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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칼럼
게임해서 돈 번다? 2021.12.22 1254

게임해서 돈 번다?


이경혁(게임 칼럼니스트)


최근 게임을 하면서 돈도 버는 플레이 투 언(Play to Earn, P2E) 게임 모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P2E 게임이 전 세계적 트렌드가 될 새로운 모델이라고 보는 긍정적 입장과 사행성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동시에 존재한다. 글로벌 트렌드 1, 2에서 P2E 게임을 바라보는 두 가지 측면을 각각 살펴보자. -편집자 주


‘페이 투 윈(Pay to Win, P2W)’이라는 말이 뜨기 무섭게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른 ‘플레이 투 언(Play to Earn, P2E)’. 이른바 P2E는 최근 들어 몇몇 게임사와 미디어를 통해 다가오는 미래의 새로운 게임 콘텐츠 양식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개념이다. 둘은 서로 약자도 다르고 개념도 다르지만, 디지털 게임이 그동안 보여준 일반적인 플레이 양식과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그리고 플레이어 일각으로부터는 우려와 비판에 직면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어느 순간부터 미래의 게임 플레이 양식으로 거론되기 시작하며 조금씩 프로토타입을 선보이고 있는 P2E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불안한 가능성에 머문다. P2E라는 방식이 드러나는 양상을 점검하고, 그 실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검토해 본다.


게임 속의 욕망, 화폐와 결합하다

P2E는 쉽게 말하자면 게임 플레이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놀이와 노동이 분리된 것으로 오랫동안 이해되어 온 지금까지의 인식 선상에서는 다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일 수 있겠지만, 사실 돌아보면 P2E의 기본 개념은 이미 현실의 게임 플레이에 구현된 바가 없지 않다. 이른바 롤플레잉 기반 온라인 게임에서의 아이템 현금 거래가 대표적이다.


파밍이나 제작을 통해 구할 확률이 매우 낮은 특정 아이템은 이용자 간의 거래가 허용되는 경우 인게임 머니나 물물교환을 통해 구할 수 있는 루트가 공식적으로 제공된다. 그러나 그 희귀도가 현저하게 높을 경우에는 아예 이용자들이 현실의 은행 계좌를 통해 현금을 입금하고 그 대가로 게임 안에서 아이템을 주고받는 방식이 존재한다. 아이템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등장한 에스크로 방식의 아이템 거래 중개 사이트들이 이 개념의 존재를 대변한다. <리니지>에서 호가 1억 원을 넘나들었던 희귀 아이템인 ‘진명황의 집행검’은 그 유명세로 프로야구단의 우승 세리모니에 등장할 정도였다.


P2E는 유저 간의 아이템 현금 거래를 공식적으로 인게임 콘텐츠화하는 과정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갖고 싶지만 쉽게 구할 수 없는 아이템을 놓고 이용자 사이의 거래가 발생하지만, 이때 거래를 통해 나타나는 수익은 게임사와는 완전히 무관한 이윤이었다. 이를 게임 안에서 거래하도록 시스템을 구성하면 게임사는 개인 간 아이템 거래의 거래 수수료를 추가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디아블로 3>가 초반에 시도했다가 이용자들의 강한 반발로 폐쇄한 아이템 현금 경매장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디아블로 3>의 현금 경매장이 보여준 구조는 오늘날 우리가 P2E라고 부르는 개념의 원형을 잘 보여준다. 게임 안에서 랜덤한 그리고 낮은 확률로 획득할 수 있는 높은 가치의 아이템 중 본인이 사용하지 않는 아이템을 이용자들은 현금 경매장에 올린다. 그 아이템이 필요하지만 쉽게 구하기 어려운 다른 플레이어는 현금결제를 통해 아이템을 살 수 있으며, 이 과정은 현실의 결제 수단과 연계되어 아이템을 획득한 이에게 현실의 수익을 발생시키는 구조였다.


2021년에 거론되는 P2E는 <디아블로 3>의 시도 위에 최근의 트렌드인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 NFT와 같은 기술이 덧붙어 완성된다. <디아블로 3>의 현금 경매장에서 거래되던 아이템의 의미가 오직 <디아블로 3>라는 게임이 제시하는 가상 세계 안에서만 유의미했던 반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NFT를 덧붙인 아이템은 설령 해당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한다 할지라도 현실과 연계되는 태그를 지니며 그 가치를 상대적으로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아블로 3>의 사례와 다른, 보다 영속적인 교환가치를 지닌 아이템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베트남에서 제작된 <엑시 인피니티> 역시 이 방식이다.


<디아블로 3> 화폐 경매장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엑시 인피니티> Ⓒ스카이 마비스


<엑시 인피니티>를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해당 게임이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별도의 가상화폐 지갑을 설치하고, 게임 암호화폐 지갑으로 송금이 가능한 외부 가상화폐 지갑 하나를 더 설치한 후 연동해야 한다. 가입과 연동 이후 게임을 시작하면 인게임 캐릭터를 별도로 구매해야만 게임 실행이 가능한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3개의 캐릭터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대략 수십만 원이 소요된다.


게임 플레이는 사실 큰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구조이지만, 일일 퀘스트 완료 보상이 가상화폐로 지급된다는 점, 게임 내에서 캐릭터들을 교배시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 뒤 희귀 캐릭터를 비싸게 경매장에서 판매하여 가상화폐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엑시 인피니티>의 가장 핵심적인 구조다.


