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략 보고서에서 영국 정부는 그간 시장에 대해 소극적이면서도, 동시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이중적 모습을 지녀왔음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기업이 부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방식의 정책이 글로벌 환경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인정한 것이며, 앞으로 영국이 나아갈 전략적 방향을 확실하게 제시한 것이다. 이 보고서를 ‘변화를 위한 계획(Plan for Change)’이라 명명한 점도 영국 정부의 정책적 전환 의지를 분명히 전달하는 부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현대 산업 전략국의 현대 산업 전략」이 선정한 8대 미래 핵심 산업(IS-8)은 첨단 소재, 공정, 자동화와 같은 첨단 제조업 분야, 해상풍력, 탄소 포집과 같은 청정에너지 분야, 첨단 방위산업, 국방기술 등의 국방 분야, 테크, 핀테크, 메드테크 등 디지털 기술 분야, 금융 서비스 분야, 바이오, 제약, 의료기술과 같은 생명과학 분야, 전문·기업 서비스 분야를 망라하며, 음악, 영화, 게임 등 창의산업(Creative Industries) 분야도 핵심 산업 중 하나로 포함되어 있다.
이번 전략 보고서는 네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핵심 산업에 대한 막대한 규모의 투자 계획과 혁신적 수준의 규제 완화라 할 수 있다. 먼저, 영국 국책 은행인 영국기업은행(British Business Bank)의 자본을 40억 파운드 확충하여 총 256억 파운드 규모로 늘리고, 국부펀드 278억 파운드를 투입하여 성장 기업들이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최첨단 연구, 기술, 상업 응용 분야에 대한 민간 투자를 유도하여, 총 860억 파운드 규모의 R&D 기금으로 혁신의 마중물 역할을 담당한다는 계획도 제시하고 있다. 고성장 섹터에 대해서는 2024년 발표된 기업세 로드맵(Corporate Tax Roadmap)에 따라, 기업세율 25% 상한선을 설정하는 한편, 전액 비용처리와 같은 주요 세제 혜택은 유지할 계획이다.
인재 육성을 위한 전략도 상당히 방대하다. 우선, 혁신 산업 분야의 인재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지역 일자리를 확충하기 위해 12억 파운드의 추가적인 기술 훈련 기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핵심 산업군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하는 특별 훈련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현장 훈련 기회를 늘려갈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우수한 해외 인재의 영국 유입을 지원하기 위해 글로벌 인재 태스크포스(Global Talent Taskforce)를 신설하고, 인재 유입을 위해 이민제도도 개선해 갈 계획이다. 기업 혁신 부문에 담긴 10가지 전략은 ① 산업용 전기요금 절감, ②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 촉진, ③ 경제 안보 강화, ④ 금융 접근성 확대, ⑤ 기업 혁신 주도, ⑥ 영국 데이터의 자산화, ⑦ 기술력 및 인재 접근성 강화, ⑧ 규제 완화 및 혁신 가속화, ⑨ 기획 단계의 장벽 제거, ⑩ 성장을 뒷받침하는 조세 제도 구축으로 정리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전략이 실질적인 정책 성과로 귀결될 수 있도록 기업 투자, 부가가치, 생산성 성장, 수출과 같은 시장 성과와 고용, 임금과 같은 노동시장 성과를 지속적으로 추적한다는 계획도 구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은 산업전략자문위원회(Industrial Strategy Advisory Council, ISAC)가 담당하는데, 앞으로 정책 이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하게 된다. 이미 규제 부담 해소, 인허가 속도 개선 등 주요 이슈에 대한 조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보고서의 두 번째 부분 핵심은 지역 분산형 성장 추진으로, 핵심 산업의 지리적 토대 구축과 연결 강화를 위한 전략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드러지는 점은 지역 개발을 위한 기금을 신설하고,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와 같은 자치정부와의 협력, 물리적 연결망을 확충한다는 점이다. 우선, 6억 파운드 규모의 전략적 부지 가속화 프로그램(Strategic Sites Accelerator)을 신설하여 영국 전역에서 투자 가능한 부지를 발굴하고, 5억 파운드 규모의 지역 혁신 파트너십 기금(Local Innovation Partnerships Fund)을 신설하여 지역의 기술 및 역량 강화를 지원하게 된다. 