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이하 GAI)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창작이 보편화되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생성형 AI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안내서」(이하 안내서)를 발표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빠른 보급으로 누구나 텍스트, 이미지, 음악, 영상 등을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이에 따라 인간이 만든 저작물과 AI가 산출한 결과물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이번 안내서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GAI 결과물의 저작권 등록 기준을 제시한 최초의 정부 공식 지침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방송·영상·OTT 산업에서 AI 활용이 급증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권리자·사업자·정책 당국 모두에게 실무적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내서의 핵심은 “저작권 등록의 요건은 인간의 창작적 기여”라는 점이다. GAI 결과물은 ‘GAI 산출물’과 ‘GAI 활용 저작물’로 구분된다. 저작권법상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어야 하므로, 인간의 개입 없이 AI가 독자적으로 생성한 GAI 산출물은 원칙적으로 등록 대상이 될 수 없다. 반면, 인간이 AI를 도구로 활용해 창작성을 부여하면 ‘GAI 활용 저작물’로서 등록이 가능하다. 저작권 보호의 범위는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있는 부분에 한정된다. 이는 창작 주체를 인간으로 명확히 하고 인간의 창의성을 보호하려는 저작권 제도의 근본 취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인간의 창작적 기여’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안내서는 인간의 창작적 기여 여부를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1. 자신의 저작물을 입력(Input)으로 활용: 인간이 직접 창작한 그림, 글, 음악 등을 GAI의 입력값으로 사용해 결과물에 원저작물의 창작성이 발현된 경우.
2. AI 산출물에 대한 창작적 후반 작업: AI 산출물을 바탕으로 인간이 수정·증감·편집 등 상당한 수준의 창작적 후반 작업을 더한 경우. 단순한 오탈자 수정이나 색상 변경을 넘어 새로운 창작성을 부여해야 한다.
3. 창작적 선택과 배열: 여러 산출물 중 특정 주제나 의도에 맞게 소재를 선택하고 배열·구성하는 과정 자체에 창작성이 담긴 경우. 이는 편집저작물과 유사한 개념이다.
안내서는 ‘통제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을 중요한 판단 요소로 제시한다. 창작자가 표현하려는 바를 명확히 결정하고, 그 의도대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어야 창작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페인팅(Inpainting) 기술을 활용해 특정 부분을 반복 수정하며 원하는 결과물을 이끌어내는 행위는 창작적 기여로 인정될 여지가 크다.
프롬프트 입력 행위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단순 지시 입력은 아이디어 제공에 그칠 뿐 창작성으로 보기 어렵다. 동일한 프롬프트로도 결과가 달라지는 특성상 통제·예측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일본·중국 등 국가별 견해는 다르다. 미국은 부정적이지만, 일본은 프롬프트의 구체성과 반복, 결과물 선택 여부를 고려할 수 있다고 보며, 중국은 입력만으로도 창작성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 이는 향후 국제 규범 조정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안내서는 저작권 등록의 효력 또한 상세히 정리했다. 저작권은 무방식주의 원칙에 따라 등록하지 않아도 발생하지만, 등록은 다음과 같은 실질적 이점을 제공한다.
● 저작자 추정력: 등록된 자는 저작자로 추정되어, 분쟁 시 입증 부담을 상대방에게 전가할 수 있다.
● 권리 변동 대항력: 양도·허락 등 권리 변동을 제3자에게 주장할 수 있어 거래의 안전성이 보장된다.
● 법정 손해배상 청구: 침해 전 등록된 저작물은 실제 손해액 입증이 어려운 경우에도 법정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핵심은 등록의 효력이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있는 부분에만 미친다는 점이다. 예컨대 인간이 쓴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GAI가 영상을 생성했다면, 저작권은 시나리오에만 적용되고 영상 자체는 보호받지 못한다. 특히 GAI 활용 저작물은 등록 신청 시 AI 산출물과 인간의 창작 부분을 명확히 구분하여 기재해야 하며, 이를 허위로 작성할 때 처벌받을 수 있다. 따라서 방송·OTT 기업은 제작 과정에서 인간의 창작적 개입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획안, 작업 기록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권리 보호의 핵심이 될 것이다.
