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관계가 만들어낸 새로운 경제 질서
2025년의 콘텐츠 시장을 바라보면, 지금 우리가 어떤 전환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창을 통해 전 세계인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플랫폼은 알고리즘으로 개인의 관심사를 정교하게 분류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기술적 연결이 어느 순간 정서적 관계로 전환되며, 전혀 다른 형태의 경제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라고 부르는 구조는 단순한 취미 기반 온라인 활동이 아니라, 그 안에서 형성된 관계의 밀도가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질서다.
글로벌 크리에이터 시장은 2024년 2,100억 달러에서 2025년 2,50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디지털 광고 시장은 2024년 2,586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 두 산업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하는 것이 바로 크리에이터 기반 광고이다. 이 흐름 속에서 광고는 더 이상 노출의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기술로 재구조화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크리에이터(creator)-메시지(message)-이용자(user), 그리고 그 아래에서 작동하는 플랫폼·알고리즘(platform·Algorithm), 관계와 팬덤이라는 다섯 축을 따라 크리에이터 기반 광고전략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림 1]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움직이는 다섯 개의 축
1. 크리에이터(Creator) - 누구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시대
크리에이터 생태계의 가장 뚜렷한 변화는 ‘누구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라는 점이다. 방송사나 기획사를 통하지 않아도, 스마트폰 하나면 자신의 일상, 취향, 경험을 수만, 수십만 명에게 공유할 수 있다. 학생·직장인·부모·운동선수·자영업자 등 기존 미디어 환경에서 주변부에 머물렀던 사람들까지 크리에이터가 되고, 그들의 세계에 공감하는 집단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크리에이터의 힘은 극강의 완성도가 아닌 진정성에서 나온다. 불완전함, 일상의 생생함, 고민, 작은 실패의 기록, 그리고 진솔한 감정은 이용자에게 ‘이 사람과 내가 닮은 구석이 있다’라는 친밀감을 준다. 이 친밀감은 호감을 넘어 신뢰와 응원의 정서로 확장된다. 그렇게 크리에이터는 단순한 콘텐츠 생산자가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는 존재가 되고, 광고는 바로 이 ‘관계의 토대’ 위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2. 메시지(Message) - 형식에서 해방되면 광고도 서사가 된다
크리에이터가 만드는 메시지는 방송 규정이나 제작 관행에 얽매여 있지 않다. 숏폼(short-form)은 빠른 호흡으로 브랜드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롱폼(long-form)은 일상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브랜드를 배치한다. 라이브커머스는 실시간 대화와 상호작용을 통해 광고를 ‘설명’이 아니라 ‘경험’으로 바꾼다. 사진과 글, 브이로그, 리뷰 영상 등 메시지 형식의 조합은 끝없이 확장된다.
이 형식의 자유로움은 광고와 콘텐츠의 경계를 흐린다. 이용자는 “이건 광고이고, 이건 콘텐츠다”라고 따로 분리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일상에 등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메시지가 서사 안으로 흡수될 때 광고는 광고가 아니라 세계관 일부가 된다.
3. 플랫폼·알고리즘(Platform·Algorithm) - 보이지 않는 프로듀서의 등장
크리에이터와 이용자의 관계는 플랫폼과 알고리즘 위에서 형성된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각 플랫폼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콘텐츠를 배치하고, 어떤 콘텐츠를 누가 보게 될지 조율한다. 알고리즘은 단순 추천 시스템이 아니라, ‘광고가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문맥을 설계하는 프로듀서’와 같은 존재다.
유튜브는 조회수, 시청 시간, ‘좋아요’, ‘싫어요’ 등 800억 개 이상의 데이터 포인트를 활용해 시청자에게 개인화된 콘텐츠를 제공한다. 인스타그램은 독창적인 콘텐츠, 라벨 추가 등을 통해 노출을 원활하게 해준다. 틱톡은 좋아요, 댓글, 공유 등이 활발하거나, 동영상 시청 시간이 많은 경우에 콘텐츠 노출이 활발해질 수 있다. 광고는 이 맥락 위에서 노출되기 때문에, 알고리즘의 리듬과 흐름을 읽지 못하면 설득력 있는 광고 설계가 어렵다.
흥미로운 점은 크리에이터 역시 플랫폼에 종속되지만 동시에 그 플랫폼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자신만의 팬덤 거점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플랫폼과 크리에이터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공진화 관계에 놓여 있다. 그리고 광고는 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유통되며, 플랫폼 생태계 전체를 활력 있게 만든다.
4. 이용자(User) - 구매자가 아니라 관계 주체로 등장하다
크리에이터 생태계에서 이용자는 단순한 구매자가 아니다. 이들은 콘텐츠의 이용자이면서 팬이자 지지자이며, 때로는 크리에이터의 삶에 감정적으로 참여하는 관계적 주체다.
이들은 제품의 성능부터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와 연결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쓴다’라는 사실에 반응한다. 브랜드가 크리에이터의 일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크리에이터가 제품을 사용할 때 어떤 표정과 감정이 드러나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들은 제품의 스펙보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쓰는가’에 반응한다. 크리에이터의 표정, 말투, 일상의 맥락 속에서 제품이 어떻게 쓰이는지가 소비의 기점이 된다. 이때 구매는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응원과 참여의 표현이다. 팬들은 ‘이 제품을 사면 크리에이터에게 도움이 된다’라는 정서적 동기를 갖고 결제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비 구조에서는 소비자가 시장의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 된다. 팬덤은 크리에이터의 세계관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이며, 이들이 모이는 지점이 곧 시장이 된다. 이는 광고전략이 단순히 ‘메시지를 보내고 반응을 지켜보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함을 의미한다.
