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오픈월드(Open World) 게임은 진행 순서나 방향을 제작자가 사전에 의도한 대로 따라야 하는 타 장르와 비교하여 플레이어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한 게임을 말한다. 아직 오픈월드 장르가 무엇인지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적어도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 구현된 세계를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여기에, 게임 배경의 대부분이 실내가 아닌 야외일 것, 플레이어가 탐험한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구현된 세계의 크기가 충분히 클 것, 캐릭터와 배경(자연 지물이나 건물 등)의 크기 비율이 현실적일 것, 플레이어의 조작 여부와 관계없이 시간이 흐를 것 등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오픈월드 게임 여부를 구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오픈월드 장르의 원형은 1970년 일본 ‘세가(Sega)’의 <제트로켓(Jet Rocket)>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케이드용 1인칭 전투기 비행 시뮬레이터인 이 게임은 진행 방향이 고정된 이전까지의 게임과는 달리 플레이어가 원하는 방향을 선택하여 공격할 수 있었다. 이후 1984년에 PC용 우주비행 시뮬레이터 <엘리트(Elite)>가 지금의 오픈월드 장르와 조금 더 가까운 모습을 갖추며 등장했다. <엘리트>는 플레이어가 우주선을 타고 어디로 갈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탐사, 무역, 전투 등 무엇을 할지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이후 1999년에 발매된 <쉔무(Shenmue)>는 게임 속 마을과 길거리를 모두 실제 크기로 구현했으며 시간과 날짜의 흐름 및 날씨의 변화에 따른 게임 내 이벤트 변화를 게임 사상 최초로 도입하며 크게 주목받았다. 다만, 이때까지도 플레이어는 게임 내 사물과는 상호작용할 수 있었지만 ‘NPC(None Player Character)’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쉔무> 출시 2년 후 2001년에는
2024년 1월 출시된 ‘포켓페어(Pocket Pair)’의 오픈월드 서바이벌 게임 <팰월드(Pal World)>가 게임계를 강타했다. 팰월드는 출시 일주일 만에 스팀(Steam)에서만 8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1개월 동안 스팀과 엑스박스(Xbox) 누적 플레이어 수 2,500만 명을 돌파했다. 또한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도 한 때 210만 명을 넘어 역대 스팀 게임 동시 접속자 수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팰월드>의 돌풍이 눈에 띄는 가장 큰 이유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높은 인지도를 지닌 대형 제작사의 유명 IP가 아니라 중소 제작사가 완전히 새롭게 선보인 타이틀이라는 점이다. 팰월드 발매를 전후하여 남코(Namco)의 <철권(Tekken) 8>, 스퀘어에닉스(Square Enix)의 <파이널판타지(Final Fantasy)7 리메이크> 등 대형 제작사의 기라성 같은 강력한 IP들의 신작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게이머들로부터 <팰월드>만큼의 호응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이처럼 <팰월드>가 2024년 게임계의 핫이슈로 떠오르게 된 이유는 오픈월드와 서바이벌, 그리고 슈팅과 수집의 조합이라는 독특한 게임성이 게이머들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팰월드>의 세계를 탐험하면서 총기를 이용하여 몬스터와 대결하고, 전투를 위해 자신을 도와줄 동물 ‘팰(Pal)’을 수집할 수 있다. 또한, <팰월드>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종 물자를 채집하고 조달하는 서바이벌 요소도 게임에 녹아있다.
또한, <팰월드>와 비슷한 시기, 판타지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오픈월드 서바이벌 게임 <인슈라오디드(Enshrouded)>도 게이머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인슈라오디드>는 생존을 위한 탐사와 수집 요소에 오픈월드 롤플레잉을 조합한 게임으로, 플레이어가 원하는 지역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도록 실제 스케일의 넓은 맵과 높은 자유도를 보장한다. 이처럼 2024년 초 최고 화제작이 된 <팰월드>와 <인슈라오디드>는 최근 오픈월드 서바이벌 장르 붐을 견인하고 있다.
<팰월드>는 일본의 중소 개발사 포켓페어의 게임으로, <팰월드> 이전까지는 정식 출시를 한 게임이 전무했을 정도로 게임계에서는 철저히 무명인 제작사였으나, 2024년 1월 19일 출시한 <팰월드>가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단숨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팰월드>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플레이어를 돕는 동물형 펫, ‘팰(Pal)’이다. 팰은 닌텐도의 최고 인기작 <포켓몬(Pokemon)>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귀여운 외모에 팰 마다 개성 있는 특성과 스킬을 지녀 플레이어의 수집 욕구를 자극한다. 한편, <팰월드>의 전투 시스템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인 ‘슈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에 더해 제작사 포켓페어는 플레이어가 팰을 수집하고 전투를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수렵, 채집, 농사, 요리 등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이 모든 것을 정해진 순서나 스크립트가 아닌 자유로운 오픈월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결론적으로, <팰월드>는 수집과 건슈팅, 서바이벌, 그리고 오픈월드라는 검증된 요소들을 적절히 조합해 플레이어가 다양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하여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팰월드> 게임 플레이 모습 출처 : Pocket Pair<팰월드>의 초대박에 다소 가려져 있으나 독일 인디게임 개발사 ‘킨 게임즈(Keen Games)’가 2024년 1월 24일 출시한 <인슈라오디드>도 게이머들의 입소문을 타며 흥행하고 있다.
