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밤’이 열어젖힌 자체 콘텐츠의 시대
© 유튜브 채널 ‘BANGTANTV’ <방탄밤> 영상
갈무리
방탄소년단(BTS)의 자체 콘텐츠 ‘방탄밤’의 로고는 폭탄
모양으로 생겼다. 영상 오른쪽 위편에 ‘BTS BOMB’이라는
영문 제목과 함께 폭탄이 그려져 있고, 이 로고는 오랫동안
방탄소년단을 떠올릴 때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상징적인
요소 중 하나로 기능했다. 2013년 데뷔와 동시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방탄밤’은 방탄소년단이 음악방송 프로그램
대기실에서 수다를 떠는 모습, 장난을 치는 모습, 허술하게
조는 모습 등 팬들이 궁금해할 만한 K팝 가수의 무대 뒤
모습들로 채워졌다. 멤버들이 처음 만져보는 적외선
카메라를 가지고 엉뚱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까지도
‘방탄밤’의 소재가 될 정도였다. 이처럼 아주 소소한
방탄소년단만의 이야기들이 짧게는 30초, 길면 3분 정도로
편집돼 올라왔다. 그리고 점차 폭탄이 터지듯 K팝 팬덤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마침내 ‘방탄밤’은
방탄소년단의 지난 역사를 톺아볼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기록이 되었다.
사실 방탄소년단이 ‘방탄밤’을 통해 남긴 기록은 K팝 팬들이
아이돌 가수들을 보며 점차 친밀감을 느끼게 된 역사의
기록이나 마찬가지다. K팝 산업은 팀의 콘셉트에 따라
멤버들의 인격마저도 회사에 의해 가다듬어진다고 여겨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방탄밤’은 짜인 틀 없이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는 아이돌 멤버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
대표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결과적으로 방탄소년단의
성공 이후, 수많은 K팝 아이돌 그룹 소속사들에서 같은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 가공되지 않은 콘텐츠들로 가득한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특성에 따라 소속사들은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긴 콘텐츠를 팬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소녀시대 효연, 샤이니 민호처럼 팀
활동과 개인 활동을 병행하는 멤버들이 회사와는 별개로
개인 유튜브를 운영하기도 한다. 아이돌이 스스로 직접
만드는 자체 콘텐츠가 등장한 셈이다.
K팝 팬들은 자체 콘텐츠를 보며 팀에서 멤버 개개인으로,
그리고 자신이 관찰한 개개인의 특징을 바탕으로 다시금
팀의 매력을 해석한다. “정말 귀여워”, “멋있어”, “예뻐”와
같은 흔한 칭찬들에 훨씬 더 구체적인 맥락이 담긴다. “무대
오르기를 기다리면서 멤버들과 함께 도시락 먹는 모습이
정말 귀여워”, “실수했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잘 넘어간
모습이 멋있어”, “다른 멤버에게 자기가 먹을 과자를
나눠주는 마음이 예뻐. 그러니 다들 사이가 좋지” 같은
식으로 팬들은 보다 명확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와 팀을
칭찬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이러한 칭찬이 가능해졌다는
것은 K팝 팬들이 아이돌들에게 이전보다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팬들은 아이돌들에게서 자신과
닮은 점을 찾을 수 있고, 자신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하다고
느끼는 지점을 칭찬하며 존경스러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서툰 모습을 보며 오히려 챙겨주고 싶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팬들은 다양한 캐릭터를 지닌
멤버가 한데 모여 팀을 결성하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동 받기에 이른다.
팬덤호소형과 대중호소형, 두 갈래의 전략
현재 제작되는 아이돌들의 자체 콘텐츠는 크게 팬덤호소형과 대중호소형으로 나뉜다. 팬덤호소형 콘텐츠는 ‘방탄밤’이 그러했듯,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 소속사들이 취하고 있는 형태에 해당한다. 해당 그룹에 관심이 있거나 이미 팬덤에 가입해 좋아하고 있는 팬들을 주요 소비자로 상정하고 제작한다. 이 경우에는 자체 콘텐츠가 전 국민적으로 화제가 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 대중호소형 콘텐츠는 종종 문화 콘텐츠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된다. 효연이 만드는 유튜브 채널 ‘효연의 레벨업’이나 샤이니 민호의 ‘최민호’는 아이돌이 독립적으로 만든 자체 콘텐츠로 볼 수 있다. 효연과 민호는 이미 대중에게 “엉뚱하다”거나 “열정이 넘친다”와 같은 말을 들으며 자신만의 특별한 캐릭터를 구축한 이들이다. 덕분에 효연은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가짜 김효연’이라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의 콘텐츠를 제작하며 소녀시대 멤버 유리, 수영과 함께 ‘효리수’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내 큰 화제가 됐다. 민호는 하이록스 도전기를 시리즈로 보여주고, 경찰 시험까지 도전하며 사람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는 중이다.
