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르의 영상콘텐츠가 많이 생산되는지, 어떤 주제가 더 높은 비중으로 다루어지는지, 어떤 소재가 어떤 포맷으로 더 많이 제작되는지 등은 시장구조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현재 가장 큰 자본으로 글로벌 시장을 움직이고 있는 주체는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이기 때문에, 그것이 만들어낸 생산, 유통, 소비의 메커니즘이 로컬 OTT 산업, 레거시 방송산업, 영상제작산업의 큰 틀을 형성하고 있다. 로컬 영상산업은 글로벌 OTT로 연결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국내 영상콘텐츠 산업은 넷플릭스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일찍이 국내 시장이 제공하지 못했던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오징어 게임>으로 대표되는 높은 퀄리티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글로벌 유통을 이루어냈다. 그런데, 그 어느 때보다 방송영상콘텐츠의 상품적 외연이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콘텐츠 산업의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투자 방식이 압도하는 가운데 불가피하게 파생되는 국내 제작비 상승, 방송사의 드라마 편성 위축, 제작사의 재정적 양극화, 지역문화와 이슈의 고사 등의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는데, 몇 가지 주요 쟁점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자본과 창작의 만남으로 이루어낸 상품의 다양성

넷플릭스의 투자유치 여부가 국내 영상콘텐츠 제작사의 성공적 사업에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었음을 이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2025년 3월 공개되어 ‘관식이 신드롬’을 일으킨 1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제작비는 600억 원으로 편당 37.5억 원에 해당하는데, 성과로는 누적 4주 차 시청 수 2,050만 명, 누적 시청 시간 1억 2,900만 시간을 기록했다(김양수, 2025). 성과는 차치하더라도, 국내 지상파방송사 드라마 시리즈의 평균 제작비를 2024년 기준인 편당 15억 원 규모로 보면 넷플릭스가 투자한 이 성공적인 로맨스 K-드라마의 절반 이하임을 알 수 있다. 그나마도 <오징어 게임> 등을 거치면서 넷플릭스의 제작비 규모로 인해 국내 드라마 제작비도 동반 상승한 결과이다. 이쯤 되면 제작비 상승에 따른 국내 방송사와 제작사의 드라마 제작의 어려움은 현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어보면, 국내 영상산업은 이미 ‘제작비 상승’이란 화약을 축적해 왔고, 넷플릭스는 단지 제작비 상승의 트리거였다고도 볼 수 있다.

지난 20여 년간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K-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제작비용이 꾸준히 상승했음에도 내수시장 규모의 한계와 한한령의 영향으로 중국 수출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억제되어 오던 출연료와 근로환경 개선에 따라 치솟은 인건비 등의 요인들이 글로벌 OTT의 투자를 통해서 분출구를 찾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제작비 상승에 따른 문제를 위한 대책으로 출연료, 원고료 등의 억제와 같은 직접적 규제 방안은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이다. 창작 영역에서도 시장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면, 이 시장을 풍성하게 만들어온 투자도 위축되고, 좋은 스토리를 만들어온 우수한 창작자들도 이 시장에 계속 머물지 않고 싶어질 것이다. 투자와 창작자가 위축되거나 떠난 콘텐츠 시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 방송영상콘텐츠 시장은 결국 자본과 창작자가 만나 시청자가 선택할 만한 양질의 상품을 다양하게 지속적으로 생산해 냄으로써 성장하는 것이다.

창작자 보호를 위한 지적재산권의 새로운 룰 조성

한국 콘텐츠 산업은 콘텐츠 창작의 주체이면서도 창작품의 모든 권리를 넷플릭스에 넘겨주다 보니, 넷플릭스의 콘텐츠 하청 기지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K-콘텐츠는 늘 단발성 흥행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실은 이것은 한국 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면서부터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바이아웃 거래 방식(buyout deal)¹⁾을 고집해 왔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작가 길드(WGA)와 배우 길드(SAG-AFTRA)는 조합원들이 표준계약서보다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넷플릭스가 만들어놓은 새로운 룰에 대해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등에서도 공정한 보상에 대한 요구들이 나오고 있으며 법제화 과정에 있다. 반면, 한국 제작사들은 국내시장과 비교해서 넷플릭스의 제작비 규모가 매우 크다 보니 IP 보유를 통한 수익화 전략이나 수익배분 등에 강한 주장을 하지 못하고 넷플릭스의 방식에 소극적 대응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창작자의 지적재산권 보호가 외국 기업이 아닌 국내법의 테두리 내에서 확립되어야 하고, 넷플릭스의 거래 관행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한국 콘텐츠의 지속성을 위해서 중요하다. 해외 관련 법제화 사례들을 검토하여 한국 시장에 적합한 제도를 마련함과 동시에 넷플릭스 등의 글로벌 OTT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룰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제도적 보호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제작사들이 글로벌 OTT와의 거래관계에서 창작자의 지적재산권을 보호받기 위한 주장과 논리를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 없이는 상품성 있는 창작이 어렵지만, 창작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플랫폼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상생의 논리를 글로벌 OTT가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양성을 위한 공영방송과 지역방송의 역할 재정립

콘텐츠 다양성은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의 다양성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폴리(Napoli, 2001)는 미디어 다양성을 소스의 다양성, 노출의 다양성, 콘텐츠 다양성으로 분류하고, 콘텐츠 다양성을 다시 포맷 다양성, 인구학적 다양성, 아이디어 다양성으로 세분화했다. 넷플릭스가 일정 유형의 콘텐츠 다양성, 특히, 출연자의 인구사회학적 다양성과 콘텐츠 포맷의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음은 상당히 뚜렷하다. 콘텐츠 속에서 젠더, 인종, 민족, LGBTQ+, 장애 등에서의 다양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내용은 넷플릭스와 USC 아넨버그 포용정책연구소가 작성한 다양성 보고서에 담겨있다(Smith, et al., 2025). 또한, 넷플릭스는 스포츠 다큐멘터리, 스탠딩 코미디, 상호작용성 콘텐츠, 다큐드라마, 스포츠 중계 등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포맷을 제공해왔다(임정수, 2024).

