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의 활성화 목표의 재정립이 필요한 이유

현재 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을 둘러싼 위기의식과 논의는 마치 거울의 일부만 들여다보는 것처럼 불완전하다. 흔히 글로벌 OTT의 등장으로 국내 미디어 생태계가 붕괴할 것을 우려하지만, 이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산업구조의 재편위기로 오인한 결과이다. 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은 크게 제작사/창작자 영역과 플랫폼/유통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그림 1], 참조). 기존의 지상파방송사가 기획, 투자, 제작, 유통을 모두 독점하고, 외주 독립제작사가 지상파방송사에 방송프로그램을 납품하는 수직적 구조가, 이제 넷플릭스와 같은 새로운 거대 플랫폼의 등장으로 인해 제작사/창작자가 독자적인 IP를 보유하고 지상파방송사를 포함한 플랫폼과 대등하게 협력하는 수평적 구조로 변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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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한국 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의 실태 진단

이러한 변화 속에서 위기를 겪는 곳은 주로 국내 방송사와 OTT가 속한 플랫폼/유통 영역이다. 이 영역 내 사업자들은 시청률 하락, 광고 투자 위축, 유료 가입자 확보 경쟁 심화로 인해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콘텐츠 제작자/창작자 영역은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OTT 산업의 활성화로 OTT 오리지널 제작이 등장했으며, 그중에서도 글로벌 OTT가 한국에 투자하는 규모는 최근 몇 년간 크게 성장했다(박지혜, 2025). <오징어 게임>이나 <더 글로리>처럼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업자는 넷플릭스와의 협력을 통해 막대한 자본을 유치하고, 제작 규모를 키우며, 글로벌 시장으로 직접 진출하는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한 쪽의 위기를 전체 산업의 위기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제작사들은 왜 위기라고 느끼는가? 핵심은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판매할 시장이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상파방송사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에서 하루에도 여러 시간대에 드라마를 편성했지만, 이제는 미니시리즈 슬롯을 1~2개로 줄이면서 제작사들이 안정적인 제작 기회를 잃게 되었다. 이는 제작사들이 유일한 대안인 글로벌 OTT의 투자에 의존하게 했다. ([그림 2], 참조). 제작사들이 일회성 제작 수익만 얻고, 콘텐츠의 2차, 3차 판권(굿즈, 게임, 해외 판매 등)에서 발생하는 추가 수익은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제작사의 성장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강재원,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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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IP의 종속화 혹은 IP 확보가 불가능한 이유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의 활성화라는 목표를 재정립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국내 플랫폼의 경쟁력 강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는 마치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논하면서 엔진 기술 발전보다는 정비소의 규모 확대에만 매달리는 것과 같다. 하지만 콘텐츠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플랫폼의 덩치가 아닌,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은 탁월한 창의력과 제작 역량에 있다. 콘텐츠를 담아내는 그릇의 크기를 키우는 데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그 안에 담길 콘텐츠의 질적 성장을 놓칠 수 있다(박성호, 2025).

따라서 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의 활성화라는 목표를 OTT 활성화제작자/창작자 활성화로 세분화하고, 이 둘이 상충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제작자/창작자 영역이 살아야 궁극적으로 플랫폼/유통 영역도 살 수 있다는 순서를 명심하고, 정책의 우선 순위를 재조정해야 한다. 제작자/창작자가 안정적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의 활성화가 갖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의 길: 규제 완화와 국내 플랫폼 혁신

K-드라마 제작 역량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콘텐츠 제작사가 글로벌 OTT를 거치지 않고, 우리가 투자해서 만든 콘텐츠로 직접 전 세계 시청자에게 소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해법은 국내 제작 환경을 제약하는 요소를 완화하는 것이다.

핵심 과제 1: 대형 투자자를 확보하기 위한 규제 완화

현재 제작사들이 글로벌 OTT로의 납품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기존 방송사의 투자 시스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통상 콘텐츠 유통 사업의 수익은 창구화(windowing) 전략을 통해 이루어진다. 드라마를 기준으로 보면, 과거에는 IP를 가진 방송사가 국내 여러 창구에 홀드백 기간을 두며 차례대로 드라마를 방영하고 이후 수출을 했다면, 지금은 방송사가 자체 창구이든 해외 OTT 창구이든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드라마를 방영한다. 국내에서 먼저 방영하고 나서 해외에서 방영을 시도하는 것은 해외 시장에서의 콘텐츠 신선도를 떨어뜨리는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라는 콘텐츠는 이미 글로벌 상품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런데 글로벌 OTT의 등장으로 드라마 제작비가 급상승하면서 웬만한 대형 드라마는 국내 시장으로부터 투자 수익을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해외 시장을 통한 투자 수익 회수가 없으면 제작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유진희, 2024). 대형 콘텐츠를 통한 글로벌 경쟁이 현재 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의 기본 시장 환경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결국 대형 투자자 육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동안 콘텐츠의 최대 투자자였던 지상파방송사나 종편은 여전히 광고로부터 전체 수익의 많은 부분을 얻고 있는데, 이들을 둘러싼 방송 환경은 각종 규제로 인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후 광고 규제, 간접 광고의 허용과 심의 사이의 불일치 같은 규제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러한 규제들은 방송사들이 투자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고 대규모 프로젝트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요인이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62회 방송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역차별 논란을 낳는 광고 편성 등 낡은 규제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 방송인들이 공정한 환경에서 창의성으로 승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실행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현 정부 역시 콘텐츠 산업 활성화의 핵심을 규제 완화에서 찾고 있음을 시사한다. 수익을 극대화하는데 장벽이 되는 규제가 풀려야 방송사들은 다시 콘텐츠의 주요 투자자로 나설 수 있다. 과거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감당했던 방송사들이 현재보다 더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다면, 보다 다양한 투자처가 확보되어 콘텐츠 제작시장의 파이가 커질 것이다. 또한 제작사와 다양한 국내 투자자들이 협력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할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국내 OTT의 글로벌화를 위한 선결 조건은 국내 규제의 축소 혹은 완화라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국내 케이블TV 산업이 제대로 된 궤도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SO 및 PP에 대한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산업활성화를 이끌었듯이 지금 국내 방송영상산업에서 가장 절실한 진흥책이 규제 완화로 판단된다.

