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유튜버나 틱토커 등 크리에이터가 웬만한 유명인들보다 영향력 면에서 비교 우위에 있고 광고 마케팅의 주체 역시 인플루언서로 변하고 있다. 기존의 연예인들도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 디지털 미디어 시장에 뛰어드는 형국이다. 크리에이터들이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의 디지털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통해 물건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면서 막대한 이윤을 내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크리에이터 콘텐츠 생태계는 플랫폼, 크리에이터, 광고주 등 크게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전통적으로 이 생태계는 조회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크리에이터가 콘텐츠를 만들면, 플랫폼이 이를 유통하고 광고주가 조회수에 비례해 광고비를 지급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 모델은 크리에이터의 수익이 전적으로 조회수와 광고주에게 의존한다는 약점이 있었다.
그러나 ‘팬덤 이코노미’가 등장하면서 네 번째 축이 추가됐다. 바로 ‘팬’이다. 팬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콘텐츠 소비자가 아니다. 평소 꼼꼼히 제품을 분석하던 소비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크리에이터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들의 콘텐츠가 지속될 수 있도록 응원하는 의미로 소비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 변화는 콘텐츠 생태계 전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구독자 100만 명이 있어도 조회수가 떨어지면 수익이 급감했다. 하지만 이제는 열성팬만 있으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멤버십 1만 명이 월 5,000원씩만 내도 월 5,000만 원의 고정 수익이 발생한다. 책이나 영화, 웹툰도 팬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위해 십시일반 제작비를 부담하는 펀딩이 한때 유행했던 것처럼 팬덤 이코노미는 광고 수익의 변동성이나 광고주의 과도한 개입에서 벗어나 크리에이터가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크리에이터 관련 시장 규모가 2024년 2,500억 달러(약 350조 원)에서 2027년 4,800억 달러로 3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온라인 소비가 증가하고 콘텐츠 시장에 특화된 기술과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크리에이터 산업 생태계가 확장되는 것이다.
과거 ‘구독자 수’와 ‘조회수’가 주요 지표였다면, 이제는 얼마나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가 핵심적인 성공 요인이 됐다. 팬덤의 크기가 크리에이터의 브랜드 가치를 좌우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요즘 MZ 세대는 일방적인 주입식 광고보다 주변 사람들의 입소문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매일 콘텐츠를 접하면서 신뢰와 친밀감이 쌓인 크리에이터들이 입고 쓰고 즐기는 제품을 더 신뢰하는 이유다.
‘팬덤 이코노미’가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지탱하게 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수익 구조의 다변화다. 과거 크리에이터들은 광고 수익이라는 단일 수익원에 의존했다. 하지만 팬덤 기반 수익 모델이 등장하면서 멤버십, 후원, 굿즈 판매, 유료 콘텐츠, 오프라인 이벤트 등 다양한 수익원이 생겼다. 이는 단순히 수익원이 늘어난 것을 넘어서 크리에이터가 알고리즘 변경이나 광고 단가 하락 등 외부 변수에 덜 취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동안 뒷광고 논란에 시달리는 일부 크리에이터들도 있었지만, 요즘은 ‘유료 광고 포함’이라는 표시를 하고 공개적으로 광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인기 유튜브 채널 ‘짠한형’과 ‘핑계고’에서는 진행자인 신동엽과 유재석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직접 협찬사의 제품을 홍보한다. 거대 팬덤을 거느린 시사 채널도 유튜브에 판매 링크를 연동하거나 라이브 방송 말미에 진행자가 직접 제품을 만든 사람을 인터뷰하는 식으로 제품을 홍보하는 경우가 늘었다.
지식 전문 유튜브 채널인 ‘세상의 모든 지식-언더스탠딩’은 초기에는 화면에 광고 패널을 노출하는 방식에서 최근에는 회원 전용 멤버십과 굿즈 판매는 물론 <언더상회>라는 코너를 만들어 제품을 홍보하는 방식으로 광고의 형태가 진화했다. 이는 모두 채널을 즐겨보는 충성 구독자들을 겨냥한 ‘팬덤 이코노미’의 대표적인 사례다.
