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PD, 콘텐츠 제작을 말하다

알고리즘에 따라 취향이 더욱 세분화된 시청자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도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콘텐츠 IP는 사전에 아이템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Q. 디지털 콘텐츠 제작의 트렌드가 예전과 바뀐 점이 있는가

(박) 4~5년 전만 해도 호흡이 빨라야 한다, 짧아야 한다와 같은 웹 예능에 공식이 있었는데, 이제는 좀 더 시청층이 세분화됐다. 특히 알고리즘에 따라서 취향이 너무 많이 세분화돼서 오히려 장르가 더 다양해졌다고 본다.

Q. 디지털 콘텐츠 제작 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박) 요즘은 알고리즘이 세분화되고, 보는 분들의 취향이 너무 다르다 보니까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트렌드에 맞춰야 하지 않나라는 고민이 들 때 가장 어렵다. 아무리 재미있게 만들어도 선택받지 못하면 아무도 모르게 콘텐츠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디지털 PD들은 이번엔 알고리즘 선택을 못 받았다, 이번엔 흐름을 못 탔다라고 한다. 제목이나 썸네일에서 후킹 요소가 없거나, 알고리즘을 탈 만한 키워드가 없다면 아무리 재미있어도 클릭이 안 되는 것이 콘텐츠를 제작할 때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다. 한편으로 그런 부분에서 계속 챌린지가 오니까 오히려 도파민이 터질 때도 많다.

Q. 디지털 PD로서 단발성 콘텐츠와 지속가능한 콘텐츠 IP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는가

(박)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단발로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다들 생각할 것이다. 기획 단계에서 이 아이템이 5회 차, 10회 차 아니면 다음 시즌까지 갈 수 있는 아이템인지를 선정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라면 아이템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서 선택했다. 누가, 어디에 붙어도, 어떤 스토리가 붙어도 길게 갈 수 있지 않겠나라는 막연한 도전 정신에서 시작했는데 운이 좋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기보다는 처음 기획할 때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세밀하게 아이템 분석을 하고 들어가는 편이다.

Q. 요즘 어떤 콘텐츠(유튜브/ OTT)나 채널을 즐겨 보는지 궁금하다

(박) 웬만한 트렌디한 웹 예능은 공부로라도 찾아보려고 한다. 요즘에는 울퉁불퉁해 밈으로 유명한 카니를 찾아서 를 즐겨보고 있다. OTT 예능이나 드라마도 많이 챙겨본다. 디지털 콘텐츠 PD가 유튜브 콘텐츠를 만든다고들 많이 생각하시는데, 저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OTT에서 대형 예능이 나오면 챙겨보는 편인데, 최근에는 <피지컬: 아시아>를 챙겨보고 있고, <흑백요리사 시즌 2>를 기다리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제작 사례: 라면꼰대파김치갱

차별화된 독특함이 시청자에게 신선함을 주고, 팬덤으로 연결될 수 있다. 라꼰즈 세계관의 지속적인 확장을 위해서는 팬- 출연자- 제작진 간 긴밀한 합이 필요하다

Q. 라면 꼰대더밥 스튜디오 채널의 콘텐츠로 시작해서 시즌5까지 진행되었다. 이 콘텐츠의 오랜 인기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박) 말씀드린 것처럼 라면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것 자체가 오래 가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사실 처음에는 그게 안 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오리지널 예능을 만드는 스튜디오가 많이 없었고 그래서 파일럿에 반응이 없으면 다음이 없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했기 때문에 오히려 열의에 불타서 만든 것이 길게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웹 예능과 조금 다른 지점이 있어서 초반 시즌에는 그 독특함으로 시청자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 그러다가 톤이 잡히면서 팬덤을 통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Q. 김풍 작가를 중심으로 콘텐츠 세계관이 펼쳐지는데, 김풍 작가가 단순한 출연진이 아닌 제작에도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다.

(박) 김풍 작가님과 같이 한 지가 4년이 넘었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김풍 작가님과 제작진의 관계가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이 있었다. 출연자가 진행하는 아이템에 대해서 흥미와 이해가 있을 때 훨씬 더 재미가 산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작진이 아이템을 짜고 구성을 잡지만, 김풍 작가님과 최종적으로 얘기를 나누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주시면 저희가 반은 받아들인다(웃음).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저희가 만든 게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나누면서 만드니까 화면으로 봤을 때 정말 즐기는 모습으로 보여서 팬들도 좋아해 주는 것 같다.

