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타이틀(title) 번역과 더빙(dubbing)은 현지화를 위한 가장 대표적인 전략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지화 방식은 단순히 현지어로 번역한 언어적 변환이 아니라, 각국의 문화적 맥락(cultural context)과 정서적 코드(emotional code)를 반영하여 시청자에게 친밀감과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는 외국 콘텐츠가 현지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 현상을 최소화하고 보완하려는 전략적 의도도 포함하고 있다. 결국 글로벌 OTT 플랫폼이 비영어권 시청자와 문화적 간극을 해소하고 장기적인 시장 충성도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OTT 관련 연구들은 문화적 거리가 커질수록 특정 콘텐츠의 글로벌 수용도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1) 따라서 일률적인 시장 접근 방식보다는, 국가별 문화적 거리를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맞춤형 서비스 전략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일찍이 OTT 시장을 선도해 온 넷플릭스는 글로벌 경쟁 심화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중에서도 최근에는 세밀한 더빙과 타이틀 번역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제공하기 위한 핵심 전략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효과적인 더빙은 새로운 시청자층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며, 넷플릭스는 더빙과 타이틀 번역을 단순한 언어 전달 수단이 아닌 콘텐츠 스토리에 대한 몰입감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재정의하고 있다.2)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1년간 더빙과 자막을 포함한 콘텐츠 현지화에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러한 사실은 언어 접근성을 단순한 보조적 기능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3) 이처럼 넷플릭스의 전략은 단순한 번역을 넘어, 콘텐츠 현지화를 위한 기술적 정교함과 문화적 맥락을 아우르는 복합적 접근 방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현재 190개국 이상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가입자의 약 70%가 미국 외 지역에 거주한다. 2024년 3분기 신규 가입자의 약 50%가 아시아 태평양(APAC) 지역에서 발생할 정도로 미국 외 시장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가입자 구성의 변화는 미국 중심의 콘텐츠 전략이 지속 불가능함을 보여주며, 현지화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전략임을 뒷받침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영어 자막이나 인터페이스 제공을 넘어, 더빙과 타이틀 번역과 같은 정교한 현지화 과정을 통해 시청자가 자국어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드라마, 영화와 같은 콘텐츠뿐 아니라, 회원가입 페이지, 고객지원, 마케팅 영상, 검색 메타데이터 등 플랫폼 전반을 33개 이상의 언어로 현지화하고 있다.4) 이는 이용자가 서비스의 첫 접점부터 시청 경험에 이르기까지 언어적·문화적 장벽 없이 통합적인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된 전략으로, 글로벌 OTT 경쟁에서 차별성을 확보하는 핵심 요인으로 평가된다.
버라이어티(Variety, 2025. 4. 2)5)에 따르면 넷플릭스에서 전체 시청 시간의 약 3분의 1이 비영어권 프로그램과 영화에서 발생한다. 대표적인 글로벌 히트작으로는 한국의 <오징어 게임>, 스페인의 <베를린>과 <종이의 집(Money Heist)>, 프랑스의 <루팡>, 멕시코의 <누가 사라를 죽였는가?>, 노르웨이의 <트롤>, 독일의 <다크>와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등이 있다. 이러한 사례는 타이틀 번역과 더빙이 단순한 언어 전환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시청자 확대와 문화 확산의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제 타이틀 번역과 더빙을 통한 현지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비영어권 시장 진출의 핵심적이고 불가결한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더빙은 현지 언어로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비영어권 시청자들의 몰입 경험을 강화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비영어권 시청자의 약 50%가 자막보다 더빙 버전을 선호하며, 특히 액션, 드라마, 애니메이션처럼 시각적 요소와 감정 표현이 중요한 장르에서 이러한 선호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6)
넷플릭스의 더빙 과정은 매우 정교한 다단계 프로세스를 거친다. 이는 단순한 언어 변환의 기술적 작업이 아니라, 창의성과 예술성이 결합된 과정으로 정의된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의 더빙 전문 스튜디오와 협력하여 스크립트 번역, 성우 캐스팅, 연기 지도, 사운드 믹싱 등 여러 가지 단계적인 절차를 현지화 과정에 체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특히 더빙 가이드라인에는 “립싱크와 같은 물리적 움직임의 엄격한 일치”보다 “연기력과 감정 전달”을 우선시한다는 원칙이 명시되어 있다.7) 이는 넷플릭스가 더빙을 단순히 화면 속 입 모양과 소리를 맞추는 기술적 기능이 아니라, 원작의 정서적 영향을 전달하는 창의적 기능으로 재정의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넷플릭스는 각국 성우들에게 한국어 속담이나 정서적 표현을 고려한 발음·억양 가이드를 제공함으로써 문화적 차이를 최소화하고 현지 시청자의 공감을 극대화한다. 실제로 한 작품에는 언어별로 평균 50~60명의 더빙 스태프가 투입되며, 전체 제작 기간은 약 4~5개월이 소요된다. 이 과정에는 번역가, 성우, 감독, 사운드 믹싱 전문가 등 다양한 직군이 참여해 고품질의 글로벌 현지화를 구현한다.8)