‘세상의 모든 지식-언더스탠딩’의 멤버십 영상(좌)과 <언더상회>(우)
(출처: ‘세상의 모든 지식-언더스탠딩’ 공식 유튜브)
두 번째로 ‘팬덤 이코노미’는 크리에이터의 창작 자유와 실험 정신을 보장한다는 장점이 있다. 광고 수익에만 의존하면 크리에이터는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썸네일을 만들고, 광고주가 꺼리는 민감한 주제는 피해야 한다. 하지만 팬덤 기반 수익이 생기면 상황이 달라진다. 팬들은 조회수와 상관없이 크리에이터를 지지한다. 심지어 조회수가 낮더라도 퀄리티 있는 콘텐츠, 실험적인 시도를 응원한다. 이는 크리에이터가 대중성보다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팬덤 이코노미’는 지속 가능한 창작 환경을 조성한다. 크리에이터 생태계의 가장 큰 문제는 ‘번아웃’으로 꼽힌다. 끊임없이 조회수에 집착하고 알고리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며, 광고 단가가 떨어지면 더 많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소진되는 경우가 많고 2년 이상 유튜브를 지속하기 어렵다. 하지만 팬덤 기반 수익은 예측할 수 있고 안정적이다.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멤버십 수익, 라이브 방송 때마다 날아드는 후원금은 크리에이터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이는 장기적으로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결국 ‘팬덤 이코노미’는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조회수 경쟁’에서 ‘관계 구축’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얼마나 콘텐츠를 많은 사람이 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이는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 화면의 오른쪽에는 끊임없이 채팅 메시지가 올라온다. 일반 채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메시지들에는 금액이 표시돼 있다는 것. 바로 ‘슈퍼챗’(후원금)이다. 시청자들은 자신의 메시지를 더 오래, 더 눈에 띄게 노출하기 위해 수백 원부터 수만 원까지 지불한다. 그 위력은 상상 이상이다. 시사 유튜버 김어준이 진행하는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은 지난 2023년 1월 유튜브 방송 첫날 하루 만에 3,000만 원에 달하는 슈퍼챗 수익을 올렸다. 이는 전 세계 유튜브 채널 중 최고 금액이었다. 크리에이터는 이 금액의 70%를 순수익으로 가져간다. 이 채널에서는 각 콘텐츠에 추천 제품을 태그하고 클릭하면 쇼핑몰로 바로 이동하도록 연동했다.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 공장’의 유튜브 커머스 연동 화면
(출처: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 공장’ 공식 유튜브)
슈퍼챗뿐만 아니다. 유튜브는 멤버십, 슈퍼스티커, 슈퍼땡스 등 팬들이 크리에이터를 직접 후원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만들었다. 월 정기 구독 형태로 운영되는 멤버십은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주목받는다. 크리에이터는 등급별로 차별화된 혜택을 제공한다. 독점 영상, 이모티콘, 커뮤니티 게시물 접근권 등이 대표적이다.
그 때문에 어느 정도 팬덤을 모은 크리에이터의 경우 멤버십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10년 넘게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어온 1세대 크리에이터 ‘양띵’은 충성 구독자와 멤버십 서비스에서 본인만의 차별점을 찾았다. 유튜브에서 게임 영상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 그는 화장품 사업에도 진출했다. 광고 수익 의존도를 줄이고 멤버십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양띵은 멤버십에 가입하는 구독자에게 콘텐츠를 선공개하는 등 유튜브의 다양한 수익화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 양띵은 “채널을 구독하는 확실한 마니아층이 있다”면서 “유료 멤버십 가입자가 조회수나 댓글 수에 비례할 만큼 구독자 맞춤 채널로 운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구독자 265만 명을 보유한 유튜버 ‘침착맨’은 팬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다양한 기업과 협업해 팝업스토어를 열었고, 팬들이 현장을 찾아왔다. 온라인에서 쌓은 팬심이 오프라인 소비로 이어진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과 이커머스의 접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유튜브는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유튜브 쇼핑 전용 스토어’ 기능을 공식 출시하며, 동영상 시청 중 바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이커머스 서비스를 본격화했다. 기성 플랫폼인 쿠팡도 유튜브 콘텐츠에 판매 링크를 연동하기 시작했다. 크리에이터들은 콘텐츠를 통해 직접 제품을 홍보하고 유튜브의 ‘스토어’탭을 활용해 제품을 판매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다.
