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폴아웃(Fallout)>은 핵전쟁 이후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롤플레잉 게임(RPG) 시리즈이다. 1988년 인터플레이 엔터테인먼트(Interplay Entertainment)가 출시한 <웨이스트랜드(Wasteland)>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으로, 1997년 출시 당시 10만 장이 판매되었으며, 최종 판매량은 60만 장에 달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1998년 후속 시리즈인 <폴아웃 2(Fallout 2)>를 출시하였으며, 2001년에는 외전 시리즈인 <폴아웃 택틱스: 브라더후드 오브 스틸(Fallout Tactics: Brotherhood of Steel)>을 출시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2008년에는 베데스다(Bethesda)가 판권을 인수하면서 <폴아웃 3(Fallout 3)>를 출시하였고, 2018년 <폴아웃 76(Fallout 76)>을 출시하며 시리즈의 인기 상승에 기여했다.
<폴아웃> 주요 타이틀 및 특징이런 인기에 힘입어, 아마존 스튜디오(Amazon Studios)는 <폴아웃>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TV 드라마 시리즈를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폴아웃> 시리즈는 제작 초기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유명 프로듀서 부부인 조너선 놀란(Jonathan Nolan)과 리사 조이(Lisa Joy)가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헤이트풀8’에 출연했던 월튼 고긴스(Walton Goggins)가 주인공으로 합류했다. 시리즈 촬영은 2022년 7월부터 시작되었으며, 올해 4월 12일 첫 방영을 시작했다.
게임 <폴아웃>은 TV 시리즈 방영 발표와 맞물려 다양한 마케팅도 펼쳤다. 드라마 방영 발표 후, 아마존 스튜디오와 베데스다(Bethesda)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티저 영상과 제작 현장 사진을 공개하며 팬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2023년에는 첫 번째 공식 티저 트레일러가 공개되기도 했다. 또한, 스팀(Steam)에서는 <폴아웃> 게임 시리즈의 할인을 진행하였으며, 한 주 동안 <폴아웃 76>에 대한 무료 플레이를 지원한 바 있다.
<폴아웃> TV 시리즈 키비주얼 출처 : Amazon Prime<폴아웃>은 HBO의 인기 시리즈인 <웨스트월드(Westworld)>를 제작한 조너선 놀란과 리사 조이의 조합으로 시작 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고품질의 시각 효과와 정교한 세트 디자인을 통해 게임의 세계를 현실감 있게 재현했다. 화려한 볼트슈트와 황폐한 건물 디테일, 아포칼립스의 도시를 구현한 비주얼은 단번에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으며, 파워 아머(Power Armor)나 핍보이(Pip-Boy) 등의 게임 내 상징적인 장치를 등장시켜 게임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는 평이다.
또한, 게임 시리즈의 복잡한 설정과 세계관을 충분히 반영하여 기존 팬들에게는 친숙함을 제공했고, 게임을 접해본 적이 없는 시청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신선한 스토리를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배우 월튼 고긴스와 엘라 퍼넬(Ella Purnell)의 탄탄한 연기력이 작품 완성도에 기여하며 역대 최고의 비디오 게임 각색 작품 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조너선 놀란(좌)과 리사 조이(우) 출처 : Rotten Tomatoes<폴아웃> 시리즈는 TV 시리즈의 성공 덕을 톡톡히 봤다. 스팀(Steam)의 데이터에 따르면, 폴아웃 TV 시리즈 방영 이후 <폴아웃 76>의 동시 접속자 수는 7만 3,368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이전까지 평균 이용자 수가 7,000~10,000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매우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또 다른 시리즈인 <폴아웃 4>는 TV 시리즈 방영 이후 유럽 내 판매율이 무려 7,500%나 증가했다. 이처럼 이용자 수가 급증한 것은 완성도 높은 TV 시리즈가 기존 게임 이용자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또한, TV 시리즈를 통해 처음 <폴아웃>의 세계관을 접한 신규 이용자들도 다수 유입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뿐만 아니라, <폴아웃> TV 시리즈 출시와 맞물려 진행된 다양한 마케팅 행사들도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폴아웃 76>의 무료 플레이 기간 이용자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한편, 베데스다는 원활한 플레이를 위해 지난 4월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진행하기도 했다.
