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2022년 게임산업은 시장 규모 축소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처럼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22년 출시된 주요 게임을 통해서 게임산업의 트렌드를 짚어보고자 한다.
2022년 게임시장의 규모 축소는 여러모로 충격을 주고 있다. 거시적인 경기 침체 여파가 게임산업을 강타하고 한동안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유비소프트(Ubisoft)는 최근 3개 프로젝트 취소와 2억 유로 비용 절감을 목표로 한 구조조정 안을 발표했다. 발표 직후 주가가 21% 급락하며 매각론이 거론되고 있다.
악화된 거시경제 상황 속에서 게임산업의 전망이 어둡다는 발표가 이어지고 있으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22년 주목받는 게임 타이틀을 보면 현재 난관을 돌파할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2022년 게임산업을 이야기하며 빠질 수 없는 게임이 있다. 바로 프롬소프트웨어(From Software)의 <엘든링(Elden Ring)>이다. 2022년은 ‘<엘든링>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엘든링>의 기반이 된 <다크소울(Dark Soul)> 3부작 등 프롬소프트웨어의 전작들도 높은 완성도로 게임산업의 역사에 기록되었지만, <엘든링>만큼 흥행하지는 못했다.1 게임 데이터 집계 서비스 하우롱투비트(HowLongToBeat)의 집계에 따르면 2022년 출시 게임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게임이다.
눈에 띄는 점은 엔딩을 본 사람이 많은 게임과 중도 포기가 많은 게임에서도 <엘든링>이 1위로 집계되었다는 점이다. 이 집계는 자체 조사이기에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경향성은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다른 게임 데이터 집계 사이드 PSN프로파일(PSN Profiles)의 집계에서도 <엘든링> 게임 엔딩 도달률은 58%에 그쳤다.
2022년 출시작 인기순위 출처: HowLongToBeat(2023.1.) 2022년 게임 엔딩도달 및 중도 포기 순위 출처: HowLongToBeat(2023.1.)<엘든링>은 소울라이크(Soul-like) 장르답게 게임 난이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엘든링>을 비롯한 소울라이크 게임의 공략 팁으로 공략에 실패하는 상황 자체를 즐기라는 조언을 할 지경이다.
공략 성공이 아닌 실패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게임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비결은 무엇일까. IT 전문지 디지털트렌드(Digitaltrends)는 현대 게임이 너무나 친절하다고 말한다. 선형적인 이야기, 친절하게 안내되는 진행 방향, 이용자를 대신해 부여하는 목표의식 등은 빠른 게임 진행을 가능하게 하지만, 이는 바꿔말하면 게임 이용자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게임 이용자 스스로 게임의 콘텐츠를 발견하고 즐기는 과정을 배제하고, 준비된 콘텐츠를 단번에 게임 이용자 앞에 나열함으로써 게임 본연의 재미를 상실시켰다는 것이다. 반면 <엘든링>은 ‘방향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길을 찾는’ 게임이다. 소울라이크 장르에 오픈월드 요소가 결합하면서 각자가 자신만의 공략법을,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게임이 되었다.
이에 따라 <엘든링>은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낼 수 없는 게임이 되었다. 길을 찾고, 스스로 게임 기술을 학습하고, 더 나은 기술은 연마하며 엔딩을 본 뒤에도 수차례 게임을 진행하며 게임 속 세계를 탐험하고 콘텐츠를 발견해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엮어내어 완성하는 게임이다. 마치 인터넷 보급 이전, 같은 지점에서 수차례 패배하면서도 공략법을 고민하던 그 시절 게임의 감각을 되살린다. 누군가에겐 게임의 본질을 음미할 귀한 기회이며, 누군가에겐 이전에 없던 진지한 자세로 게임이라는 장르를 재평가할 기회라 할 수 있다.
