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이코노미(Creator Economy)는 더 이상 ‘개인 방송’이라는 아마추어 영역을 넘어선 거대한 산업으로 진화했다. 글로벌 리포트에 따르면 전 세계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시장 규모는 2023년 약 2,500억 달러 수준에서 2027년 4,800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국내 디지털 크리에이터 미디어 산업 매출도 2024년 기준 약 5조 원 중반대로 집계되고 있다.
이 폭발적 성장의 출발점은 크리에이터들이 레거시 미디어가 충족시키지 못했던 ‘진정성(Authenticity)’과 ‘초세분화된 관심사(Hyper-Niche)’를 정조준했다는 데 있다. 과거 대중매체가 ‘보편적 다수’를 위한 매스 콘텐츠 생산에 주력했다면, 이제 시청자들은 자신의 취향, 가치관, 라이프스타일에 정밀하게 부합하는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찾아 나섰다. 이는 특정 주제와 세계관에 깊이 몰입하는 팬덤 중심의 크리에이터를 탄생시켰고, 단순한 시청자를 넘어 크리에이터와 정서적 유대감을 맺는 ‘참여자’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소규모 시청자 그룹을 대상으로 출발한 크리에이터는 높은 신뢰와 결속력을 바탕으로 기존 매체가 재현하기 어려운 충성도와 파급력을 확보한다. 이들의 영향력은 전통적인 시청률이나 단순 화제성 지수만으로는 측정하기 어렵다. 대신 팬덤의 규모, 능동적 참여도(Engagement), 그리고 실제 구매 전환율과 같은 새로운 지표를 창출하며 미디어 비즈니스의 성공 방정식을 다시 쓰고 있다.
플랫폼 기술과 데이터 분석 도구의 고도화는 이러한 변화를 가속하는 촉매제다. 크리에이터는 실시간 시청 데이터와 피드백을 기반으로 콘텐츠 기획, 편성, 썸네일 전략 등을 정교하게 튜닝하며 콘텐츠를 최적화하고 효율을 극대화한다. 초기 ‘방구석 1인 방송’의 한계를 넘어, 스스로 하나의 브랜드이자 스튜디오로 기능하는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이는 곧 콘텐츠의 질적 상향 평준화를 이끌며, 크리에이터를 기존 미디어 사업자들의 강력한 경쟁자이자 동시에 협력 파트너로 부상시키고 있다.
틈새에서 출발한 크리에이터 콘텐츠가 주류 시장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산업적 기반은 제작 시스템의 고도화, 즉 ‘프로페셔널화’에 있다. 초창기 개인의 취미 활동 수준에서 시작된 채널들이 이제는 체계적인 기획, 장기적인 IP(지식재산권) 전략, 그리고 고품질 기술력을 갖춘 ‘버티컬 스튜디오(Vertical Studio)’의 위용을 갖추고 있다.
성공적인 크리에이터들은 콘텐츠의 높은 완성도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자체 법인을 설립하고, 전문적인 제작 파이프라인을 구축한다. 방송사 출신 PD와 전문 작가, 촬영 감독, 편집자, 마케터 등 전문 인력을 고용하는 것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로써 기존 방송사 못지않은 프로덕션 구조를 내재화하고, 단발성 영상 제작을 넘어 체계적인 포맷 개발과 시즌제 도입을 통해 콘텐츠의 수명주기를 연장하고 광고, 협찬, 브랜디드 콘텐츠, 2차 저작물로 이어지는 부가가치를 극대화한다.
이러한 진화의 상징적 사례가 크리에이터 채널 ‘피지컬갤러리’가 기획·제작한 <가짜사나이> 시리즈다. 특수부대 훈련이라는 지극히 마이너하고 마초적인 소재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급 영상미와 고강도 리얼리티를 구현해 웹 예능 영역에서 사실상 ‘블록버스터급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출연자, 협찬사, 파생 콘텐츠로 이어지는 다층적 비즈니스를 촉발했다. 이는 한 명의 크리에이터가 출발점이더라도, 탄탄한 기획력과 자본, 제작 역량이 결합 되면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화제성을 압도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MCN(Multi Channel Network) 산업 역시 단순한 크리에이터 매니지먼트와 광고 중개를 넘어, 크리에이터 기반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로 재편되고 있다. 샌드박스네트워크는 수백 개 크리에이터 팀의 IP를 기반으로 오리지널 콘텐츠 기획·제작, 브랜디드 콘텐츠, 굿즈 및 자체 브랜드(PB) 출시, 편의점·온라인몰 연계 유통,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까지 비즈니스 영역을 수직 통합해 ‘디지털 콘텐츠 IP 기업’을 지향하는 대표적 사업자로 성장했다. 이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버티컬 스튜디오’처럼 기능하며, 개별 크리에이터가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분산하고 IP의 상업적 가치를 전방위적으로 확장하는 산업적 토대를 제공한다.
