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 캘린더
일본은 중국,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게임시장이다. 그만큼 역사를 가진 게임 개발사가 많고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게임 시리즈도 많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 콘솔에서 모바일로 산업 트렌드가 빠르게 전환되며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일본 게임산업협회(Japan Online Game Association; 이하 JOGA)에 따르면 일본 게임시장 규모는 매년 소폭 감소하고 있으며, 모바일 게임보다 PC와 콘솔 게임의 감소 폭이 더 크다.
하지만, 눈에 띄는 점은 애니메이션·만화 등 IP 기반 게임의 매출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22년의 IP 기반 게임 매출은 1,137억 2,310만 엔(약 1조 235억 원)으로 2021년 대비 약 25.3% 증가하였으며 한동안 증가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7~2022년 일본 플랫폼별 게임시장 규모 및 IP 기반 게임 매출액 출처 : Japan Online Game Association도쿄 게임쇼(Tokyo Game Show)는 일본 최대의 게임 전시회이자 미국의 E3, 독일의 게임스컴과 함께 세계 3대 게임쇼 중 하나로 꼽히는 중요한 행사다. 일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Computer 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CESA)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1996년에 처음 시작되어 2023년에는 27회째를 맞이했다. 과거에는 연 2회 개최되기도 했으나, 2002년부터는 도쿄 근교 치바현의 마쿠하리 멧세(幕張メッセ)에서 매년 가을 1회 개최되고 있다.
도쿄 게임쇼는 티켓 수와 참관객 나이를 제한했던 2022년을 제외하고 2010년부터 매년 20만 명 이상의 참관객이 방문했으며,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개최됐음에도 불구하고 3,000만 명 이상의 시청자가 참여했다. 또한, 참가하는 개발사 수도 매년 증가하여 현재는 매년 600~700개에 달하는 개발사들이 도쿄 게임쇼에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참관객과 참가사 수는 도쿄 게임쇼가 세계 3대 게임쇼로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 볼 수 있다.
2002~2023년 도쿄 게임쇼 역대 참관객 및 참가사 수 흐름 출처 : Tokyo Game Show도쿄 게임쇼가 세계 3대 게임쇼로 인정받는 또 다른 이유는 주요 게임 개발사들이 참여해 미공개 신작을 공개하기 때문이다. 2023 도쿄 게임쇼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캡콤(Capcom), 스퀘어 에닉스(Square Enix), 넷이즈(NetEase) 등 세계적인 게임 개발사들이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여 참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대형 게임사들의 참여는 도쿄 게임쇼가 단순한 전시회를 넘어 게임산업의 최신 동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중요한 행사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23년 9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일간 열린 2023 도쿄 게임쇼는 4년 만에 마쿠하리 멧세 전관을 사용할 정도로 역대급 규모를 자랑했다. 행사에는 게임뿐만 아니라 게이밍 주변 기기와 가구를 전시하는 부스도 새롭게 자리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참가사는 787개로, 이는 역대 도쿄 게임쇼 중 가장 많은 수치다. PC, 콘솔, 모바일 게임부터 VR 게임, 블록체인을 접목한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플랫폼의 게임 개발사들이 참여했다.
도쿄 게임쇼를 방문하기 위해 마쿠하리역에 내리자, 게임쇼로 향하는 인파로 인해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였다. 외국인 참관객들도 쉽게 볼 수 있었고, 소형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도 많아 직접 참관하진 못해도 스트리밍, 영상 등을 통해 게임쇼의 열기를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매년 도쿄 게임쇼에 참여했다고 밝힌 한 참관객에 2023 게임쇼만의 차별점을 묻자 단연 '부스의 화려함'이라고 답했다. 개발사 부스를 운영하던 관계자에게도 도쿄 게임쇼만의 특색이나 다른 게임쇼와의 차이점을 묻자, 화려한 비주얼이라고 대답한 경우가 많았다. 언제나 화려한 디자인으로 이용자의 눈길을 끄는 일본 게임의 특징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게임쇼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부스들은 발매 예정인 신작을 공개하거나 인기 IP를 보유한 개발사들이었다. 코에이 테크모 게임즈(Koei Tecmo Games) 부스에서는 2023년 9월 발매된 신작 <페이트/사무라이 렘넌트(フェイト/ サムライレムナント)>의 시연을 즐길 수 있었다. 행사 당시는 발매 전이었던 터라 많은 참관객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옆의 코나미(Konami) 부스도 미공개 신작 시연을 기다리는 참관객들로 붐볐다. 코나미도 행사 기준 발매 전이던 <모모타로 철도(桃太電)> 시리즈 신작 <모모타로 전철 월드 ~지구는 희망으로 돌아간다!~>와 <메탈기어 솔리드(Metal Gear Solid)>의 마스터 컬렉션 리마스터 버전을 미리 즐길 수 있는 체험 공간을 운영했다. 코나미의 게임 기획을 담당하던 관계자는 "도쿄 게임쇼는 신작을 알릴 수 있는 가장 큰 이벤트"라며,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게임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게임쇼 참여 배경을 밝혔다.
