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투둠: 야심찬 오프라인 이벤트

넷플릭스의 투둠 이벤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단순한 홍보 행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주목할 점은 첫 번째 생중계였다는 것이다. 2020년부터 시작된 투둠은 지금까지 유튜브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계됐지만, 이번엔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직접 생중계했다. 이는 넷플릭스가 '라이브 경험 중심의 미래'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C21Media,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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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일 생중계로 진행된 넷플릭스 ‘투둠(TUDUM) 2025’ 무대에 오른 <오징어 게임> 배우들

(출처: 넷플릭스 X)

더 흥미로운 건 행사 구성이다. <오징어 게임>, <웬즈데이>, <스트레인저 씽즈> 같은 대형 IP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각각의 팬덤은 완전히 다르다. 10대의 케이팝 팬부터 40대의 미스터리 영화 마니아까지, 이들을 한 공간에 모으는 것 자체가 기존 미디어 회사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넷플릭스 최고 마케팅 책임자 마리안 리(Marian Lee)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스튜디오는 우리처럼 할 수 없다. WWE 팬 옆에 나이브스 아웃 팬, 레이디 가가 팬을 앉혀놓는 건 오직 넷플릭스만 가능하다." 현장 관객들의 나이대는 주로 13~28세의 Z세대로, 넷플릭스가 기존 케이블TV(평균 시청자 연령 60세 이상)와는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Los Angeles Times, 2025).

디즈니 D23: 완성된 마법의 생태계

2009년부터 시작된 디즈니의 D23는 가장 오래된 글로벌 팬 이벤트 중 하나다. 2024년 8월 아나하임에서 열린 행사는 디즈니만의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D23 공식 웹사이트에는 디즈니, 픽사, 스타워즈, 마블이라는 거대한 IP 포트폴리오를 하나로 묶어내는 기획력이 남아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물리적 경험의 완성도다. 디즈니는 단순히 콘텐츠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테마파크의 노하우를 활용해 팬들에게 완전한 몰입 경험을 제공한다. 월트 디즈니의 오디오 애니매트로닉스 피규어 공개, 새로운 테마파크 어트랙션 발표, 크루즈선 확장 계획까지… 디즈니는 디지털 콘텐츠에서 물리적 경험까지 아우르는 완전한 생태계를 구축했다. D23는 '놀이기구 없는 테마파크'라고 불린다. 패널 토론과 캐스트 미팅만으로도 팬들에게 충분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Guardian, 2024). 디즈니가 100년 넘게 쌓아온 브랜드 파워와 캐릭터 자산의 힘을 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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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아나하임에서 열린 디즈니 D23 행사

(출처: D23 공식 홈페이지)

유튜브 팬페스트: 크리에이터 생태계의 대잔치

구글의 유튜브 팬페스트는 또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 2024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1만 명 이상이 몰렸다. 이 행사의 핵심은 크리에이터와 팬들의 직접적인 만남이다(Korea Herald, 2025). 넷플릭스나 디즈니가 자사 콘텐츠 홍보에 집중한다면, 유튜브는 크리에이터 생태계 자체를 키우는 데 방점을 둔다. 팬페스트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크리에이터 간의 네트워킹과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구독자 1,000명 이상의 한국 크리에이터들을 대상으로 한 '크리에이터 클럽' 세션이 포함되었다.

사실 유튜브의 핵심 자산은 넷플릭스, 디즈니처럼 자체 IP가 아니라 수백만 명의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이다. 팬페스트는 바로 이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략적 투자다. 행사의 목표는 크리에이터에게 정당한 동기를 부여하고, 크리에이터와 팬 사이의 직접적인 유대를 강화하며, 궁극적으로 양측 모두를 유튜브 플랫폼에 머무르게 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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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팬페스트 코리아 2024’ 라이브쇼 무대에서 함께 기념 촬영을 하는 크리에이터들

(출처: 유튜브 코리아 공식 블로그)

슈퍼팬 경제의 등장과 그 의미

이 세 이벤트가 공통으로 겨냥하는 것은 바로 슈퍼팬(Superfan)이다. 슈퍼팬 경제는 2024년 무렵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여한다. 그리고 다른 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슈퍼팬은 문화적으로도 흥미롭지만, 경제적으로도 가치있는 존재다.