샌드박스네트워크의 IP 사업
(출처: 샌드박스네트워크 공식 홈페이지)
이와 함께 크리에이터 IP를 기반으로 한 커머스형 비즈니스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플루언서가 직접 제품을 기획·선정하고, 라이브커머스·숏폼·VOD 콘텐츠를 통해 즉시 구매를 연결하는 ‘콘텐츠 판매자(셀러)’와 ‘I2C(Influencer to Customer)’ 모델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제조–유통–소비 구조를 단축시키는 새로운 유통 채널이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유튜브 쇼핑, 인스타그램/틱톡 쇼핑 기능이 본격 도입된 이후 크리에이터가 자체 브랜드 화장품·패션·리빙 제품을 론칭하거나, 특정 카테고리(예: 다이어트, 홈트, 홈데코)에 특화된 라이브커머스 진행자로 활동하며 높은 구매 전환율을 기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샌드박스네트워크는 크리에이터 전용 굿즈·PB 제작 및 유통을 지원하는 구조를 통해 인기 크리에이터의 캐릭터·세계관을 담은 상품을 편의점·온라인몰·팝업 스토어에서 판매하며, 콘텐츠·IP·커머스가 결합된 수익 모델을 고도화하고 있다.
동시에 라이브커머스 시장 성장과 함께, 기존 홈쇼핑·리테일 사업자들도 SNS·유튜브에서 검증된 크리에이터를 라이브커머스 쇼호스트로 기용하는 흐름이 확대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판매자가 아니라 팬덤과 함께 ‘공동 쇼핑 경험’을 설계하는 커뮤니티 리더로서 기능하며, 팬덤 기반 추천·후기·체험담을 결합해 전통적인 광고보다 높은 신뢰와 구매 전환을 이끌어내는 커머스형 크리에이터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개별 크리에이터는 더 이상 플랫폼에 종속된 이용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독보적인 세계관과 팬덤을 자산 삼아 스튜디오를 설계하고, 콘텐츠·굿즈·커머스·오프라인 경험으로 이어지는 IP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나가는 ‘창작자-기업가(Creator-Entrepreneur)’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콘텐츠 산업의 가치 사슬(Value chain)이 플랫폼 중심에서 IP를 소유한 창작자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크리에이터 콘텐츠가 2020년대 들어 대중적 영향력을 장악하자, 위기감을 느낀 기존 방송영상 사업자와 OTT 사업자들은 생존과 확장을 위해 이 생태계와의 전략적 결합을 필수 과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크리에이터는 단순한 외부 출연자나 섭외 대상을 넘어, 기획 파트너이자 IP의 공동소유자로서 미디어 생태계의 핵심 내부자로 편입되고 있다.
방송사의 변화는 특히 드라마틱하다. 대표적인 예가 ‘에그이즈커밍’이 제작·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채널 십오야’다. 이 사례의 핵심은, 기존 레거시 미디어 시스템의 정점에 있던 스타 PD들이 방송사 밖에서 독립 제작사를 설립하고 디지털 채널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전통적인 ‘프로듀서(Producer)’ 역할을 넘어 ‘창작자-기업가(Creator-Entrepreneur)’의 문법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방송 편성이 어려운 실험적 숏폼 포맷이나 본방송의 스핀오프를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된 형태로 선보이면서, 크리에이터처럼 플랫폼을 통해 직접 시청자와 소통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탄생한 콘텐츠와 세계관이 다시 TV 본방송으로 역수입되며, 디지털과 방송 간 ‘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채널 십오야’에서 시도된 <콩콩팥팥> 시리즈처럼 웹 예능의 문법으로 제작된 콘텐츠가 TV 프라임 타임에 편성되는 현상은, 방송사가 시청률 하락과 시청자 고령화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크리에이터의 문법과 제작 리듬을 적극적으로 수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OTT 플랫폼의 접근 방식은 더 직접적이고 공격적이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주요 OTT 플랫폼들은 구독자 확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크리에이터 IP를 전략적 무기로 활용하며, 특정 장르나 포맷에서 독보적인 기획력과 팬덤을 검증받은 크리에이터와 직접 계약을 맺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대규모 오리지널 예능이나 리얼리티 쇼를 제작한다.
과거 ‘달라스튜디오’의 <네고왕>이나 ‘스튜디오 룰루랄라’의 <워크맨>이 웹 예능으로서 강력한 화제성을 선도했다면, 최근에는 크리에이터 자체가 콘텐츠의 흥행 보증 수표이자 인력 풀로 활용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여행 버티컬 크리에이터 곽튜브와 빠니보틀은 유튜브에서 구축한 세계 여행 콘텐츠와 팬덤을 기반으로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ENA <지구마불 세계여행> 등 대형 방송 및 OTT 프로그램의 핵심 출연자로 자리 잡았고, OTT 오리지널과 지상파 예능을 넘나들며 플랫폼 간 ‘세계관 공유’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여행 버티컬 크리에이터 기반 콘텐츠 확장 사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와 <지구마불 세계여행>
(출처: MBC, ENA)
또한 유튜브 웹 예능·SNS 활동으로 인지도를 높인 덱스와 같은 크리에이터형 인물은 넷플릭스 <솔로지옥> 시리즈를 통해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크리에이터가 플랫폼과 장르의 경계를 넘어 최고의 화제성을 지닌 ‘킬러 콘텐츠‘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러한 크리에이터는 OTT의 핵심 전략인 ‘락인(Lock-in) 효과’를 견인하는 동시에, 기존 방송·영화 제작사 중심의 폐쇄적인 투자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의 기획을 고품질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자본 창구를 확보하게 된다.