핵심 과제 2: K-팝 활용한 차별화 전략으로 국내 OTT의 글로벌화

두 번째 핵심 과제는 K-콘텐츠를 담아낼 플랫폼을 진화시키는 것이다. 단순한 수출이나 글로벌 OTT 납품에만 머무르는 것을 넘어, 국내 OTT를 해외 시장으로 직접 진출시켜 K-콘텐츠가 좀 더 안정적으로 전 세계에 배급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토종 OTT가 국내 시장에서 넷플릭스에 대항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으며, 이는 자본력의 크기와 규모의 경제로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박성호, 2025). 하지만 전략적 차별화를 통해서는 경쟁이 충분히 가능하다. 국내 OTT가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의 글로벌 공룡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것을 제공함으로써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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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국내 OTT의 글로벌화를 위한 차별화 전략

국내 OTT의 글로벌화를 위한 차별화 전략의 핵심은 K-팝과의 연계에 있으며, 이를 위해 동남아시아와 인도 시장을 우선 공략해야 한다. 동남아시아는 전통적으로 한류가 가장 강력한 지역이다. K-드라마는 이미 수십 년에 걸쳐 현지에 진출하여 견고한 팬덤을 구축했다. <겨울연가> 시절부터 쌓아온 K-드라마에 대한 우호적인 인식은 새로운 K-콘텐츠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고, K-팝은 드라마보다 뒤늦게 한류의 축을 이루며, 충성도 차원에서 K-드라마를 뛰어넘고 있다([그림 3], 참조). 2024년 기준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부터 8년 연속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K-팝(17.8%)이었으며, 이는 K-드라마(8.7%)를 크게 앞선다(KOFICE, 2025). 이미 몇 년 전부터 동남아시아 지역은 K-팝 음반 판매량과 유튜브 조회 수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Tamur Yusifzai, 2021).

동남아나 인도는 K-팝의 충성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높으며 팬덤이 가장 두터운 지역이기도 하다. 이는 팬덤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유입 전략이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장임을 의미한다. 특히 인도는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이다. 인도는 이미 K-팝과 K-드라마에 대한 높은 관심과 소비층을 형성하고 있다(KOCCA, 2025). 특히, K-팝의 경우 팬덤의 열기가 매우 뜨겁다. 14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인도 시장을 선점한다면, 이를 통해서 국내 OTT는 장기적으로 성장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글로벌 OTT들이 아직 인도 시장에 대한 맞춤형 전략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K-팝을 포괄하여 현지인들에게 다른 글로벌 플랫폼이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차별화 전략을 시행한다면, 국내 OTT는 동남아시아와 인도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특히 인도나 동남아 국가의 언어적 다양성이 글로벌 OTT 진출의 큰 장애가 되는 상황에서 음악 기반의 K-팝 콘텐츠는 비언어적 경험 제공만으로 이들 지역의 콘텐츠 이용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충분한 콘텐츠임을 이미 입증하고 있다.

미래를 위한 로드맵을 새롭게 그려야 할 때

현재 한국 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은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글로벌 OTT와 경쟁하는 해외 시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다. 대부분의 정책 논의가 글로벌 OTT에 대한 우려와 대응으로 국내 OTT의 덩치를 키우는 데에만 몰두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해법일 수 있다. 한국 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의 진정한 활성화는 국내 OTT 플랫폼의 글로벌화뿐만 아니라, 세계가 열광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콘텐츠·플랫폼 상생 미디어 생태계의 구축 여부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과제를 선행해야 한다. 첫째, 불합리한 국내 규제를 과감히 완화해 기존 주요 투자자들의 역량을 회복시키고, 둘째, K-팝과의 융합을 통한 플랫폼 혁신으로 글로벌 진출의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 과제들을 완성할 때, K-방송영상콘텐츠는 더욱 강해질 것이고, 국내 OTT의 글로벌화는 용이해질 것이다. 플랫폼은 강력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이는 특정 기업의 생존을 넘어, K-콘텐츠가 글로벌 문화의 주류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여는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강점을 직시하며 미래를 위한 전략적 로드맵을 새롭게 그려야 할 때이다.

강재원

강재원
(동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정보통신학 석사, 플로리다대학교에서 매스컴 박사 학위를 받았다. ㈜디지털미디어 제작 PD, ㈜제일기획 PR영상 프로듀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MBC재단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 「융합시대, 공일 개념의 지형도, 그리고 공익의 재개념화」, 「수평적 규제틀 적용의 타당성 연구」, 「방송의 공정성 관련 국내 법원 판례분석」,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포맷 현지화에 대한 사례 연구」 등이 있다.

박성호

박성호
(MBC플러스 방송본부 부국장)

서강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언론학 석사, 동국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언론학 박사를 받았다. 디지틀조선일보, MBC플러스에서 프로그램 제작·연출 및 미디어 경영 전략 책임, 한국케이블TV협회 PP기획위원, 조선대 및 동국대에서 겸임 및 대우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 「방송프로그램 창구화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탐색적 연구」, 「지상파방송사의 창구화 전략 변화가 기업성과와 시장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있다. 주요 작품으로 방송 다큐멘터리 <잘놀아야 잘산다>(2003), <신의 처방, 웃음>(2005),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2016)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