Q. 라면 꼰대는 특유의 톤과 느린 호흡, BGM의 사용 등으로 인해 페이크다큐 같다는 평도 있다. 이러한 콘텐츠의 을 만드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박) 사실 라면꼰대를 처음 시작했을 때 주위 피디나 동료들도 깜짝 놀랐다. 그때 트렌드와는 조금 어긋난 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느린 호흡이라든지 담백하게 가는 톤 앤 매너가 독특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마니아층이 생겼던 것 같다.

톤 앤 매너를 만듦에 있어서 그 당시 유튜브에 있는 빠른 호흡의 웹 예능들과 차별화를 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담백한 자막으로 재미를 주려고 했고, BGM도 동일한 포인트에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오면서 어쩌면 웹 예능들과 다르게 영화적인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굉장히 의도적인 연출이었다. 매 시즌 촬영 전에 미리 이번 시즌의 톤을 잡아줄 BGM을 선정하고 들어가는 편이다.

Q. 라면 꼰대파김치갱으로 세계관 확장을 선보이고 있다. 우연히 언급된 파김치갱이 진짜 멤버를 모아서 콘텐츠로 나온 것인데, 어떻게 제작을 결정하게 됐는가

(박) 콘텐츠를 단순히 PD가 잘 만드는 데에서 그치면 확장성이 없이 생명이 끊어진다고 생각한다. 라면꼰대 시작부터 같이 일하고 있는 메인 작가님께서 연차가 많다. 그래서 제작진 사이에서는 대모처럼 여겨지는 분인데, 현장에서 출연자들이 씨앗을 뿌려주면 그걸 주섬주섬 거두는 작업을 그 작가님이 굉장히 세밀하고 디테일하게 해 준다. 확장성에 대한 논의는 구성 작가님이 주로 의견을 내고, PD인 제가 그걸 현실화하기 위해 제작, 연출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한다. 갑자기 하면 팬들이 놀라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합의가 되면 계속해서 씨앗을 뿌리고 거두고, 뿌리고 거두는 작업을 한다. 2명씩 부르는 게스트 플레이였다가 갑자기 3명을 만들고, 또 한 명을 추가해서 4명을 만들고 이런 밑 작업을 피디와 작가가 함께 진행하고 있다.

Q. 파김치갱 시리즈는 멤버들의 캐릭터로 유연하게 진행되는데, 진행에 부담은 없는가, 연출 디렉팅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박) 일단 파김치갱 출연진 다섯 분 모두 너무 대단하고, 다채롭고, 입담이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PD이자 작가인 분들이 많다. 그래서 저희가 이런 식의 캐릭터를 해 주세요라고 먼저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들의 캐릭터를 PD와 작가들이 알기 때문에 캐릭터를 잘 발산할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는 것에 온전히 많은 힘을 쓰고 있다. 저희가 사전에 디렉션을 많이 안 주고 오히려 자유롭게 풀어 놓고 진행하다 보니 생각했던 것과 안 맞을 때도 있다. 그래서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가면서 출연진도 마치 제작진 중 하나인 것처럼 합을 계속 맞춰가면서 진행하고 있다.

Q. 라꼰즈 세계관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궁금하다.

(박) 더밥 스튜디오에서 라꼰즈로 개편한 지 거의 1년이다. 올해 파김치갱을 하면서 이런저런 콘텐츠들을 해봤는데 아직은 시행착오가 있는 것 같다. 새로운 분이 들어오면 팬들이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매번 같은 분들이 오면 소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식상해 하기도 한다. 올해 경험한 팬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내년도는 더 다채롭게 가기 위해서 콘텐츠 정비도 하고, 출연자들과 많이 의논하며 진행할 예정이다. 유튜브 콘텐츠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OTT로의 진출, 팬들의 경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오프라인 행사나 굿즈로 콘텐츠 내부에 있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다방면으로 진행하고 싶다. 더 나아가서는 글로벌 팬들을 만드는 것도 목표다. 혹자는 너무 오래 하지 않았냐, 조금 지겹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라꼰즈는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갈 게 많다고 생각한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와 팬덤의 관계

디지털 콘텐츠의 수익을 위해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 단일 콘텐츠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씨앗을 뿌리고 주워 담아야 한다.

