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의 글로벌 진출 전략과 성과

2025년 10월, CJ ENM은 글로벌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그룹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Warner Bros. Discovery)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번 파트너십으로 2026년 초, HBO Max 내에 티빙 브랜드관이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홍콩, 대만,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태평양 17개 지역 이용자가 곧 HBO Max 안에 있는 티빙 브랜드관을 통해 K-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게 된다1). 11월에는 티빙이 일본 시장을 겨냥해 디즈니플러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제 일본 이용자들도 티빙 컬렉션(TVING Collection)이라는 브랜드관을 통해 CJ ENM의 대표 작품과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 2025년을 해외 시장 공략의 원년으로 선언한 티빙은 이처럼 다양한 지역에 전진기지를 설치하며 글로벌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에 새삼 대내외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콘텐츠가 아닌, 플랫폼 진출이라는 새로운 공략법을 선보인 데 있다.

티빙은 각 지역에서 이미 기반을 다진 글로벌 사업자들의 손을 잡고 해외로 진출하는 전략을 택했다. 해당 지역에서 일정 수준의 이용자와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한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과의 전략적 동맹을 선택한 것이다. 이 동맹에서 티빙은 콘텐츠와 플랫폼의 동반 수출이라는 새로운 해외 시장 공략법을 내놨다. 티빙이라는 플랫폼을 브랜드관 형태로 편성하는 일종의 숍인숍(shop-in-shops) 방식을 통해 K-OTT 자체를 글로벌 이용자들에게 알릴 수 있게 한 것이다. 기존의 콘텐츠 라이선스 판매 방식이나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D2C(Direct-to-Consumer) 방식이 아닌, 브랜드관 진출 전략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브랜드관이 현시점 국내 OTT 플랫폼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도 현실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숍인숍 방식은 호스트 사업자(파트너사)와 입점 브랜드(티빙) 양자 모두가 이익을 취할 수 있을 때 성립된다. 이번 파트너십도 마찬가지다. 티빙의 브랜드관 진출로 HBO 맥스, 디즈니플러스 등 파트너사는 기존 구독자들에게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고객 이탈을 방지하고, K-콘텐츠 팬덤을 신규 구독자로 편입시키는 이점을 얻었다. 티빙도 전략적 차원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거두었다. 우선, 로컬 플랫폼 사업자가 가진 인프라와 인지도 활용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해외 진출 초기, 운영과 마케팅에 수반되는 비용을 절감하고 시장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게 됐다. 일정 수준의 가입자 확보 전까지는 수익이 발생하기 어려운 직접 진출 방식(D2C)과 달리, 이미 확보된 고객에게 콘텐츠를 서비스함으로써 단기적인 수익도 창출할 수 있다. 지역 이용자들의 취향과 선호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는 것도 주요한 이점이다. 신규 진입의 리스크는 완화하면서도 시장에 대한 경험치를 쌓아, 콘텐츠와 플랫폼에 대한 전략을 효율적으로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브랜드관을 통한 해외 진출 전략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숍인숍 방식이기 때문에 규모 성장에 한계가 명확하다. 또, 자칫 로컬 파트너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브랜드가 종속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브랜드관 전략은 각 지역 이용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초기 시장 진입 수단으로 활용하되, 장기적으로는 독자적 플랫폼으로서의 시장 기반 확보를 위한 전략 병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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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오리지널 <친애하는 X> 메인 포스터

(출처: 티빙)

브랜드관을 통한 티빙의 해외 진출 시도는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25년 11월 6일, 글로벌 론칭한 티빙 오리지널 <친애하는 X>는 홍콩·인도네시아·필리핀·대만 등 7개 국가의 HBO Max에서 TV쇼(show) 부문 일간 순위 1위를 석권했으며(채성오, 2025.11.10), 일본 디즈니플러스에서도 1위에 등극하는 등 고무적인 성적을 보여주었다(FlixPatrol, 2024.11.22 기준). 물론, 아직은 각 지역에서 K-콘텐츠가 가진 가능성을 확인한 수준이다. 그러나 선공개 콘텐츠로 거둔 성과라는 점, 향후 본격적인 콘텐츠 공급을 통해 티빙이라는 플랫폼 브랜드가 해외 이용자들에게 각인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티빙의 글로벌 진출과 콘텐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

그렇다면, 티빙은 왜 글로벌로 나아가기를 택했을까. 그것도 플랫폼으로. 사실, 콘텐츠가 아닌 플랫폼을 해외 시장에 안착시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콘텐츠를 해외 시장에 유통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해외 진출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국내시장에서 넷플릭스(Netflix)를 상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해외 진출보다는 내부 단속에 신경 쓸 때라는 목소리도 있다. 모두 티빙이 처한 냉정한 현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넷플릭스라는 거대 공룡을 상대하기 위해서, 티빙으로 대변되는 국내 OTT 플랫폼의 해외 진출이 필요한 것이다.

