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소비가 빨라지는 것은 기술 발전보다, 서로 경청하지 않는 문화가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Q. 지상파 TV 콘텐츠와 웹콘텐츠 제작을 둘 다 경험해 봤다. 현장에서 체감하기에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인가
(홍) 웹콘텐츠가 더 ‘잽잽’인 것 같다. 즉, 치고 빠지는 속도가 굉장히 빠른 형태다. 지상파로 송출되는 영상은 규제가 많고, 형식이나 포맷도 정해져 있어 규격에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콘텐츠 규격이 빵 틀이라고 치면, 지상파는 처음부터 만들어야 할 케이크가 1호인지 2호인지 틀이 정해져 있어 그 안에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반면에, 웹콘텐츠는 아예 틀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지상파 콘텐츠가 창의성이 덜 들어가는 건 아니다. 정해진 규격 안에서 만드는 일이 훨씬 힘들다. 그래서 둘 다 굉장한 창의성을 요하는 콘텐츠 포맷이라고 생각한다.
Q. ‘문명특급’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7년이 지났다.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 현장의 모습이나 제작 방식을 비교해보면 어떤 변화가 있다고 보는가
(홍) 제작 방식의 변화는 딱 한 가지다. 팀원들이 배울 수 있는 상황인가. 팀원들이 더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인가. 그게 결정하는 지표가 된다. 우리는 이야기를 만드는 직업이지 않나. 결국 이야기의 유구한 역사를 보면 진정성이다. 이야기에 진정성이 있는가 없는가로 오래 지속될 수도 있고, 빠르게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우리 팀이 집중하고 있는 건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가 그게 초점이다.
Q. ‘문명특급’을 통해 ‘숨듣명’부터 ‘재쓰비’까지 음악을 소재로 한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음악 소재 콘텐츠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홍) 어렸을 때 춤이나 노래를 아예 못했다. 하고 싶은 의욕도 없었고, 누가 시켜주지도 않았지만(웃음). 대신 춤이나 노래하는 친구들을 카메라로 찍어주는 일을 했는데, 친구들과 다 같이 찍은 영상을 보면서 모니터링을 했다. 학창시절에 다들 장기자랑 같은 거 하지 않나. 누구는 소녀시대, 누구는 원더걸스 맡아서 춤추며 놀던 기억이 있다. 그 시간 자체가 단순히 음악을 즐겼다기보다는,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제게 음악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매개체고 공감할 수 있는 소재다. 지금도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를 통해서 친구들끼리 소통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음악 쪽으로 가게 되는 것 같다.
Q. 요즘 콘텐츠 소비 사이클이 너무 빨라져서 콘텐츠 수명이 짧아졌다고 한다. 이 짧아진 수명을 극복하기 위해서 시도하는 노력이 있다면, 앞서 말한 ‘진정성’과 더불어 어떤 게 있을까
(홍) 예를 들어 버스 정류장이나 카페에 가도 사람들이 어떤 얘기를 하는지 들으려고 노력한다. 진정성과 더불어서, 지금 키우고 싶은 능력은 경청이다. 어떤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를 들어야, 무슨 이야기를 전달해야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될지가 나온다. 소비가 빨라진다는 것도 기술 발전보다는 서로를 경청하지 않는 문화가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태도의 문제인 것 같다.
"숏폼의 가장 큰 장점은 마음껏 실패해도 된다는 점이에요"
Q. ‘문명특급’ 콘텐츠 안에서 롱폼과 숏폼이라는 포맷을 각각 어떻게 가져가려고 하는지, 포맷별로 차별화하는 전략적인 포인트가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
(홍) 사실 포맷에 대한 특별한 전략을 세우고 접근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촬영을 낚시에 비교한다면, 한 마리 잡았을 때 그 귀한 생선 살 하나 하나가 아까운 느낌을 아는가. 긴 시간 촬영해서 어렵게 만든 순간들을 어떻게든 다 살리고 싶다. 그러다보니 다소 흐름이 긴 롱폼이 나오고, 거기서 쓰이지 못한 아까운 살들을 작은 조각이라도 숏폼으로 내보내고자 하게 된다.
