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 포커스
저자 김성진은 취재 기자로 약 10여 년을 현장에서 발로 뛰며 한국 게임 개발사들의 시작과 부흥을 함께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게임사 네오위즈에 입사해 자신만의 철학과 노하우를 사업 전략으로 펼쳐냈다. 이후 개발사를 창업해 다양한 장르를 두루 섭렵하며 제작과 운영, 서비스를 직접 핸들링했으며, 주식회사 파이어트리에서는 블록체인 게임과 방치형 캐주얼 게임을 기획하고 개발했다. 현재는 디일렉에서 취재 기자로 활동 중이며 게임 분야와 함께 인터넷 콘텐츠, 블록체인 등 여러 부문에서 이야깃거리를 발굴 중이다.
국내 게임산업에서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IP)을 활용한 제작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과거 PC 기반의 온라인 게임이 국내에서 태동했던 시기에 엔씨소프트의 <리니지>와 넥슨의 <바람의 나라>가 등장해 산업을 키웠다. <리니지>는 동명의 출판 만화의 콘셉트와 세계관, 스토리텔링 등을 기반으로 개발된 사례였으며 넥슨의 <바람의 나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각각 서비스가 시작된 시기는 <리니지>가 1998년부터, <바람의 나라>는 1996년부터이다. 여기에 <열혈강호>도 이름을 올린다. 만화 <열혈강호>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연재가 진행되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며, 이를 기반으로 제작된 게임 <열혈강호 온라인>은 2005년에 정식 서비스를 열었다. 다시 말해, 국내 게임산업은 대략 20년 전부터 만화 IP를 융합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 <열혈강호 온라인> 3종의 작품은 국내 게임산업에서 PC 온라인게임 분야와 IP 융합을 논할 때마다 등장하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특히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IP를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다양한 시리즈로 영역을 확장했다. <리니지>의 후속작 <리니지2>를 선보여 커다란 성공을 거뒀으며 모바일 플랫폼으로 전략을 확대한 후 <리니지M>와 <리니지W> 등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다. 엔씨소프트에서 공식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3분기 기준으로 <리니지> IP 매출 총액은 누적으로 15조 9,051억 원이다. <리니지>는 게임과 만화의 IP 융합 부문에서 약 16조 원에 이르는 규모의 가치를 창출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리니지 IP 활용 게임 타이틀별 매출액(2023)국내 게임산업의 IP 융합의 역사에서 엔씨소프트와 <리니지>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엔씨소프트가 단숨에 국내 1위의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이었고 경쟁회사들이 게임 <리니지>를 연구해 MMORPG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게 되는 신호탄이었다.
2024년 5월 8일 국내외에서 출시된 모바일게임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는 게임과 만화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넷마블에서 공식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출시 후 24시간 기준으로 활성이용자수(DAU)가 500만 명에 달하고 매출은 140억 원을 상회했다. 그리고 출시 후 대략 한 달이 지난 6월 초까지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매출 최상위권을 꾸준히 유지 중이다. 이 작품이 MMORPG가 아닌 싱글 롤플레잉 장르인 것을 고려하면 성공적인 행보를 나타내고 있다.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웹소설에서 최초로 연재가 시작됐고 이어서 웹툰으로 재탄생했으며 다시 게임으로 제작된 것이다. 이 게임의 성공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는다. 먼저,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아닌 싱글플레이 게임이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 <열혈강호 온라인> 등은 모두 다중접속역할게임 (MMORPG)이다. 이와 달리,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는 이용자가 혼자 게임을 풀어나가는 싱글플레이 시스템이다. 멀티플레이와 싱글플레이는 게임의 제작에 있어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이용자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며 게임을 계속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는 멀티플레이의 효율이 높다. 멀티플레이는 이용자와 이용자들 사이의 경쟁과 충돌을 유발하기 위해 콘텐츠를 지원하는 형태가 강하다. 이에 비해 싱글플레이는 게임 개발사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에서 콘텐츠는 전쟁터에 필요한 군수물자로 비유할 수 있지만, 싱글플레이 게임에서 콘텐츠는 전쟁터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과 미션을 의미한다. 게임 내에서 판매되는 아이템이라 해도 미션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아이템과 다른 이용자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아이템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게임 개발사가 싱글플레이 방식을 선택하면 방대한 콘텐츠를 출시 전에 준비하고 대규모 콘텐츠를 짧은 기간에 걸쳐 업데이트해야 한다. 따라서 싱글플레이 시스템은 개발사에서는 비용을 지속으로 투자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IP 융합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으로 방향을 잡고 제작한다. 그러나 웹소설과 웹툰은 주인공 중심의 서사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원작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싱글플레이 게임으로 개발하는 것이 적합하다. 이는 이번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가 싱글플레이로 개발된 가장 큰 이유이다.