Mintel의 2024년 슈퍼팬 보고서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슈퍼팬들은 일반 소비자보다 3~5배 많은 금액을 지출하며, 무엇보다 브랜드 충성도가 극도로 높다. 이들은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브랜드의 전도사 역할을 한다. 넷플릭스의 경우, 투둠 참가자들은 평균적으로 플랫폼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신작에 대한 관심도가 높으며, 타인에게 넷플릭스를 추천하는 빈도도 높다. 디즈니는 D23 참가자들이 테마파크 방문 빈도가 일반 방문객보다 2~3배 높고, 머천다이즈 구매 금액도 현저히 높다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디어 기업들은 광고주를 위해 시청률을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슈퍼팬 경제에서는 팬들 자체가 수익원이 된다. 넷플릭스는 이미 구독료 외에도 머천다이즈, 라이브 이벤트, 게임, 심지어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수익원을 개발하고 있다. 더 중요한 건 데이터의 가치다. 투둠 같은 이벤트를 통해 넷플릭스는 팬들의 실제 행동 패턴, 선호도, 심지어 감정적 반응까지 실시간으로 수집할 수 있다. 이 데이터는 콘텐츠 기획부터 마케팅 전략까지 모든 의사결정의 근거가 된다. 이런 슈퍼팬 중심의 미디어 산업의 변화는 기존 미디어 생태계에 뚜렷한 균열을 만들고 있다.

기술이 만드는 새로운 가능성

팬 이벤트들의 또 다른 특징은 기술의 적극 활용이다. 넷플릭스 투둠의 실시간 글로벌 스트리밍, 디즈니 D23의 AR/VR 체험, 유튜브 팬페스트의 라이브 인터랙션 등은 모두 팬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참여 경험을 제공한다.

경험형 엔터테인먼트(Experiential Entertainment)는 2025년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EY, 2005). 단순히 콘텐츠를 시청하는 것을 넘어서, 팬들이 직접 참여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험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여기에 AI의 발전도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고 있다. 팬들 개개인의 선호도를 분석해 맞춤형 이벤트 경험을 제안하거나, 실시간으로 팬들의 반응을 분석해 이벤트 진행을 조정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넷플릭스는 투둠 이벤트에서 실시간 댓글 뿐 아니라 이모지 반응까지 분석해 콘텐츠 연출을 조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특히 라이브 스트리밍의 변화는 의미심장하다. Kearney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라이브 스트리밍 시장이 2024년 1,080억 달러 규모로, 연평균 21% 성장률을 보인다고 했다(Kearney, 2025). 넷플릭스는 투둠 외에도 마이크 타이슨과 제이크 폴의 복싱 경기, NFL 크리스마스 게임 등 라이브 콘텐츠를 플랫폼에서 대폭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의 TV처럼 일방적으로 보는 건 아니다. 팬들은 라이브 스트리밍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다른 팬들과 소통한다. 디지털 스트리밍 시대의 라이브 이벤트는 실시간 반응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의 가치 때문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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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생중계한 제이크 폴과 마이크 타이슨의 복싱 경기

(출처: 넷플릭스)

유튜브 팬페스트가 보여준 중요한 순간은 크리에이터 경제의 생태계다. 심지어 전통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들도 이제는 크리에이터들과의 협업을 필수로 여긴다. 넷플릭스가 투둠에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을 초대한 것도, 디즈니가 D23에서 소셜미디어 콘텐츠 제작을 적극 장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규모 팬 이벤트들의 실제 성과는 어떨까? 막대한 비용이 드는 대규모 이벤트의 성과를 정확하게 측정할 방법이 있을까? 넷플릭스의 경우, 투둠 이벤트 자체의 직접 수익은 크지 않다. 25~75달러 수준인 티켓 가격은 9,500여명 관객으로는 행사 비용만 간신히 회수할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간접 가치는 엄청나다. 먼저 브랜드 충성도 강화에 있어서 확실한 효과가 있다. 투둠 참가자들의 넷플릭스 이용 시간과 신작 시청률이 일반 구독자보다 현저히 높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입소문 효과다. 9,500여명의 참가자가 각자의 소셜미디어에 행사 사진을 올리고, 이벤트의 경험을 공유하고, 잊지 못할 순간을 비디오로 기록하는 동안, 그들이 생산한 콘텐츠의 도달은 수천만 명에 달한다.

이런 콘텐츠를 통해 넷플릭스가 얻는 것은 데이터다. 팬들의 실제 반응과 선호도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기회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다. 디즈니의 D23도 마찬가지다. 3일간의 이벤트로 직접 수익을 내는 것보다 디즈니 생태계 전체에 대한 몰입감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실제로 D23 참가자들은 향후 테마파크 방문, 영화 관람, 머천다이즈 구매 등으로 디즈니의 핵심 고객으로 자리잡는다.

