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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ustry & Policy 3

뉴 노멀 시대의 e스포츠 중계

글. 이경혁(게임 평론가)

오락실 시대, 한 기기 앞에 모여 다른 사람의 게임 플레이를 관전하던 시절이 있었다. 동전이 없어서 혹은 자리가 없어서, 아니면 엄청난 고수가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서 등의 이유로.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 플레이를 방송매체에 실어 보냄으로써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것을.

코로나19 이전부터도 각광받았던 e스포츠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타박 받았을 이야기지만 이 콘텐츠는 21세기 들어 ‘e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방송콘텐츠의 한자리를 차지했다. IMF의 혼란 속에 자리 잡힌 1차 뉴 노멀의 과정에서 ‘국민 놀이’로 정착한 〈스타크래프트〉와 그를 토대로 한 e스포츠 중계는 점차 규모를 키워 왔고, 2020년에 이르면서 코로나19라는 또 한 번의 대격변을 맞이하며 새로운 뉴 노멀 시대의 방송콘텐츠가 되고 있다.

사실상 모든 스포츠 경기가 멈추면서 두각을 나타낸 e스포츠지만, 새 중계콘텐츠의 위상이 코로나19에 맞춰 갑작스럽게 성립한 것만은 아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e스포츠 중계는 지속적으로 시청 인구를 확대해 오고 있었고,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더라도 충분히 몇 년 안에 도달했을 상황이 단지 갑작스런 사태로 인해 앞당겨졌을 뿐이다.

21세기 가장 크게 성장한 중계 종목, e스포츠

미국 최대 스포츠 중계 전문 케이블 채널인 ESPN은 2020년 5월 메이저리그 프로야구 중단으로 인한 중계 공백을 맞으며 다양한 대안을 모색했다. 최종적으로는 한국 KBO프로야구의 중계권 협상이 타결되어 미 전역에 KBO 정규리그를 송출하고 있지만, 그 타결 전의 중계 공백을 메꾸기 위해 ESPN은 메이저리그 프로야구를 다룬 플레이스테이션 스포츠게임 〈MLB 더 쇼〉의 이벤트 매치를 중계했다.

ESPN의 게임 중계가 처음은 아니다. 2014년부터 ESPN은 전통 스포츠 외에도 e스포츠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도타2〉 등의 인기종목 중계를 시도하며 가능성을 타진하던 ESPN은 2016년 1월 14일 홈페이지를 개편하며 e스포츠 섹션을 추가하고, “e스포츠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기사를 톱뉴스로 띄웠다.1) 2018년부터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제작사인 라이엇 게임즈와 중계권 계약을 체결, 북미 지역에서 펼쳐지는 〈리그 오브 레전드〉 리그 전 경기를 ESPN 플러스 채널을 통해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e스포츠의 성장세는 비단 북미 지역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유럽에서는 총 12개의 e스포츠협회가 모여 유럽e스포츠연맹(European Esports Federation)을 설립했다. 오랫동안 게임 종목별로 개별 투어 등을 통해 방송 외의 프로 경기가 이어져 왔던 유럽의 경우 그 열기가 가장 뜨겁다. 영국에 본부를 두고 〈카운터 스트라이크〉, 〈리그 오브 레전드〉 등 다양한 e스포츠 종목 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프나틱(Fnatic), 2000년에 창단하여 〈카운터 스트라이크〉 의 전통 있는 강자로 군림해 온 스웨덴의 닌자스 인 파자마스(Ninjas in Pyjamas) 등 수많은 팀들이 유럽 지역에서 e스포츠의 인기를 견인하는 중이다.

e스포츠 종주국을 자임하는 한국 이야기도 적지 않다. 일회성 토너먼트 투어로서의 게임대회는 북미와 유럽에서 처음 시작되었지만 방송 중계를 포함한 중장기 리그는 한국에서의 성공에서 프로토타입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OGN과 MBC게임을 통해 이른바 ‘양대리그’로 불리던 〈스타크래프트 1〉 시절은 e스포츠가 두터운 팬덤과 뜨거운 스타성에 기반을 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로 자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광안리 10만 군중’으로 지금도 회자되는 전성기 〈스타크래프트 1〉의 열기는 e스포츠가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의 흥행 종목임을 보여준 바 있었다.

빠르게 성장하는 e스포츠 시장 규모에 대한 전망은 특히 타 스포츠에 비해 무척 밝은 편이다. 골드만삭스가 추정한 e스포츠 시장 규모는 2022년 시청자수 기준 2억 7,600만 명 선으로, NFL미식축구 시청자가 1억 명 선이 무너지고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시청자가 2016년 2,284만 명에서 1,412만 명으로 줄어들고 있는 전통 스포츠들의 약세와 대조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2) 여기에 코로나19 사태 이후 발생한 레거시 스포츠들의 경기 중단이 겹치면서 e스포츠는 코로나 이후 시대의 새로운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을 확고하게 잡는 상황에 놓였다.

