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머징 마켓
유럽의 교통 중심지인 네덜란드는 중서부 유럽 권역에서도 높은 성장세가 전망되는 게임시장이다. 2018년에서 2027년까지 10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13.7%로 예상되며 2023년에는 12억 200만 달러(약 1조 6,227억 원)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또한,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 네덜란드 게임시장 내 모바일 게임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2018~2027년간 모바일 게임의 연평균 성장률은 14.6%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중서부 유럽 권역 전체 모바일 게임시장 성장률 12.5%보다 높아 권역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2018~2027년 네덜란드 게임시장 규모 출처 : Statista(2023.08)네덜란드 모바일 게임시장은 캐주얼 게임 분야에서 특히 두각을 드러낸다. 유럽에서 가장 큰 미디어 기업 중 하나인 아제리온(Azerion) 산하의 스필 게임즈(Spil Games)는 30여 개의 자체 플랫폼을 운영하며, 월 방문자 수 6,000만 건을 기록하는 등 네덜란드 모바일 캐주얼 게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그 외에도 기능성 게임시장 선도, 빠르게 성장하는 이스포츠 시장과 적극적인 개발자 양성 프로그램 등의 특징을 보인다. 네덜란드는 시장 성장세가 완화된 중서부 유럽 권역에서도 두각을 보이는 만큼 주목할 만한 시장이라 볼 수 있다.
기능성 게임(Serious Game, Applied Game)이란 건강, 홍보, 교육, 경영, 의료, 광고, 복지 등 특수한 목적을 의도로 재미있게 설계한 게임을 의미한다. 놀이나 즐거움이 아닌 교육에 중점을 둔 것으로, 게임의 형태로 지식을 습득하고 공공의 이익을 증진해 다양한 사회적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기능성 게임을 '교육, 스포츠, 의료, 국방, 공공 등의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게임의 오락적 요소와 접목하여 누구에게나 쉽게 전달되도록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기능성 게임의 강국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네덜란드 기능성 게임시장을 연구 및 분석해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네덜란드 게임협회(Dutch Game Association)에 따르면 네덜란드에 사무실을 둔 게임 개발사 308곳 가운데 67곳, 약 21.7%가 기능성 게임을 개발 또는 유통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기능성 게임은 특히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 성과를 보인다. 의료용 인터랙티브 기능성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토버(Tover)와 유년기 금융 교육용 게임을 개발한 &라니(&Ranj), 유년기 언어 발달 장애 개선 게임을 만든 게임 테일러(Game Tailors)가 대표적이다.
의료용 기능성 게임을 개발하는 토버는 2015년 치매나 지적 장애 환자의 인지 능력이나 사회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인터랙티브 조명형 게임 <토베르타펠(Tovertafel)>을 출시했다. <토베르타펠>은 두더지 게임, 장바구니 담기 게임 등 질병 또는 장애로 인해 신체적, 사회적, 인지적 능력이 낮아진 환자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간단한 게임들로 구성되어 있다.
게임은 총 5단계로 진행되며 환자의 증상에 따라 선택하게 되어 있다. 1단계에서는 게임 장면만을 보여주고. 단계가 어려워질수록 실수를 유발하거나 추론을 요구하는 게임이 포함된다. 토버 측에 따르면, <토베르타펠>을 이용한 환자 중 93%가 사회적 상호작용이 개선되었으며, 81%는 주의력 향상을 경험하는 등 유의미한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베르타펠>은 2022년 미국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에디터들의 선택상(Editor's Choice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토버(Tover)의 <토베르타펠(Tovertafel)> 이용 장면 출처 : Australian Aging Agenda(2022.03)교육용 기능성 게임 개발사 &라니(&ranJ)는 우크라이나 어린이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우크라이나 교육부와 협력해 <빨리 배우고 싶어요: 우크라이나(Can't Wait to Learn: Ukraine; 의역)>를 개발했다. <빨리 배우고 싶어요: 우크라이나>는 2023 더치 게임 어워드(2023 Dutch Game Awards) 기능성 게임상 후보작에 오르기도 했다. 2017년에는 네덜란드 대표 은행 라보뱅크(Rabo Bank)와 공동 개발한 유년기 금융 교육 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 게임 <라보 핀핀(Rabo PinPin)>을 출시했다.
