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스몰IP, 즉 작은 규모의 IP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논의해보자. 스몰 IP의 개념은 콘텐츠 IP의 일종인 슈퍼 IP의 상대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콘텐츠
IP(Intellctual Property)란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장르적 확산과 부가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관련 지식재산권 묶음(이성민·이윤경, 2016)으로 정의될 수 있다. 콘텐츠
산업의 관점에선 스토리의 확장 가능성이 높고 플랫폼 다각화 등을 통해 산업적 가치를 생산하는 원천 콘텐츠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김숙 · 장민지, 2017). 콘텐츠의 확장성, 연계성,
그리고 중장기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자산이 바로 콘텐츠 IP인 것이다. 슈퍼 IP는 이러한 콘텐츠 IP 중에서도 기획단계에서부터 확장성을 고려하고, 여러 플랫폼과 산업으로의 확장성이
높으며, 강력한 팬덤을 확보하고, 오랜 기간 소비될 수 있는 강력하고 지속성 있는 원천 콘텐츠라 할 수 있다(강태진, 2020). 그렇다면, 스몰 IP는 아직 확장성, 팬덤의 규모, 소비
기간 등의 측면에서 작은 규모이고, 초기부터 전략적으로 대형 콘텐츠로 기획되지 않았으나, 성장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콘텐츠 IP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스몰 IP란 초기 인지도가 낮거나
투입 자본 규모가 작더라도, 내재된 잠재력을 바탕으로 점진적 확장이 가능한 콘텐츠 IP를 의미한다.
물론 모든 슈퍼 IP가 초기 단계에서 대형 콘텐츠로 기획된 결과물은 아니다. 현재 시점에서 슈퍼 IP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들도 그 시작은 확장을 고려하지 않은, 작은 규모의 콘텐츠인 경우도
많다. 다만 팬덤의 지지를 얻는 중요한 기회의 순간마다 전략적인 개입과 노력으로 지속적으로 IP의 가치를 키워온 결과로 현재에 슈퍼 IP란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몰 IP는 슈퍼
IP에 반드시 반대되는 개념으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초기 단계에서 IP의 확장을 미리 고려하는 전략은 스몰 IP의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다만, 그 출발점에 있어서 대규모 투자와 같은
‘블록버스터’ 전략을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은 스몰 IP의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방송영상 콘텐츠 산업에서 스몰 IP 개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현재 산업의 흐름과도 관련되어 있다. 글로벌 OTT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방송영상 콘텐츠의 제작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최근 큰 성공을 거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총 제작비가 600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기존 원작도 없는 리미티드 시리즈에 이러한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는 것은 글로벌 시장에 유통이 가능한 사업자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국내 시장에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회수해야 하는 방송사업자들에겐, 이러한 제작비 규모는 감당하기엔 너무나 부담되는
수준이다. 물론 큰 규모의 작품을 잘 만들어내는 역량도 산업 전체의 경쟁력 측면에선 중요하지만, 방송 광고 시장의 위축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미디어 시장의 현실에선 이러한 대형
작품 중심의 전략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방송영상 콘텐츠 분야에서 여전히 IP를 활용한 수익화의 전략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슈퍼 IP 전략에 어려움을 더하는 요인이다. 라이선스 상품 판매는 재고 부담 등의 문제를 넘어설 수
있을 만큼의 큰 팬덤을 확대한 이후에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시즌제나 스핀오프 등을 통한 수익 기회의 확대와 유통 창구의 다각화와 같은 전통적인 방송 비즈니스의 틀을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 조차도, 이미 대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진 작품의 경우, 그 기대 수준을 충족할 만큼의 수익으로 이어지기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수익화 전략의 한계는 슈퍼 IP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오랜 기간에 걸친 소비’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초기에 기대를 갖고 IP 확장을 시도함에도 유의미한
단기 수익을 거두지 못한다면, 중장기 IP의 성장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기 위한 기회를 마련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슈퍼 IP 전략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가 소수의 대형 사업자로 한정된다는 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방송영상 산업 생태계는 여전히 작은 규모의 제작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콘텐츠 IP의 가치와 중요성이 높아지는 산업 구조의 변화에 대한 대응은 이들 제작사들에게도 중요한 과업이다. 비록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탄탄한 기획력과 창의적인 전략을 통해 꾸준히
