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 Joan Is Awful>은 실시간 AI 페이스 스와프 기술을 소재로 삼아, 주인공의 얼굴이 AI에 의해 실시간으로 대체되는 상황을 다룬다. 이 드라마는 AI 기술의 발전 수준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이를 소비하는 대중이 얼마나 현실적인 기술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방영 이후 레딧(Reddit), 엑스(X, 구 트위터), 틱톡(TikTok) 등 다양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해당 작품에 대한 분석과 토론이 이어졌고, 이제는 AI 기술이 더 이상 미래의 상상이 아닌 일상 속 문제로 다가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술의 진보뿐 아니라, 그것이 콘텐츠와 연결되고, 소비자와 반응하며,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내는 방식에도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미지 생성 기술의 발전은 시각 예술 분야에서 전통적 개념을 뒤흔들었다. 미드저니(Midjourney), 달리(DALL·E), 어도비 파이어플라이(Adobe Firefly) 등 다양한 모델이 등장하면서 텍스트 기반 이미지 생성은 정교함과 스타일의 다양성 면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영상 생성 기술은 더 이상 실험 단계가 아니다. 과거 수많은 인력과 장비, 시간이 필요했던 영상 제작 과정이 이제는 텍스트 프롬프트 몇 줄로 대체되고 있다. 등장인물의 움직임, 카메라 워크, 장면 전환, 감정 표현까지 AI가 자동으로 처리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갖춘 영상이 손쉽게 생산된다. 마치 고속철로 서울과 부산이 연결되어 일일생활권이 된 것처럼, 영상 제작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허물고 일상적인 행위로 들어왔다. 영화 한 편을 찍는 일조차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도 스크립트와 키워드만 입력하면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 영상콘텐츠 산업에서 활용된 AI 기술: 디에이징
영상 산업에서의 AI 기술은 이미 필수적인 제작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배우의 나이를 되돌리는 디에이징 기술은 다양한 작품에서 활용되고 있는데, 이는 주로 얼굴의 특징점을 고해상도로 인식한 뒤, 트레이닝된 딥러닝 모델이 시간 축상에서의 얼굴 특징 변화 패턴을 학습하여, 대상 배우의 특정 연령대 모습을 예측해 복원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2019년 드라마 <아이리시맨>에서 마틴 스콜세지는 대배우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 세 사람의 젊은 모습을 디에이징 기술을 통해 복원했다. 2023년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5>에서는 80대 해리슨 포드가 40대 모습으로 되살아나 관객을 놀라게 했으며, 2024년 영화 <Here>에서는 톰 행크스의 나이를 장면에 따라 자유롭게 변화시키는 페이스 에디팅 기술이 적용되었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2022년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카지노>에서는 최민식 배우가 연기한 차무식 캐릭터의 젊은 시절이 이러한 AI 기반 디에이징 기술로 자연스럽게 구현되었고, tvN 드라마 <나빌레라>(2021)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세대 간 시간의 간극을 넘나들었다.

드라마 <아이리시맨>에서 실제 촬영된 로버트 드 니로(좌)와 AI 기반의 디에이징 기술이 적용된 로버트 드 니로(우)
(출처: 넷플릭스)

드라마 <카지노>의 AI 기반 디에이징 기술
(출처: 디즈니 코리아 유튜브)
2) 영상콘텐츠 산업에서 활용된 AI 기술: 딥페이크
시각적 복원 기술과 함께, 얼굴 합성과 생성 기술을 기반으로 한 딥페이크 역시 콘텐츠 전반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딥페이크 기술은 대규모 얼굴 데이터셋을 기반으로 훈련된 생성 모델이 특정 인물의 얼굴 특징과 표정 변화를 학습하고, 이후 타깃 영상의 프레임마다 해당 얼굴을 정확히 합성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특히 최근에는 GAN(2014년 구글 브레인 소속 이안 굿펠로우가 개발한 기술로, 두 개의 신경망이 경쟁하며 실제 같은 이미지나 영상을 생성하는 모델)이나 Transformer(구글에서 개발된 기술로, 시간의 흐름과 장면 간 맥락을 분석해 딥페이크 영상의 표정 변화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데 강점이 있는 모델) 기반의 추론 기술이 활용되어, 시청자 입장에서 거의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의 정밀도를 달성하고 있다.
방송 콘텐츠에서는 2023년 JTBC 드라마 <웰컴 투 삼달리>에서 고(故) 송해 선생의 생전 모습을 AI로 복원해 등장시켰고, 같은 해 예능 <회장님네 사람들>에서는 고(故) 박윤배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가 딥페이크 기술로 재현되었으며, 2024년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에서 손석구 배우의 어린 시절 사진을 기반으로 한 딥페이크 기술을 사용한 아역 배우의 싱크로율을 높였다.
광고 분야에서도 유사한 기술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2023년에는

