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프로젝트가 공동제작의 기회를 잡는다, BBC와 <열두 바다>

공모전 피칭에서 가장 신경 쓴 것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아이템이 재미있어야 하고, 우리가 준비된 파트너라는 점을 강조했어요

Q. 이엘TV라는 이름으로 익숙한데, 스튜디오잔치라는 자회사를 만든 이유가 있는가

(백) 많은 분이 랩소디 시리즈와 맛의 나라 시리즈에 나온 맛집이나 음식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그래서 그동안 출연했던 맛집이나 음식 명장들을 오프라인에 모시고 그 맛을 현장에서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것을 일명 프로젝트 잔치라고 명명했다. 예를 들어 정관 스님이나 왕육성 셰프님처럼 유명 음식 장인들을 모셔놓고 갈라쇼를 한다든가 아니면 잔치 뷔페나 잔치 밀키트를 만드는 것이다. 또는 푸드 영화나 푸드 엑스포, 푸드 포럼 등 음식 관련 행사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기획하다 보니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방송 제작과는 상황이 다르고 외부와 협업이 되게 중요했고, 많은 팀과 공동 작업을 해야 해서 이것만을 전담으로 할 만한 조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처음에 생각해낸 게 스튜디오 잔치라는 프로젝트 팀이었는데, 저희가 푸드 콘텐츠를 계속 만들다 보니 다양한 장르에서 접근하고 싶었던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푸드 드라마, 푸드 쇼, 푸드 무비, 이벤트 등 푸드를 전담으로 하는 탄력 있고 공격적이고 전문적인 조직을 만들자 해서 탄생한 게 스튜디오 잔치다.

Q. BBC와 <열두 바다>를 공동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소개해 달라

(백) 2024년 가을에 BBC스튜디오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글로벌 OTT 플랫폼에 론칭할 프로젝트 공모가 있었는데, 그때 공모에 응해서 최종 선정이 됐다. 사실 <열두 바다>는 미리 준비하던 아이템이다. 랩소디 시리즈를 한 5~6년 제작하다 보니 다른 프로젝트가 필요했고 원래 바다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고 동해, 남해, 서해 각 바다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므로 해산물이 우리나라 식탁 문화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자리한다. 이러한 부분을 깊이 있게 다룬다면 굉장히 색다른 콘텐츠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1년 열두 달, 매달 새로운 해산물 식재료가 나온다. 이 부분이 굉장히 매력적인 포인트라고 생각해서 제목을 열두 바다라고 지었다. 사실 삼면의 바다에서 계절마다 나오는 새로운 해산물 식재료를 심도 있게 탐구해 보자는 뜻으로 열두 바다라는 제목의 기획을 이미 갖고 있었다.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BBC·콘진원과 함께하는 기회가 있어 지원했고, 운이 좋게도 저희가 선정돼서 함께 제작하게 되었다.

Q. <열두 바다>라는 프로젝트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해 준다면

(백) 일단 한국처럼 삼면이 바다를 갖고 있는 나라가 세계적으로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 바다의 성격이 각각 다르기도 굉장히 어렵다. 아시다시피 동해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해 어족(어종)이 풍부한 지역이다. 남해는 섬을 많이 품고 있고 수온이 따뜻해 많은 어류와 해산물의 산란처 역할을 해서 양식이 발달해 있다. 서해에는 자랑스러운 갯벌이 있다. 이렇게 각 바다가 성격이 너무 다르고 각 바다에서 매 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나오는 해산물 또한 정말 다양하다.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의 수를 대략 헤아려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섭취하는 해산물 종류가 180여 종 정도 된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해산물을 섭취하는 민족이 우리나라일 것이다. 심지어 해산물을 날로만 먹는 게 아니라 여러 조리법으로 먹기도 한다. 또 우리는 발효의 민족 아닌가. 다양한 방식으로 발효해서 젓갈 등이 건강한 식탁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바다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특히 아시아권이 해산물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에 아시아권 국가에도 매력적으로 다가설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글로벌에서 의미 있는 한식 프로젝트를 론칭할 때 바다를 주제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게 <열두 바다>다.

Q. 한국콘텐츠진흥원 공모전 피칭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백)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우선 아이템이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템이 재미있고 전 세계 사람들의 흥미를 끌 것이라는 부분을 강조하려고 애썼다. 특히 한국 바다에 다양한 해산물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계절마다 또 달마다 새로운 해산물이 나오고 그 해산물을 다양한 조리법과 실험법으로 건강한 밥상과 먹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다. 또한 이러한 부분은 해산물을 좋아하는 아시아권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설 것이라는 걸 어필하려고 애를 썼다.