구독자 80만 명을 보유한 축구 전문 크리에이터 ‘이스타TV’의 경우는 자체 의류 브랜드 ‘클랩스’ 론칭 행사를 라이브 스트리밍해 단 한 번의 방송으로 매출 1억 원을 달성했다. 이는 팬덤이 단순한 응원을 넘어 실질적인 구매력으로 전환되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숏폼 콘텐츠의 강자 틱톡도 ‘팬덤 이코노미’에 뛰어들었다. 틱토커는 수익 창출 기준을 팔로워 5만 명에서 1만 명으로 대폭 완화했고 라이브 방송 중에는 시청자들이 ‘코인’을 구매해 선물을 보내면 크리에이터는 이를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다.
특히 라이브 커머스 분야에서 틱톡의 강점이 두드러진다. 다른 소셜 미디어 앱의 라이브 기능보다 틱톡 라이브는 쇼핑객의 관심을 더 많이 끌어낸다. 짧고 강렬한 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소비 패턴과 맞아떨어진 결과다. 틱톡은 아직 국내에서는 수익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진입 장벽이 낮고 바이럴 가능성이 높아 신인 크리에이터들이 선호하는 플랫폼이다.
요즘 마케팅뿐만 아니라 뉴스 유통에도 영향력이 급상승하고 있는 인스타그램은 팔로워 1,000명만 있어도 릴스 수익, 협찬 제안, 제휴 마케팅 등이 가능하다. 인스타그램은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를 연결해 주는 ‘크리에이터 마켓플레이스’를 도입했고 크리에이터 지원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기프트, 구독, 보너스 프로그램 등 새로운 수익 창출 기능을 선보이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마켓플레이스
(출처: Meta)
인스타그램 기프트는 릴스 콘텐츠를 통해 팬들로부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능이다. 팬들은 앱에서 ‘스타’를 구매해 좋아하는 크리에이터를 응원할 수 있다. 스타는 크리에이터 팔로우 여부와 관계없이 시청 중인 릴스 하단에 있는 ‘기프트 보내기’를 활용할 수 있다. 크리에이터는 릴스에서 발생하는 수익 가운데 팬들로부터 받은 스타 하나당 일정 금액을 정산받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 구독은 독자에게 릴스, 라이브, 스토리 등 독점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게 했다. 구독 요금은 크리에이터가 설정할 수 있으며, 해당 요금을 지불한 구독자가 남긴 댓글이나 DM 옆에는 보라색 왕관 모양의 구독자 배지가 표시돼 일반 이용자와 구분된다.
인스타그램 기프트
(출처: Meta)
이처럼 플랫폼 사이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플랫폼마다 팬덤을 활용한 다양한 수익 모델이 존재하며, 크리에이터들은 여러 플랫폼을 동시에 활용하는 ‘OSMU(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은 기업들도 Z세대를 겨냥해 크리에이터와 팬덤 이코노미를 주목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헬로버블은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인스타그램 릴스 음원을 개발하고 캠페인을 진행한 결과 600만 회 이상의 조회수와 함께 매출이 전월 대비 120% 이상 상승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처럼 브랜드 이미지를 젊고 트렌디하게 변화시키기 위해 크리에이터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사례도 많다.
이처럼 ‘팬덤 이코노미’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존재한다. 크리에이터가 팬들과 직접 연결될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팬 관리’ 자체가 비즈니스 모델이 되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상업화는 팬들의 피로도를 높이고 채널의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팬덤 이코노미가 콘텐츠 생태계와 건강한 관계를 이어가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팬들에게 정보나 재미 등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팬들에게 독점 콘텐츠, 소통 기회, 특별한 경험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팬들이 기꺼이 지갑을 연다. 둘째, 진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팬들은 크리에이터의 진심을 읽어내기 때문에 돈벌이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면 팬덤은 무섭게 돌아선다. 셋째, 꾸준한 커뮤니티 관리가 중요하다. 건강한 팬 문화를 조성하고, 신규 팬 유입과 기존 팬 유지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팬덤 이코노미’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주류 소비자로 부상하면서 이들에게 익숙한 후원과 구독 기반 소비 모델은 더 확산될 것이다. 크리에이터들은 이제 콘텐츠 제작자를 넘어 커뮤니티 운영자이자 비즈니스 경영자의 역할도 해야 한다.
팬덤은 콘텐츠 생태계의 ‘큰 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앞으로는 팬덤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팬들의 열정을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와 연결할 수 있느냐가 크리에이터 콘텐츠 생태계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