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2023년 9월 12일, 최대 게임 엔진 개발사 중 하나인 유니티(Unity)는 2024년 1월부터 적용될 새로운 가격 정책을 발표했다가 전 세계 게임 개발자들과 스튜디오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받았다. 유니티의 새 런타임 요금제(Runtime Fee Policy)는 이용자가 게임을 다운로드할 때마다 요금을 부과하는 체계로 게임이 많이 다운로드될 수록 더 많은 엔진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구조였다.
이러한 가격 정책 변경에 대한 반발에 직면한 유니티는 정책 조정 의사를 밝혔지만, 개발자들은 새 요금제가 게임의 성공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는 구조이므로 이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게임이 성공할수록 유니티의 새 요금제가 사업 수익성을 해칠 수 있다며 유니티 플랫폼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비판했다.
유니티는 이에 대응하여 9월 22일 런타임 요금제를 개정하고 다음날 완화된 개편안을 발표했다. 새 개편안에 따르면 주 구독자가 개인 개발자와 소규모 개발사인 유니티 퍼스널(Unity Personal)과 유니티 플러스(Unity Plus)에는 추가 요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형 개발사가 주로 사용하는 유니티 프로(Unity Pro)와 유니티 엔터프라이즈(Unity Enterprise)에게는 런타임 요금제가 적용되며 추가 과금 또는 월 매출액의 2.5% 수수료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다만, 요금제는 소급 적용되지 않으며 향후 출시될 유니티 LTS 버전에만 적용될 예정이다.
2023년 9월 23일 발표한 유니티의 런타임 요금제 개편안 출처 : Unity(2023.09) 유니티의 새로운 런타임 요금제 계산기: 유니티 프로 기준 출처 : Unity새로운 요금제에 따르면, 유니티 프로를 사용하는 개발사의 게임이 월 매출이 20만 달러(약 2억 8,000만 원)이고 월간 신규 다운로드 수가 6만 건인 경우 엔진 요금은 월 매출의 2.50%인 5,000달러(약 700만 원)이다. 위 사례의 경우 월간 신규 다운로드 수에 비례한 9,000달러(약 1,260만 원)보다 월 매출의 2.5%가 더 저렴하여 자동으로 계산된 것이다.
물론 새 요금제는 2023년 이후 출시된 엔진으로 개발된 게임 중에서 최근 12개월 매출이 100만 달러(약 14억 원)를 넘고, 출시 이후 100만 회 이상 다운로드된 게임에만 적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인기 게임일수록 다운로드 수에 비례해 부담이 커질 수 있으며 유니티 프로 이상을 사용하는 경우 이미 연간 이용료를 별도로 내면서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경쟁자인 에픽 게임즈(Epic Games)의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의 경우 연 매출 100만 달러(약 14억 원) 이전까지 전액 무료인 상황이라 더욱 비교된다.
유니티는 새로운 설치 횟수18)에만 요금을 부과하며, 스트리밍과 구독 서비스는 포함되지만 자선 제공(Charitable offers), 사기(Fraud), 불법 복제판(Pirated Games), 재설치(Reinstallations) 등으로 인한 다운로드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유니티가 이러한 사례들을 정확히 측정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고 있지 않아 런타임 요금제 발표 후폭풍은 거셌다. 유니티를 사용하던 많은 개발사가 고객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요금제 발표에 실망감을 표하며 이탈을 선언하기도 했다. 유니티 사무실에 대한 살해 협박까지 이어지며 결국 10년간 회사를 이끌었던 존 리키텔리(John Riccitiello) CEO가 모든 책임을 지고 10월 10일에 사임했다.
2023년 9월 15일, 유럽 게임 개발자 협회(European Games Developer Federation; 이하 EGDF)는 유럽 연합(EU)에 유니티의 반경쟁적 시장지배 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것을 요청했다. EGDF는 유니티의 새로운 요금제가 자체 게임 엔진을 구축할 수 있는 대형 개발사보다 중소 게임 개발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주장하며, 유니티 엔진 기반 게임 개발 교육업계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GDF는 EU에 B2B 계약 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 도입을 요청하였으며 계약 조건의 명확한 적시, 소급 적용 및 계약 변경 금지 등을 골자로 한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영국 게임유통협회(The Independent Game Developers' Association; 이하 TIGA)도 9월 18일에 유니티의 가격 정책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발표했다. TIGA는 유니티의 요금 인상 규모와 방식, 3개월의 짧은 유예 기간, 대체 엔진으로의 전환 어려움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으며, 유니티에 게임 개발자들의 입장을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소규모 또는 F2P(Free to Play) 게임 개발사에 타격이 클 것을 우려했다. 또한, TIGA는 영국 정부와 영국 경쟁시장국(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에도 게임 엔진 시장의 독과점 조사가 필요함을 피력하며 소비자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 개정을 권고했다.
많은 게임 개발사가 유니티의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 새로운 엔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가격 정책 변경에 대해 크게 비판한 개발사 중 하나인 메가 크릿(Mega Crit)은 신작 게임을 유니티 엔진 대신 고도 엔진(Godot Engine)으로 개발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메가 크릿은 유니티가 새 요금제를 발표한 직후, 정책이 철회되지 않고 서비스 약관이 제정되지 않는 한 다른 엔진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었다. 유니티가 수정된 개정안을 발표했지만 메가 크릿은 최종적으로 고도 엔진으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회사는 고도 엔진을 테스트하기 위한 게임잼(Game Jam)을 개최했으며 출품작 중 하나인 <댄싱 듀얼리스트(Dancing Dualists)>를 소개하면서 주 게임 엔진으로 고도 엔진을 사용할 것임을 알렸다.