<마블 스파이더맨> 게임 화면 출처: Insomniac Games(2023.1.)AAA게임 부문에서 두 번째로 꼽을 게임은 <마블 스파이더맨(Marvel’s Spider-Man)>이다. 이 게임은 2018년 PS4로 최초 출시되었고, 2020년에는 PS5 버전이 출시되었다. 최초 출시 당시에도 영화를 보는 듯한 그래픽과 속도감, 전투 연출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22년 출시된 PC 버전도 스팀(Steam)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96%)’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게임 자체의 평가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PS가 PC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게임산업에서는 눈에 띄지 않더라도 언제나 다양한 시도가 이뤄진다. 그리고 그 많은 시도 중 성과를 거둔 경우에만 의미를 획득하고 주요 전략으로 부상한다. 소니는 <마블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몇몇 PC 이식작의 성공을 통해 자사 콘솔 기기로 한정했던 시장의 확대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소니가 PS PC 런처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PC 런처는 PS와 PC의 심리스 통합의 핵심이 될 것이며, 클라우드 동기화, 크로스 플랫폼 플레이, 통합 업적 시스템 등이 제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플랫폼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엑스박스(Xbox)의 전략이 점점 우세를 차지하는 가운데 PS도 시류에 합류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단순히 소니가 시대적 흐름에 자사 고유의 전략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PC 게임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게임 소프트웨어 매출이 증가할 것이고, 스팀이나 에픽 스토어(Epic Store)와 같은 게임 유통 부문에서 사업적 가치를 높여갈 수도 있다. 즉 기존의 틀을 깸으로써 더 큰 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임 이용자 입장에서도 소니의 행보는 반갑다. PS 독점 게임을 콘솔 기기 없이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사들은 플랫폼 경계를 넘어 더 큰 시장에 접근하려 노력하고 있고, 가장 보수적인 콘솔 부문 거인도 이 흐름에 동참으로써 게임산업의 트렌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인디 게임에 대한 관심은 크게 높아지고 있다. <어몽어스(Among Us)>, <폴 가이즈(Fall Guys)>, <언타이틀드 구스 게임(Untitled Goose Game)>, <하데스(Hades)>, <튜닉(Tunic)> 등 매년 큰 흥행을 거둔 인디 게임이 탄생하고 있다.
게임산업 역사에서 2022년을 대표하는 게임을 꼽으라면 <엘든링>과 함께 <뱀파이어 서바이벌(Vampire Survivors)>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 개발사에서 근무하던 개발자가 혼자 만든 게임 <뱀파이어 서바이벌>은 픽셀아트로 구현된 간단한 게임이다. 튜토리얼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단순한 게임 구조와 짧은 게임 세션, 중독성 등이 성공 비결로 꼽힌다. 모바일에서 성공한 하이퍼 캐주얼 게임이 성공적으로 PC에 이식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서는 <뱀파이어 서바이벌>의 게임 내적 성공 요인보다 외적 성공요인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게임 스트리머의 영향력이다. <뱀파이어 서바이벌>은 2022년 10월 정식 출시되었으나, 그에 앞서 2021년 12월 스팀에서 선공개 되었다.2 그러나 10개의 리뷰도 받지 못하며 다수의 1인 개발 게임과 비슷한 운명으로 흐를뻔했다. 기회는 게임 스트리머를 통해 만들어졌다. 게임 스트리머 ‘스플래터캣(SplatterCatGaming)’이 우연히 이 게임을 발견하고 방송을 진행했다. 방송 이후 게임 팔로워는 급증했다.
두 번째는 가격, 꾸준한 업데이트와 패치이다. 2021년 12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스팀의 <뱀파이어 서바이벌> 업데이트 공지는 총 37개이다.3 3달러짜리 게임에게 기대하기 힘든 모습이다. 3달러라는 가격은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합리화한다. 거친 그래픽과 어디서 본듯한 유닛과 아이템 디자인도 넘어갈 수 있게 한다. 게임성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3달러라면 무시하고 시도해볼 수 있게 한다. 가격으로 기대치를 한껏 낮추었지만, 게임에 대한 평가를 모니터링하고 이를 반영해 꾸준히 패치를 진행했다. 잠깐 즐기고 마는 게임이 아닌 진지한 게임으로 인정받게 된 결정적 요인이다.
2022 TGA 시상식에서 수상한 인디 게임 <스트레이(Stray)>도 주목된다. 인디 게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물 고양이가 주인공인 게임이다. 사이버펑크 도시를 고양이로 탐험하는 내용인데, 유비소프트(Ubisoft) 출신 개발자들이 모여 만든 게임인 만큼 AAA 게임의 만듦새를 보여준다. 정밀한 고양이의 움직임 묘사, 포스트 아포칼립스 정서, 뛰어난 아트워크, AAA 게임에 버금가는 조작감으로 사랑받고 있다.
팬데믹 이후 인디 게임의 기회가 커졌다. 그러면서 인디 게임의 추세에도 변화가 포착된다. 기존의 인디 게임은 아이디어를 앞세우거나 소수 마니아를 위한, 즉 틈새시장에 집중했다. 그러나 최근 인디 게임은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AA 또는 AAA 게임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요소들을 구현하며 일회성 작업이 아닌 프랜차이즈로 발전할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젤다의 전설>과 같은 AAA 프랜차이즈의 특징을 구현한 <튜닉>도 <스트레이>와 함께 이러한 추세를 대변한다.
