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 국가로 구성된 동남아시아는 7억 명에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으며, 자원이 풍부하고 젊은 인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성장 잠재력이 큰 지역이다. 2025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발표한 전 세계의 실질 GDP 성장률이 2.8%인 데 반해, 동남아시아 지역은 약 1.5배 높은 4.1%를 기록했다. 특히 1억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세 국가, 인도네시아(4.7%), 필리핀(5.5%), 베트남(5.2%) 모두 평균을 웃돌며 역내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¹⁾ 전반적인 경제 성장과 더불어 동남아시아의 영상콘텐츠 시장 역시 성장과 변화를 맞고 있다. 말레이시아(97.7%)를 비롯해 동남아시아 주요 6개국의 인터넷 보급률이 70%를 상회하고²⁾ 모바일 기기가 인터넷 사용의 주된 통로가 된 상황에서, 쇼트폼 콘텐츠가 크게 증가하고 주문형 비디오(VOD) 스트리밍 서비스가 기존 TV 방송을 대체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25년 동남아시아의 OTT 시장 매출은 전년 대비 8.2% 증가한 48억 달러에 달하고, 203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6.51%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광고를 제외하면 매출의 가장 큰 비중은 예약 주문형 비디오(SVOD)가 차지하고 있다. 2025년 매출 추정치는 전년 대비 11.6% 증가한 17억 달러에 달하고, 203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8.79%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⁴⁾

[그림 1] 2017~2030년 동남아시아의 OTT 매출 추세
(출처: Statista Market Insights)
동남아시아 영상콘텐츠의 소비 시장뿐만 아니라 생산 역량 역시 크게 발전하고 있다. 최근 자국 영화의 수준 향상과 흥행 성공에 따른 영화 시장의 팽창, 그리고 국제 영화제에서 거두고 있는 비약적인 성과는 동남아시아의 영상콘텐츠 제작 수준과 위치가 더 이상 주변부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따라서 늘 신선한 소재와 새로운 시장 발굴이 필요한 글로벌 제작자들에게 동남아시아는 매력적인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지역적 소재 기반의 작품을 여럿 제작했던 디즈니가 처음으로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제작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2021)은 바로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신호탄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경향은 OTT 콘텐츠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넷플릭스, 프라임 비디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플랫폼은 물론, 뷰(Viu), 위티비(WeTV, 텐센트 비디오), 아이치이(iQIYI) 등 홍콩 및 중국계 플랫폼, 자국의 방송이나 통신 서비스에 기반한 로컬 플랫폼까지 다양한 사업자가 경쟁하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 놓인 글로벌 OTT 사업자들은 현지 콘텐츠를 개발하고 확보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가장 먼저 시장을 개척한 넷플릭스는 2010년대 후반부터 동남아시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판권 구매에 나섰다. 작품의 수와 다양성, 흥행 성적 측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역은 태국이다. 넷플릭스의 첫 오리지널 시리즈 <스트랜디드>가 2019년에 공개됐으며, 이후 드라마, 로맨스, 코미디, 스릴러, 공포, SF,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소재 및 장르의 시리즈와 영화를 매년 수 편씩 선보이고 있다. 태국은 특히 시리즈에서 강세를 보인다. 동남아시아 오리지널 시리즈의 2/3가량이 태국 작품이며,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오리지널 콘텐츠에서 영화보다 시리즈가 많은 국가이다. 태국 다음으로 활발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오리지널 영화를 중심으로 라인업을 형성한 이후 최근에는 시리즈 제작도 늘려 나가고 있다. 그밖에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등지의 오리지널 콘텐츠 역시 하나둘씩 구축되고 있다. 2025년 7월 현재 넷플릭스의 동남아시아 오리지널 콘텐츠는 모두 100여 편에 이른다.