드라마 <살인자O난감>의 손석구 배우(좌)와 AI로 만든 어린 시절 손석구 배우(우)
(출처: 넷플릭스 캡처)

박은빈 배우와 AI로 제작된 아역들로 촬영된 서울우유 광고
(출처: 서울우유)
음성 영역 또한 눈부신 진화를 이루고 있다. AI 기반 음성 기술은 단순한 TTS(Text-to- Speech)를 넘어, 화자의 억양과 발성 습관, 감정의 뉘앙스까지 정교하게 반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실제 방송 및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여수 MBC는 AI 기상캐스터를 정규 방송에 도입했으며, 한국도로공사와 제주도청 대변인실에서도 AI 휴먼 아나운서를 통해 일상적인 브리핑과 정보 방송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AI 음성 캐릭터들은 기상 예보나 생활 정보 전달과 같은 실용적인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정보를 제공하며, 시청자에게도 점차 익숙한 존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특히 타이틀, 자막, 재현 영상, 배경 설명 등 방송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점차 자동화되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넘어선 새로운 포맷의 방송 실험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기술의 완성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자, 시청자들은 이러한 포맷을 단지 기술적 시도 이상의 하나의 방송 형태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이는 뉴스 전달 방식의 다변화뿐 아니라 콘텐츠 접근성과 정보 전달의 효율성을 확장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함께 보다 전문적인 음성 복원 기술의 발전도 주목할 만하다. 리스피처(Respeecher)와 같은 딥러닝 기반 모델은 대규모 음성 데이터셋을 바탕으로 특정 인물의 목소리 특성을 학습하고, 시간 축상에서의 음색 변화와 감정 톤까지 정밀하게 복원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기술은 기존보다 훨씬 더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며, 실제 사례에서도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예를 들어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만달로리안>(2019)에서는 마크 해밀 배우의 20대 시절 목소리를 리스피처 기술로 복원해 현실감을 높였고, 드라마 <카지노>(2022)에서는 세계 최초로 AI 기반 보이스 디에이징을 실시간으로 적용해, 배우의 젊은 시절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음성 기술은 단순한 소리의 재현을 넘어 감정과 시간의 흐름까지 담아내며, 새로운 형태의 서사 도구로서 콘텐츠에 깊이와 몰입을 더하고 있다.

드라마 <카지노>의 AI 보이스 디에이징
(출처: 인공지능신문, 2022.12.28)
콘텐츠 플랫폼들도 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유튜브(YouTube)나 틱톡의 쇼츠(Shorts) 등에서는 AI 영상과 보이스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가 빠르게 증가 중이며, 구독자 수와 조회 수 면에서도 기존 콘텐츠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1인 창작자나 소규모 제작자에게는 고가 장비 없이도 몰입도 높은 영상과 음성 콘텐츠를 생산할 결정적인 기회로 작용한다. 복잡한 편집 과정 없이도 시청자를 사로잡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은, 창작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요인이다.
하지만 기술 발전이 곧바로 창작의 질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기술이 창작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그 문 너머를 채우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모든 제작 과정이 자동화되는 시대일수록, 사람의 역할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 왜 만드는가, 누구를 위해 만드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쪽으로 이동한다. 기술 숙련도가 아니라 방향성과 의도가 콘텐츠의 질을 좌우하게 된 지금, 창작자는 서사를 구축하고 맥락을 조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AI가 빠르게 이미지를 찍어내고 영상을 연결해도,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더 나아가, 콘텐츠 생성이 쉬워진 시대일수록 기본기와 윤리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카메라 구도, 시청자와의 소통 방식, 정보의 정확성과 메시지의 책임감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다. 딥페이크 기술의 오용 사례가 늘어나는 가운데, 창작자는 단순히 도구를 잘 사용하는 능력을 넘어, 그 도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빠르게 만드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창작자의 진정한 역량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기술은 우리가 스스로 닿기 어려웠던 더 먼 시간과 가능성의 세계로 발을 내딛게 해 준다. 한때 상상 속에 머물렀던 미래가 이제 손끝에서 현실이 되었으며, 우리는 그 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AI 시대에도 창작자에게 여전히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위해 만들 것인가’이다. 이 질문에 정직하게 응답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인간만이 가진 창작의 본질을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