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회의 땅, 중동의 비전 2030 패러다임

1. 국가 경제 다각화의 핵심 동력: 문화산업

2016년 발표된 사우디 비전 2030은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민간 부문과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장기 개혁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서 문화산업은 비석유 부문 성장의 주요 동력이자, 국민 삶의 질 향상 및 고용 창출이라는 사회적 목표 달성의 필수 요소로 정의되었다. 사우디 정부는 예술, 영화, 음악 등 현대적인 문화산업 육성에 집중하며,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개발하고 규제하는 일반 엔터테인먼트 청(GEA)을 설립하는 등 강력한 정책 의지를 보인다.

특히 주목할 점은 사우디 국부펀드(PIF)의 막대한 자본력이다. PIF가 출자한 핵심 엔터테인먼트 기업 셀라(SELA)는 대형 문화, 스포츠 이벤트를 기획, 운영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국내 엔터사 최초로 사우디에 현지 법인을 설립한 CJ ENM이 SELA와 파트너십을 맺고 오디션 IP 현지화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추진하는 것은 이 구조적 변화를 선점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이러한 협력 구조는 중동 시장이 한국 콘텐츠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선진 콘텐츠 제작 및 유통 노하우 이전을 요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사우디 비전 2030의 핵심 목표인 현지 고용 및 인재 육성 전략에 부합하며, 한국 기업에는 장기적인 IP 공동 소유와 지속 가능한 수익 확보라는 구조적 기회를 제공한다.

2. 메가 프로젝트와 IP 확장 기회 (Qiddiya City)

사우디 정부는 끼띠야 시티(Qiddiya City)와 rkxdsm 엔터테인먼트 기가 프로젝트에 막대한 인프라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끼띠야 시티는 월트 디즈니 월드 리조트의 세 배 크기(334㎢)에 달하며, 테마파크, 어트랙션, 예술 설치물 등 방대한 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이는 K-콘텐츠 IP 기반의 확장 전략에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K- 팝 콘서트 정례화, K-드라마 IP를 활용한 테마 구역, 캐릭터 라이선싱, 그리고 특수 영상(XR) 체험 공간 운영 등 K-콘텐츠를 물리적 공간에 구현하는 한국 XR영상콘텐츠 제작사 망그로브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제작사 엘리건트 미디어(Elegant Media)와 XR 체험 콘텐츠 개발 MOU를 체결한 사례는 사우디가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연계된 기술 집약적 체험 콘텐츠 수요를 강하게 가지고 있음을 입증한다.

중동 시장의 한류 현황 및 잠재력

1. GCC의 높은 구매력과 라이프스타일 소비 확산

한류는 사우디, UAE, 이집트 등 MENA 지역 전반에 강력하게 확산하고 있으며, 한류 경험률은 K-드라마(87%), K-팝(73%), K-뷰티(65%)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K-뷰티 월평균 지출액 기준 상위 3개국에 포함될 정도로 높은 소비력을 자랑한다. K-뷰티가 고품질의 제품을 전략적으로 유통하여 성공했듯이 K-콘텐츠 역시 단순 라이선싱을 넘어, IP를 기반으로 한 고품질 라이프스타일 상품(굿즈 등)의 판매를 극대화해야 한다.

K-콘텐츠 성공의 배경에는 문화적 정합성이 있다. K-드라마의 서사는 가족애, 효도, 공동체 의식 등으로 중동 지역의 전통적이고 사회적인 가치와 서구 콘텐츠보다 더 잘 부합한다. 이는 문화적 긴장 없이 현대적이고 트렌디한 콘텐츠를 원하는 중동 청년층에게 안전한 문화적 대안 역할을 수행하며 높은 수용성을 보장한다.

2. 한류 지표가 보여주는 중동의 성장세

최근 수치들은 중동 지역에서 한류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한류현황지수는 2022년 3.2에서 2023년 3.3으로 상승하였다. 이는 한류 확산 단계를 넘어 대중화 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한류심리지수 역시 119.3에서 123.3으로 오르며 성장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UAE, 이집트 등은 이미 한류심리지수가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향후 가장 유망한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콘텐츠 소비량도 뚜렷하다. 예를 들어 UAE는 한국 문화콘텐츠 소비 비중이 31.2%로 조사대상 28개국 중 5위를 차지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30.2%로 7위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관심을 넘어 실질적인 소비 시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드라마를 넘어, 포맷 및 비드라마 콘텐츠로 확장

K-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드라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넷플릭스가 한국의 비대본 콘텐츠(리얼리티)에 대한 투자를 두 배 이상 늘리고 글로벌 출시를 늘리는 것은 한국 콘텐츠의 기획력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B2B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7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성황리에 개최된 2025 K-콘텐츠 엑스포에서는 방송 포맷 수출 기업 난센스가 미방송 아이디어에도 현지 관심을 끌었으며 썸씽스페셜은 리메이크 제안을 받는 등 현지 제작사들이 한국의 검증된 기획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는 포맷 리메이크 전략이 현지 제작 리스크를 낮추고 사우디 비전 2030의 목표인 현지 인재 육성에도 기여하는 중요한 전략적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성공을 위한 필수 전략: 함께 제작하고, 현지화하라