그러나, 콘텐츠 다양성을 논할 때 주요한 축을 이루는 아이디어 다양성 측면에서 글로벌 OTT의 시장 주도가 긍정적이었는지는 명확히 말하기 어렵다. 넷플릭스가 지역문화를 고사시키는지 혹은 글로벌화시키고 있는지는 하나의 현상 속에서도 혼재되어 있어 결론에 도달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지역 이슈나 문화를 다양하게 생산하고 그 소비를 활성화시키는 일차적인 책무는 글로벌 OTT가 아니라, 공영방송과 지역방송 사업자에게 있다는 점이다. 이런 영역은 시장에서 풍부하게 생산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지원하기 위한 방송영상 정책도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역 이슈나 문화도 보편화시킬 수 있는 접점만 있다면 글로벌 OTT를 매개로 매우 짧은 시간에 글로벌 이슈로 만들어갈 수도 있다. 그런 다음에도 글로벌 OTT의 관심 밖에 있지만 지켜야 할 주제, 소재 등이 있다면 그것은 공영방송과 지역방송의 역할이 되어야 할 것이다. OTT 서비스는 규모의 경제가 극대화되는 영역이므로, 공익적 비흥행성 프로그램을 위한, 지역 이슈를 위한, 실험적 작품을 위한 제3의 플랫폼이 실효성을 거두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글로벌 OTT가 지향하고 있는 방향으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창작과 제작시장이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방송의 중심에 있었던 공영방송과 지역방송보다 그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는 없다. 영상콘텐츠 시장의 글로벌화로 파생된 국내시장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지만, 가장 난해한 지점이 바로 공영방송과 지역방송의 공적 역할의 재정립이다. KBS의 단막극 공모 등은 새로운 창작 인력과 다양한 관점의 스토리 발굴이라는 점에서 공영방송이 나설 수 있는 공익적 역할의 좋은 사례가 된다. 이러한 비상업적 영역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관련된 제작 지원의 폭을 넓히는 정책도 지금보다 더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광고 규제의 획기적 변화를 통한 제작 재원확보

결국, 아이디어 차원의 다양성을 제고하는 역할의 중심에 있는 공영방송과 지역방송을 포함한 지상파방송의 재원확보가 중요하다. 지상파방송의 채널 경쟁력은 이미 상당히 떨어져 있어 드라마 제작에서 원고료나 출연료 책정에서 가격 협상력이 낮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 편성 시간을 줄이고, 저비용 포맷으로 전환하는 선택이 불가피하기도 하다. 공동제작으로 규모를 키워보더라도 채널 경쟁력이 이미 약화되어 편성을 확보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KBS 몬스터유니온, TV조선 하이그라운드, CJENM 스튜디오드래곤 등이 공동제작한 드라마 <미지의 서울>이 KBS가 아닌 tvN에 편성된 사례가 기사화된 바도 있는데(정민경, 2025), 이제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니다. 이러한 결정은 스토리와 표현의 제약이 지상파방송보다 상대적으로 적고, 티빙, 넷플릭스 등의 국내외 OTT에서의 유통 용이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맥락에서 볼 때 지상파방송의 편성이 주는 이점이 낮아졌다는 시장의 인식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결국, 작품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제작요소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는 수익성을 개선하는 방안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 가장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방안은 방송광고 규제의 완화를 통해서 광고 수익을 확대하는 것이다. 「2024년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에 따르면, 2024년 방송사업 매출액은 18조 8,042억 원으로 전년 대비 소폭(0.9%) 감소했는데, 2024년 방송광고 매출액은 2조 2,964억 원으로 전년 대비 8.1% 감소, 지상파방송 광고 매출액은 2024년 8,354억원으로 전년 대비 9.9% 감소를 보여, 광고 매출액의 감소폭이 상당히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코로나 후반부에 일시적 반등이 있었지만 이러한 광고 매출액의 하락세는 매우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지상파방송사의 2024년 광고 매출액은 2016년 대비 거의 반토막(51.5%)이다(방송통신위원회, 2025). 광고상품의 품목, 광고표현, 광고시간, 광고방식 등과 관련하여 촘촘하게 규정하는 방송광고규제의 획기적 개선은 고착화된 방송광고시장 자체를 확대하고 콘텐츠 제작재원을 안정화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런 사항들은 다른 영역(소유, 지분, 인수합병 등)의 규제들에 비해 개선이 비교적 용이하므로 획기적 변화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광고규제를 통해서 얻는 사회적 이익보다 광고규제 완화를 통해서 제작 재원을 확보한 방송사가 사회적 다양성을 콘텐츠로 실현해내는 사회적 이익이 더 크다.

임정수

임정수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영상미디어산업의 이해』, 『미드: 할리우드 텔레비전 드라마 생산 이야기』, 번역서로 『디지털 르네상스: 데이터와 경제학이 보여주는 대중문화의 미래』, 『플랫폼·파워·정치: 디지털 시대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