Q. 라면 꼰대에서 파김치갱까지 세계관 확장에 있어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팬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팬덤의 확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박) 콘텐츠를 올리고 나서 반응에 대한 분석과 논의를 많이 한다. 팬들이 저희 톤 앤 매너와 출연자들의 케미를 좋아해 주시기 때문에 팬들을 더 만족시킬 만한 아이템과 구성을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댓글을 많이 본다. 작년에 팝업 스토어에서 팬들을 직접 만나보니 생각보다 저희를 더 좋아해 주셔서 팬들을 위한 콘텐츠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올해 파김치갱 궐기 대회라는 콘셉트로 팬미팅을 진행했다. 앞으로도 더 많이 사랑받기 위해서, 팬들의 피드백을 수용하고 콘텐츠와 팬의 접점, 팬들과 만나는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Q. 작년 10월 성수동에서 파김치갱 팝업스토어가 열리면서 팬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팝업스토어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는가

(박) 처음에 공식 메일을 통해서 제안이 왔다. 보통은 저희한테 제안 메일을 주시는 담당자분들이 저희 콘텐츠의 팬인 경우가 많다. 파김치갱으로는 처음 해보는 오프라인 행사이자 커머스 파트여서 굉장히 재미있었고, 앞으로도 이런 협업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의미 있는 행사였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제안과 협업에 열려 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많은 협업을 해 보고 싶다.

Q. 디지털 콘텐츠로 안정적인 수익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궁금하다

(박) 디지털 콘텐츠가 방송 콘텐츠와 다른 부분이 광고 수익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으면 수익이 0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협찬 매출을 확보하기 위해서 사전에 아이템을 빨리 개발해서 브랜드 측에 선제적으로 판매하려고 노력한다. 내부적으로는 콘텐츠 내용 중 브랜디드화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브랜디드 기획안을 따로 써서 제안하기도 한다. 콘텐츠에 브랜드 파워가 있어야만 제작을 계속할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모두가 합심해서 수익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 커머스 사업을 예로 들면, 올해 라면꼰대로는 처음으로 라면 제품이 나오게 됐다. 삼다수와 같이 협업해서 고사롱 라면이 출시됐다. 팬들이 영상 내에서 김풍 작가님이 만드는 레시피를 맛보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이번에 김풍 작가님의 레시피로 라면이 나오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앞으로 협업 상품을 출시해도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수익화뿐만 아니라 경험을 더 드리는 방향으로 나가도 좋을 것 같다.

Q. 유튜브 콘텐츠는 조회수나 댓글 수, 인급동 순위 등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내부적으로 이러한 반응에 대한 분석을 하고 제작에 반영하기도 하는지

(박) 보통 눈에 보이는 일 단위로 올라가는 조회 수를 제작진들이 계속 보고 있다. 조회 수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좋아요 수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어서 좋아요 수와 댓글 수 올라가는 것을 굉장히 예민하게 보고 있다. 그리고 회사에 데이터 분석하는 디지털 플랫폼 사업팀이 있다. 디지털 분석 전문가들이 시즌이 끝나면 다음 시즌에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을지를 데이터베이스로 분석해서 제안해 주고, 저희는 그 결과를 활용해서 다음 시즌에는 이런 포인트를 잡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제작진과 사업팀에 협업이 되는 구조로 노력하면서 만들고 있다.

Q. 디지털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온 디지털 PD로서, 콘텐츠 전쟁터인 유튜브에서 살아남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박) 일단은 콘텐츠가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단일 콘텐츠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씨앗을 뿌리고 주워 담고 이것을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 한 명이 태어나면 온 마을이 돕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저희 콘텐츠가 그랬던 것 같다. 라면 꼰대라는 IP가 태어났을 때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비결은 없고 이 콘텐츠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같이 만들고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박수진

박수진
(CJ ENM PD)

CJ ENM에서 10년차 디지털 PD로 근무하고 있다. 페이스북이 붐이던 시절 뷰티 콘텐츠로 디지털 콘텐츠를 시작했다. 주요 웹예능 작품으로 지멋대로 해라, 라면꼰대가 있다. 이후 파김치갱, 팝옵카페, 너 내 동료가 돼라 등 특유의 톤 앤 매너를 갖춘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