최근에는 더빙 전략으로 AI 기반 더빙과 음성 합성이 점차 활용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딥스피크(DeepSpeak)’와 같은 AI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원작 배우의 목소리를 합성하고, 감정적 뉘앙스를 반영한 더빙 오디오를 제작한다. 이 기술은 입술 움직임, 음높이, 리듬을 분석해 자연스럽게 동기화된 더빙을 구현하는 데 기여한다. 아마존도 3월부터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AI를 이용한 영어와 스페인어 더빙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번 시범 서비스는 기존에 더빙이 지원되지 않았던 작품들 가운데 〈엘 시드: 라 레옌다(El Cid: La Leyenda)〉, 〈미 마마 로라(Mi Mamá Lora)〉, 〈롱 로스트(Long Lost)〉 등 12편의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를 대상으로 우선 적용되었다. 특히 AI와 전문 더빙 인력이 협업하는 ‘하이브리드 더빙(hybrid dubbing)’ 방식을 통해, 기술적 효율성과 문화적 적합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9)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자동 더빙 시스템
(출처: Amazon (2025. 3. 5))
그러나 AI 기술은 관용적 표현이나 문화적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 원작의 의미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영화 <기생충>의 대사 ‘김칫국 마시다’를 챗GPT가 “we're drinking kimchi soup”로 직역하며, 본래 관용적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AI의 취약점을 보여준 바 있다.10) 이는 AI가 언어적인 미묘한 차이를 완벽히 이해하고 재창조하는 데 아직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현지 시청자에게 친숙한 타이틀은 콘텐츠 선택을 유도하는 동시에, 원작 국가의 문화적 맥락과 정체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타이틀 각색은 단순히 타이틀을 현지어로 직역한 번역이 아니라, 콘텐츠가 새로운 문화권의 정서에 공감할 수 있도록 재창조하는 과정이다. 이는 현지화가 단순히 문화적 차이를 희석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문화적 특수성을 재맥락화하여 글로벌 시청 경험을 확장하는 전략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략은 한국 콘텐츠 <폭싹 속았수다> 타이틀 각색을 통한 현지화 전략에서 잘 드러난다. 영어권 국가에서 작품의 제목은 제주 방언 제목을 직역하는 대신, 영어권 정서와 제주도 감성을 결합하여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인생이 당신에게 감귤을 준다면)>이라는 제목으로 서비스됐다.11) 이 제목은 영어 속담인 “When life gives you lemons”을 변형하여 고난을 긍정적으로 극복한다는 원작의 정서적 의도를 유지했다. 또한 미국에서 사용되는 ‘레몬’을 제주도 특산품인 ‘감귤’로 바꾸며 지역적 특색과 이미지를 담아냈다.12) 이러한 타이틀 각색은 원작의 의미와 현지 시청자의 정서를 동시에 반영하는 효과적인 현지화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글로벌 시청에서 타이틀 번역이 단순 언어 변환을 넘어, 문화적 정체성과 정서를 창의적으로 조율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폭싹 속았수다>는 영어권뿐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 태국, 대만, 일본, 루마니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각국의 정서에 맞게 번역됐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La vie portera ses fruits(인생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제목으로 제공되어, 인생의 모든 노력과 시련이 결국 의미 있는 결실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태국에서는 <ยิ้มไว้ในวันที่ส้มไม่หวาน(귤이 달지 않은 날에도 웃자)>라는 제목을 통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자는 문화적 정서를 담아냈다. 대만에서는 <苦盡柑來遇見你(고생 끝에 너를 만나)>라는 제목으로, 현지화되었는데,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감(甘)’을 모양이 비슷한 ‘귤 감(柑)’으로 치환하며 언어유희를 활용하고 동시에 제주도를 연상시키는 효과를 주었다.13) 이처럼 다양한 타이틀 각색은 해당 문화권의 언어적 감수성과 정서를 반영함으로써 시청자의 정서적 공감을 효과적으로 끌어냈다.14) 이러한 사례는 글로벌 OTT 시장에서 타이틀 현지화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의미 재구성의 전략적 과정임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현지화된 제목은 콘텐츠의 장르와 정서적 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강력한 마케팅 도구로 작용한다.