성장하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는 중소 제작사의 IP야말로 한국 방송영상 산업의 허리를 튼튼하게 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어낼 실질적인 동력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작은
규모의 주체들이 참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스몰 IP 전략의 고도화를 위한 노력이 한국방송영상 산업 생태계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스몰 IP'는 초기 IP의 가치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내재된 잠재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스케일업(Scale-up)'이 가능한 IP라 할 수 있다. 초기 시장 가치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으나, 전략적 관리 및 개발을 통해 점진적인 가치 증대와 사업 확장을 도모할 수 있는 콘텐츠 IP인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가능한 이유는 콘텐츠 IP가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콘텐츠 IP는 법적 권리의 측면에서는 저작권, 상표권 등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실질적인 가치는 결국 ‘팬덤’으로부터 창출된다. 콘텐츠 IP를 좋아하는 사람, 즉 팬덤의
규모가 커지고, 이들이 소비 주기가 연장되는 것은 IP 활용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IP 권리를 확보하는 것은 IP 활용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IP 팬덤의 규모를 어떻게 양적으로
늘리고, 질적으로 이들의 지불의사를 높일 것인지, 그리고 이들의 콘텐츠 소비의 기간을 어떻게 연장하며 IP의 생명력을 키워 나갈지를 고려한 전략적 접근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스몰 IP는 큰 규모의 IP 전략에 비해 몇 가지 차별적인 특징을 갖는다. 먼저 기획의 차별성이다. 스몰 IP로 분류되는 작품은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보다 참신한 소재, 특정 타깃 집단을 고려한 서사, 독창적인 세계관 등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다. 대규모 자본 투입이 어려운 대신, 보다 도전적인 시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스몰 IP는 콘텐츠 기업 입장에서 수용자의 취향이 빠르게 변화하고, 개별화된 관심에 따른 콘텐츠 이용이 확대된 지금의 시장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성을 확보할
기회를 제공한다. 글로벌 OTT의 각축장이 되면서 콘텐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아무리 막대한 자본과 노력을 투입해도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시청자 선호도는 콘텐츠 투자 전략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 스몰 IP는 이러한 상황에서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다양한 포맷과 플랫폼을 실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팬덤 구축에 대한 집중적 노력이다. 스몰 IP의 성장을 위해선 불특정 다수보다는 명확한 타깃 시청자층을 설정하고, 이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초기 충성도 높은 팬덤(fandom)을
형성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팬덤이 IP 확장의 중요한 기반이자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스몰 IP는 그 출발에서부터 팬덤과의 상호작용에 높은 비중을 둔 전략을 전개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특징인 것이다. 스몰 IP는 초기 단계부터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충성도 높은 팬덤을 구축하고, 이들의 피드백을 콘텐츠 개발 및 확장에 반영할 수
있다.
점진적인 확장과 유연한 사업 전략 역시 스몰 IP의 중요한 특징이다. 스몰 IP는 초기 콘텐츠의 성공 여부 및 시장 반응에 따라 후속 시즌 제작, 스핀오프, 포맷 변형, 상품화 등 단계적인
사업 확장을 추진할 수 있다. 이는 투자 리스크를 관리하며 IP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점진적 확장 전략은 유연한 사업 모델 적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성장 단계에 따라
필요한 사업을 적절한 시기에 적정 규모로 시도해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시도 가능한 다양한 포맷과 사업 모델을 유연하게 적용하여 수익 구조를 다각화하고, IP의 생명력을 연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기적인 흥행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IP 브랜드 가치를 구축하고,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확보하는 방향의 전략 추진에 도움을 준다.
즉, 스몰 IP는 처음부터 완성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정성껏 가꾸고 키워 나갈 때 비로소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의 씨앗'과 같다. 스몰 IP는 상대적으로 낮은 초기
비용으로 시장성을 검증하고, 성공 가능성에 따라 단계적으로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재무적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자본 및 유통망에서 열위에 있는 중소 제작사에게 스몰
IP는 자체 역량으로 통제 및 개발 가능한 핵심 자산을 확보할 기회를 제공한다.