물론 숏폼은 형태가 짧고, 홍보나 바이럴을 위한 목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게 (콘텐츠의) 근본이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질은 정말 어렵게 찍은 결과물을 끝까지 돌려내서 먼지 하나까지도 끌어내는 것이라고 본다. 특히 일본 갔을 땐 1박 2일치 촬영을 1분짜리 숏폼 하나 만들기 위해 다 훑어 봤다. 그 안에는 “출연자가 이 때 이렇게까지 해줬었네. 우리가 미처 못 봤는데, 이런 표정이 있었네.” 그런 순간들을 다 도려내는 과정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숏폼을 만드는 방식이다. 처음부터 롱폼, 숏폼을 구분하는 테크니컬한 접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소중한 순간을 담아내려는 진정성과 절실함으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다.
Q. 개인적으로 숏폼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홍) 지금처럼 진정성과 절실함으로 일하는 제작 방식이 바뀔까 봐 두려울 때가 있다. 그 순간 모든 아이덴티티와 본질이 사라지는 거다. '제작 방식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바뀌지 않는 사람이 이길 거다”라고 답한다. 마지막까지 이 일을 왜 시작했는지, 그 의도를 놓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끝까지 버틸 수밖에 없다.
지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유행하니까, 요즘은 이렇게 한다니까 방식을 바꾸려 하는데, 진정성과 절실함, 그게 전부다. 제작 방식이라는 건 메인 연출자나 제작진이 처음에 설정한 경로를 벗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어떻게 하면 경로를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들 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목적지를 찍는 게 중요하고, 거기에 가는 자기만의 경로는 설정했으면 바꾸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요즘은 경로를 바꾸고, 결국엔 남들이 가는 목적지를 찍어버리는데, 그게 진짜 문제인 것 같다.
Q. 결국 콘텐츠 제작을 위해서는 형식이나 전략보다는 진정성과 절실함, 처음 설정한 방향성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 같다
(홍) 숏폼이 유행하게 된 계기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기본에 몰입해보고 싶은 욕구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개인이 직접 업로드할 수 있기 때문에, 콘텐츠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같아진다. 그게 바로 숏폼이 가진 구조고, 힘이고, 시대성인 것 같다. 그래서 숏폼을 단순히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로 보지 않는다. 가장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는, 가장 밀도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숏폼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다. 숏폼이 발달한 이유는 기술 때문이 아니라, ‘경청받지 못한 이야기들’이 모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경청하지 못한 지점이 어디였는지, 어떤 세대가 어떤 얘기를 못 하고 있었는지, 그걸 알아야 한다.
Q. ‘문명특급’ 콘텐츠를 플랫폼마다 선별, 활용하는 전략이나 노하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홍) 전략은 역으로 숏폼에 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하는 거다. 어떤 의미냐면 지시하지 않고, 디렉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숏폼의 가장 큰 장점은 마음껏 실패해도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또 올리면 되니까. 상대적으로 작업 시간도 짧으니까 말이다. 다른 PD들이 올리고 싶은 걸 더 자유롭게 올릴 수 있도록 제 의견을 최대한 빼려고 한다.
Q. 플랫폼별 이용자들의 성향을 의식하기도 하는지
(홍) 예를 들어 두 가지 콘텐츠 중에 어떤 것을 어느 플랫폼에 올릴지 고민할 때, 굉장히 미시적인 판단 기준에서 결정한다. 그때 그때 다르다. 직관적으로 인스타 사용자들이 더 많이 볼 것 같은 콘텐츠는 “그럼 이건 인스타에 고정 핀 하자.”하고 진행한다. 유튜브 사용자들이 더 좋아할 것 같은 콘텐츠라면 “그럼 이건 유튜브에 조금 더 빠르게, 이런 시간대에 올려볼까?” 라는 식의 미시적 논의를 통해 케이스별로 진행한다. 만약 “유튜브에 올릴 숏츠 하나 만들어봐” 이런 식으로 디렉팅을 한다면 그 순간부터 경로 설정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기획해야 할 콘텐츠 아이템은 나의 반경 1미터 안에 있어요."