넷플릭스가 불러온 제작비 인플레이션은 이제 산업 전반이 공감하고 고민하는 문제가 됐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제작비 상승으로 인한 콘텐츠 투자·제작 시장의 위축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2024년 상반기 기준, 국내 드라마 제작비는 평균 200억 원 ~ 300억 원을 웃돈다. 2018년 이후 국내 드라마의 평균 제작비는 약 344억 원, 회당 제작비는 약 31억 원 수준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적게는 2~3배, 많게는 4~5배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유진희, 2024).

문제는 이렇게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콘텐츠를 만들어도 제작비를 회수(recoup)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데 있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유통력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치솟는 제작비를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 콘텐츠의 제작비 회수율은 110~120%이지만, 넷플릭스의 선택을 받지 못한 대다수의 콘텐츠는 방송사를 경유하는 경우 평균 70% 내외, 로컬 OTT 오리지널로 제작된 경우에는 40~50% 수준으로 떨어진다(조영신, 2025.11.12). 국내 플랫폼을 통한 유통만으로 콘텐츠 제작비 회수가 불가한 이유는 내수 시장 건전성이 악화된 데에 있다. 주요 사업자들의 광고 수입과 매출이 급감하면서, 내수 시장은 넷플릭스가 급격히 올려놓은 제작비를 소화할 만큼 성장하기는커녕 점점 더 위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콘텐츠 제작자들의 넷플릭스 의존 현상은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넷플릭스조차 한국 시장의 급격한 제작비 인상에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한국 대비 주연 배우 몸값이 낮은 일본 시장에 주목하고 있으며(강지원, 2025.7.9), 태국 콘텐츠에 4년간 약 2,8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는 등(박진형, 2025.9.7) 새로운 콘텐츠 허브를 모색 중이다. 국내 콘텐츠 시장의 넷플릭스 의존도를 고려할 때, 이러한 변화가 생태계 전반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절대 가볍지 않다. 제작비 인플레이션으로 연간 콘텐츠 제작 편수는 이미 줄어들고 있으며(노가영, 2025.1.2), 이는 콘텐츠의 규모와 다양성 약화, 제작사 양극화 심화, 고용시장 위축으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을 촉발할 수 있다. 결국 콘텐츠 생태계 전반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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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2022년 이후 한국 드라마 제작 편수

(출처: 한국드라마제작협회, 노가영(2025.1.2))

이러한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넷플릭스를 대체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유통처가 필요하다. 티빙이 글로벌 진출을 추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넷플릭스의 독주 체제를 견제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자립해 국내외 유통망 독점을 해체하고, 유효한 경쟁 구도를 조성해 국내 콘텐츠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국내외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한다. 경쟁력 있는 자체 유통 플랫폼이 확보되면 한국 콘텐츠가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협상력이 생기고, 제작사들을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창작자들이 지속적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게 된다. 결국 티빙의 해외 진출은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한국 콘텐츠 생태계 전체의 자생력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적 시도인 것이다.

토종 OTT 플랫폼의 글로벌 진출을 기대하며

티빙이 브랜드관 활용 전략으로 글로벌 진출의 기반을 구축하고 있지만, 넷플릭스에 대항할 오롯한 글로벌 플랫폼으로 자립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구조를 바꾸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른다면, 콘텐츠 생태계의 위기는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토종 OTT 플랫폼의 글로벌 진출은 단순한 해외 시장 개척을 넘어, 넷플릭스 중심의 유통 독점 구조를 해체하고 한국 콘텐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글로벌 사업자들과의 동행을 택한 티빙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콘텐츠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할 초석을 두는 셈이다.

다만,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현재 시행 중인 세제지원과 펀드 조성 등의 금융투자 제도를 비롯해, 인프라 구축과 같이 플랫폼의 해외 진출에 필수적인 분야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 더불어, 한국 콘텐츠가 해외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콘텐츠 불법 유통 문제를 해결하고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 또한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처럼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영역에서 정부의 실효적인 지원이 함께한다면, 비로소 K-콘텐츠 생태계의 정상화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민·관의 협력 속에서 티빙이 K-콘텐츠 생태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주석
  1. 1) 현재는 일부 콘텐츠가 HBO Max에 콘텐츠 단위로 선공개 되어있다.
전은선

전은선
(CJ ENM 전략지원팀)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과에서 언론학 박사를 취득했다. 홈초이스 전략사업팀 팀장을 거쳐 CJ ENM 전략지원팀에 합류했다. 이용자 데이터 분석 기반의 미디어 브랜딩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최근에는 한국 미디어·방송 산업과 정책을 중심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