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최근 국내외 주요 기술 기업들이 경영 효율화를 목적으로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있다. 전 세계 기술 기업들의 정리해고 추이를 제공하는 레이오프.fyi(Layoffs.fyi)에 따르면 올해에만 전 세계적으로 1,097개의 기업이 총 24만 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했다. 이 중 구글(Google)과 아마존(Amazon)은 각각 약 1만 2,000명과 2만 7,000명의 직원을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10월까지 발생한 정리해고의 누적 수치는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정리해고 수 총합과 유사한 수준에 이른다. 지속되는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인해 많은 기업이 자금 운용과 조달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술 분야의 정리해고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 1~10월 기술 기업 월별 누적 정리해고 수 출처 : Layoffs.fyi코로나19로 특수를 누린 게임산업도 이러한 칼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비디오 게임 레이오프(Video Game Layoffs)에 따르면 2023년 11월까지의 게임업계 정리해고 수는 약 6,500명으로 감원 추세가 연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개발사 현황만 포함된 것을 고려하면 실제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11월 기준 엠브레이서(Embracer) 그룹과 유니티(Unity)가 가장 큰 감원을 단행했으며 에픽 게임즈(Epic Games), 일렉트로닉 아츠(Electronic Arts), 나이언틱(Niantic) 순으로 많은 인원을 감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가장 많이 감원한 상위 5개 게임 개발사 출처 : Video Game Layoffs유럽 최대 규모 퍼블리셔인 스웨덴의 엠브레이서 그룹은 그룹사 전체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세인츠 로우(Saints Row)> 시리즈로 유명한 볼리션(Volition)이 30년 만에 폐업했다. 유니티는 2022년 5월 전 세계 지사를 절반으로 줄이겠다 발표하며 인원 감축에 착수했으며 약 900명을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024년 1분기까지 자사 전략에 따른 특정 제품 서비스 중단 및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픽 게임즈는 경영 악화로 2023년 9월 전체 직원의 16%에 해당하는 830명을 정리해고했다.
국내도 상당수의 개발사가 인력 감축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팬데믹 이후 산업 위축, 실적 악화, 전쟁 등으로 인한 고금리와 고유가 상황이 지속됨에 따라 많은 국내 게임 회사들이 인원 감축을 통한 경영 효율화에 나선 것이다. 해외 개발사와 같은 규모는 아니더라도 현재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국내 게임산업에 고용 불안과 위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연이은 구조조정과 전환 배치로 업계 종사자들의 불안감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불안감은 코로나19 유행 당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것과 달리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위축된 게임산업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 게임산업은 프로젝트 단위로 업무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프로젝트 종료에 따른 정리해고가 잦지만, 호황기에는 이직 기회도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산업 전반이 위축되며 감원 규모를 '전례 없다'라고 느끼며 산업 종사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링크드인(LinkedIn)에서 게임산업 채용 소식을 알리는 아미르 사트바트(Amir Satvat)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가 '지난 12개월간의 게임산업 구조조정은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한 응답자는 이렇게 게임산업이 빠르게 확장과 감축이 이루어진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밝히며 2019년의 대규모 감원과 비교해도 현재의 감원은 규모와 범위 면에서 훨씬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게임을 여러 개 출시한 친구가 직장에서 반복적으로 고용과 해고를 경험한 사례를 전하며 고용 불안과 경영진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했다. 코로나19 이후의 감원 추세는 게임산업 전반에서 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어 이는 산업의 큰 변동을 나타내는 충격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최근 12개월 간의 게임업계의 구조조정은 전례 없는 수준이다'에 동의하는가? 출처 : LinkedIn-Amir Satvat(2023.10)2023년 8월 마블(Marvel)의 VFX(Visual Effects) 노조 조직을 지원했던 국제 극장 무대 종사자 연맹(International Alliance of Theatrical Stage Employees; 이하 IATSE)은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확대하고 있다. IATSE가 2023년 3월부터 8월까지 진행한 2023 게임업계 임금 및 노동조건 설문조사(2023 Game-workers.org Rates and Conditions Survey)에서는 응답자의 57.1%가 게임업계에서의 근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해 '아니다' 혹은 '불확실'하다고 답했다. 특히, '아니다'라고 답한 비율이 37.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업계에서의 근무가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출처 : IATSE(2023.09)또한, 응답자 중 7년 이상의 근로자 비율이 현저하게 낮았는데 이는 게임산업 종사자들이 빠른 번아웃을 경험하고 다른 기술 관련 직군으로의 이직을 고려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IATSE는 이러한 설문을 통해 주요 게임 개발사들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해고와 불합리한 노동 조건 등에 대한 문제 해결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게임산업은 코로나19의 최대 수혜산업으로 꼽혔으나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 후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개발사가 늘고 있다.