<소닉(ソニック)>, <용과 같이(龍が如く)>, <페르소나(ペルソナ)> 시리즈 등 메가 히트 IP를 가진 세가(Sega)는 게임 캐릭터 코스프레 무대와 게임 시연 부스를 마련했다.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게임이 많은 만큼 남녀노소 많은 참관객이 몰려 게임쇼에서 가장 붐비고 화려했던 부스 중 하나였다.
도쿄 게임쇼에서 게임 외에도 참관객들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코스프레 스태프들이었다.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완성도 높은 분장과 움직임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호요버스(HoYoverse)의 부스는 이를 가장 잘 활용한 곳이었다. 호요버스 부스에서는 2023년 11월 출시된 신작 <젠레스 존 제로(Zenless Zone Zero)> 캐릭터의 코스프레를 한 스태프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는 이미 일본에서도 흥행한 <붕괴(Honkai)> 시리즈, <원신(Genshin)>, <미해결사건부(Tears of Themis)>를 보기 위해 방문한 참관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이벤트였다.
호요버스의 <젠레스 존 제로> 부스 앞 캐릭터 코스프레 출처 : 이씨이십일알앤씨오프라인 게임쇼의 묘미는 굿즈 이벤트라고 볼 수 있다. 간단하게는 공식 SNS 채널 팔로우를 인증하는 것부터 스탬프 투어, 럭키드로우 등 이벤트 경품으로 굿즈를 증정해 참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특히, 소니(Sony)의 엑스페리아(Xperia) 부스는 호요버스와 협업해 두 부스에서 체험하고 스탬프를 모으면 <원신> 캐릭터 배지를 증정하는 행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전시회장에서 만난 한 참가자는 게임쇼의 참가 이유를 "코에이 테크모에서 발매할 <페이트 사무라이/렘넌트> 게임의 핀 버튼 굿즈를 받기 위해서"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캐릭터가 무작위로 배부되어 걱정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뽑았다"며 기뻐했다. (일본에서는 캐릭터 일러스트가 그려진 버튼 굿즈가 게임을 비롯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굿즈라고 한다)
하지만 이벤트 참여 방법이 복잡하면 참가자들의 참여율이 떨어지기도 했다. 한 부스에서는 개인 스마트폰에 모바일 게임을 설치하고 튜토리얼을 완료해야 굿즈를 받을 수 있었는데, 게임을 설치하고 플레이까지 해야 한다는 점 때문인지 많은 참관객이 참여를 포기하고 떠나는 모습도 보였다.
게임쇼 한편에서는 널찍한 체험 공간을 마련한 VR(Virtual Reality; 가상 현실) 게임 부스도 만나볼 수 있었다. VR 게임기의 접근성이 낮은 편이다 보니 다른 게임 부스보다도 체험을 기다리는 참관객 줄이 특히 길었다. 부스는 단순하게 구성되었지만, VR 기기를 착용하고 게임을 체험하는 참관객들의 즐거운 모습이 눈에 띄었다.