스코틀랜드 북동부에 있는 대규모 탄소 포집·활용·저장 프로젝트(Acorn CCUS), 에든버러 대학교 등 자치정부 내 핵심 영역에 대한 투자도 확대된다. 잉글랜드 지역의 성장을 위해서는 5억 파운드 규모의 시장 순환 성장 기금(Mayoral Recyclable Growth Fund)이 투입될 계획이다. 도시 지역과 산업 클러스터 안팎의 연결을 강화하여 더 많은 기업이 영국에 유입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전략 보고서의 세 번째 파트에는 8대 핵심 산업 부문별 특화 계획이 명시되어 있다. 첨단 제조업 부문에 대해서는 향후 5년간 28억 파운드의 R&D 프로그램을 포함, 총 43억 파운드의 자금이 투입되어 혁신, 자동화, 디지털화, 상업화를 지원한다. 생명과학 분야에 대해서는 6억 파운드 규모의 투자를 통해 건강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 영국을 세계 3대 생명과학 강국으로 도약시킨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디지털 기술 분야에 대해서는 영국의 데이터 주권 역량 강화, 양자컴퓨터 개발, AI 성장 지구(AI Growth Zones)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계획을 담았다. 전문·기업 서비스 분야에는 기술 도입과 AI 통합을 촉진하고, 메이드 스마터(Made Smarter) 프로그램 확대 등 1억 5천만 파운드를 지원한다. 청정에너지 분야, 국방 분야, 금융 서비스 분야에 대해서도 투자와 혁신을 통해 산업 내부는 물론, 8대 전략 산업 전체의 회복력을 강화해 갈 계획이다.
보고서의 마지막 파트는 이러한 전략을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연결하려는 조치들이 제시되어 있다. 민간 자본 유치와 기업과의 공동 투자, 정부 조달력을 활용한 국내 공급망 강화 및 지역 일자리 확충, 정부와 기업 간 소통 수월성 확보 및 신속한 투자 결정을 위한 투자청(Office for Investment)의 맞춤형 서비스 도입, 중소기업을 위한 비즈니스 성장 서비스(Business Growth Service) 신설, 산업 전략 위원회(Industrial Strategy Council)의 상시화 등이 핵심 내용이다.
통상적으로 영국에서 창의산업 정책을 주관하던 부서는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였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기업통상부에 의해 국회에 제출되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는 앞으로 콘텐츠 창의영역에 대한 영국의 정책이 친시장적, 산업적 접근 방식으로 전환될 것임을 시사하는 중요한 신호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보고서를 통해 영국 정부는 미래 산업에 대한 정책 일관성과 명료성을 확실히 제시하였다고 평가된다. 8개 영역에 걸친 산업 전략을 기업통상부가 총괄함으로써 미래 핵심 산업에 대한 종합적, 포괄적 접근방식을 채택하겠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으며, 범 산업적 시너지 효과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보고서의 창의산업 전략은 8대 미래 핵심 산업의 ‘변화를 위한 계획’ 전략과 궤를 맞춰, 창의산업의 혁신, 투자, 인재 양성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영국의 창의산업은 영국 GDP의 약 5%를 차지하며, 260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핵심 산업이지만, 글로벌 경쟁 심화, AI 기술 확산, 프리랜서 노동 구조 등 빠른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지적에 따라, 이번 보고서의 창의 산업 전략에는 창의 산업에 대한 향후 공공 및 민간 투자 확대 방안, 수출 잠재력 극대화 방안, 각 지역 및 클러스터 활성화 전략, 우수 인재 양성 계획, 프리랜서 인력 보호 방안 등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먼저, 창의산업의 혁신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대규모 R&D 투자와 인프라를 대폭 확충할 계획이다. 영국 정부 산하의 국가 연구·혁신 투자 기관인 영국연구혁신기구(UK Research and Innovation)가 총 1억 파운드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새로운 지역과 산업 부문의 창의 클러스터를 조성하게 된다. 콘텐츠 유통을 촉진하기 위해 창의 콘텐츠 거래소(Creative Content Exchange)의 신설 계획도 특징적이다. 디지털 자산의 거래와 라이선스 관리를 맡을 이 온라인 플랫폼은 창작자와 기업 간 거래와 협업의 수월성을 확보해 줄 것으로 예상된다.

