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오징어 게임> 이후 또 하나의 게임 체인저

2025년 한 해 글로벌 OTT 콘텐츠 최고의 히트작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하 케데헌)>라는 것에는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케데헌> 현상이라고 불릴 만한 이 작품의 전 세계적 인기에서 주목할 지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로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한번이 아닌 여러 번 시청했다는 점, 둘째로 영상 자체뿐만 아니라 영상에 삽입된 음악 및 그 속에서 묘사되는 다양한 한국의 전통·현대 문화가 큰 인기를 누렸다는 점이다. 가령 미국의 유명 매체 《뉴욕타임스(NYT)》의 한 기자는 자신이 <케데헌>을 6-7회 시청했으며 볼 때마다 이 작품에 새롭게 매료되지만, 이 정도 횟수는 열성팬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1) 또한 삽입곡 <골든(Golden)>은 미국과 영국 싱글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그 외에 <소다 팝(Soda Pop)>이나 <테이크다운(Takedown)> 등의 수록곡도 큰 사랑을 받았다. 더불어 전통 민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호랑이 더피와 눈이 여섯 개 달린 까치 수지(서씨) 등과 같은 전통문화 기반 캐릭터와 김밥, 설렁탕, 컵라면 등 작중 인물들이 즐겨 먹는 음식, 서울의 현대적인 풍경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케데헌>의 대성공 방식 및 이어지는 후폭풍이 과거 <오징어 게임>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도 흥미롭다. 우선 두 콘텐츠 모두 제작 당시에는 제작진과 넷플릭스 측 누구도 이 작품들이 이렇게 크게 성공하리라 예상하지 못했지만, 공개 직후 넷플릭스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을 만큼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에서 묘사되는 한국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모습이 글로벌 수용자들의 관심을 끌며 큰 화제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두 작품 모두 한국과 관련된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그 자체로 하나의 인기 콘텐츠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후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의 잇따른 등장을 끌어냈다. 가령 <케데헌>의 성공 이후 소셜미디어상에서 <케데헌> 속 주인공처럼 김밥을 통째로 먹는 장면을 따라 하는 김밥 한 입 먹기 챌린지가 유행한 것은2) <오징어 게임>의 인기 덕분에 해외에서 달고나 만들기 도구가 판매되고, 소셜미디어에서 달고나 잘 떼어내기 챌린지가 유행했던 것과 매우 흡사하다. 또한 <오징어 게임> 이후 넷플릭스가 <지금 우리 학교는>, <더 글로리> 등의 한국 사회와 문화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잇달아 공개하며 큰 성공을 거두고 애플TV플러스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파친코>를 공개하여 큰 화제를 모은 것처럼, <케데헌>의 성공으로 인해 글로벌 미디어 회사들이 다양한 K-팝 관련 콘텐츠 제작과 배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이처럼 <케데헌>은 K-콘텐츠의 판도를 바꾸었다라고 일컬어지는 <오징어 게임>3) 이후 다시 한번 K-컬처의 게임 체인저가 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한국 사회와 문화 전반을 소재로 삼았던 드라마 시리즈들과는 달리 <케데헌>이 일으킨 흐름은 K-팝이라고 하는 특정 음악 장르이자 문화 스타일을 중요한 콘텐츠 소재이자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K-팝 스타일을 하나의 콘텐츠로: <케이팝드>와 <파세 아 라 파마>

