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웨이브, 티빙, 쿠팡플레이 등 주요 OTT들은 최근 예능을 전면에 내세우며 서로 다른 전략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OTT는 요일별 데일리 미드폼으로 OTT판 ‘편성표’를 짜고, 국내 플랫폼은 유튜브 인기작 수급·독점 선공개·스핀오프로 검증된 팬덤을 흡수한다. 여기에 SLL, TEO, 스튜디오 모닥 등 제작사들도 OTT 맞춤형 포맷을 개발하며 글로벌 수출 가능성까지 노린다. 이제 예능은 단순한 보완재가 아니라 OTT의 ‘제2 성장 엔진’이 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올해 2월부터 ‘일일 예능’을 본격 도입했다. 당시 양우연 콘텐츠 비즈니스 디렉터는 “사전 제작 방식의 기존 예능은 제작과 공개 간 간격이 길었다. 일일 예능은 그 시차를 최소화해 시청자 반응을 빠르게 반영하고, 시의성 있는 소재를 활용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또 “라이선싱 방식을 통해 방영권을 확보하고, 일상 속 루틴이 되는 일일 예능을 실현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라인업도 공격적이다. 9월 공개된 <크라임씬 제로>는 JTBC·티빙에서 이어온 추리 예능 IP를 넷플릭스로 가져온 사례다. 한강 다리를 세트로 구현해 규모를 키웠고, 몰입형 게임 구조로 차별화를 꾀했다. 이어 <피지컬: 아시아>, 나영석 PD의 <케냐 간 세끼>, MC 유재석의 민박 예능 <유재석 캠프>, <흑백요리사 2>까지 줄줄이 대기 중이다. 내년에는 <솔로지옥> 시즌 5, <대환장 기안장 2>,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시즌 2, <미스터리 수사단 2> 등 굵직한 작품이 연이어 공개된다. 지난 8월 ‘넷플릭스 예능 페스티벌 2025’에서 유기환 디렉터는 “<흑백요리사>는 단순 흥행을 넘어 요식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피지컬: 100>은 많은 나라에서 리메이크가 준비 중”이라며 “한국 예능 포맷이 글로벌 대표주자로 떠오른 것에 자부심이 있다”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도 “넷플릭스 예능의 특징은 끊임없는 다양성과 글로벌 동시 공개로 K-예능의 지평을 넓힌다는 데 있다”라고 평가했다.
디즈니플러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8월 시작된 <주간오락장>은 월~금 오전 8시, 주 5일 ‘미드폼’ 예능을 고정 편성한다. 운동 버라이어티 <으라차차 멸치캠프>, 시간제한 연애 리얼리티 <60분 소개팅>, 초호화 먹방 예능 <배불리힐스>, 유병재식 초단편 토크쇼 <짧아유>, 셰프 힐링 예능 <셰프의 이모집>까지 요일별 콘셉트를 다르게 배치했다. 회당 25~30분 러닝타임으로 TV 예능(약 90분)과 숏폼(10분 미만) 사이의 틈새를 공략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최연우 로컬 콘텐츠 총괄은 “짧지만 꽉 찬 포맷으로 매일 다른 경험을 제공하겠다”라며 한국뿐 아니라 대만·홍콩·싱가포르·태국 등 아시아 8개국 동시 공개를 밝혔다. OTT 환경에서도 ‘편성의 리듬’을 설계해 시청 루틴을 만드는 실험이다.
디즈니플러스의 주 5일 새로운 미드폼 예능 시리즈
(출처: 디즈니플러스)
티빙은 스핀오프와 스포츠 결합으로 예능 IP의 ‘생존 기술’을 실험한다. 간판 IP <환승연애>는 ‘환친자’라는 충성 팬덤을 형성한 대표작이다. 여기서 파생된 <환승연애: 또 다른 시작>은 국내 OTT 연애 예능 최초의 본격 스핀오프로, 시즌 중간에도 팬덤 열기를 유지하며 IP 라이프사이클을 확장했다. 티빙 측은 “스핀오프가 가능한지가 파워 IP의 분기점”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세계관에서 다양한 시청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IP를 장기 운용하는 전략이다.