스포츠인가? 방송인가? 아니면 게임의 확장인가?

e스포츠라는 새로운 중계콘텐츠의 가능성은 명확해 보이지만, 마냥 찬양하기 전에 아직 단언하기 어려운 이슈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 이야기해볼 수 있는 이슈는 ‘e스포츠는 스포츠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두 개의 답변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렇다’ 이고, 다른 하나는 ‘아니다’ 이다. 선문답 같이 보일 수 있는 이 두 개의 답변을 가르는 기준은 ‘스포츠’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가이다.

오늘날 우리가 스포츠라고 부르는 개념에는 사실 ‘운동경기’와 ‘관중에 의해 시청되는 이벤트’ 두 개념이 혼재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절부터 이어져온 운동경기로서의 스포츠가 원류이지만, 현실에서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는 대중에게 방송, 인터넷 스트리밍, 신문기사 등을 통한 접근이 훨씬 용이하다. 야구, 축구의 직관(경기장에 찾아가 보는 일)은 아무래도 TV중계보다 더 많은 품이 들기 마련이다. ‘애슬레틱’으로서의 스포츠보다 오늘날 우리가 대중적으로 이야기하는 스포츠는 아무래도 ‘쇼 엔터테인먼트’로서의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스포츠의 두 가지 의미 중 방송매체를 통해 만들어진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운 것이 e스포츠이기 때문에 e스포츠계에서도 스포츠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 올림픽 등의 아마추어스포츠 정식 종목 채택 여부가 대표적이다. 아시안게임에서는 시범 종목 채택이 이루어졌고 올림픽에서는 아직 채택되지 않은 e스포츠는, 종목이 되는 게임의 저작권이 특정 기업에 있다는 점에서 ‘아마추어 애슬레틱’의 영역에 들어가기 쉽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

  • 스포츠 →
    운동경기(애슬레틱)
    스포츠 →
    관중에 의해 시청되는 이벤트(쇼 엔터테인먼트) →
    방송매체를 통해 만들어진 엔터테인먼트 →
    e스포츠 →

두 번째 이슈는 e스포츠 경기의 운영과 중계 주체가 누구이며 그 수익이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e스포츠의 시작을 열었던 OGN과 〈스타크래프트〉의 블리자드, 〈리그 오브 레전드〉의 라이엇게임즈의 관계가 사례로 나온 바 있다.

〈스타크래프트 1〉의 e스포츠화는 방송사인 OGN이 주도하고 제작사인 블리자드가 협력하는 구조였으나, 〈스타크래프트 2〉의 발매와 함께 시작될 e스포츠 종목의 주최 및 중계권에 대해서는 양사의 의견이 달랐고, 게임저작권을 쥔 블리자드가 OGN이 아닌 방송사에 중계권을 넘기는 등의 사례가 있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에도 한국 e스포츠를 OGN이 직접 제작해 왔으나, 라이엇게임즈는 직접 방송 팀을 꾸리고 한국 리그를 자체적으로 집행, 중계하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게임사가 직접 e스포츠 리그를 운영하고 방송 제작과 송출까지 가져가는 경우 e스포츠 콘텐츠가 과연 레거시 스포츠의 저조를 대신할 새 아이템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남길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자면, e스포츠가 방송의 새 아이템이 될 것인지 아니면 게임사의 새로운 컨버전스 영역이 될지의 싸움에서 아무래도 후자로의 진행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새 영역의 주인은 누가 될지 아직 모른다

KBS는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시범 종목으로 등장한 e스포츠의 최고 인기종목 〈리그 오브 레전드〉를 KBS2에 편성하고 게이머 출신 해설위원인 고인규와 이현우를 투입하며 초보 시청자를 위한 상세한 도움말 인포그래픽까지 곁들이는 등 상당한 공을 들였다. 2003년 〈아침마당〉(KBS1)에 프로게이머 임요환을 출연시켜 게임중독자로 몰아붙여 논란을 일으켰던 시절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e스포츠라는 새 중계콘텐츠를 레거시 미디어들이 눈여겨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e스포츠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며 뉴 노멀 시대의 새로운 중계콘텐츠로 각광받게 되었다. 여전히 e스포츠가 기존 방송체계에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분명 더욱 커질 시장이겠지만, 그 시장의 주인공은 방송이 아니라 게임사 또는 인터넷 채널일 수도 있다. e스포츠 시장이 커지면서, 세계 최초의 e스포츠 리그 전문 방송국인 OGN이 오히려 힘들어진 상황이 의미하는 바를 되짚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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