프라임 비디오는 2022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을 기반으로 월 3~4달러 수준의 프로모션 가격 책정과 함께 동남아시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넷플릭스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본격적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여기에는 세 국가별로 제작하는 리얼리티 예능 시리즈와 더불어 각국의 내로라하는 감독이 연출이나 각본에 참여하는 영화가 포함됐다. <Comedy Island> 시리즈는 2023년에 공개됐으며, 이듬해에는 프라임 비디오의 인기 예능 시리즈 <LOL: Last One Laughing>의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편을 선보였다. 그러나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던 아마존이 2024년 초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하고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정책에 선택과 집중을 꾀하면서 동남아시아 콘텐츠는 직접 제작이 아닌 판권 확보 방식으로 전환됐다. 또 다른 글로벌 사업자인 디즈니플러스 역시 마찬가지 상황에 놓여 있다.

<스트랜디드>, <Comedy Island Philippines> 포스터
(출처: IMDb, Amazon MGM Studios)
저명한 영화감독과의 협력을 통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OTT 사업자들은 완성도 있는 대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위해 국제 영화계에서 명성을 쌓거나 자국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을 거둔 동남아시아의 저명한 영화감독들과 협력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웰메이드 공포영화로 국제 무대에 이름을 널리 알린 인도네시아 감독 조코 안와르(Joko Anwar)이다. 그가 총괄한 SFㆍ미스터리 시리즈 <조코 안와르: 나이트메어 앤 데이드림>(2024)은 넷플릭스에서 선보였으며, 아마존 MGM 스튜디오(Amazon MGM Studios)에서 제작한 첫 동남아시아 영화 <The Siege at Thorn High>(2025)는 올해 4월 극장 개봉을 거쳐 8월 프라임 비디오 공개를 앞두고 있다. 인도네시아 영화 사상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수상한 <나나>(2022)의 카밀라 안디니(Kamila Andini) 감독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시가렛 걸>(2023)⁵⁾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역사적ㆍ사회적 맥락 속에서 여성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장기를 다시 한번 십분 발휘해 찬사를 받았다. 태국의 계급 사회 문화를 녹여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터 오브 더 하우스>(2024)는 <영원>(2010), <새벽>(2024) 등으로 여러 국제 영화제에 초청된 시와롯 콩사꾼(Sivaroj Kongsakul)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특히 카밀라 안디니, 시와롯 콩사꾼 등은 예술ㆍ독립영화 중심의 필모그래피를 지닌 감독이었지만 대중적인 드라마 작품 데뷔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독점 판권 확보 및 후속작 제작
우수한 콘텐츠의 독점 판권을 확보하거나 후속작을 제작해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공하는 방식도 병행됐다. 미지의 여학생이 사회의 불의를 처단한다는 파격적인 소재로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태국 드라마 <그녀의 이름은 난노>는 2018년 GMM 25에서 방영되고, 두 달여 뒤 넷플릭스에서도 서비스됐다. 드라마가 성공하자 두 번째 시즌(2021)은 넷플릭스에서 제작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베트남 영화 <분노>(2019)는 보기 드문 여성 액션 영화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아 미국 극장 개봉까지 이어졌다. <분노>와 프리퀄 <분노의 탄생>(2022) 모두 극장 개봉을 거친 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공개됐다. 인도네시아 영화 <복사기>(2021)와 <가스퍼의 24시간>(2023), 태국 영화 <도이 보이>(2023) 등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어 호평받았으며, 영화제 전후로 계약이 체결되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서비스된 사례이다. 앞서 언급한 카밀라 안디니의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나나>는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공개됐다.
