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소재 측면에서 얼마나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가 다양성이라고 생각해요”
Q. 방송영상콘텐츠 다양성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최) 소재 측면에서 말하자면 얼마나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가 다양성의 핵심인 것 같다. 아무래도 방송은 재미나 대중성을 추구하다 보니 특정 계층에 몰입해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공익적인 측면에서 넓혀 보자면 사실 다양한 목소리가 있지 않나. 제가 일하는 시사교양 팀에서 다양성이란 우리가 모르는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전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사람들을 모시고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어서 시청자들이 봤을 때 ‘아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저렇게 생활하는 사람도 있구나’ 이런 반응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는가 이런 측면인 것 같다.
Q. 프로듀서의 관점에서 방송영상콘텐츠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최) 방송의 역할과 맞닿는 부분도 있는데 단순히 재미 소구용 방송이 아니라 소위 ‘공중파’, 즉 공영 방송국에서 추구하는 다양한 이야기 그리고 방송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소구하고자 하는 사회적 의미를 생각했을 때, 방송이 다양한 프로그램과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다양한 관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저런 사람도 있네’, ‘어떤 프로그램 보니까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더라’, ‘그 사람들이 봤을 때 나는 그래도 이런 것 같아’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가질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사회 통합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니까 말이다.
Q. 현장에서 체감하기에 국내 방송영상콘텐츠 다양성은 어디까지 왔다고 생각하는가
(최) 최근 현장에서 느끼기에 소재의 다양성 측면은 오히려 약간 축소되는 것 같다. 방송 환경이 급변하면서 공적인 측면의 방송 역할이 무너진 경향이 있다. 소재의 다양성 역시 방송에서 맛보기나 재미 측면에서 다양성 축으로 가는 거지. 진정성 있게 계층 간의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사례는 줄어들고 있지 않나 싶다.
Q. 작품 연출할 때 소재나 콘텐츠 다양성을 특별히 고려하는 부분이 있는가
(최) 처음 기획할 때부터 어떤 계층의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1차로 타깃팅을 어디로 할 것인지, 여기부터 선택의 부분이다. 사실 독립영화를 만들지 않는 한, 기획이 어느 정도는 나올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작년에 했던 저출생 관련 다큐는 저출생 관련해서 기획안을 써서 일단 주제가 정해졌다. 그럼 그 안에서 다양성 측면에서 어떤 부분을 보여줄 것인가는 PD의 몫이다. 예를 들어 난임에 대한 얘기를 한다면 난임의 어떤 부분과 저출생을 연관지을 것인지, 아니면 다둥이를 찍어서 이 다둥이의 어떤 모습을 통해서 어떤 게 힘들고 이 사람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고 이런 걸 통해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인지. 하나의 주제 안에서 계층 간의 다양성을 얘기한다면 정말 어렵게 사는 얘기를 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소재들을 어떤 식으로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다큐멘터리 안에서의 다양성이 달라지는 것 같다.
Q. 다양성을 고려해서 연출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최) 아무래도 섭외다. 모든 방송 프로그램은 소재가 중요하다. 소재에 맞는 섭외가 돼야 하고, 그에 맞는 인물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방송을 봤을 때 소구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주제에 맞는 캐릭터 섭외를 고민한다. 우리의 방송 콘셉트를 말씀드리고 출연자들이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끔 끌어내는 게 PD의 역할인데 그게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사실 보려고 해야 보이잖아요.
처음에는 보려고 해야 보여지더니, 나중에는 보려하지 않아도 보이더라구요.”
Q. EBS <세상을 비집고>(이하 세비고)는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MZ세대 4인방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기존 국내 방송에서 보기 어려운 프로그램인데, 기획 의도가 무엇인가
(최) EBS 편성팀에서 기획안이 나왔는데, 다양한 나이대와 계층을 가진 장애인들이 나와서 장애에 대해 스스럼없이 밝은 분위기로 얘기하는 프로그램이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그전부터 우리나라 장애인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 의식이 있었다. 매번 사연팔이 아니면 짠하게만 그려지는 거다. 저는 소외계층이라는 말도 마음에 안 든다. 소외계층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은 소외시키는 것 같다. 장애인, 소외계층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가두다 보니까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가졌고 어떤 인물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싸잡아서 전부 장애인이고 소외계층을 만든다. 이런 접근을 하다 보니 방송에서도 이 사람이 왜 다쳤는지 그리고 왜 힘든지를 자꾸 감성적으로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EBS에서 새로운 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기획안이 나왔을 때, 처음에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건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20~30대 MZ세대 장애인들을 생각했다.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있든, 불의의 사고나 병력으로 장애를 가졌든 이 친구들에게 장애가 다가 아닐거란 생각을 했다. 그들도 친구가 있고, 자기 생활이 있을 것이다. 장애가 사이드(side)인 친구들에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다만 EBS 기획 의도에 있는 다양한 계층이 떼샷으로 나와서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어떤 캐릭터를 얘기할 때, 그 캐릭터에 감정 이입이 되려면 캐릭터의 개인적인 생활과 성격이 드러나야 하는데 떼로 우르르 나오면 집중이 안 될거라고 생각했다.