두 번째로 눈여겨볼 사항은 충실한 원작 구현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웹소설의 인기를 바탕으로, 웹툰으로 제작됐는데 작품의 퀄리티가 높은 것으로 유명했다. 뒤를 이어 2024년 초에 공개된 애니메이션은 국내가 아닌 일본에서 제작됐다. 일본식으로 재해석된 그림이 아니라 원작 웹툰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는 방향으로 연출됐다. 가장 나중에 등장한 게임은 이용자와 상호작용하는 콘텐츠임에도 원작의 감성을 해치지 않았다. 이는 의외로 어려운 작업이다. 작가의 의도가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웹툰과 달리 게임은 이용자가 직접 게임 내의 주인공 캐릭터가 되어 활동한다. 이런 과정에서 개발사는 이용자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여러 변수와 시스템을 추가할 수밖에 없다. 원작 팬들의 기대와 다르게 게임이 개발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는 원작을 충실히 구현하고 그 감성까지 게임 이용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게임과 만화의 IP 융합을 위한 국내 회사들의 본격적인 움직임은 이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검술명가 막내아들>을 선택했고 넥슨은 <템빨>을, 네오위즈는 <금색의 갓슈>와 손잡았다. 발이 빨랐던 넷마블은 일본 출판만화 <일곱 개의 대죄>와 국내 웹툰계의 초기 흥행작 <신의 탑> 등을 이미 2019년과 2023년에 게임으로 출시했다.
게임사별 IP 활용 현황게임 개발사들이 웹툰 IP를 선호하는 이유는 마케팅 효과에 있다. 실례로 <나 혼자만 레벨업>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미국, 태국 등에서 인기가 높다. 글로벌 143억 회에 이르는 조회 수는 이 작품의 인지도를 가늠케 한다. 이를 기반으로 등장한 동명의 게임은 이용자들에게 다양한 게임 시스템보다 원작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이것이 통용됐다. 이미 널리 알려진 IP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게임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는 해외 여러 나라에서 매출 상위권에 오르며 IP 마케팅의 힘을 증명했다.
이는 마케팅의 비용 측면이라기보다는 효율의 측면이다. IP 활용 게임은 이용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원작의 이야기와 주인공의 서사에서 느꼈던 감정이 어떤 모습과 방식으로 게임화됐는지 궁금해하도록 만든다. 게임 마케팅 측면에서 이용자에게 새로운 게임 앱을 마켓에서 다운받고 실행하도록 하는 과정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부분이다. 실제 게임을 체험하도록 하는 단계까지 이용자들을 끌고 가는 마케팅이 가장 힘들다. 이를 수월하게 극복하는 좋은 방안이 IP의 활용이다. 좋은 IP를 활용한다면, 여러 설명과 문구보다 제목 하나로 이용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게임을 설치하도록 만들 수 있다.
웹툰업계에서도 IP의 게임화는 좋은 선택지이다. 게임의 인기는 다시 웹툰으로 연결돼 해당 웹툰을 다시 조회하고 읽어보는 역주행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콘텐츠 간의 시너지 효과는 웹소설과 웹툰의 관계에서 이미 나타난 바 있다. 과거 <재벌집 막내아들>은 드라마가 방영된 후 10일간 원작 웹소설 매출이 6배 증가했으며 웹툰으로 연재가 된 후에는 34배 증가했다. 웹소설과 웹툰 그리고 영상으로 이어지는 시너지 효과는 특별한 사례에서만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이다.
앞으로 게임업계는 게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적절한 IP를 모색하고 적극적으로 협업해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게임업계는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에서 시작된 노하우와 경험, 효과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나 혼자만 레벨업>의 사례를 통해 IP 게임의 개발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