결국 방송사와 OTT는 크리에이터를 생태계 외곽의 단순 공급자가 아니라, 기획부터 제작, 출연진 구성,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의 ‘공동 설계자’로 받아들이며 미디어 산업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는 레거시 미디어와 디지털 크리에이터 간 ‘경쟁과 협력(Coopetition)’이 동시에 작동하는 새로운 미디어 질서의 출현을 의미한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명실상부한 미디어 산업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 생태계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산업의 외형적 성장에 비해 내실 있는 시스템과 안전망, 그리고 공정한 분배 구조에 대한 논의는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째 과제는 ‘창작자의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확보다. 매주, 혹은 매일 고품질의 콘텐츠를 끊임없이 생산해야 하는 압박은 크리에이터들에게 심각한 ‘번아웃(Burnout)’을 초래한다. 실제로 ‘침착맨’과 같은 정상급 크리에이터조차 활동 중단이나 장기 휴식을 선언하는 사례가 빈번한데,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산업의 구조적 위험 요소다. 채널 규모가 커질수록 콘텐츠 생산 압박과 비즈니스 운영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적·제도적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따라서 크리에이터를 파트너로 두는 MCN과 플랫폼은 단순한 수익 배분 계약을 넘어, 창작자의 건강한 활동 주기 관리, 멘털 헬스 케어, 효율적인 인력 구조 설계 등을 지원하는 새로운 차원의 ‘창작자 보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과제는 ‘플랫폼 종속성’ 탈피다. 크리에이터의 생계와 비즈니스가 특정 플랫폼의 알고리즘 변화, 광고 정책 수정, 조회수 등락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는 본질적으로 취약하다. 이에 따라 선도적인 크리에이터와 스튜디오들은 유튜브, 숏폼 플랫폼, 라이브 커머스, 팟캐스트 등 ‘멀티 플랫폼 전략’을 구사하거나, 자체 멤버십 사이트 및 팬 커뮤니티 구축, 굿즈 및 디지털 상품 판매, 오프라인 F&B·전시·공연 비즈니스 진출 등을 통해 수익원을 다각화하며 플랫폼 의존도를 낮추는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셋째 과제는 ‘윤리와 사회적 책임’ 강화다. 콘텐츠 상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뒷광고(표기 없는 유료 광고), 허위 과장 정보, 자극적인 혐오 콘텐츠 양산 등이 반복적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크리에이터 노동 전반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을 키우고 있다. 크리에이터 콘텐츠가 레거시 미디어를 능가할 정도로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저작권 준수, 유해 정보 차단, 투명한 광고 표기, 그리고 공정한 계약 구조 확립 등을 위한 업계 차원의 가이드라인과 자율 규제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 이는 개별 크리에이터의 신뢰도를 넘어,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전체의 ‘신뢰 자본’을 지키는 생존의 문제다.
결론적으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완성된 산업이 아니라 여전히 역동적으로 진화 중인 ‘현재 진행형’의 혁신 생태계다. 취미로 시작해 니치 마켓을 파고들던 개별 창작자는 이제 하나의 스튜디오이자 브랜드로 성장했고, 기존의 거대 미디어 기업들은 이들을 혁신의 파트너로 인정하며 공생을 모색하고 있다.
미래 미디어 시장의 패권은 막강한 자본력과 크리에이터의 날 선 창의성을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윤리적인 방식으로 결합해, 팬덤과 대중에게 대체 불가능한 경험과 가치를 제시하는 주체에게 돌아갈 것이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다음 과제는 기술·플랫폼 경쟁을 넘어, 창작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거버넌스와 신뢰 구조를 설계하는 데서 결정될 것이다.
-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전파진흥협회(2024). <2024년 디지털크리에이터미디어산업 실태조사>.
- 샌드박스네트워크(2025.6.12). 샌드박스네트워크, 창립 10주년… ‘디지털 콘텐츠 IP기업’ 비전 제시, <샌드박스 공식 사이트>.
- 한국저작권위원회(2024). <디지털 워터마킹 기술과 저작권 보호: 크리에이터 경제의 성장과 저작권 이슈>. p.1-30.
- 한국콘텐츠진흥원(2025). <2025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리포트 – 라이브클래스 협력판>. p.1-50.
- OpenAds(2025.9.3). 지금은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전성기: 2025년 8월 마켓인사이트 리포트, <오픈애즈>.
- Research Nester(2025). <크리에이터 경제 시장 규모 및 점유율, 2037년 성장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