Q. <세비고>의 주인공 4인방 멤버 섭외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마침 모두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들인데, 이는 콘텐츠 트렌드를 반영한 것인가
(최) 멤버 섭외의 기준은 젊은 친구들 중에 말 잘하고 장애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서 제가 모르는 부분을 얘기해 줄 수 있는 친구들이면 좋겠다는 게 시작이었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섭외에서 가장 포인트를 둔 건 각자 다른 장애여야 된다는 것, 즉 서로 다른 캐릭터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통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면 장애인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는다. 장애 안에서도 다양한 장애가 있는데, 정작 장애를 가진 분들도 서로의 장애에 대해 잘 모르더라. 이게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역시도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장애를 가지면 서로를 다 안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서로 다른 장애를 지닌 친구들이 모여서 서로를 돕고 서로의 다른 점을 얘기하는 모습이 방송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 멤버들은 장애인 단체나 관련된 곳에 면접을 볼 수 있게끔 부탁해서 찾게 된 것이다. 특별히 트렌드를 고려한 건 아니었다. 일부러 크리에이터를 찾은 게 아니라, 찾다 보니 다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였다.
Q. 시청자들이 방송을 보고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하는 연출 의도가 있었나
(최) 시청자들이 이 친구들의 밝고 긍정적인 캐릭터와 장애를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은 장애도 하나의 특징일 뿐 별다른 게 아니다. 고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라 그냥 안고 가는 것이다. 이 친구들의 밝은 에너지를 프로그램을 통해서 느끼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고 느낀다면 좋을 것 같다.
Q. 비장애인 출연자에 비해 장애인 출연자와 촬영할 때 특별히 더 신경을 쓴 부분이 있는가
(최) 오히려 없는 것 같다. 사실 연예인 출연자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은 대본이 있어서 기본적으로 그리고 정확한 시간 안에 지켜줘야 되는 것들이 있지 않나. 일반인들과 다큐멘터리 촬영을 할 때 물론 기본적인 콘셉트나 이런 것들은 사전 미팅에서 얘기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움이다. 자연스러움은 연출로는 안 나온다. 연출도 모르게 해야 한다. 세팅한 걸 말하지 않기 때문에 그 세팅을 모르고 촬영에 임했다가 알게 되는 이런 구도로 일부러 숨기고 진행한다. 그래서 원망 많이 들었다(웃음).
Q. 다양한 사회 이슈와 문제들을 다큐멘터리로 다루어 왔다. 그 중에서 <SBS 스페셜> 은둔형 외톨이 편도 굉장한 화제가 되었다. 장애 청년이나 고립 청년 등 세상 밖에 나오지 않는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을 콘텐츠로 다루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최) 특별하게 사회 개혁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그저 PD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PD로 한 자리에서 일하면서 끊임없이 아이템이나 소재를 찾을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제가 선택한 게 시사교양 쪽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보는 게 많아졌다. 사실 보려고 해야 보이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보려고 해야 보이던 것이 나중에는 보려 하지 않아도 보여지게 되더라. 결국은 관심의 문제 같다. 오래 일을 하다 보니 그런 부분들에 자꾸 연이 닿는 느낌이다.
<궁금한 이야기 Y>를 오랫동안 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각자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면서 살아가더라. 그러다 어떤 작은 도움을 기대하면서 저희 프로그램에 제보를 하는데, 제보를 받아서 가면 그분들에게 저는 마치 구세주와 같다. 그런 느낌을 받았을 때 물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저 PD로서의 임무를 다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다 보면 이분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순 없겠지만, 정말 작은 도움 하나가 간절한 분들이 문제가 해결되고 편안해지는 때가 있다. 방송으로나마 그분들은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중요하다.
“다큐멘터리가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것은 곧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죠”
Q. 방송프로그램의 다양성 확대를 위해 필요한 노력이나 지원이 있다면 무엇인가
(최) 사실 앞으로 5년, 10년 후에 방송 생태계가 어떻게 될지 굉장히 궁금하다. 일단 방송 환경 자체가 채널이 너무 많아졌고, 유튜브처럼 개인적으로 영상을 소구할 방법도 많아졌다. 공중파 시청률이 높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프로그램도 만들어지고 제작비도 늘어나고 이른바 제작 환경이 만들어지는 건데, 지금은 공중파가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교양국 자체가 축소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까 전통 다큐가 설 자리가 없어졌다. 단순히 다큐멘터리가 설 자리가 없다라는 얘기를 더 깊이 뒤집어 보면 결국은 다양한 계층, 소외된 계층의 이야기들이 사라지고 있다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방송의 역할, 공공성의 역할에는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어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게끔 이끌어주고,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알려서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전반적인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공중파 채널의 파워가 약해지다 보니까 이러한 공공성도 약해진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니까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채널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회가 변하고 있고 우리 역시 변화를 받아들여 그에 따른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새로운 방향의 다큐멘터리, 새로운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선은 지켜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송의 역할이라는 것에 집중해서 공공성 목적의 편성을 조금이라도 늘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편성 안에서 또 다른 방식의 추구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Q. 다큐멘터리 PD를 꿈꾸는 후배 연출자들에게 다양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가지면 좋을지 조언해 준다면
(최) 일단 다큐멘터리 하겠다는 친구들은 어느 정도 시선 자체가 이미 갖춰졌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사회에서 못 보는 것들을 보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다큐멘터리는 결국 어떤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봐야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다큐멘터리나 시사교양 분야가 축소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다이나믹하게 여러 장르들을 섭렵해야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매몰돼 있으면 안 된다라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사회 전반적으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끊임없이 필요한 분야인 것 같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줄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저 역시도 지금껏 그렇게 하고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