이처럼 고도 엔진은 유니티의 대안으로 주목을 받으며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2023년 7월에는 고도 개발 기금(Godot Development Fund)을 출시했다. 이 기금은 오픈소스 게임 엔진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자발적 후원을 받는 플랫폼이며, 수수료 절감과 독립적인 오픈소스 엔진 개발을 목표로 한다. 기금은 출시 15일 만에 후원 규모와 후원자 수가 각각 2배와 3배 이상 증가했으며 <테라리아(Terraria)>의 개발사인 리로직(Re-Logic)은 고도 엔진에 10만 달러와 매월 1,000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후원에 힘입어 고도 엔진은 유니티 사용자들의 마이그레이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 개발사들도 다른 엔진으로 전환을 고려하거나 자체 엔진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변경된 요금제는 특히 대형 개발사들에 불리하게 작용할 뿐만 아니라, 이미 게임업계가 불황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지출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대형 개발사가 언리얼 엔진을 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유니티 정책 변경의 영향은 회사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번 결정으로 엔진 교체를 고려하는 회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자체 엔진을 개발하는 사례도 늘어날 전망이다. 펄어비스는 <검은 사막>과 <붉은 사막> 제작에 각각 검은사막 엔진과 블랙스페이스 엔진이라는 자체 개발 엔진을 사용했다. 엔진 개발에는 상당한 비용과 인력이 필요하지만, 이런 요금 정책 변경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앞으로 자체 엔진 개발을 하는 개발사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유니티의 결정은 유니티 애즈(Unity Ads) 광고주 수 감소에도 영향을 미쳤다. 런타임 요금제 발표 후 전 세계에서 1,074명의 게임 개발자가 유니티 애즈와 유니티가 2022년에 합병한 아이언소스(ironSource)의 광고를 중단시키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센서 타워(Sensor Tower)에 따르면 유니티의 새 정책 발표 후 미국 내 유니티 광고 네트워크의 광고주 수가 9월 2주차에 전주대비 15% 감소했다. 이는 전년 동기에 13% 증가한 것과 대조되며, 유니티의 결정이 광고주 감소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9월 3주차에도 광고주 수 감소율이 전주 대비 소폭 감소한 8%를 기록했다. 유니티는 강한 반발에 직면하여 9월 22일 갑작스럽게 변경된 정책을 수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 결과 9월 4주차에는 미국 광고주 수가 주간 기준으로 5% 증가했으며, 10월 2주차에는 존 리키엘리 CEO의 사임 발표와 함께 15% 증가했다. 10월 말 할로윈 이벤트가 다가오는 시기라는 점도 광고주 수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2023년 9월 11일~10월 15일 미국 내 유니티 광고 네트워크 광고주 수 변화 출처 : Sensor Tower(2023.10) 자료 재구성전 세계 상위 1,000개의 모바일 게임 중 72%가 유니티 엔진으로 제작되었으며, 많은 국내 모바일 게임 개발사들도 유니티로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니티의 새 요금제는 다운로드 수에 따른 라이선스 비용 증가로 이어져 모바일 게임 개발사들에게는 특히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콘솔이나 패키지 게임과 다르게, 모바일 게임은 다운로드 유인 후 인앱 결제(In-App Purchase)와 인앱 광고(In-App Ads)로 수익을 내기 때문이다.
유니티는 수익 모델 다각화의 일환으로 광고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한 바 있다. 2022년 11월에는 이스라엘의 앱 광고 솔루션 아이언소스를 인수하며, 기존의 유니티 애즈의 기술적 영역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유니티 애즈와 아이언소스는 특히 하이퍼 캐주얼, 퍼즐 등 캐주얼 게임의 모바일 광고 점유율(Share of Voice, Sov)에서 강세를 보인다. 한국 시장의 경우 하이퍼캐주얼은 53%, 퍼즐은 50%가 유니티 애즈와 아이언소스를 활용해 광고 수익을 내고 있다.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도 유니티 애즈와 아이언소스의 점유율은 압도적이다.
2022년 1월~2023년 2월 모바일 게임 네트워크별 광고 점유율(iOS) 출처 : 아름다운재단(2023.04) 사업 안내 포스터 재구성하지만 유니티의 런타임 요금제는 설치당 비용 청구 시스템으로 대량 다운로드가 매출로 이어지는 모바일 게임 개발사에게는 한층 더 부담이 크다. 특히, 캐주얼 게임은 게임 이용 방식이 단순하기 때문에 인앱 결제보다는 대량 다운로드 수를 유도해 얻는 인앱 광고 수익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더불어 많은 개발사가 확률형 아이템 판매에서 F2P(Free-to-Play) 기반 광고 수익과 인앱 결제 등으로 수익화 전략을 변경하고 있는 만큼 유니티의 새로운 가격 정책은 큰 파문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게임 개발자들의 집단적인 거센 반발과 관련 단체 및 기관의 견제에 유니티는 결국 원안을 부분 철회하고 새로운 개편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CEO까지 사임하며 백기를 든 유니티의 모습에도, 이미 무너져 버린 신뢰를 다시 쌓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수의 국내외 게임 개발사는 이번처럼 유니티의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정책 변경이 언제든 다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복수의 게임 엔진을 사용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가거나 고도 엔진처럼 완전히 오픈소스의 무료 게임 엔진으로 개발 엔진을 바꿀 것이라고 전하며 여파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