&라니(&ranJ)의 <라보 핀핀(Rabo PinPin)> 이용 장면 출처 : &Ranj2023 더치 게임 어워드(2023 Dutch Game Awards) 기능성 게임상을 수상한 <클란크Kr8(KlankKr8)>의 개발사 게임 테일러(Game Tailors)도 의료 및 교육 전문 기능성 게임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클란크Kr8>은 난독증 어린이의 독해력 향상을 위한 게임으로, 네덜란드 난독증 연구소(Nederlands Kwaliteitsinstituut Dyslexie)와 함께 개발되었다. 또한, 유년기 언어 발달 장애 개선을 위한 <바우커 바우트(Bouke Bouwt)>는 위트레흐트 응용과학 대학교(Utrecht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의 언어 치료 연구소와 함께 개발한 것이다. 7~10세 어린이들이 문장 구조를 인식하고 스스로 문장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게임으로 실제 언어 치료사가 개발 단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네덜란드의 기능성 게임 개발사들은 기관이나 대학과 긴밀한 연구 협력을 통해 더욱 효과 높은 기능성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 기능성 게임 개발사 아이스폰테인(Ijsfontein)의 공동 창립자 얀 빌렘(Jan Willem)은 "업계와 학계의 협력은 단순히 기능성 게임시장 성장을 촉진하는 것을 넘어 게임산업 생태계를 확장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라며 산업 간 연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기능성 게임은 틈새시장을 공략해 네덜란드 게임산업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네덜란드가 속한 베네룩스(Benelux)25) 권역은 세계적으로 이스포츠(eSports)의 인기가 높은 지역 중 하나이다. 그중 네덜란드는 팀 리퀴드(Team Liquid)라는 세계적인 이스포츠 구단이 자리 잡고 있으며, 시장 규모도 베네룩스 국가 중 가장 크다. 2022년에 네덜란드 이스포츠 선수들이 대회에서 벌어들인 상금 규모는 199만 달러로 (약 27억 8,600만 원)에 이른다. 이는 2022년 기준 유럽 전역에서도 8위를 기록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이스포츠 구단은 팀 리퀴드(Team Liquid)로 미국의 TSM와 100 시브즈(100 Thieves)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가치가 높은 팀으로 알려져 있으며 2022년 기준 구단 가치는 4억 4,4400만 달러(약 5,940억 원)으로 추정된다. 팀 리퀴드는 2000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Blizzard Entertainment)의 <스타크래프트(StarCraft)> 전담팀으로 시작했으며, 2023년 4월에는 델(Dell) 산하의 에일리언웨어(Alienware)와 브라질 상파울루에 세계 최대 규모의 이스포츠 교육 시설을 개장하는 등 선수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는 밸브(Valve Corporation)의 <도타 2(Dota 2)>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2022년 이스포츠 구단 가치 순위 출처 : eSports Earnings종목 기준으로 네덜란드 선수들이 가장 많은 상금을 얻은 게임은 에픽 게임즈(Epic Games)의 <포트나이트(Fortnite)>이다. 지금까지 누적 상금은 334만 달러(약 45억 원)로 이는 네덜란드 전체 이스포츠 누적 상금액의 약 20% 수준이다. 가장 두각을 보이는 선수는 역시 <포트나이트>의 로조(Rojo)로 지금까지 121만 달러(약 16억 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이스포츠의 인기에는 네덜란드에서 여전히 랜 파티(LAN Party)가 성행하는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랜 파티란 한 공간에 모여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동안 함께 게임을 하는 네트워크 모임이다. 인터넷이 발달하며 랜 파티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네덜란드에서는 캠프 존(Camp Zone)이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랜 파티가 열리고 있다. 이스포츠와 랜 파티는 모여서 게임을 함께 즐긴다는 개념에서 비슷한 점이 많아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규모 야외 랜 파티 캠프 존(Camp Zone) 출처 : Campzone Netherlands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게임 개발을 지원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네덜란드 게임산업 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더치 게임 가든(Dutch Game Garden)은 유럽 최대의 게임산업 지원 협회 중 하나로 2008년 네덜란드 정부 지원으로 문을 열었다.
더치 게임 가든은 게임 개발 스타트업을 주로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08년부터 230여 개의 게임 개발사와 스타트업이 인큐베이션 센터에 입주하였고, 350여 개의 게임이 출시되었다. 애비 게임스(Abbey Games)처럼 규모를 키워 센터를 떠나는 우수 사례도 많다. 더치 게임 가든은 입주사에 퍼블리셔 계약이나 엔진 구축 방법과 같은 전문적인 교육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회사 운영 방법 등 경영 전반에 대한 교육도 제공한다. 입주사끼리 미출시 게임을 서로 체험해보며 피드백을 공유하는 비공식적인 세미나도 활발한 편이다.
인큐베이션 프로그램 외에도 더치 게임 가든은 인디고(INDIGO) 쇼케이스라는 행사도 주최한다. 인디고는 네덜란드 최대 규모의 게임쇼 중 하나로 게임 개발자, 퍼블리셔, 투자사, 언론사 등 다양한 업계 사람들 간 협업의 기회를 마련하는 만남의 장이라 볼 수 있다. 2010년 쇼케이스 형식으로 시작된 인디고는 2016년부터는 해외 개발사도 참가하며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하였다. 이후 멘토 프로그램 인디고 매치메이킹(INDIGO Matchmaking)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등 단순한 게임쇼에 그치지 않고 게임업계 종사자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발전하였다.
더치 게임 가든의 인디고(INDIGO) 쇼케이스 출처 : Dutch Game Gar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