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도가 모이고 확장되어 드라마 다양성을 만들다

“다양성이라는 화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더라도, 더 발상하고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본다면 결국 다양성은 새로운 시도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아요”

Q. 방송영상콘텐츠 다양성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장) 어려운 질문이다. 방송영상콘텐츠의 다양성이라는 것이 어떤 의도나 계획으로 만들어진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이자 요구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제가 하고 있는 드라마는 대중들의 삶과 일상에 아주 밀착된 콘텐츠지 않나.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나 사회의 변화, 기술과 시장의 변화에 따라서 콘텐츠의 방향성이나 다양성도 계속 변화하고 확장되어 가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이 변화하듯이 영상 콘텐츠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길을 가는 중에 만난 시대적 흐름이 다양성이 아닌가 생각을 해봤다.

Q. 제작 프로듀서의 관점에서 드라마 콘텐츠에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장) 다양성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관점을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드라마의 이야기, 즉 소재와 장르의 다양성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개인적으로 드라마는 대중들에게 즐거움과 좋은 가치를 전달하고,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에 있는 것이기에, 드라마의 정체성이나 목적을 생각했을 때 다양한 이야기와 다양한 소재, 인물, 장르가 다뤄지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 업계 차원에서 보면 드라마의 형식이나 규모의 다양성 측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존에 TV로만 접하던 드라마가 OTT를 비롯한 다양한 채널로 개개인의 생활 방식에 맞춰서, 때로는 짧은 콘텐츠로 때로는 몰아보기 콘텐츠로 다양하게 소비하는 상황이다. 각 콘텐츠의 목적성과 소비 방식에 맞게 다양한 규모의 드라마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업계나 산업 측면에서 봤을 때도 건강하게 선순환할 수 있는 중요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소비자는 다양한 이야기가 주어질 때 얻어지는 효과가 있고 생산자로서도 다양성을 통해 드라마 산업과 창작자들의 기회를 계속 확장해가는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싶다. 여러 측면에서 다양성이라는 화두는 항상 중요하다.

Q. 현장에서 체감하기에 국내 방송영상콘텐츠 다양성은 어디까지 왔다고 생각하는가

(장) 예전에는 아무리 재밌는 이야기라도 여러 제약 조건으로, 드라마로 만들기엔 어렵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TV 외적인 플랫폼의 변화, OTT나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해서 과감한 이야기들을 많이 시도해 볼 수 있다. 플랫폼의 확장 외에도 기술의 확장으로 인해서 예전에는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없던 것들이 다양한 CG나 특히 AI의 발전과 더불어서 표현의 한계도 많이 사라졌다. 정말로 현장에서는 ‘이런 게 될까?’라는 것들이 현실화되는 상황들을 몸으로 겪고 있다 보니, 점차 경계 없이 하고자 하는 것들을 표현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다.

Q. 말씀하신 다양성 실천을 위해 제작 현장에서 고민이나 고려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장) 사실 다양성이라는 목표와 화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더라도 더 발상하고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본다면, 결국 다양성을 새로운 시도라는 말로 바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장에서도 기존에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계속 꿈꾸게 된다. 이야기적인 새로움도 있지만 표현이나 형식의 새로움에 대해서 보수적인 접근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확장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실질적으로 많이 한다. 그렇게 각자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것들이 모여서 결국은 진짜 다양한 이야기로 확장되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는 남이 안 했던 것을 내가 한번 해보자 하는 도전 의식에서 오는 설렘도 있고 그에 따른 부담감도 있어 항상 양날의 검 같다.

Q. 작품 제작 과정에서 다양성(새로운 시도) 연출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장) 새로운 시도라는 것도 여러 형태가 있겠지만 항상 새로운 장르의 개척 내지는 새로운 비주얼의 구현, 새로운 소재의 접근 등이 이루어질 때는 매우 많은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봐 와서 익숙하거나 어떤 그림이 나올지 아는 것은 배우를 캐스팅하거나 채널을 설득할 때도 예측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들이 이루어지지만, 해보지 않았던 장르들을 시도할 때는 구현해 가는 과정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도 예측이 어렵고 예산이나 결과물에 대한 위험이 크기 때문에 아직 영상화되지 않은 것들을 관계자들과 상의하고 설득해 가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다. 새로운 것들을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고민과 준비, 도전 정신이 계속 필요한 것 같다.

