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인가, 적인가? 베트남전을 향한 온도차
“월남전 참전 용사셨다, 아버지가.”
“아버님이 훌륭하시네.”
<오징어 게임 2>에서 극 중 388번 강대호(강하늘)와 390번 박정배(이서환)의 대화다. 이 대화는 올 초 베트남의 반발을 산 바 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월 7일 ‘Squid Game accused of whitewashing South Korea’s ‘atrocities’ in Vietnam war(<오징어 게임>은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의 ‘만행’을 미화했다는 비난을 받았다)’라는 제목으로 베트남 시청자들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고 문제 제기한 내용을 보도했다. 매체는 베트남 국영 언론사 <라오동>을 인용, 베트남 문화부 영화국이 <오징어 게임 2>가 베트남 법을 위반했는지 검토한다고 전했다. 한국에서는 베트남 참전 경험이 나라의 부름을 받은 숭고한 행위로 평가될 수 있지만, 베트남 입장에서는 한국이 베트남전의 상대국 미국을 도왔기에 베트남 시청자들의 상처를 떠오르게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베트남전과 관련된 논란은 지난 2022년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도 불거졌다. 제작진이 공식 사과를 했지만, 넷플릭스 베트남에서는 <작은 아씨들>의 방송이 중단될 정도로 반발이 컸다. 드라마 속 악역 원기선 장군이 베트남전 참전 군인으로 그려졌는데, “한국군 한 명이 베트콩 스무 명을 죽였다”라는 대사가 등장했다. 베트남 시청자들은 베트남전을 왜곡했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제작사는 “향후 콘텐츠 제작에서 사회적, 문화적 감수성을 고려해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다”라고 공식 입장을 내놨지만, <오징어 게임 2>에서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었다.
K–영상콘텐츠 속 부딪힘, 아시아 넘어 전 세계로
베트남뿐만이 아니다. “네 엄마는 너 같은 사이코 낳고 도대체 뭘 드셨냐. 똠얌꿍?”(MBC 드라마 <빅마우스>)이라는 대사, 한국 코치가 인도네시아 현지 환경에 불만을 표하는 장면(SBS 드라마 <라켓소년단>) 등이 태국, 인도네시아를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시아를 넘어 남미, 아랍 지역 등과 문화적으로 부딪히는 범위가 넓어지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JTBC 드라마 <킹더랜드>는 극 중 아랍권 왕자 사미르 캐릭터가 아랍 문화를 왜곡했다고 글로벌 시청자의 지적을 받아 두 차례 입장문을 내고 새롭게 아랍어로 사과문을 공개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은 우리 외교부까지 나서 영어 제목을 수정했다. 수리남이 마약의 온상으로 그려지는 데 대한 우려를 고려해 영어 제목을 나라 이름이 아니라 <Narcos-Saints(나르코스 세인츠·마약상-성자)>로 바꾸며 겨우 수리남을 달랬다.
이처럼 K–영상콘텐츠 소비 범위가 넓어지며 콘텐츠에서 다뤄지는 국가나 인종이 항의해 사과하거나 콘텐츠 일부를 수정한 사례들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특정 국가나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사용해 웃음이나 긴장감 등의 효과를 내려고 할 때, 문화적 장벽이 거세게 작동한다. ‘한국식 정서 코드’로 받아들여졌던 영상콘텐츠 속 장치들이 자칫 다른 나라의 시선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결과다. K-영상콘텐츠는 이제 한국 내에서만 소비되는 ‘내수용’이 아니라, 사실상 ‘수출용’ 상품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로벌 소비자의 ‘구매’에만 환호하기보다, 문화 감수성이 절실한 시기이다. 콘텐츠 소비는 감정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감정 경제(affective economics)’의 영역이기에 문화적 부딪힘은 소비 이탈의 큰 위기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 기획 단계에서 타국 문화 이해하고 반영하기
한국의 방송영상콘텐츠에 타국 문화와 갈등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개별 콘텐츠의 기획 단계부터 문화 감수성을 담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타국을 배경으로 하거나 외국인이 등장할 때, 대사로 다른 나라를 언급하게 되는 경우 해당 국가의 시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미리 준비해야 한다.
영상콘텐츠에 문화 감수성을 갖추는 작업은 콘텐츠를 만드는 작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문화적 차이에 관한 고려가 제작 과정에 체계적으로 포함되는 방식이 필요하다. 영상콘텐츠보다 앞서 글로벌 콘텐츠를 생산한 K-팝의 경험에서 배울 점을 찾아볼 만하다. K-팝은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 그룹을 운영하며, 세계 각국에서 공연을 하면서 문화 감수성을 담는 실천을 기획사 단위에서 하고 있다. 2010년대 전후로 K-팝 아이돌 그룹에는 외국인 멤버들이 포함되며 한국의 인종주의에 대한 경각심이 환기되었다. 외국인 팬을 비하하는 국내 팬들과 문화적 갈등을 넘어서 아이돌 팀워크와 팬덤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세계 각국의 문화에 관한 노력이 이뤄졌다. 아이돌 기획사들은 콘서트를 여는 국가의 문화적 금기, 정치 외교적 사안 등의 정보를 수집해 멤버들에게 공유해왔다.