VR 게임 부스에 참가한 한국 기업 비햅틱스(bHaptics) 담당자는 "일본은 서구권에 비해 VR 게임에 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이번 도쿄 게임쇼를 통해 일본에 자사 기술을 알리고자 참여하게 되었다"라며 참가 배경을 밝혔다. 한 게임 개발 전문학교 학생 참관객은 현재 학생이기 때문에 주로 모바일이나 콘솔 게임을 즐기고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VR 기기를 구매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집에 VR 게임을 즐길만한 충분한 공간이 없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 VR 게임이 크게 흥행하지 못한 이유가 서구권과 달리 일본의 좁은 집 구조 때문이지 않겠느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참관객들로 북적이는 부스들을 보며 수년 안으로 일본 대형 개발사 부스에서도 VR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다른 구역에서는 게임쇼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일본 인테리어 브랜드 니토리 (Nitori)의 부스도 볼 수 있었다. 니토리는 게임 이용자들이 꿈꾸는 게임용 방을 그대로 꾸며놓아 눈길을 사로잡았다. 일본의 유명 이스포츠 구단 데토네이션 포커스미(DetonatioN FocusMe)의 포트나이트(Fortnite) 선수 네프라이트(Nephrite)와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게임용 가구도 선보여 많은 참관객이 몰리기도 했다.
니토리의 게이밍 방 전시 출처 : 이씨이십일알앤씨스트리밍 트렌드에 발맞춰, 도쿄 게임쇼에서는 게임 스트리머들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게임 스트리머나 버츄얼 유튜버(Virtual Youtuber)의 인기가 높아져서인지 게임 스트리머를 초대한 부스도 적지 않았으며 실제로 스트리머를 보기 위해서 방문한 참관객 수도 적지 않았다.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Twitch) 부스 앞에서 만난 한 참가자는 오직 캡콤(Capcom)의 <몬스터 헌터(Monster Hunter)> 스트리머를 보기 위해서 게임쇼에 방문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 부스 출처 : 이씨이십일알앤씨2023 도쿄 게임쇼는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커진 부스 규모와 한층 더 안정된 온라인 행사와 VR 전시가 더해진 역대급 규모의 하이브리드 행사였다. 예전보다 오프라인 게임쇼의 영향력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참관객들로 붐비는 모습은 게임쇼를 기다렸던 전 세계 게임 팬들의 애정을 보여줬다.
도쿄 게임쇼는 쇼 자체로 일본만의 특색을 알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일본 전통 축제인 마쓰리(祭り)가 연상될 정도로 화려한 디스플레이와 장식, 코스프레 참관객들과 함께 팻말을 들고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모습은 다른 게임쇼에서는 볼 수 없던 독특한 장면이었다.
아무리 작은 부스여도 게임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기기를 구비해 두고 있었고, 무엇보다 대형 게임사의 미공개 신작을 먼저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쿄 게임쇼는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굿즈 증정 이벤트가 활성화되어 있는 것도 큰 특징이었다. 굿즈를 모으기 위해서 게임쇼에 방문하는 참관객들이 있을 정도로 탄탄한 팬층이 구축된 게임 시리즈가 많았다. 일명 '덕후 문화'가 자리 잡은 일본인 만큼 출시된 지 20~30년이 지난 게임 시리즈라도 꾸준히 신작이 발매되고 새로운 팬들이 유입되는 것은 일본만의 장점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올해 도쿄 게임쇼를 관통하는 트렌드라고 하면 단연 서브컬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서브컬처 게임 트렌드의 선두 주자라 볼 수 있는 호요버스뿐만 아니라 하이퍼그라피 (Hypergryph), 쿠로 게임즈(Kuro Games) 등 중국 개발사들은 도쿄 게임쇼에서 서브컬처 게임 신작을 공개했다. 한국의 님블 뉴런(Nimble Neuron)과 빅게임 스튜디오(Vic Game Studio)도 각각 <이터널 리턴(Eternal Return)>과 <브레이커스: 언락 더 월드(Breakers: Unlock the World)>를 선보였다.
님블 뉴런의 <이터널 리턴> 부스 출처 : 이씨이십일알앤씨한국과 중국 서브컬처 게임 개발사들이 일본에서의 성공에 크게 의미를 두고 있는 만큼 도쿄 게임쇼를 통해 일본 게이머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임 외에도 버츄얼 유투버가 큰 인기를 끄는 것을 보니 한동안 서브컬처 트렌드가 지속될 것이라 예상된다. 다만 이 많은 서브컬처 게임 중 일본 개발사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일본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일 수 있겠다.
쿠로 게임즈 부스 앞의 <명조> 피규어 출처 : 이씨이십일알앤씨이번 도쿄 게임쇼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참가사가 참여하여 참관객들이 행사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게임산업의 최신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코로나19 이전의 성과와 비교했을 때 다소 아쉬움이 남을 수 있지만, 아시아 최대 게임쇼로서 변화하는 게임산업의 동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음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