팬: 글로벌 경쟁 구도의 결과

K-팝에서도 그렇지만, 팬은 이제 거의 모든 기업에게 가장 가치 있는 고객 집단이 되었다. 이들은 일반 소비자보다 더 높은 관계성을 기반으로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밀도 있게 연결된다. 프리미엄 에디션을 구매하고, 관련 상품을 수집하며, 부가 서비스를 기꺼이 이용하는 이들이 바로 팬이다.

특히 Z세대는 이러한 참여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팬덤 마케팅을 이들에게 도달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브랜드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를 공동으로 창조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그래서 '소비자 마케팅'에서 '팬 전략'으로의 전환은 사실 ‘판매 중심 모델’에서 ‘관계 중심 모델’로 경영 철학이 바뀌는 것을 뜻한다. 팬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소비를 통해 연결감을 극대화한다.

팬 이벤트의 전략적 목적은 바로 이 '정체성 융합'에 있다. 이벤트를 통해 팬은 연결되고 확장되고 심화된다. 커뮤니티를 통한 소속감, 독점성을 통한 존중감, 창의적 참여를 통한 자아실현의 기회. 일반 고객은 더 저렴한 대안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지만, 브랜드에 정체성이 묶인 팬은 그렇지 않다. 팬 중심 전략은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산업의 환경이 바뀌면서 생긴 결과다. 모두가 연결된 스마트폰의 시대에 콘텐츠는 홍보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브랜드를 위한 전략이다. 따라서 사실상 모두가 콘텐츠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콘텐츠, 브랜드, 미디어 전략은 모두 팬을 겨냥한다.

이런 환경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로컬과 글로벌의 격차도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투둠에서는 한국의 <오징어 게임>과 인도의 래퍼 하누만킨드가 함께 무대에 섰다. 한국과 인도의 엔터테인먼트가 로스앤젤레스의 대자본이 만든 무대에 나란히 서는 장면은 글로벌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고 경쟁이 심화될수록 로컬의 정체성에 기반한 독특하고 남다른 콘텐츠가 주목받을 기회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팬에 집중하되 팬에게서 벗어나기

하지만 팬 중심의 비즈니스 구조는 한계가 뚜렷하다. 팬은 끊임없이 늘어나야 한다. 슈퍼팬은 경유지일 뿐 목적지는 아니다. 팬덤 비즈니스의 목적지는 IP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비즈니스가 될 것이다. 넷플릭스 투둠, 디즈니 D23, 유튜브 팬페스트로 대표되는 글로벌 팬 이벤트들은 단순한 홍보 행사를 넘어서,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의 청사진을 보여준다.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팬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참여형 경험을 제공하고, 개별 IP가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아우르는 플랫폼적인 접근은 콘텐츠 비즈니스 사업자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이다. 그래서 모두가 팬을 원하고 팬을 찾고, 팬의 목소리를 따라가려고 애쓴다.

하지만 진정으로 콘텐츠 브랜드를 성장시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팬에게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팬은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이자 창조자이며, 때로는 기업의 파트너 역할까지 한다. 기업의 입장에서 팬들은 감정적으로는 고마운 존재겠지만, 사업적으로는 충분히 활용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서 이해의 충돌이 생긴다.

팬덤 비즈니스는 관계에 기반한 비즈니스고, 이 관계성은 사업의 속성상 본질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팬의 입장에서 자신의 열정과 창의성을 사업적으로 활용하는 브랜드에 대해선 좋은 감정을 가지기 어렵다. 팬은 자신의 행동과 역사가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팬 비즈니스는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 팬은 소비자도 아니고 마케터도 아니다. 브랜드(혹은 아티스트)에게 팬은 동료다. 팬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구조는 언제나 중요하고 필요했다. 지금도 그렇다.

미래 엔터테인먼트는 결국 팬과 IP로 수렴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스트리밍 플랫폼들의 대규모 행사는 그들 사이의 경쟁력을 강화할 뿐 아니라 심지어 다른 업종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빨리 적응할 수 있느냐다. 투둠의 환호성과 D23의 열광, 팬페스트의 에너지 뒤에는 미디어 환경의 급변이라는 문제가 있다. 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경제 논리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맨 뒷 줄에 앉아 거대한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만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차우진

차우진
(문화평론가·엔터문화연구소 대표)

문화평론가이자, 엔터문화연구소 대표이다. 음악을 기반으로 IP와 팬덤, 글로벌 산업에 대해 연구하는 엔터테인먼트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2023)을 제작했다. 주요 저서로 『마음의 비즈니스』(2023)가 있다. <차우진의 엔터문화연구소>란 제목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