디즈니는 현지 문화를 콘텐츠에 녹여낼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하고 실천했는데 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모아나>와 <모아나 2>를 만들기 위해 ‘오세아니아 문화 신탁(Oceanic Cultural Trust)’을 설립해 다양한 태평양 섬 출신의 인류학자, 문화 전문가, 역사학자, 항해사 등이 참여해 기획 시 현지 문화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제작진은 피지, 사모아, 타히티 등 여러 섬 지역에서 전문가들과 협력해 시나리오, 캐릭터, 의상, 음악, 춤 등 영화 제작의 전 과정에 대해 자문을 받았고, 주요 스태프와 배우에도 폴리네시아계 인물을 다수 포함해 제작 전반에 걸쳐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고자 했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다. 당장 눈에 띄는 효과가 보이지 않는 지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화적 장벽이 세워지면 해결하는데 더 큰 비용이 든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 독보적 세계관 창조하기
드라마가 허구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국적이나 인종을 특정하지 않아 문화 감수성 논란을 우회하는 방식이다. 역사적 사실이 중요한 전통 사극에서는 역사 왜곡 논란이 종종 등장할 수 있기에, 상대적으로 허구의 성격이 강한 판타지 사극에서는 시대적·공간적 배경을 알 수 없게 설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tvN <환혼>과 <환혼: 빛과 그림자>의 배경은 역사나 지도에 등장하지 않는 ‘대호국’으로 설정되었다. 영혼을 바꾸는 ‘환혼술’을 주요 모티브로 삼아 사실적 요소를 배제하고 판타지 장르의 특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해 호응이 높았다.

tvN 드라마 <환혼>의 배경이 되는 가상국가 대호국의 전경
(출처: tvN)
세계적 아티스트 반열에 든 BTS도 세계관을 창조했는데, 프로듀서 피독은 영화 <스타워즈>를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영화의 요소를 그대로 복제한 것이 아니라, BTS 멤버들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서사를 구성해 BTS만의 성장 세계관을 창조해 냈다.
이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과거의 신화나 할리우드 히트의 법칙 등이 녹아들 수 있고, 세계 각국의 문화가 융합될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각 콘텐츠만의 고유하고도 독보적인 색채를 생산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3)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에 문화 감수성 포함하기
보다 실효성이 있는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영상콘텐츠 제작에는 많은 인원이 참여하므로, 예상하지 못한 문화적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예를 들면,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3>에서는 극 중 알렉스 리 캐릭터가 레게 헤어스타일과 목 부위 전체의 문신 등으로 흑인 문화를 희화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캐릭터를 맡은 배우가 직접 사과를 한 바 있다. 이처럼 대본에 관한 자문을 받았더라도, 배우의 스타일링 단계에서 문화 감수성이 떨어질 우려도 있기에, 제작 전반에 관한 가이드라인 수립과 종사자 교육이 필요하다.
넷플릭스는 2022년 사내 문화 가이드라인에서 ‘Artistic Expression(예술적 표현)’ 부문을 신설, 다양한 시청자와 창작자의 목소리를 존중한다고 밝혔고, 2024년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업데이트했다. KBS의 경우 2020년 「KBS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소수자와 장애인, 어린이 등에 관한 보호를 제안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실효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다양성의 필요를 환기하는 내용을 추가하고, 정기적으로 가이드라인을 공유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문화 감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제작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만하다. 예를 들면, 국적·인종, 종교, 문화적 상징·전통(깃발·색상 등), 차별에 기반한 대사·유머,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손짓·제스추어 등), 역사·외교적 입장(전쟁·분쟁 등) 등과 같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갈등을 빚을 수 있는 요소를 사전에 점검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제작진을 돕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4) 위기 관리하기
글로벌 시청자를 염두에 두고 기획하고 제작하더라도 미처 챙기지 못한 정치 외교적 이슈로 인해 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 디즈니는 <모아나> 개봉 전 핼러윈 의상으로 마우이 코스튬 의상을 판매하려다 ‘폴리네시안 원주민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줄 수 있다’는 반발에 처하자 사과하고 판매를 중단한 바 있다. 제작 과정에서 현지 문화를 반영하고 고려하고자 했으나 반발에 부딪히자 폴리네시안 문화를 존중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판매를 중단한 것이다. 문화 소비자의 감정을 다독이기 위해서는 위기 발생시 빠른 인정과 사과는 필수다.
위기를 해결했다면, 예방 또한 중요하다.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가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를 흔든 뒤 중국과 외교 분쟁으로 비화할 뻔했었고 결국 쯔위가 “중국은 하나다”라고 사과하여 일단락된 뒤, K-팝은 콘서트나 차트 표기 시 국가 단위 표기가 아니라 도시나 지역 단위로 표시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K–영상콘텐츠 역시 위기의 발생과 위기 후 변화가 콘텐츠에 포함되도록 장기적으로 꾸준히 조율해 나갈 필요가 있다.
K–영상콘텐츠의 내용이 한국에서는 별다른 문제로 여겨지지 않더라도 상대국에서 불쾌하게 받아들인다면 존중해야 한다. 창작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인식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제는 글로벌 시민의 관점에서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글로벌 시청자에 대한 존중이 곧 지속가능한 K–영상콘텐츠를 담보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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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혜진(2022.10.7). ‘작은 아씨들’ 베트남전쟁 왜곡 논란 사과 “주의 기울이겠다”[공식입장], <뉴스엔>
- (2023.7.13). 잘나가던 '킹더랜드', 아랍어 사과문 추가 게시…여론 잠재울까 [종합],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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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gler, T. (2024.6.24). Netflix Updates Its Famous Culture Memo: ‘Netflix Sucks Today Compared to Where We Can Be Tomorrow’, <Var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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