<인슈라오디드>의 가장 큰 특징은 서바이벌이다.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는 먼저 거점을 정하고 주변의 자원을 모아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건물을 지으며 살아남아야 한다. <인슈라오디드>의 건설 요소는 자유도가 매우 높아 마을 수준의 건물을 세우거나 게임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기상천외한 디자인의 건물을 설계할 수도 있다. 이처럼 플레이어의 창의성이 반영된 건물을 서로 공유하는 것도 게임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이다.
한편, <인슈라오디드>는 게임 내에 오픈월드 롤플레잉(RPG)의 요소도 매우 정교하게 녹여내었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원하는 퀘스트를 선택하여 게임 세계관에 얽힌 스토리와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으며, 퀘스트 보상으로 귀한 아이템을 모아 수집할 수 있다. 또한 캐릭터의 직업을 선택하고 원하는 전투 방식을 통해 캐릭터의 육성 방식을 정할 수 있는 ‘스킬트리’ 시스템을 채택해 롤플레잉 측면에서도 많은 자유도를 부여했다. 이는 <인슈라오디드>의 가장 큰 특성인 서바이벌 및 건축 요소와 함께 게임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슈라우디드> 게임플레이모습 출처 : Gameple러시아 게임 개발사 ‘배틀스테이트 게임즈(Battlestate Games)’의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Escape From Tarkov)>는 <팰월드>와 <인슈라오디드> 이전, 오래전부터 오픈월드 서바이벌 장르로서 많은 인기를 끈 게임이다.
2017년 12월 오픈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이 게임은 얼핏 보면 여타 FPS 슈터 게임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반적인 FPS 슈터 게임과는 달리 전리품을 사고팔 수 있는 롤플레잉식 경제 시스템이 구현되어 수집 요소가 게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더불어, 갈증이나 배고픔으로 인해 캐릭터가 사망할 수 있기에 이를 막기 위한 보급품을 조달해야 하는 등 서바이벌 요소를 더했다.
또한,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의 가장 큰 특성으로는 다른 FPS 게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준비된 상호작용이다. 플레이어 캐릭터와 지형지물의 상호 작용을 비롯해 이동, 음식물 섭취, 사격 등의 행동 시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애니메이션이 바뀌어 현실감을 더해준다. 이러한 특성은 오픈월드 특성과 함께 플레이어가 더욱더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하다고 느끼게 한다. 종합적으로,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는 FPS 슈터 게임을 기반으로 자유도 높은 오픈월드와 서바이벌, 그리고 롤플레잉 요소를 적절히 조합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게임 플레이 모습 출처 : Escape from Tarkov.com오픈월드 서바이벌 게임이 떠오르면서, 국내 게임 제작사도 이러한 장르 게임 개발에 서두르고 있다. 현재 가장 주목 받는 기대작은 <데이브 더 다이버(Dave the Diver)>로 이름을 알린 ‘민트로켓’의 <낙원>과 신생 개발사 ‘폴리모프 스튜디오’의 <이프선셋 (IfSunsets)>이다.
먼저 <낙원>은 오픈월드 서바이벌 흥행의 시발점인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와 기본적으로는 유사하다. 하지만, 수집한 물자를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게임을 설계하여 플레이어가 생존을 위한 오픈월드 탐사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한편, <이프선셋>은 전투와 전투 준비에 보다 초점을 맞추었다. 좀비가 등장하지 않는 낮에는 단순한 물자 수집 시간이 아닌, 바리케이드를 치거나 부비트랩을 강화하는 등 밤 시간의 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시간으로 설정했다. 따라서, <이프선셋>은 오픈월드 서바이벌이면서도 전투와 관련한 행동을 좀 더 부각하는 방향으로 이전의 유사 장르 게임과 차별성을 꾀했다.
<이프선셋> 게임 플레이 모습 출처 : 스토브2017년, PvP(플레이어 대 플레이어)와 PvE(서바이벌)가 결합한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가 해외 게이머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 시작하고 나서 지금까지 유사한 형식의 게임이 다수 출시되었다.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오픈월드 서바이벌은 여전히 글로벌 게이머들 사이에서 뜨거운 장르 중 하나이고, 이는 2024년 <팰월드>와 <인슈라오디드>의 흥행으로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실제로, 아직 게임업계의 최고 흥행 키워드는 오픈월드 서바이벌을 상징하는 ‘파밍’과 ‘생존’이다.
글로벌 흥행작 <배틀 그라운드(Battle Ground)>로 일약 메이저 개발사로 떠오른 ‘크래프톤(Krafton)’은 오픈월드 서바이벌과 건슈팅이 결합한 ‘익스트랙션 슈터’ 장르가 앞으로 게임계의 대세 장르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특히 아직 이러한 장르에 대한 경험이 적은 국내 게이머에게 크게 어필하여 상당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많은 개발사들은 유저들이 게임에 오랜 시간 동안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다양한 검증된 요소들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한데 모여 오픈월드 서바이벌이라는 장르로 구현되고 있다. 한편, 오픈월드 서바이벌에 롤플레잉 요소를 강조한 게임이라면 신규 퀘스트 업데이트로 게임의 수명을 길게 연장할 수 있다. 물론, 롤플레잉 요소가 강하지 않은 오픈월드 서바이벌도 새로운 맵과 지역을 업데이트하여 오랜 기간 게임의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다.
오픈월드 서바이벌은 전혀 새롭지 않은 요소도 적절히 조합한다면 게임업계가 새로운 장르적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꾸준한 신규 콘텐츠 업데이트를 통해 단일 타이틀 혹은 IP의 장기 흥행도 가능하다. 오픈월드 서바이벌 장르가 인기를 얻고 성장세를 지속하는 지금, 국내에서도 이러한 장르의 개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