형태 및 장르의 확장
형태와 장르를 넘나들며 콘텐츠를 확장하기도 했다. 태국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방콕 브레이킹>(2021)은 시리즈로 제작된 뒤, 후속작은 시즌 2가 아닌 영화 <방콕 브레이킹: 천국과 지옥>(2024)으로 돌아왔다. 반대로 인도네시아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알리와 퀸스의 여왕들>(2021)은 후속작으로 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2018년 당시 전 세계적 뉴스였던 태국 소년들의 동굴 조난 사건은 넷플릭스에서 6부작 드라마 <태국 동굴 구조 작전>(2022)과 다큐멘터리 영화 <더 트랩트 13: 태국 동굴 조난 사건>(2022) 두 가지 버전으로 각색됐다. <트레세: 도시의 수호자>(2021)는 민담 속 캐릭터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필리핀의 코믹북 시리즈를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각국의 흥행작 유치
오리지널 콘텐츠 혹은 독점 공개가 아니라 할지라도 각국의 흥행작과 화제작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인도네시아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이자 개봉 당시 역대 인도네시아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던 <KKN di Desa Penari>(2022)는 프라임 비디오에서, 흥행 2위를 기록했던 <Agak Laen>(2024)은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⁶⁾ 말레이시아 극장가에서 역대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대영 항쟁 시대극 <맛 킬라우>(2022), 글로벌 박스오피스 총수익 20억 밧(Baht)을 돌파하며 세계 시장에서 가장 흥행한 태국 영화가 된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2024),⁷⁾ 태국에서 가히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드라마 <러브 데스티니>(2018)의 영화 버전 <러브 데스티니: 더 무비>(2022) 등은 넷플릭스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다.

<시가렛 걸>, <그녀의 이름은 난노> 시즌 2, <트레세: 도시의 수호자들> 포스터
(출처: IMDb)
이렇게 제작ㆍ공개된 콘텐츠의 소비가 단지 자국이나 동남아시아 지역 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2023년 태국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헝거>는 비영어 영화 부문 주간 글로벌 시청 순위 1위에 올랐으며, 이듬해에는 앞서 언급한 <마스터 오브 더 하우스>가 비영어 TV 부문 주간 글로벌 시청 순위 1위에 올랐다. 그밖에 <지암>(2025), <딜리트>(2023), <시가렛 걸> 등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여러 작품이 글로벌 톱텐(Top 10)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헝거>의 주연을 맡은 추띠몬 쯩짜런쑥잉(Chutimon Chuengcharoensukying)은 동남아시아 배우 최초로 국제 에미상 여우주연상을 받고, 극에 등장하는 ‘징징이 국수’가 붐을 이루면서 문화적 파급력까지 보였다.
이러한 성과는 우연한 일회성 결과물이 아니다. 지역성을 넘어선 보편성을 획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동남아시아에서 생산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지역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공통적으로 소비될 기반이 충분히 형성됐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남아시아의 동시대 작품들은 지역적 특수성과 보편성의 결합, 장르적 실험과 다양화, 전통의 재해석과 현대사회에 대한 세심한 포착을 통해 전 세계 소비자에게 다가서고 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며 문화에 대한 개방과 수용, 융합과 역동성을 내보인 동남아시아 지역의 특성이 영상콘텐츠 시대를 맞아 새로운 문화적 역량으로 집약되어 분출되는 것이다. 점차 다극화, 탈중심화되고 있는 영상콘텐츠 시장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동남아시아를 눈여겨봐야 한다.

<마스터 오브 더 하우스> 홍보 이미지(좌) <헝거>의 여주인공 추띠몬 쯩짜런쑥잉(우)
(출처: 넷플릭스, 국제 에미상 페이스북)
- 1) https://www.imf.org/external/datamapper/NGDP_RPCH@WEO/WEOWORLD/SEQ
- 2)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487965/internet-penetration-in-southeast-asian-countries/
- 3) https://www.statista.com/outlook/amo/media/tv-video/ott-video/southeast-asia
- 4) https://www.statista.com/outlook/amo/media/tv-video/ott-video/video-streaming-svod/southeast-asia
- 5) 남편 이파 이스판샤(Ifa Isfansyah)와 공동 연출
- 6) 2025년 애니메이션 <Jumbo>가 역대 인도네시아 영화 흥행 1위에 올라서면서 <KKN di Desa Penari>와 <Agak Laen>는 각각 역대 흥행 2위와 3위에 자리하게 되었다.
- 7) 국내 넷플릭스에서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수백만 달러를 버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됐다. 쿠팡플레이, 웨이브, 왓챠 등에서는 기존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