스포츠 결합도 눈에 띈다. <최강야구>의 캐릭터 확장판인 <김성근의 겨울방학>은 ‘카리스마 감독’의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며 “웃는 김성근 감독님을 보니 좋다”는 감성적 반응을 이끌었다. <야구대표자>는 10개 구단을 아우르는 기획으로 실제 야구팬 연예인들이 참여, 깊이와 재미를 동시에 잡았다. <이대형의 크보랩>은 설명·분석을 가미해 신규 팬 유입까지 노린 야구 예능의 변주다. 여기에 국내 최초 자동차 레이싱 예능 <슈퍼레이스>도 예고돼 스포츠 예능 장르의 외연을 넓힌다. 티빙은 또 7년 만에 부활한 <대탈출>로 ‘IP 보유력’을 증명했다. 원작의 고유성을 유지하되 현재적 스토리를 입혀 스테디셀러 IP를 재가동했다. 서바이벌 포맷도 강화 중이다. <셀미더쇼>(26년 공개 예정)는 <세일즈>를 전면에 내세운 신개념 서바이벌로, 업계는 “성공 여부는 소재보다 만듦새에 달렸다”라고 본다. 이 밖에도 티빙은 <파이트송(가제)>등 새로운 포맷을 통해 라인업을 다변화하고, KBO·농구·축구·격투기·테니스 메이저 등 연중 스포츠 중계와의 시너지를 높여 리텐션을 견인할 계획이다. 핵심은 “예능의 시점보다 IP 주권”이라는 인식, 즉 보유 IP를 장기·입체적으로 활용해 플랫폼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하는 전략이다.
쿠팡플레이는 코미디와 스포츠의 투 트랙으로 존재감을 키운다. 간판 예능 <SNL 코리아>를 축으로, 인기 코너 ‘MZ 오피스’를 확장한 ‘직장인들’이 스핀오프 코미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올 하반기에는 두뇌 서바이벌 <대학전쟁> 시즌 3, 은퇴 축구선수들의 K3 리그 도전기를 담은 <슈팅스타> 시즌 2가 이어진다. 배우 윤계상·진선규 등이 출연하는 <UDT: 우리 동네 특공대>는 예비역 특공대의 연합 작전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신작으로 기대를 모은다. 또 다른 축은 축구 전문성이다. <쿠플쇼>는 배성재 캐스터와 장지현·임형철 해설위원, 유튜버 감스트 등이 참여해, 한 주간 이슈와 주요 경기를 분석·토론하는 토크쇼 포맷이다. 예능 코너와 AI 기반 숏폼까지 결합해 스포츠 OTT의 강점을 예능으로 확장한다. 코미디와 스포츠를 양축으로 한 이 전략은 쿠팡플레이만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SNL코리아>와 스핀오프 코미디 <직장인들>
(출처: 쿠팡플레이)
웨이브는 웹 예능 수급 전략으로 안정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4월부터 <나래식>, <할명수>, <문명특급>, <갓경규>, <운동부 둘이 왔어요> 등 인기작을 매주 혹은 격주로 공급해 유튜브에서 이미 검증된 팬덤을 OTT로 흡수한다. 단순 큐레이션을 넘어 방송-OTT 연계도 적극적이다. <용감한 형사들>의 파생작 <형, 수다>를 OTT 전용으로 제작했고, <석삼플레이>, <우리 아직 쏠로>는 유튜브보다 3주 먼저 웨이브에서 선공개한다. ‘먼저 본다’라는 경험을 강조해 OTT 시청 가치를 높이는 방식이다. 데이터도 효과를 뒷받침한다. <나래식> 시청자의 78%는 박나래가 출연하는 방송 예능 <나 혼자 산다>까지 함께 소비했고, <용감한 형사들> 시청자의 59%는 스핀오프 <형, 수다>까지 이어봤다. 웨이브는 “연관 시청 패턴이 확인되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인기 IP와 연계된 웹 예능을 적극 수급하겠다고 밝혔다. 유튜브-방송-OTT를 잇는 콘텐츠 허브로의 진화를 노리는 셈이다.