창의산업 연구개발 지원의 일환으로 스코틀랜드의 던디 지역에 CoSTAR Realtime Lab이 출범했다.
(출처: Abertay University)
창의산업을 위한 투자도 확대되는데, 이는 영국기업은행(British Business Bank)이 담당한다. 창의산업에서 지식재산 담보 대출의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실무 협의체가 구성되며, 민간 주도형 단일 창구(Single Front Door) 체계도 구축된다. 이를 통해 창의기업들이 민간 투자 정보에 쉽게 접근하도록 돕는다는 계획이다.
인재 양성 전략도 보다 체계적으로 마련되었다. 청소년들이 창의 및 기술 교육을 통해 미래 직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잉글랜드 교육과정을 개편한다. 또 정부와 산업계가 협력하여 총 900만 파운드 규모의 기금을 마련, 창의 직업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이번 전략서에는 영국 콘텐츠의 수출 전략도 간략히 언급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영국 콘텐츠의 주된 시장은 EU 및 미국이었으나, 앞으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신시장 개척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창의산업의 콘텐츠 수출을 위해 영국 수출금융청이 무역 및 수출 지원을 위해 보유한 800억 파운드 규모의 기금이 활용된다.
영국 전역에 걸쳐 지정된 12개의 창의산업 클러스터에 대한 지원도 확대된다. 총 1억 5천만 파운드 규모의 창의지역 성장기금(Creative Places Growth Fund)을 조성하여 6개 광역 도시에 지원한다. 또한 전 세계 창의산업을 선도하는 슈퍼클러스터로 런던을 육성하기 위해 향후 4년간 1천만 파운드를 투자하고, 민관 협력을 통해 추가로 대규모 민간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창의산업 내 선도 사업에 대해서는 이러한 전략과 별도로 투자의 확대가 이루어질 계획이다. 총 7,500만 파운드 규모의 스크린 성장 패키지, 3,000만 파운드 규모의 비디오 게임 성장 패키지를 신설하고 3년간 영상콘텐츠 육성 및 해외 투자를 유치한다. 또한 3,000만 파운드 규모의 음악 성장 패키지를 마련, 신진 아티스트에 투자한다. 대형 공연장 수익 중 일부는 지역기반의 창작자, 예술가, 공연장, 단체 등을 지원하는데 활용하여 기초 생태계 구축을 위해 노력한다는 계획이다. BBC에 대한 지원 강화 계획도 담겨있는데, 영국 영상산업의 활력을 유지하고 영국 창의산업의 성장엔진 역할을 BBC가 담당하도록 지원이 확대될 전망이다. 디즈니, 스카이그룹 등 민간 투자가와 영국 정부가 공동 기금을 조성하여 국립영화텔레비전스쿨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포함되었다.

영국에서 촬영된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원제: Adolescence)>
(출처: 넷플릭스)
이번 전략 보고서는 글로벌 차원의 정치, 경제 환경 변화에 대한 영국적 대처 방안과 지원정책의 틀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또한 문화산업 지원정책 변화의 포문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영국 시장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특히 공공과 민간의 투자 확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략의 광범위성과 구체성 결여, 재정 확충 문제, 부처간 조율 문제, 중소기업 전략의 부재 등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앞으로 영국 정부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어떻게 정책을 실천해 가는가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할 것이다.
- Dr Darcy Luke and Dr Nathan Critch (2024.11.25). An end to the policy ‘merry-go-round’? Labour’s new industrial strategy and the pathologies of British policymaking. The Productivity Institute.
- Giles Wilkes (2025.6.25). Delivering the new industrial strategy will be a huge test for government. Institute For Government.
- UK Govertnment. (2025.6.23).「The UK's Modern Industrial Strategy 2025」
- UK Govertnment. (2025.6.23).「The UK's Modern Industrial Strategy 2025」. Creative Industries Sector P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