Q. 지상파가 자기 IP를 가지고 숏폼 콘텐츠를 만들 때 장점이나 시너지 같은 게 더 있을까
(홍) 당연히 시너지가 있다. 지상파가 가진 힘은 ‘역사’와 ‘아카이브’다. 시대가 부를 때 그 아카이브에서 콘텐츠를 빠르게 캐내서 뿌려야 된다. 그 시대와 사회의 부름에 계속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기자와 PD의 역할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뭘 원하기 직전일지 늘 생각한다. 그러려면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고, 아카이브를 외우고 있어야 한다. 머릿속에 항상 있어야 이 시대가 뭘 요청할 때 반응할 수 있다. 어떤 방송 아카이브가 있고, 그 시대 신문엔 어떤 기사가 있었고, 그 때 사회 트렌드는 뭐였고 그 방대한 아카이브를 통째로 꿰고 있어야, 앞으로 시대가 뭘 호출할지를 알 수 있다.
어떤 콘텐츠가 유행할 것 같은 직감이 왔는데, 아카이빙이 없으면 0부터 다 만들어야 한다. 그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유행은 이미 끝나 있다. 아카이빙은 단순한 영상자료만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콘텐츠를 만든 사람도 포함한다. 네트워킹까지 아카이빙 되는 것이다. 방송국 안에 직접 가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분들이 너무 많다. 수 많은 노하우를 가진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있고, 그들과 함께 일하며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충돌이 생기고, 그 충돌에서 얼마나 세련된 아이디어들이 나오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지상파는 이 장점을 더 극대화해서 앞으로 미디어 시대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지상파 콘텐츠가 가지는 IP만 생각을 했는데 그 IP를 만드는 인적 요소, 노하우, 네트워킹 까지도 지상파 IP가 가지는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인상적이다
(홍) IP는 100% 인적 자원이다. IP 자체는 사실 비눗방울처럼 툭 터질 수도 있는 거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만들었고, 만든 사람을 얼마큼 인정해줬는지. 그게 IP의 진짜 가치가 아닐까 한다.
Q. 마지막으로 기존 방송사 PD가 웹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려고 할 때 유념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먼저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조언을 부탁한다
(홍) 딱 한 가지다. 내가 기획해야 할 콘텐츠와 아이템은 나의 반경 1미터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부분은 자기 반경에도 없는 걸 탐낸다. 왜냐하면 있어 보이고, 혹은 이게 더 잘 나올 것 같다는 가정이 있어서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친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이 주제가 돼야 잘 된다. 저 같은 경우 시작은 단순했다. 사무실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는 재재 언니가 너무 좋고 웃겼다. 그래서 “나만 알지 말고, 이걸 다른 사람들도 알면 하루쯤은 즐거워지지 않을까” 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웹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분들, 특히 자기 채널을 운영하고 싶은 분들께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내가 혹은 나와 1미터 안에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라. 그러면 그 사람 혹은 나 자신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 답이 나온다.
웹으로 오려면 반경 1미터 내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은 반경 1미터 안에 있는 것들을 바로 찍고, 올릴 수 있는 단순화된 영상 제작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예전 방송 시스템에서는 5미터 안에 있는 걸 찾아도 괜찮았다. 그땐 그 5미터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영상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5미터 안에 있는 5천 명의 사람들이 각자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니까 더 좁혀야 된다. 좁히고 좁혀서 나의 반경 안에 들어와야 다른 사람들이 건드리지 못하는 무언가가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