화는 관객에게 제한된 시점과 정보를 제공한다. 관객은 영화에 완벽히 포박당해, 다른 말로 몰입한 채 끝까지 붙들려간다. 내러티브 영화는 관객을 위한 친절하고 일방적인 안내자다. 영화의 역사는 관객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붙들어둘 것인가를 고민하며 연출 방식을 축적해 왔다. 반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개입의 여지를 준다. ‘플레이한다’라는 행위야말로 게임의 본질이자 모든 것이며, 게임의 역사는 플레이어에게 행동의 동기를 제공하기 위해 발전을 거듭해 왔다.
영화 <마인크래프트 무비>의 흥행은 이러한 ‘플레이’의 감각, 참여 행위가 스크린 바깥까지 돌출된 사례다. 젊은 관객들은 완성도 높은 스토리를 감상하는 대신 ‘마인크래프트’라는 공감대를 즐기는 걸로 유희의 무대를 확장했다. 다시 말해 이번 흥행은 게임 원작 영화의 성공 사례라기 보다는 매체적인 차이와 한계를 여실히 증명한 또 하나의 증거에 가깝다. 게임과 영화가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든 여러 요인 중 특히 두드러지는 건 한정된 상영시간, 그리고 극장이라는 공간이다. 내러티브 영화의 상영시간은 2시간 내외라는 제약에 묶여 있다. 많은 내용을 담아내기도 어렵거니와 동참과 공감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거기에 극장이라는 공동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적지 않은 제약의 요소다. ‘영화’에서는 미학적 요소로 작동할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이 게임에서는 결정적 한계로 가로막힌다.
이에 반해 OTT 시리즈는 두 가지 조건에서 자유롭다. 우선 상대적으로 긴 상영시간의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이 크다. 여러 에피소드로 제작이 가능한 만큼 물리적인 상영시간이 훨씬 길고, 그만큼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유리한 요소다. 더구나 관객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홀로 감상이 가능하다는 점, 상영을 중간에 멈추거나 다시 시작하는 등 콘텐츠의 소비자에게 많은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게임의 ‘플레이’와 유사한 능동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영상 스토리텔링’이라는 출력값은 영화와 OTT 시리즈가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구현하는 출력 환경은 OTT 쪽이 게임 플랫폼과 훨씬 닮았다.
영화와 OTT의 차이는 게임의 영상화가 어떤 갈림길에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마인크래프트 무비>나 2023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게임 캐릭터의 아이콘이나 세계관을 바탕으로 오리지널 스토리를 전개한다. 이때 스토리 자체는 헐거울수록 좋다. 게임 서사 전체로 본다면 특별 에피소드 정도의 짧은 분량이라 일종의 해프닝 혹은 팬들을 위한 서비스의 느낌이 강하다. 특정 상황과 캐릭터는 충실히 차용하되 실상 게임의 서사로부터 멀어지는 방식이라 해도 좋겠다.
반면 게임의 영상화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작품의 경우 가능한 게임 원작의 서사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방향으로 접근한다. 너티 독의 3인칭 액션 어드벤처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의 경우 2023년 1월부터 HBO를 통해 9부작 시리즈로 공개되며 ‘원작에 가까운 수작’으로 호평을 받았다. 원작 게임처럼 서사가 단단한 이 드라마는 영화가 짧은 상영시간 탓에 시도하지 못한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 서사를 풀어낸다. 가령 시즌1 에피소드 3화의 다중시점 내러티브는 복잡할 수 있는 게임 서사에 입체감을 더하는 효과적인 접근이다. 플레이어의 시점을 여러 각도에서 상상해 보도록 상황을 확장해 공감의 폭을 더할 뿐 아니라 게임 중에 미처 전하기 힘든 캐릭터의 속사정까지 주름을 펴서 캐릭터의 부피를 더한다. 원작의 서사에 최대한 근접하되 영상 스토리텔링만이 확보할 수 있는 디테일까지 확보하는 것이다.
한때 게임 영상화의 최종 단계는 영화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신화는 진즉에 깨졌고, 이제 더 친밀하고 안정적인 플랫폼으로 OTT가 떠오르고 있다. 수많은 IP를 확보하고도 물리적인 제약에 묶여 자유로운 각색이 쉽지 않은 영화에 비해, OTT로 플랫폼을 옮긴 게임 IP는 한층 넓은 공간에서 다양한 경로를 탐색 중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데빌 메이 크라이>처럼 영화화 혹은 실사화가 어려운 케이스도 결국 영상화할 방법을 찾아낸다. 글로벌 히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아케인>에 대한 호평과 열광도 같은 맥락이다. 4월 13일 공개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시즌 2는 게임의 시리즈화에 대한 모델이 이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모으는 중이다. 게임산업의 규모에 비춰볼 때, 게임이 스토리텔링 영상 콘텐츠로 각색되고 확장되는 건 이제 필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상황은 다음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단지 게임을 영상화 한다는 ‘제작 중심적’ 사고를 넘어 어떤 방식으로 가 닿고 소비되는지, ‘콘텐츠 소비자 중심’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림 2]
<데빌 메이 크라이>, <아케인>
(출처: Netfl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