두 번째는 결국 우리는 준비된 파트너라는 것이다. 그래서 레퍼런스로 랩소디 시리즈, 맛의 나라 시리즈를 통해서 우리의 제작 퀄리티와 스타일에 대해서 어필하려고 애를 썼고, 무엇보다 우리는 BBC와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점을 많이 강조했다.

국제 공동제작, 서로의 언어와 방식을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BBC에서는 오히려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에 대한 격차가 초반에 많이 컸습니다.

Q. 이번 협업에서 스튜디오잔치와 BBC는 각각 어떤 역할을 담당해서 진행하고 있는가

(백) 완벽한 공동 제작이다. 저도 이런 해외 공동 제작을 처음 해봤는데, 이게 진짜 공동 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함께 한다. 모든 걸 함께 결정하고 고민하고 토의하는 가운데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 많은 대화를 하는 과정을 갖는데 물론 쉽지는 않다. 역할 분담을 보자면, BBC 스튜디오에는 EP(Executive Producer, 총괄프로듀서)와 우리나라로 치면 작가 역할을 동반하는 편집프로듀서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렇게 두 분이 전담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한다. 스튜디오잔치는 제가 EP를 맡고 그 외 제작에 들어가는 연출팀, 작가팀, 촬영팀, 조명팀, 기술팀, 후반 작업팀까지 모든 제작 관련 팀은 저희 쪽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기획에서부터 프리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프로덕션까지 전체적으로 다 같이 함께 제작한다고 보면 되는데 가장 큰 차이는 배급이다. 최종 완성하면 글로벌 배급은 BBC 스튜디오가 담당하고 국내 배급은 스튜디오잔치가 담당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Q. 국제 공동제작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

(백) 세 가지 정도 있다. 일단 예산 항목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른 부분이 있고 두 번째로 프로덕션 제작 과정에 대한 준비 스타일이 다른 것 같다. 프리프로덕션에서 사전 준비를 많이 하는 게 BBC 스타일인 것 같고, 보통 국내 제작 방식은 프리프로덕션과 프로덕션이 거의 대등하게 같이 움직이는 편이라 차이가 있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우리가 재미라고 생각하는 포인트의 차이다. 아마 그 부분이 처음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서로 조정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와서 처음부터 이야기하면, 저희는 한국 바다의 다양성을 깊이 있게 들어가야 훨씬 더 보여줄 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팩추얼 다큐의 핵심은 영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 더 디테일하고 유니크한 부분에 집중해서 구성의 스타일을 많이 가미하려고 애를 썼다. 물론 BBC가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BBC는 스토리라인을 굉장히 중요시했다. 스토리라인과 이야기의 구조, 기승전결 같은 부분을 중요히 생각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 세계 시청자들을 상대로 생각한다는 게 차이가 컸던 것 같다. 이 부분은 저희가 지금 많이 배우고 있는 것 중 하나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과연 한국이라는 나라와 소재에 대해서 얼마큼 관심을 두고 있고,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어떤 스타일로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쉽게 얘기하면 우리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 오히려 BBC는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해서 그에 대한 격차가 초반에 컸다. 초기 두 달은 그러한 입장 차와 생각의 방향을 서로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상당히 힘들었다.

두 번째 예산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있는데, 결정적으로 우리나라에 있는데 외국에는 잘 없어서 문제가 된 것이 작가의 영역이다. 외국에서는 작가가 스크립트 영역에서 활동하고, 언스크립트에서는 작가의 역할을 보통 프로듀서가 담당하기 때문에 작가 역할에 대해 서로 견해차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작가의 영역과 비용을 따져보니 1년 동안 진행될 때 예산 비중이 상당해서 그에 대한 입장 차가 있었다. 한국의 비용 지급 방식은 월급 방식인데 외국은 시간제라서 얼마큼 시간을 일에 공유했는지에 초점을 맞추니까 예산에 대한 생각 차이가 발생했다. 결국 절충안을 찾아서 한국적인 상황은 그렇게 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대화로 풀어나갔다.

편집에 대한 견해 차이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연출은 사실 가편집까지 거의 커버하는데 BBC는 편집 에디터가 따로 있어서 별도로 진행한다. 그래서 연출은 현장 연출 디렉션과 방향 설정만 하고, 이후 실질적으로 기술적인 부분은 전문가 영역이다. 그러다보니 포스트 작업에 대한 비용은 외국이 훨씬 더 큰 예산이 잡혀 있다. 후반 작업은 저희가 상대적으로 비중의 차이가 있었다.