TV 시리즈 방영 이후 <폴아웃> 게임 시리즈 판매 데이터를 공개한 스팀 출처 : Steam이처럼 게임이 TV 시리즈로 각색되어 다시 인기를 끌게 된 작품에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가 있다. 지난 2023년 1월 TV 시리즈가 처음 방영되었는데, 많은 비평가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폴아웃>과 마찬가지로, TV에서의 인기가 게임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2022년 9월 재출시된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1(The Last of Us Part 1)>의 이용자 수가 증가하며 글로벌 게임 판매 차트에 다시 진입하였으며, 영국 판매 차트 상위 20위 안에 들기도 했다. 또한, 플레이스테이션 5(PlayStation 5)의 콘솔 게임과 에픽게임즈 스토어(Epic Games Store), 스팀을 통한 PC 게임도 출시되었다.
넷플릭스(Netflix)에서 출시되어 큰 인기를 끈 <더 위쳐(The Witcher)> 역시 좋은 예시이다. 폴란드의 작가 안드레이 사프코프스키(Andrzej Sapkowski)의 판타지 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으로, TV 시리즈 출시 이후 같은 소설을 기반으로 한 동명의 게임인 <더 위쳐 3(The Witcher 3)>의 닌텐도 스위치(Nintendo Switch) 매출이 전년 대비 554% 증가한 바 있다. 이처럼 TV 시리즈의 성공은 게임의 성공에 기여하기도 한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키 비주얼 출처 : HBO<폴아웃> TV 시리즈의 성공은 게임과 미디어의 융합이 얼마나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이러한 성공은 향후 다른 게임 기반 미디어 프로젝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기존의 게임 인기가 역주행할 수도 있으며, 이에 힘입어 새로운 시즌의 게임이나 스핀오프 게임이 출시될 수도 있다. 또한, 새로운 게임 확장팩이나 부분 유료화 콘텐츠(DLC, Downloadable Content)가 출시될 가능성도 커진다.
TV 시리즈뿐만 아니라 다른 콘텐츠로의 각색도 주목을 받고 있다. 폴란드의 게임 개발사 CD 프로젝트(CD Projekt)가 2020년 출시한 <사이버펑크 2077(Cyberpunk 2077)>은 2022년, IP 기반 애니메이션 <사이버펑크: 엣지러너(Cyberpunk: Edgerunners)>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면서 게임이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15개 이상 국가에서 상위 10위 안에 진입하며 큰 인기를 끌었으며, 각종 평가 매체에서도 연일 호평을 받았다. 특히, 스팀에서 진행한 대규모 할인과도 맞물려 이용자 유입이 크게 증가한 바 있다.
이처럼 게임 IP를 기반으로 한 TV 시리즈 및 영화 제작에 대한 관심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는 이미 입증된 스토리를 기반으로, 게임 팬들의 인기를 보장받을 수 있다. 원작에 비해 기존 팬들의 기대치가 높아져 제작 과정에 부담이 더해진다는 단점이 있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발판이 마련된 스토리를 기반으로 비주얼이나 작품 퀄리티를 높이는 데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게임 개발사 입장에서도 이미 한 차례 유행이 지난 게임의 제2의 전성기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노려볼 수 있다. 향후 게임 IP의 미디어화 트렌드는 지속될 것이며, 더 많은 게임이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글로벌 추세는 우리나라 게임 개발사에도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2018년, 넥슨의 모바일 게임 <야생의 땅: 듀랑고>를 기반으로 한 게임 예능 프로그램 <두니아~ 처음 만난 세계>가 방영되어 게임과 예능이라는 신선한 결합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중국 드라마 제작사와 협력하여 <크로스파이어> IP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천월화선: 크로스파이어>를 제작하여 누적 조회수 20억 건을 돌파했다. 크래프톤 역시 <배틀그라운드>를 기반으로 한 영화 제작을 위해 2021년 6월, <배틀그라운드> 세계관을 담은 단편영화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를 공개한 바 있다.
대형 개발사뿐 아니라, 인디게임 개발사 역시 미디어와 협업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인디게임 개발사들은 주로 독창적인 스토리와 독특한 게임 플레이 등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독특한 세계관은 드라마나 영화 등의 소재로 쓰이기에 적합하다. 예를 들어, <하데스(Hades)>와 같은 인디게임은 그 독특한 스토리와 캐릭터들로 인해 미디어 확장이 충분히 가능한 게임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으며, 인디게임 <엘 파소: 엘스웨어(El Paso: Elsewhere)>의 경우 영화화 논의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는 게임을 소재로 한 영상물이 저예산, B급 영화라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흔했으나, OTT의 대중화 이후 제작 단계에서 창작자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게임을 소재로 한 영상물의 퀄리티가 높아지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게임업계 역시 영화나 드라마 등의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타 미디어와의 교류를 점차 확대해 나간다면 <폴아웃> TV 시리즈와 같은 고무적인 사례를 남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