<폭싹 속았수다> 타이틀 각색을 통한 현지화 (왼쪽부터 한국, 프랑스, 미국 타이틀)
(출처: Netflix)
현지화는 언어적 장벽을 허무는 것을 넘어,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고 문화적 가치를 재구성하는 질적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OTT 플랫폼이 글로벌 미디어 생태계의 핵심 시청 창구로 자리 잡으면서, 더빙과 타이틀 각색을 중심으로 한 현지화 전략은 단순한 언어 변환의 차원을 넘어, 문화적 맥락을 재해석하고 시청 경험을 질적으로 강화하는 핵심 전략으로 부상했다. 넷플릭스의 사례는 이러한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현지화는 더 이상 콘텐츠 제작 후반부의 부가적인 작업이 아니라, 기획 단계에서부터 콘텐츠 개발과 마케팅 전반에 통합되어야 할 필수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현지화 전략은 글로벌 시장 진입의 부차적 수단이 아니라 핵심 경쟁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언어적 변환은 단순한 콘텐츠 내용 전달을 넘어 콘텐츠 선택과 몰입 경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며, 이는 장기적인 시장 충성도로 연결된다. 특히 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창의적 번역과 정교한 더빙은 문화적 간극을 완화하는 동시에, 원작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현지화가 글로벌 문화 확산 과정에서 ‘문화의 소실(loss)’이 아닌 ‘문화적 가치의 재구성’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글로벌 OTT 플랫폼의 성공은 콘텐츠의 질적 우수성뿐 아니라, 언어와 문화를 초월한 정교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시청자와 감정적·문화적 유대를 형성하는 데 달려있다. 따라서 향후 OTT 산업은 단순 번역을 넘어 문화 간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창의적 현지화를 통해, 글로벌 미디어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 1) 리단양·김선영 (2025). 문화적 거리와 장르 특성이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수용에 미치는 영향. <한국과 세계>, 7권 4호(통권 28호), 355-385.
- 2) S. Kang. (2025. 6. 12). Netflix, immersive strategy beyond subtitles… dubbing is the answer.
- 3) Jean-Marc (2024. 11. 28). Netflix Dubbing : Everything You Need to Know.
- 4) 최이담 (2025. 6. 5). “정서까지 번역한다”…넷플릭스 현지화 비결은 ‘공감’. ZDnet Korea.
- 5) Variety (2025. 4. 2). Netflix Adds Full Multilingual Support on TVs for Subtitles, Dubs in Over 30 Languages.
- 6) Jean-Marc (2024. 11. 28). Netflix Dubbing : Everything You Need to Know.
- 7) Netflix. Dubbing Guiding Principles.
- 8) S. Kang. (2025. 6. 12). Netflix, immersive strategy beyond subtitles… dubbing is the answer.
- 9) Amazon (2025. 3. 5). Prime Video begins an AI dubbing pilot program on licensed movies and series; AI-aided dubbing will help you enjoy titles that previously did not have dubbing available in select countries and territories.
- 10) 김용래 (2023. 5. 25). ‘김칫국 마시다’ AI 번역했더니…“창조적 수준까지는 한참 멀어”. 연합뉴스.
- 11), 14) 최이담 (2025. 6. 5). “정서까지 번역한다”…넷플릭스 현지화 비결은 ‘공감’. ZDnet Korea.
- 12), 13) 이정연 (2025. 3. 21). ‘폭싹 속았수다’ 재치있는 국가별 제목 화제. 스포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