1. 공동 제작(Co-production) 기반의 현지화 심화

중동 시장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공동 제작 기반의 현지화 심화 전략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아랍어 자막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IP를 공동 소유하고 현지 문화적 맥락을 깊이 반영하는 공동 창출(Co-creation) 과정이 중요하다. CJ ENM이 SELA와 파트너십을 맺고 현지 오디션 IP를 제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PIF 연계 파트너와의 독점적 관계를 구축하여 경쟁사보다 먼저 핵심 파트너십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점의 의미가 있다.

장르 역시 다각화되어야 한다. 2025 K-콘텐츠 엑스포에서 한국 기업들(가원글로벌, 난센스, 썸씽스페셜, 캐릭터링크)이 쿠웨이트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애니메이션, 방송 포맷, 캐릭터 IP 등 다양한 분야에서 MOU를 체결한 것은 향후 협력의 방향이 드라마르 넘어 포괄적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수출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엑스포를 통해 국내 기업 30개사가 중동 83개사와 총 447건의 수출 상담(약 500억 원 규모)을 진행했으며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은 사우디 정부 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향후 현지 비즈니스 센터 개소를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G2B 협력은 중소콘텐츠 기업의 안정적인 시장 진입을 위한 필수적인 인프라를 제공한다.

이미지 1

[표 1] 2025년 K-콘텐츠 엑스포 성과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K-콘텐츠, 중동을 잇는 실크로드를 달리다. 2025)

2.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정교한 문화적 적응

MENA지역은 국가별 특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시장이라는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광범위한 지역 커버리지를 위해 현대 표준 아랍어(MSA)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우디 방언이나 GCC 걸프 지역 방언을 사용한 타깃 마케팅은 현지 젊은 소비층과의 감정적 연결과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이다.

또한, 기업은 문화적 민감성(Cultural Sensitivity)과 법적, 윤리적 규제 준수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이다. 문화적 오해가 법적 소송이나 주요 시장 운영 금지로 이어질 수 있는 중동 시장의 특성상, 기업은 상호 문화적 민첩성(Intercultural Agility)을 갖추어야 한다. 콘텐츠 기획 단계부터 현지 전문가가 참여해 문화적 검열을 하고, 현지 법률 자문을 통합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사우디의 빠른 개방 속도 속에서도 법적, 사회적 규범은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점을 유념하고, 유연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제언

K-콘텐츠의 중동 진출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우디 비전 2030이라는 국가적 목표와 맞물린 구조적인 기회다. 한국 콘텐츠 기업이 중동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5가지 핵심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1. 국가 정책 연동 및 인프라 활용: PFI, SELA, GEA 등 핵심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끼띠야 시티(Qiddiya City) 인프라를 K-콘텐츠 IP 구현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2. IP 공동 창출 기반 현지화: 현지 파트너와 IP를 공동 소유하고 한국의 제작 시스템을 이전하는 공동 창출(Co-creation) 모델을 구축하여 고용 및 인재 육성 목표에 기여해야 한다.

3. 장르 다각화와 시스템 수출: 드라마를 넘어 예능 포맷, 애니메이션, XR 등 실감 콘텐츠 분야로 IP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한국의 기획 시스템을 수출해야 한다.

4. 정교한 타깃 마케팅: 광범위한 표준 아랍어 사용과 더불어, 핵심 소비층과의 연결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역 방언을 병행 사용하는 고도화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5. 상호 문화적 민첩성 확보: 콘텐츠 기획 단계부터 현지 전문가의 문화적 검열을 필수화하고, 법적, 윤리적 리스크를 사전에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 콘텐츠 산업은 중동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서 있다. 정부 유관 기관은 현지 비즈니스 센터 기능을 강화하고, 한-중동 대학 간 공동 학위 및 인턴십 교류를 촉진하며, 공동 제작 프로젝트의 초기 금융 리스크를 낮출 수 있는 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K-콘텐츠는 아시아를 넘어, 중동이라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따라 지속 가능한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수완

김수완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인재대학 중동이슬람 전략모듈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국제지역학(중동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인재대학 중동이슬람 전략모듈 교수이자 한국이슬람학회 학회장, 한국중동학회 상임이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기획위원을 맡고 있다. KBS, MBC, SBS, JTBC, 연합뉴스 등 주요 언론과 삼성, 포스코, LS 등 기업에 중동 문제를 자문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종교 너머 도시』(2023),『문명, 인류를 밝히다』(2024, 공저),『세계 속의 한류- 변화의 중심에서, 중동 한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2022, 공저), 『한류, 다음- 이슬람 문화권 편』(2021, 공저), 『세계의 이슬람』(2018, 공저)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