또한 등록 심사는 형식 심사로 운영된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제출 자료를 기준으로 ‘명백히 저작물이 아닌 경우’에만 등록을 거절한다. 이는 등록이 실체 심사가 아닌 공시와 분쟁 예방 절차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안내서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등록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예를 들어, 만화의 글은 인간이, 그림은 AI가 작성하면 글 부분에 대해서만 등록할 수 있다. 인간이 스케치한 도안에 AI가 채색하면 스케치 부분에만 등록 효력이 미친다. AI가 산출한 이미지를 선별·배열해 새로운 구성을 만들면 편집저작물로서 등록할 수 있다. AI가 만든 가사를 인간이 작곡한 곡에 얹을 때는 작곡 부분만 등록할 수 있고, AI가 만든 곡을 인간이 노래하면 저작권 등록은 불가능하지만, 실연자와 음반 제작자로서 저작인접권 등록은 가능하다. 이러한 구체적 사례들은 방송·OTT 업계가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저작권 리스크를 줄이고 등록 전략을 수립하는 데 실질적인 가이드가 될 수 있다.
안내서에 소개된 사례들은 AI가 단순 대체재가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과 결합하여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A 영상은 인간이 기획한 시나리오에 맞춰 GAI로 생성한 영상 클립들을 창작 의도에 따라 선택, 배열, 편집하여 완성한 작품인데, 이는 GAI 산출물을 ‘소재’로 활용하여 인간이 영상저작물이라는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낸 경우로 편집저작물과 유사한 창작성을 인정받았다. B 미술 작품은 GAI로 생성한 패턴 이미지를 나무 블록에 부착하고 먹물 처리를 하는 등 물리적인 후가공을 통해 완성하였는데, 이는 디지털 산출물에 아날로그적 창작 행위를 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저작물을 탄생시킨 경우로 GAI 활용의 창의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C 작품은 작가가 직접 그린 스케치를 기초로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선별·배열하고 세부 조정을 거쳐 최종 이미지를 완성한 경우로,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인정되어 등록되었다.
국내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저작물의 등록 사례
1) <원 모어 펌킨> (스튜디오프리윌루젼)
2) <자연의 울림> (김성자)
3) <符(부)> (강보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안내서>)
방송·OTT 업계에서 AI는 제작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 기술이지만, AI 산출물 자체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한 리스크다. 해외 플랫폼에서 AI 생성 캐릭터나 장면이 무단으로 사용되어도 권리 보호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은 이번 안내서가 강조한 ‘인간의 창작적 개입’을 입증할 수 있도록 제작 전반의 과정을 관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기획 단계에서는 프롬프트와 결과물의 기록을 남기고, 제작 단계에서는 인간의 편집·보정 과정이 드러나도록 관리하며, 유통 단계에서는 계약에 권리 귀속을 명확히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분쟁 예방을 넘어, 콘텐츠 자산의 가치를 확보하고 투자 안정성과 국제 시장에서의 신뢰를 얻는 핵심 전략이 될 것이다.
이번 안내서는 GAI 시대의 저작권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창작자들에게 예측할 수 있는 법적 환경을 제공하려는 시도이다. 인간의 창작성이라는 저작권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GAI를 창작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기술과 창작의 상생을 도모하였다. 정책적으로는 국제 규범과의 정합성을 확보하면서 국내 산업에 맞춘 과도기적 지침을 제시했으며, 실무적으로는 기업과 창작자에게 구체적 등록 기준을 제공했다. 학술적으로는 AI 공동 저작자 인정 여부, 프롬프트 창작성, 학습데이터 저작권 문제 등 후속 연구 과제를 남겼다.
물론 이번 안내서가 모든 질문에 대한 최종 해답은 아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며 새로운 쟁점이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안내서는 G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 콘텐츠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첫 번째 이정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방송·영상·OTT 업계는 AI를 두려워할 대상이 아닌 창의성을 확장하는 파트너로 삼아, 안내서가 제시한 원칙 안에서 혁신적인 창작을 시도해야 할 시점이다.
향후 법률 개정과 국제 논의가 이어질 것이며, 산업은 이를 반영해 권리 관리 전략을 세워야 한다. “AI는 창작자가 될 수 없으며, 저작권 보호의 관건은 결국 인간의 창의적 개입”이라는 명확한 메시지, 이것이 이번 안내서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