가장 큰 차이는 프로덕션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거의 완벽한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의 드라마처럼 찍어야 하는 수준이라 놀랐다. 완전히 확정된 신(Scene)을 갖고 찍어야 될 정도로 스토리라인과 스크립트를 원하고 철저하게 준비한다. 저희 제작진이 그걸 따라가는 게 조금 버거웠지만 결국 다 맞췄다. 거기다 모든 준비를 국문과 영문으로 작업해야 되니까 작업이 두 배로 늘어난다. 모든 파일을 국문으로 한번 작업하고 다시 영문화하고, 반대로 BBC에서 오는 내용도 다시 번역해야 하니까 작업량이 아무래도 20~30% 이상 증가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물론 당연한 과정이지만, 그런 시간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초기에는 번역이나 서로 이해를 위한 공간(여지)을 남겨놔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제는 당연히 번역 작업까지 미리 준비해서 시간을 맞춰가고 있는 편이다.

Q. 글로벌 플랫폼에서 글로벌 시청자를 대상으로 콘텐츠를 만들 때 특별히 더 신경쓰는 부분이 있는가

(백) 사실은 똑같다. 저는 한국 시청자가 우선이다. 글로벌로 목표 지향점을 갖고 있지만 일단 국내 시청자에게 매력적이지 않으면 글로벌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저희가 만드는 콘텐츠는 최소 10년 유통된다는 기준을 가지고 제작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글로벌 OTT 플랫폼과 계약을 하면 그 계약 기간이 10년이다. 10년 동안 이 콘텐츠가 유통이 된다고 생각하면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일단 내용에 있어서 팩트 체크가 가장 중요하다. 특히 맛집 선정을 할 때 지난 시간 오랫동안 유지돼 왔고 앞으로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중요하다. 자의적 판단이긴 하지만 우리가 선정한 맛집들이 5년, 10년 후에도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둔다. 그래서 새로운 집을 하기는 조금 어려움은 있다. 물론 일정 부분 요즘 트렌드를 반영해서 녹이긴 한다. 궁극적으로 10년 후에 봐도 영상이 멋져야 되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영상 퀄리티를 위해서 4K 카메라를 쓰거나 메이킹 작업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수준으로 하려고 굉장히 애를 쓰고 있다.

한식의 세계화와 한식 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

국제 공동제작은 한국 콘텐츠의 가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중요한 포석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최근 한식의 글로벌 인기를 체감하는지, 그리고 이런 한식의 인기가 한식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

(백) 얼마 전 캐나다 토론토에서 K-박람회라는 행사가 열렸다. 한국 콘텐츠, 농산물, 뷰티 관련 제품을 캐나다에 계신 분들에게 알리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행사였는데, 참여 관객이 7만여 명 이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저는 프로그램의 하나로 류수영 배우와 함께 한식 토크쇼와 쿠킹쇼를 진행했다. 당연히 교민들이 많이 오시겠지 예상했는데 놀랍게도 거의 70% 이상은 현지 외국인들이 참여했고 반응도 엄청났다. 한국과 한식에 대해 상당히 많이 알고 있어서 놀랐다. 눈으로 본 적은 없어서 과연 얼마만큼 우리의 한류나 한식이 외국인들에게 다가갔는지 알 수 없었는데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목격하면서 많이 놀랐다.

그 이후에 B2C와 B2B 행사에 참여했는데 꽤 많은 분이 랩소디 시리즈를 알고 계셔서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열두 바다> 소개도 했는데, <열두 바다>에 다들 큰 관심을 갖고 무조건 잘될 거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한식의 또 다른 중요한 축 중 하나인 사찰 음식 콘텐츠도 소개했다. 정관 스님과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게 하나 있고, 사찰음식 명장들과 함께 <공양단의 셰프들>이라고 지금 제작 들어가는 것도 있는데 캐나다에서 굉장히 관심을 보이며 완성된 트레일러가 있으면 꼭 공유해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제 생각엔 이제 시작인 것 같다. 아마 한식 열풍의 시작은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한우 채끝 짜파게티가 나온 게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이후 K-드라마, K-팝 등 K-콘텐츠에서 많은 한국 음식이 등장하면서 한식이 궁금해졌고, 한식이 궁금해지던 그 시기에 랩소디 시리즈와 맛의 나라 시리즈가 작은 역할은 한 것 같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기 때문에 사실 할 게 너무 많아졌다. 단순하게 다큐멘터리 말고도 넓게 보면 여러 가지 장르와 스타일, 예능도 가능하고 쇼나 드라마 등 충분히 한식을 주제로 가능한 협업이나 콘텐츠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Q. 국제 공동제작이 침체된 내수 시장을 일으켜주고, 우리 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백) 너무나 당연하다. 사실 한국 콘텐츠의 가치가 지금까지는 올바르게 평가되지 못했다고 본다.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기준점에 많이 도달해 있지 않았고, 비즈니스도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 콘텐츠가 의미는 있으나 과연 돈을 벌었는가, 성과를 냈느냐는 부분에서 특히 팩추얼 장르에 한해서는 어려웠던 부분도 있었다. 국제 공동제작은 한국 콘텐츠의 가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중요한 포석이 될 것 같다.