© 유튜브 채널 ‘효연의 레벨업 Hyo's Level Up’ <효리수 데뷔
프로젝트 7화> 영상 갈무리
또 다른 대중호소형 자체 콘텐츠의 예시로 들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리센느의 멤버 원이가 진행하는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가 있다. 그런데 효연의 유튜브 콘텐츠와 원이의 유튜브 콘텐츠가 화제가 된 과정은 전혀 다르다.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는 높은 인지도를 쌓은 효연과는 달리, 리센느라는 그룹과 원이라는 멤버에 대해 정보가 없는 대중에게 일반적인 유튜버처럼 접근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유튜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리센느는 음악 활동을 지속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처음 만나는 사이처럼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이는 ‘리센느 멤버 원이’로 콘텐츠를 진행하는 대신에 자신에 대한 어떠한 배경지식 없이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거제 소녀 원이’라는 자연스러운 정체성을 선택했다. 덕분에 원이는 대중에게 아이돌이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을 깬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로 남았다. 나아가 팀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들을 위기에 처했다가 ‘리센느 붐’까지 이어진 매우 극적이면서 특별한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생겼다.
효연·민호·원이가 증명한 ‘캐릭터’의 힘
©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영상 갈무리
K팝 팬들은 이제 아이돌들이 ‘스타’나 ‘셀러브리티’라는 이름 아래에서 자신들보다 훨씬 월등한 존재로 군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방탄밤’에서부터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까지 이어져 온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아이돌 콘텐츠 시장에서 이제 아이돌들은 입을 꾹 닫고 예쁘게 웃어주는 대신 적극적으로 말하고 움직인다. 팬들에게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얼마나 많이 연습했고 얼마나 많이 긴장했는지, 자신의 고향에 멤버들을 데려가면 얼마나 재미있을지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은 또 다른 자체 콘텐츠의 소재가 된다. 멤버들을 실제로 자기 고향으로 데려가 투어를 진행하고, 콘서트 녹화 영상을 보며 다 같이 웃고 떠들다가 눈물도 흘린다. 아이돌들은 자신들의 허술함과 나약함이 드러나는 것을 예전처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마 그러했다면 효연은 아무리 개인 유튜브더라도 ‘효리수’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고, 원이는 수도권이 아닌 거제 출신이라는 점을 팀의 이미지를 위해 꽁꽁 숨겨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팬들은 자신의 노래 실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고 있는 효연에게 호감을 느끼고, 시골 소녀인 원이에게 애정을 느낀다. 민호가 경찰 시험에 도전한다는 사실 자체로 멋지다며 박수를 보낸다.
결국 아이돌 콘텐츠가 파고드는 것은 ‘인간미’
© clipartkorea
2013년, ‘방탄밤’의 등장은 한편으로 소속사의 치밀한 전략처럼
보였다. 방탄소년단은 힙합이라는 장르의 거칠고 자유분방한
느낌을 추구하는 팀이고, 따라서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언행이
오히려 팬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갈 것이라는 계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자연스러움’을 내보이는 것이
중요한 전략이 되었고 그 전략이 여전히, 혹은 그때보다 한층 더
유효하다는 것이 증명된 현재, 팬들을 비롯한 대중이
아이돌들에게서 보고자 하는 모습은 분명해졌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결국 ‘인간미’다. 화려하게 꾸민 사람, 콘서트장을
화려하게 채운 기술, 이런 것들의 뒤편에 존재하는 날것의
얼굴들이 지금 아이돌 자체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전면에
드러내야 할 요소다. 그들의 솔직한 말 한 마디가 노래를
해석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굿즈를 구입해야 할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K팝 산업에서 자체 콘텐츠는 반드시 필요한 마케팅
수단이다. ‘2026 중소기획사 글로벌 도약 지원사업’과 같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사업에서도 신규 수출용 음반·앨범 제작비,
임차료 외에 글로벌 홍보-프로모션 비용 지원이 포함돼 있다.
무조건 멋지고 잘 가꿔진 콘텐츠만이 K팝 홍보와 프로모션의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 시대다. 팬들과 대중에게 말을 걸듯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또한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나아가겠다는 약속을 하는 모습이 담길 것. 아니면 원이처럼
아이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지금 K팝 팬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는 13년의 세월을 연결 짓는
방탄소년단과 리센느의 사례로 분명해졌다. 그러니 이제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K팝 콘텐츠 제작자들은 ‘인간미’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 이만큼 어렵다.
박희아
대중음악 및 대중문화 전문 저널리스트. 전 웹진 IZE 취재팀장, 국내 최초로 K팝 산업 테마 인터뷰집 3부작 ≪아이돌 메이커≫, ≪아이돌의 작업실≫,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를 출간했으며, 한국의 예술인 52인을 인터뷰한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시리즈를 발표했다. 다수의 매체에 출연하고 글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