웨이브의 웹예능 수급 전략
(출처: 웨이브)
SLL은 <크라임씬 제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등 글로벌 히트작을 만든 제작사다. 관계자는 “방송 예능은 주간 단위 편성에 맞춰 안정적 소비가 이뤄지지만, OTT 예능은 전편 동시 공개와 빠른 회차 소진을 전제로 긴장감 있는 서사를 구성해야 한다”라며 OTT 맞춤형 제작 환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흑백요리사>는 단순 요리 대결에 계급 시스템을 더해 몰입감을 강화했고, 시즌2도 이를 발전시켜 공개를 앞두고 있다. SLL은 글로벌 흥행의 조건으로 보편적 주제·명확한 규칙·독창성을 꼽는다. <크라임씬 제로>는 참여형 예능의 속성과 팬덤 문화가 맞물리며 공개 첫 주 국내 넷플릭스 TOP10 시리즈 1위, 글로벌 TOP10 시리즈 비영어 부문 10위에 올랐고, <흑백요리사>는 요리라는 보편적 소재에 대결 구도를 입혀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비영어권 TV 부문 3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제작 환경 차이도 뚜렷하다. SLL 관계자는 “방송은 안정적 편성과 광고 친화 포맷이 중시된다면, OTT는 글로벌 시청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빠른 전개와 강한 서사, 시청층 확장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즌 단위 압축 제작과 규모감 있는 로케이션이 늘고 있으며, OTT와 협업할 경우 예산과 시스템적 지원을 통해 세트 규모를 키우는 등 제작 면에서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SLL은 또한 OTT 예능의 미래 키워드로 ‘팬덤화’와 ‘확장성’을 제시했다. OTT는 전 세계 동시 공개가 가능한 만큼 단순 시청을 넘어 팬덤으로 이어져야 IP 가치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비즈니스 요소를 예능 포맷에 녹여낸 ‘사업형 예능’은 부가 사업과 매출 증대까지 연결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K-예능 포맷의 강점은 기발한 아이디어, 치밀한 게임 설계, 출연자 중심의 드라마틱한 서사”라며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글로벌 확산은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OTT 예능의 파급효과는 세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 광고·커머스. 예능은 브랜드 협업과 PPL이 자연스러워 새로운 수익원을 연다. SLL의 <저스트 메이크업>처럼 산업과 결합한 ‘사업형 예능’은 커머스 전환 가능성을 입증한다. 둘째 팬덤화. 글로벌 동시 공개는 프로그램 팬덤의 국경을 허문다. 티빙 <환승연애>의 ‘환친자’처럼 강한 팬덤은 재방문과 구전을 이끈다. 셋째 포맷 수출. 규칙과 경쟁 구조가 명확한 예능은 번역 장벽이 낮아 해외 확산이 빠르다. 특정 산업으로의 확산 효과도 확인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흑백요리사>가 요식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고, <피지컬: 100>은 글로벌 제작 확장으로 K-포맷의 신뢰를 높였다. 정책적으로도 K-콘텐츠 수출 품목이 드라마에서 예능까지 넓어지면 문화산업 전략 차원의 의미 있는 확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결국 드라마가 구독자 유입의 1차 동력이라면, 예능은 구독 유지와 확장의 제2엔진이다.
글로벌 OTT의 데일리 편성 실험, 웨이브의 웹 예능 수급, 티빙의 스핀오프·스포츠 결합, 쿠팡플레이의 코미디·스포츠 투 트랙, SLL의 사업형 예능까지 퍼즐은 이미 맞춰지고 있다. K-드라마에 이어 K-예능 포맷의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