다양성 방송콘텐츠 제작 사례: tvN <미지의 서울> 외

“결국 어떤 이야기가 새롭고, 어떤 인물들이 재미를 줄 수 있을지를 가장 고민하면서 기획하는 것 같아요”

Q. tvN <미지의 서울>이 아주 많은 사랑을 받으며 종영했다. 작품을 어떻게 제작하게 되었는지 기획 의도가 궁금하다

(장) 많은 사랑을 보내주셨던 <미지의 서울>은 기획 의도가 너무나 명확했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나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가 작가님이 드라마를 통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핵심 주제였던 것 같다. 제가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 시작점에 쌍둥이 자매가 서로 인생을 바꾼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귀엽고 어릴 적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법한 재미난 설정이라서 호기심과 흥미가 생겼는데, 대본을 보면서 매회 너무 큰 울림이 있었고 저도 스스로 위로와 공감을 많이 얻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대본을 보면서 받았던 위로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서 위로를 얻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작을 시작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많은 분들께 잘 가 닿아서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Q. 극 중에는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변호사, 은둔형 외톨이나 비혈연 가족, 동성애자 등 자신만의 결함이나 비밀을 간직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각각 캐릭터를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구체화해 나갔는지 궁금하다

(장) 결국 담아내고자 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자기혐오’를 작가님이 건드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모든 인물이 각자의 어떤 상처나 결핍 또는 비밀이나 여러 서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인물들을 드라마적으로 만들어낸 가짜 인물처럼 다루지 않고 나와 내 가족, 주변 동료나 친구의 이야기처럼 너무나 현실적이고 진솔하게 작가님과 감독님이 잘 만들어 주셨다. 보통 드라마가 주인공 중심의 이야기들이 응원을 받고 주인공 이야기만 보고 싶어 하는 작품들도 많이 있는데 <미지의 서울>은 주인공 외에도 주변의 모든 인물이 다 사랑받고 그들이 가진 어려움과 그것을 극복해 나가고 위로받고 성장하는 이야기들을 다 재미있게 봐주셨던 것 같다.

Q. ‘미지의 서울’이라는 타이틀이 ‘나의 서울’로 바뀌면서 끝이 나는 마지막 회 엔딩 크레딧이 인상적이었다. 시청자들이 작품에 나온 다양한 캐릭터나 서사를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하는 연출 의도가 있었나

(장) 최종화 엔딩 장면에 ‘미지의 서울’이 ‘나의 서울’로 바뀌는 그 장면은 사실 저도 편집본을 보고 깜짝 놀라고 뭉클했던 장면이었는데, 감독님의 아이디어였다. 감독님이 드라마 전반에 걸쳐서 섬세하게 채워주신 부분이 굉장히 많은데 마지막 장면의 마무리까지도 이 드라마를 끝까지 사랑해 주신 시청자분들에게 선물처럼 건네준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드라마 안에 등장한 어떤 주인공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삶 속에 드라마의 여운이 스며들기를 제작진 모두가 바라고 희망하면서 만든 작품이었다. 배우분들도 그런 마음으로 엄청나게 섬세한 연기를 해 주셨고, 이런 노력이 모여서 결국 좋은 드라마로 잘 완성된 것 같다.

Q. <형사록>이나 <연예인 매니저로 살기> 등 제작하신 드라마를 보면 연예인 매니저나 퇴직한 노년 형사 등 기존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나올 법한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흔히 말하는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실 때 특별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장) 결과적으로 다양한 인물과 직업군을 조명했다고 거론되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소재를 잡고 인물을 설정하고 기획을 할 때 제작진이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이게 재미있는가?’ 그리고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정말 공감을 줄 수 있을까?’가 우선이다. <형사록>이라는 드라마는 기존 TV에서는 방영하기 쉽지 않은 노년의 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였다. 그 또한 환경의 변화에 따른 OTT의 등장으로, 디즈니플러스에서 편성이 돼서 방영됐다. 다양한 채널이 생기면서 이런 이야기도 시도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있던 혈기 왕성한 형사가 아니라 은퇴를 앞둔 이빨 다 빠진 호랑이 같지만 노련함이 묻어나는 ‘진짜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게 된 좋은 계기였던 것 같다.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같은 경우도 보통 드라마에서 스타들을 주인공으로 다루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의 삶을 생각하면 앞에 나선 주인공의 삶을 사는 사람들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연예인 매니지먼트라는 화려한 세계에 함께 몸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 다른 직장인으로서 살아가는 매니저들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고 대중들에게 ‘하는 일은 다르지만, 사는 건 똑같네’라는 공감대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양한 주인공 캐릭터와 직업군들이 요즘 드라마에서 많이 다뤄지는 것 같은데 결국은 어떤 이야기가 새롭고 어떤 인물들이 재미를 줄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하면서 기획하는 것 같다.