5. 관계·팬덤(Relationship·Fandom) - 관계가 쌓이면 시장이 열린다
관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크리에이터의 일상·감정·서사를 꾸준히 따라가며 이용자는 자신의 마음을 얹고, 어느 순간 그 세계관의 일부가 된다. 감정의 깊이가 응원과 연대로 확장될 때, 우리는 이 집단을 ‘팬덤’이라고 부른다.
팬덤은 단순 팔로워의 합이 아니다. 광고 입장에서 보면, 팬덤은 브랜드 메시지를 자발적으로 확장하는 확성기이자, 크리에이터의 경제적 기반을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다. 팬덤 구성원은 광고를 하나의 콘텐츠처럼 즐기며, 서로에게 공유하고, 구매 경험을 나누고, 응원 행동을 이어간다. 브랜드는 팬덤 안에서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는다.
따라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기술이 키운 시장이 아니라, 관계의 축적이 키운 시장이다. 관계가 깊어지면 팬덤이 생기고, 팬덤은 다시 광고의 효과를 증폭시키고, 광고는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을 강화한다. 이 선순환 구조가 지금의 크리에이터 기반 광고를 지탱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크리에이터 광고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산업적·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우선, 타깃팅의 정교함이다. 크리에이터 팬덤은 이미 관심사·라이프스타일·소비성향을 기준으로 스스로 구성된 집단이기 때문에, 별도의 복잡한 타깃팅 설계 없이도 광고 메시지가 높은 적합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인구통계 기반 타깃팅보다 훨씬 강한 예측력을 가지며, 광고주로서는 ‘낭비 없는 도달’을 확보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구조다.
두 번째는 전환의 즉시성이다. 크리에이터 콘텐츠는 소비와 구매의 동선이 플랫폼 내부에서 하나의 경험처럼 통합되어 있다. 숏폼에서의 제품 태그, 라이브 커머스에서의 실시간 추천, 스토어 링크로의 원클릭 이동은 모두 광고-관심-구매를 한 화면 안에서 해결하도록 설계된다. 이 같은 즉시성은 기존 TV·디지털 배너 광고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의 소비 전환이며, 실제로 크리에이터 캠페인의 구매 전환율이 빠르게 상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광고 효과의 감정적 파급력이다. 팬덤은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를 단순히 소비하는 집단이 아니라, 크리에이터와 정서적 관계를 형성한 공동체 단위다. 이들은 광고를 하나의 정보가 아니라 ‘관계의 확장’으로 받아들이며, 크리에이터가 브랜드를 소개하는 순간 그 메시지는 신뢰와 서사라는 정서적 자산을 얻는다. 팬덤은 광고를 능동적으로 공유하고 재해석하며 확산시킨다.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설득 과정이 된다. 브랜드는 크리에이터가 구축한 신뢰의 인프라를 타고 자연스럽게 팬덤 내부로 부드럽게 진입한다. 광고는 더 이상 설득의 기술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 설득 모델로 전환된다.
결국 크리에이터 광고는 기존 광고전략의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타깃팅·전환·파급력이 분리된 단계가 아니라, 관계를 매개로 유기적으로 흐르는 하나의 구조로 재편되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확장은 단순히 채널의 다변화를 넘어, 광고의 중심이 서서히 ‘노출의 양’에서 ‘관계의 질’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용자와 광고비가 머무는 지점은 점점 크리에이터와 팬덤이 구축한 공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방송·OTT 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광고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예전과는 다른 구조를 띠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 속에서 방송·OTT 광고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크게 네 가지다. 먼저, 관계 기반 타깃팅 모델이 필요하다. 시청률이라는 단일 지표만으로는 이용자가 어떤 정서와 맥락 속에서 움직이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이어서 세계관 중심의 브랜디드 콘텐츠가 중요해진다. 브랜드는 단순히 삽입되는 존재가 아니라, 콘텐츠의 서사와 세계관을 함께 구성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또한 AI 기반 맥락·감정 광고 기술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OTT 콘텐츠의 장면 중 감정·톤·상황을 분석해 광고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방식은 크리에이터 광고에서 이미 증명된 ‘맥락 기반 설득’을 방송 환경에 적용하는 과정이다.
이처럼 맥락·세계관·감정 중심의 전략이 강화될수록, 이를 실제로 받아들이고 확대하는 이용자 집단의 중요성 역시 커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팬덤 분석과 커뮤니티 전략이 필요하다. 팬덤은 콘텐츠와 브랜드를 동시에 움직이는 정서적·경제적 기반이며, 관계 기반 광고 효과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핵심 축이다.
이런 흐름을 하나로 모아보면, 오늘날 광고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자연스레 드러난다. 기술은 연결을 만들고, 관계는 시장을 만들며, 팬덤은 광고의 힘을 키운다. 광고전략은 이러한 변화의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조정될 필요가 있다. 방송·OTT 산업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광고를 단순한 노출의 산업이 아니라, 관계를 설계하는 산업으로 바라보는 관점 전환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이미 그 방향을 선명하게 비추며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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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giit (2025.11.18). How TikTok’s algorithm affects content visibility and engagement strateg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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