스마트폰의 성능이 향상되며 모바일 게임의 가능성은 확대되었다. 과거 PC나 콘솔에서나 즐길 수 있는 수준의 게임 구현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모바일 게임은 PC나 콘솔 게임과는 별개의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작은 스크린과 터치 기반의 인터페이스, 이동 중이나 잠시 휴식할 때 주로 소비되는 모바일 게임 이용 행태에 따라 별개의 발전 과정을 거치고 있다. 게임 플랫폼 중 가장 높은 접근성을 가지고 있으며, 산업적 관점에서 게임산업의 주류 흐름을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는 여러모로 차별화된 게임이다.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우마무스메>의 스토리가 3개 층위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우선 원 소스라 할 수 있는 실존 경주마의 스토리이다. <우마무스메>는 일본 경마계에서 뛰어난 성적이나 캐릭터성으로 주목받은 유명 말을 모티브로 캐릭터를 구축했다. 두 번째로 애니메이션이다. 2018년 4월 처음 공개된 1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세 번째로 2021년 일본에서 처음 발표된 모바일 게임이다. 실제 경주마의 이야기가 이미 확정된 현실이며,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화되었다면, 게임에서는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현실과는 다른 해피엔딩도 만들 수 있다.
이용자는 세 개의 스토리 층위를 오가며 더욱 높은 몰입감을 경험하게 된다. <우마무스메>가 가지고 있는 무서운 과금 체계가 가능한 것도 이 몰입감이다. MMORPG 등 유사한 BM을 운영하는 상당수의 게임이 매몰비용을 무기로 삼고 있는 것과 달리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로 과금 체계를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두 번째로 주목할 모바일 게임 경향은 간단한 매커니즘으로 쉬운 입문이 가능하지만 점점 더 고도화되는 구조가 각광받고 있다는 점이다. <탕탕특공대(Survivor.io)>와 <마블 스냅(Marvel Snap)>이 대표적이다. 두 게임은 하나의 게임 세션이 짧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탕탕특공대>는 중국 게임사 하비(Habby)가 만든 게임으로, 모바일 인디 게임 <매직서바이벌(Magic Survival)>과 PC 게임 <뱀파이어 서바이벌>의 연장선에 있는 유사 게임이다.4 시장조사기업 센서타워(Sensor Tower)에 따르면 <탕탕특공대>의 하루 매출은 50만 달러에 달한다. 시장조사 기간 데이터.ai(data.ai)에 따르면 이 게임은 22년 8월 iOS와 안드로이드 모두를 합친 매출 순위 1위에 등극했다.
<매직서바이벌>이 <뱀파이어 서바이벌>에서 시간 제한이 있는 게임으로 변화했다면, <뱀파이어 서바이벌>과 <탕탕특공대>의 차이는 게임 시간이 15분으로 더욱 짧아졌다는 점과 하비 전작에서 나온 캐릭터 및 장비 육성 시스템을 결합했다는 점이다. 이는 하이브리드 캐주얼 게임을 떠올리게 한다.5 하이브리드 캐주얼 게임은 하이퍼 캐주얼 게임에 육성이나 수집 요소를 더해 게임 유지율을 높인 것이 특징이며, 하이퍼 캐주얼 게임의 발전상이라 할 수 있다.
2022년 10월 출시된 <마블 스냅>은 TRPG로부터 시작되는 카드게임을 모바일로 구현한 것으로, 쉬운 게임성이 특징이다. 모바일 게임 전문 매체 모바일게이머(mobilegamer.biz)에 따르면 23년 1월 기준 1,400만 다운로드 3,000만 달러 매출을 돌파했다. 일평균 39만 2,000달러의 매출이 발생한 셈이다. TGA 2022에서 모바일 게임부문을 수상하는 성과도 거뒀다.
6턴으로 끝나는 게임 세션, 입수할 수 있는 카드와 대결에 사용할 수 있는 카드 수를 제한했으며, 승리 보상을 2배로 높일 수 있는 ‘스냅’으로 게임성을 높였다. 또 순한 과금모델도 특징적이다. 과금은 가능하지만, 주로 가지고 있는 카드를 더 이쁘게 만드는데 사용된다. 게임 내 성과 보상을 높여주는 배틀패스 방식의 과금요소도 도입되어 있다. 즉 게임 내 성과는 결제금액보다는 게임 내 성과에 따라 높아지는 구조이다.
2022년을 대표하는 게임들을 살펴보면 고유 카테고리의 경계를 허물면서도 독자적인 문법을 발전시켰다. 이는 통합과 다양성 강조가 동시에 진행되며 건강한 게임산업 생태계 조성에 기여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각각의 세부 장르가 통합되고 융합하면서 기존 장르의 발전을 꾀하고 있으며, 게임 이용자의 다양한 취향에 대응하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지금의 게임산업은 기존 방식의 한계에 도달해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야만 하는 순간에 직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게임 매커니즘부터 BM까지 게임산업의 모든 요소에 변화가 진행되다 보니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게임사도 있을 것이고, 새롭게 부상하는 게임사도 있을 것이다. 2023년에는 2022년의 다양한 시도가 더 많은 성과를 거두고, 새로운 게임산업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