드라마 PD, 더 예민한 책임감을 가지고 다양성을 고민하다

“조금 더 예민하게 고민하는 부분은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거나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책임 의식을 많이 느껴요.”

Q. 드라마의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다양한 캐릭터와 삶의 모습을 드라마로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 제작자로서 사회적 책임도 뒤따를 것 같다

(장) 작품을 할수록 점점 더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특히 드라마라는 게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짧게는 1~2년에서 보통 3~4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리기도 하므로 저는 드라마의 기획 시작부터가 진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몇 년을 걸쳐서 준비해 가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고 또 메이드 할 자신이 있는가를 시작부터 고민해야 한다.

기획의 시작부터 책임을 느끼지만, 마지막에 시청자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도 드라마가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극장에 찾아가서 보는 콘텐츠가 아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상태로 접할 수 있는 콘텐츠다 보니까 모두에게 다가갔을 때 유의미함을 남기고 그게 즐거움이든 감동이나 힐링이든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늘 책임감을 느끼고 드라마를 기획 제작하고 있다. 조금 더 예민하게 고민하는 부분은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거나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채널 안에서도 심의나 정서적인 관점에서 같이 모니터링 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

Q. 예전에 비해서 국내 드라마에 다양성 소재가 반영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것 같다. 이러한 경향성이 글로벌 트렌드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가

(장) 국내 환경의 변화도 분명히 다양성에 영향을 끼치지만 이제 저희의 무대가 국내에 한정되지 않고 OTT를 통해서 전 세계 시청자들을 동시에 만나기 때문에 글로벌을 의식하고 또 글로벌에서 소구될 만한 이야기를 모두 고민할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글로벌 트렌드가 무엇인지, 혹은 당장 한국의 트렌드가 무엇인지 말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요즘은 트렌드가 없는 게 트렌드 아닌가 이런 얘기도 많이 한다. 예전처럼 어떤 유행이나 트렌드가 하나의 방향성으로 가기보다는 다채롭고 다양하게 펼쳐진 것들 안에서 각자의 기호에 맞게 접하는 시대인 것 같다. 글로벌이라는 큰 무대에서 물론 문화와 정서의 차이는 있겠지만 재미있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는 결국 다 통한다고 생각하며 만들고 있다.

Q. K-콘텐츠의 글로벌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문화권마다 통용되는 문화 감수성이나 다양성이 다를 수 있다고 본다. 국내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해외 시청자들을 고려하는 시도나 고민도 하는지 궁금하다

(장) 글로벌 시장이 중요하지만, 사실 모든 것들을 다 의도하고 계획하고 시작하는 건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잘 만들어진 콘텐츠가 국내에서 사랑받을 때 해외에서도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때로 작품마다 목적성이 다르다는 생각도 한다. 어떤 작품은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기획되는 것도 있고, 어떤 작품은 국내 시청률과 대중성을 목표로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은 웰메이드로서 어떤 메시지와 의미를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하기도 한다. 다만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게 아니더라도 글로벌로 시청층이 넓어진 상황에서 프로듀서와 제작자들이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다양한 정서가 계속 스스로도 확장이 되어야 결국은 글로벌을 품을 수 있는 기획자와 제작자가 되고 또 그런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모든 것을 다 의도하고 만들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잘 내재하고 축적되어 있을수록 더 폭 넓은 시장과 시청자를 만날 준비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신애

장신애
(스튜디오드래곤 CP)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의 CP로 재직 중이다. tvN 토일드라마 <미지의 서울>(2025) 제작을 담당했다. 제작한 주요 작품으로 <금주를 부탁해>(2025), <사랑은 외나무 다리에서>(2024), <감사합니다>(2024), <운수 오진 날>(2023), <형사록>(2023),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2022)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