이 과정은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디지털 게임이라기보다는 유사 코인에 가까운 형태를 보인다. 수십만 원에 달하는 별도의 초기 투자금이 필요하고, 그 안에서 코인채굴과 비슷한 방식으로 캐릭터 교배를 시킴으로써 수익을 낸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게임 플레이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재미를 느낄 수 없는 대신, 초기에 캐릭터를 구매한 뒤 그로부터 발생하는 추가적인 가상화폐 수입을 만들어냄으로써 이용자들을 붙들어내는 <엑시 인피니티>의 구조는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가상화폐 시스템에 게임 스킨을 덧씌운 정도가 될 것이다.


도박이라는 멍에

한국에서 사행성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현금으로의 환금성이다. 웹보드게임이라고 일컬어지는 여러 고스톱, 포커 게임들이 사행성 카드 게임을 원본으로 삼지만 정식 유통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공식적으로 환금성이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독버섯처럼 퍼져가는 불법 사설 카지노 게임들은 자신들의 게임에 실제 현금으로 칩을 구매한 뒤 게임에 승리해 칩을 획득하면 이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시스템을 제시하며, 이 점 때문에 이들은 불법 도박 사이트로 분류된다.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P2E의 대표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엑시 인피니티>는 명백하게 도박 게임이다. 다만 공식 화폐를 사용하지 않을 뿐, 사실상 사설 카지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다. 블록체인, NFT 같은 나름 신기술의 용어들을 접목했다지만 그 본질은 명백하게 도박에 있다. <엑시 인피니티>가 현재 운영하는 방식은 한국법상에서 게임보다는 도박으로 분류될 확률이 높으며, 심의통과를 위해 현금과의 연계성을 끊어낸다면 이 게임은 게임 자체로서의 의미가 없는 플레이 구조 덕분에 애초에 접속해야 할 이유를 상실한다. 명백하게 가상화폐 기반의 갬블 서비스인 어떤 게임을 두고 이른바 ‘P2E’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디지털 게임 산업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15년 전 한국 게임 산업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바다이야기>는 아케이드 게임으로 분류되며 심의를 통과해 전국적으로 번져나갔지만, 그 호황의 배경은 게임에서 상품으로 지급하는 상품권이 오락장을 벗어나 몇 걸음만 가면 바로 현금으로 환금해주는 환전소와 함께 움직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너도나도 뛰어들며 대호황을 누렸던 <바다이야기>는 한순간에 철퇴를 맞았고 사그라들었지만, 그로부터 한국 게임 산업이 받은 충격은 고스란히 남아 지금까지도 누적된 상황이다. 2000년대 이후 한참 꽃피기 시작했던 디지털 게임 문화는 초장부터 도박이라는 멍에를 쓰고 짓밟혔던 역사가 불과 20년도 되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어느새 돌고 돌아 게임 업계는 다시금 현금과 플레이를 연계하는 어떤 흐름에 눈길을 돌리며 이윤이 되는 산업으로 이를 재포장하고자 한다. 우려가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바다이야기>의 데자뷰

이용자의 욕망에서 시작된 아이템 현금 거래의 가능성은 그동안은 주로 P2W 쪽을 향해 변화해 왔다. 개인 간의 거래를 막고 인게임 결제를 늘리는 방향으로 P2W 게임은 발전해 왔고, 이른바 부분 유료 결제를 통해 자신의 캐릭터를 강화하는 방식의 게임이 한국 대형 모바일 게임의 주류를 이뤄온 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부정확 문제나 과도한 서비스 과금에 대한 이용자들의 분노와 반발이 터져나온 것이 2021년 한 해를 뒤흔든 모바일 게임 트럭 시위 사태였다. 그런 와중에 P2E라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게임 업계를 도박 업계로 고착화할 수도 있는 흐름이다.


디지털 게임이라는 말의 ‘게임’은 노동과 겹치기 어려운 개념이다. 놀이에 대해 사회학적 정의를 시도한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의 『호모 루덴스』는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점을 인간을 정의하는 주요한 특성으로 바라보며 놀이를 의미 지은 바 있었다. 즉, 어떤 현물적 가치를 생산하는 순간, 그 행위는 놀이의 영역을 벗어나 노동의 영역이 된다. 상당수의 MMORPG에 존재하는 이른바 ‘작업장’을 생각해보자. 현금 아이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게임에서 아이템과 골드를 파밍해 이를 현금으로 파는 일들을 우리는 게임 플레이가 아닌 작업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유사 노동의 형태로 인식한다. P2E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게임이 아니라, 가상공간에서 실제 효용은 없지만 높은 교환가치를 만들어내는 무형의 상품을 생산하고 유통하고자 하는 유사 노동이자 도박을 위한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


늘 ‘게임은 문화다’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P2E를 게임의 긍정적인 미래로 바라본다는 사실은 매우 씁쓸한 일이다. 한국 영화가 오늘날의 위상을 갖게 된 배경에 “영화도 보고 돈도 벌고가 있었는가?”라고 반문하면 간단하게 이해될 것이다. 2000년대의 <바다이야기>가 보여준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히 게임업계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배회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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