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의 안나 타비스(Anna Tavis) 인적 자본 관리(Human Capital Management) 임상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모든 산업은 효율성, 비용 절감, 포트폴리오 합리화(Portfolio Rationalization)19)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조정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당시 기술 기업들이 직원 규모를 늘리며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 여파로 필요한 수준에 맞게 인력을 조정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경쟁적으로 올리던 연봉도 영업이익 감소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3월 서울경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10대 게임사20)의 인건비는 2020년 2조 5,463억 원에서 2021년 3조 2,643억 원으로 1년간 약 28% 증가한 한편, 영업이익은 동기간 3조 3,783억 원에서 2조 5,905억 원으로 약 2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봉 인상은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전략이었지만 인력 증가가 결합되어 개발사들이 더욱 큰 충격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 엠브레이서(Embracer) 그룹의 구조조정이 2023년을 넘어 다음 해까지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엠브레이서는 198개의 게임 개발사와 직원 17,000명, 800개 이상의 IP를 보유해 유럽 최대의 퍼블리셔로 꼽힌다. 그룹은 2020년부터 100개 이상의 스튜디오를 신설 또는 인수하는 등 공격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왔다. 2022년 8월에는 크리스탈 다이나믹스(Crystal Dynamics)를 인수하며 <툼 레이더(Tomb Raider)> 시리즈 IP를 확보했다.
2020~2023년 엠브레이서 그룹 산하 게임 개발사 수(좌)와 2019/20~2022/23 회계연도 순매출액 및 EBIT(우) 출처 : Embracer(2023.05)사업 확장에 힘입어 엠브레이서 그룹의 순매출액(Net Sales)은 2019/20 회계연도 55억 4,100만 크로나(약 6,631억 원)에서 2022/23 회계연도 376억 6,500만 크로나(약 4조 5,079억 원)로 6.8배 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엄청난 외형적인 확장에도 불구하고 영업비용과 영업외비용이 모두 증가하며 동기간 EBIT21)는 4억 2,100만 크로나(약 503억 원)에서 1억 9,400만 크로나(약 232억 원)로 감소했다.
2023년 8월 엠브레이서는 2022년부터 협력해 온 사우디 국영 게임 개발사 새비 게임즈 그룹(Savvy Games Group)와 20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논의하였으나 끝내 협상이 결렬되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게 되었다. 엠브레이서는 2023년 8월 볼리션을 폐쇄한 데 이어 2023년 2분기부터 2023년 11월까지 900여 명을 정리해고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024년 초까지 이런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ony Interactive Entertainment; 이하 SIE) 산하 게임 개발사 번지(Bungie)는 2023년 10월 31일 CEO 피트 파슨스(Pete Parsons)의 SNS를 통해 구조조정 소식을 전했다. 이후 11월 3일에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약 100명의 인원을 감축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하였으며, 법무, 마케팅, 아트, 인사 등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다. SIE는 2022년에 번지를 36억 달러(약 5조 400억 원)에 인수하며 인력 조정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었지만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대규모 해고가 이루어졌다.
블룸버그(Bloomberg) 보도에 따르면, 이번 구조조정으로 내년 출시 예정이었던 <데스티니 가디언즈(Destiny Guardians)>의 확장팩 <최후의 형체(Final Shape)>와 신작 <마라톤(Marathon)>의 출시 일정이 연기됐다. <최후의 형체>는 원래 2024년 2월 출시 예정이었으나 6월로 연기되었고, <마라톤>은 당초 2024년 출시를 목표로 했으나 현재 2025년 출시로 예상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년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1,200명 중 7.2%(86명)가 계약 해지 또는 해고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프로젝트 중단·취소 또는 종료'가 계약 해지 또는 해고 사유 중 39.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2022년에는 계약 해지 또는 해고 경험이 이전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게임산업 종사자 계약 해지 또는 해고 경험 여부 및 사유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2023.01) 자료 재구성감원은 기업의 단기적인 수익 개선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 직원, 게임 이용자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게임 개발팀보다는 라이브 서비스팀의 인력 조정이 많은데, 게임 운영 중 기습적인 구조조정은 우수 인력의 유출, 서비스 운영 질 하락, 이용자 이탈, 회사 매출 감소 등의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는 근시안적인 인사 관행, 예를 들어 기습적인 집단해고나 주먹구구식 전환 배치는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