스몰 IP란 개념은 낯설 수 있지만, 이미 작은 규모의 작품을 지속적이고 전략적 노력으로 성장시켜 나간 사례는 많이 존재한다. 웹드라마 분야에서 성장한 플레이리스트, 와이낫 등의 스튜디오들이 보여준 성과가 대표적인 사례다. 예를 들어, 와이낫미디어는 웹드라마를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선보이며, IP의 단계적 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청담국제고등학교>와 같은 작품은 시즌1을 웨이브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시즌2의 제작을 결정했다. 또한 <청담국제고등학교 미술반>이라는 스핀오프 숏폼 드라마를 비글루를 통해 공개했다. 신인 배우가 중심이 되는 출연진 구성으로 제작비의 규모를 통제하고, 제작사가 IP를 확보해서 유통 플랫폼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확보한 IP를 바탕으로 시청자 반응을 확인하며 유연하게 다양한 연계 작품을 단계적으로 제작해 나가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1]
<청담국제고등학교>, <청담국제고등학교 미술반>
(출처: 와이낫미디어)
캐릭터 산업 분야에서는 이러한 스몰 IP 성장 모델의 가능성이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증명된 바 있다. 지금은 글로벌 슈퍼 IP로 성장한 '핑크퐁 아기상어' 역시 시작은 영유아라는 특정 타깃을 위한 교육용 애니메이션, 동요 콘텐츠라는 '스몰 IP'였다. 핑크퐁 컴퍼니는 여러 버전의 ‘아기상어’ 콘텐츠 중 율동 영상의 글로벌 확산을 계기로 전략적으로 연계 콘텐츠를 확장하며 캐릭터 인지도를 확보했고, 완구, 도서, 의류, 식품, 공연, 테마파크, 게임 등 전방위적인 라이선스 사업을 전개했으며, 글로벌 사업자와의 협업을 통해 IP의 확장 범위를 넓혔다.

[그림 2] 핑크퐁 아기상어 (출처: 핑크퐁컴퍼니)
이러한 스몰 IP의 성장 방식은 스타트업 분야에서 논의되었던 ‘린-스타트업’ 방법론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린 스타트업 방법론은 최소 기능 제품을 빠르게 만들어서 시장의 핵심 가설을 검증하고, 이용자의 피드백에 기반해서 지속적인 제품 개선을 통해 성장하는 전략이다. 린 스타트업 방법론과 스몰 IP 전략은 모두 불확실한 환경에서 '작게 시작하여 학습하고 반복하며 성장한다'는 핵심 원칙을 공유한다.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시작하여 IP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고 점진적으로 스케일을 키워 나간 성공적인 스몰 IP 스케일업 모델들은 이러한 원칙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며, 이는 특히 자원이 제한적인 중소제작사들에게 유효한 성장의 경로가 될 수 있다.

[그림 3]
린-스타트업 사이클
(출처: Eric Ries(2011) , The Lean Startup)
이러한 스몰 IP 전략이 확장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먼저 중소 제작사의 IP 역량 강화를 들 수 있다. 중소 제작사 스스로 IP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획 단계부터 IP 확보 및
확장을 염두에 둔 전략 수립 역량을 키워야 한다. 스몰 IP 맞춤형 성장 전략 공유 및 확산의 노력도 필요하다. 성공적인 스몰 IP 스케일업 사례를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적용된 팬덤 구축
전략, 다각화된 수익 모델 개발 노하우, 플랫폼 활용법 등을 공유하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다수의 경쟁력 있는 스몰 IP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방향의 정책적 노력 역시 필요할
것이다.
스몰 IP 전략은 단순한 저비용 접근법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높은 방송영상 산업 환경에서 위험을 관리하고, 시장 다변화에 대응하며, 중소 제작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고, 나아가 산업
생태계 전체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지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방송영상 산업의 미래를 소수의 슈퍼 IP에만 의존할 수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양한 방식으로 팬들과 소통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수많은 '작은 IP'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때, 비로소 한국 방송영상 산업 생태계는 더욱 풍성해지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강태진(2020). 웹툰은 슈퍼IP가 될 수 있을까?. <만화규장각> 전문가칼럼
- 김숙·장민지(2017). 모두 IP의 시대 : 콘텐츠 IP활용 방법과 전략. <코카포커스> 17-02호
- 이성민·이윤경(2016). 콘텐츠 지식활용산업 활성화 방안연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보고서
- Eric Ries(2011). The Learn Startup. Penguin Random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