BBC와 얘기하다 보면 저희가 생각하는 단가와 달라서 놀랄 때가 있다. 물론 그게 실행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쨌든 시작 포인트가 다르다는 건 너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수익을 낼 수 있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게 해외 공동제작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거기에 걸맞은 준비도 해야 한다. 한국이라는 시장에서만 유통하고 수익을 낸다고 생각한다면 사실 제작사나 제작진이 투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근데 한국 시장은 기본이고 최소한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과 좀 더 넓혀서 미국과 캐나다의 북미 지역 또는 유럽 시장까지 우리 콘텐츠가 유통되는 범주라고 생각한다면 입장이 굉장히 달라질 것이다. 물론 리스크가 있겠지만, 충분히 지금의 흐름과 추세를 보면 리스크만이 아닌 적극적인 투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콘텐츠를 기획하는 많은 제작자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좋은 기획이 있다면 그것을 더 잘 만들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하셔야 한다. 또 우리나라가 콘진원 등 정부 차원의 공모 제도가 잘 돼 있다. 해외에서 많이 부러워한다. 어떻게 이렇게 국가에서 많은 지원이 있느냐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게 우리나라의 강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아이템을 발굴하면 그 기회를 잘 이용해서 공모 제안을 하면 충분히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Q. 국제 공동제작을 먼저 경험해 본 입장에서 국내 제작사가 해외와의 공동제작을 앞두고 어떤 점들을 미리 준비하면 좋을지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해준다면

(백) 일단은 생각의 유연함이 중요하다. 사실 창작자들이 굉장히 오래 고민하고 숙성시켜서 아이템을 기획해서 만들어내기 때문에 거기에 애정이 크다. 큰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당연히 본인 스스로 최고일 수밖에 없다. 근데 경우에 따라서나 방향에 따라서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결국은 재미라는 측면이 어디까지의 재미인지가 중요하다. 앞서 얘기했듯이 일단은 한국에서 성공해야 된다. 한국 시청자들한테 재미있는 아이템이나 프로그램은 당연히 아시아나 글로벌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거꾸로 글로벌만 대상으로 한다는 건 견해가 좀 다르다. 과연 국내에서 별로인데 글로벌에서 좋아할까. 그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 하나는 다양성이 있다. 우리가 잘하는 장르들이 아무래도 휴먼이다 보니까 휴먼 장르가 상당히 많이 기획되는데 넓혀보면은 액티비티한 장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그런 제작을 우리나라가 잘 한다고 이미 알려져 있다. 우리가 잘하는 스타일의 제작 방식 또는 그걸 더 빛나게 할 수 있는 아이템이 맞아야 매칭이 되니까 그런 부분들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예산 운영도 중요하다. 사전에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더 철저하게 체크가 필요하다. 보통 제작할 때 대략의 금액을 잡아서 시작하는데 이 부분을 초기 단계에 굉장히 많이 고치게 된다. 저희가 계약서 사인하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 어마어마한 양의 계약서가 계속 왔다 갔다하고 계약서에 모든 내용이 담겨 있어서 그걸 지켜야 하는데 우리가 아직은 계약서대로 하는 제작 방식 개념에 익숙하지 않다. 당연히 제작은 계약서가 있건 없건 최선을 다하는데, 그것은 우리끼리 얘기고 글로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계약서에 어떻게 명시돼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굉장히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따지는 것이 필요하다. 또 그 부분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조금 시간이 걸리고 답답할지라도 기다리면서 충분히 협의하고 토론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백헌석

백헌석
(이엘TV & 스튜디오 잔치 대표)

현 푸드콘텐츠 전문 스튜디오 이엘 TV와 스튜디오 잔치 대표이다. 33년째 콘텐츠 제작을 하고 있으며, 특히 다양한 한식 콘텐츠로 한식을 전 세계에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요 대표 작품으로 넷플릭스와 KBS에 방영된 <삼겹살 랩소디>, <한우 랩소디>, <짜장면 랩소디> 등 랩소디 시리즈와 <국물의 나라>, <김치의 나라> 등 맛의 나라 시리즈가 있다. 제33회 한국PD대상 TV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2022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방송영상산업발전유공 문화포장을 수훈했다. 주요 저서로 『냉면열전』(2014)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