애플TV플러스에서 지난 2025년 8월 공개한 음악 경연 서바이벌 프로그램 <KPOPPED (이하 케이팝드)>는 이와 같은 흐름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실 <케데헌>이 공개되기 전인 2025년 2월 이미 제작이 확정되었던 <케이팝드>는, 글로벌 팝스타들과 인기 K-팝 아이돌 그룹의 협업을 통해 경연 무대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제작 발표 단계부터 이미 글로벌 K-팝 팬들의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미경 CJ 부회장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198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와 2020년대의 대표적인 여성 래퍼 메건 디 스텔리언(Megan Thee Stallion)이 함께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또한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 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 보이즈 투 맨(Boyz II Men), 티엘시(TLC), 보이 조지 (Boy George) 등 과거 수백만 장의 앨범을 판매하며 한 세대를 풍미했던 중견급 가수들과 있지(ITZY), 에이티즈(Ateez), 키스 오브 라이프(Kiss of Life) 등 현재 국내외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현역 K-팝 그룹들이 함께 무대를 보여준다는 점은 비단 K-팝 팬뿐만 아니라 일반 음악 팬에게도 호소력을 지닐 수 있는 요소였다. 특히 K-팝이 글로벌 음악 산업에서의 성공적인 음악적·상업적 성과와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충성도 높은 팬덤 외부의 대중에게는 진입 장벽이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에서, <케이팝드>는 전 세계적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팝 스타와의 협업을 통해 K-팝 가수들이 더 많은 대중에게 노출되고 그들의 음악적 실력을 보여줄 기회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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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드> 있지와 스파이스 걸스의 무대

(출처: 애플TV플러스)

<케이팝드> 외에도 K-팝을 소재로 삼은 글로벌 콘텐츠의 또 다른 최근 사례로는 라틴 아메리카의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파세 아 라 파마(Pase a la Fama)>가 있다. 미국 방송 매체 NBC 유니버설 산하의 스페인어 방송사 텔레문도(Telemundo)와 K-팝 대형 기획사 하이브가 협업하여 제작·방송한 <파세 아 라 파마>는, 미디어 산업과 K-팝 기획사와의 협업을 통해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해 가수로 성장시키는 기존 K-팝 산업의 전략과 형식을 해외 무대에 적용해 콘텐츠로 만든 사례다. 물론 2020년 JYP가 일본 소니 뮤직과 손잡고 일본 지상파 방송사 니혼테레비(NTV)를 통해 방영했던 니지 프로젝트를 비롯해, 해외에서 K-팝 스타일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숨은 보석을 찾아내 K-팝 가수로 만드는 콘텐츠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동아시아나 영어권이 아닌, 잠재력은 인정받고 있지만 여전히 K-팝의 주요 시장이라고 하기 어려운 라틴 아메리카에 K-팝의 형식을 활용한 콘텐츠를 방영하는 것은 비교적 모험이었다. 하이브에서는 현지 문화를 기반으로 K-팝을 결합한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파세 아 라 파마>를 통해 최종 선발된 6인조 밴드 무사(MUSZA)는 지난 9월 하이브 라틴 아메리카의 신규 레이블 시엔토 레코즈를 통해 데뷔곡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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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세 아 라 파마> 포스터와 최종 선발된 밴드 무사

(출처: IMBd, 텔레문도)

<케이팝드>와 <파세 아 라 파마>는 애플TV플러스나 NBC 유니버설 같은 글로벌 미디어 기업에서 한국의 문화, 특히 이미 세계적으로 성공한 K-팝 문화를 주요 소재이자 형식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또한 K-팝 관련된 콘텐츠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중국과 일본 등지로의 프로그램 포맷 수출 성공을 통해 이미 국제적인 경쟁력이 입증된 오디션 경연 대회 형식을 채택했다는 점 역시 비슷하다. 이는 이제 K-팝이 음악과 뮤직비디오, 공연, 관련 상품 (굿즈) 판매처럼 음악 장르로서 소비되는 것을 넘어 K-팝을 둘러싼 문화 스타일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콘텐츠이자 글로벌 미디어 산업에서 주목하는 독자적인 세계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수용자들의 상반된 반응: 얼만큼 K-팝을 이해하고 만들었는가?

그런데 <케이팝드>와 <파세 아 라 파마>에 대한 해외 수용자들의 반응은 다소 달랐다. 제작 발표 당시부터 화제가 됐던 <케이팝드>는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케데헌>의 후광에 힘입어 공개 직전 더욱 큰 기대를 받았고, 그 결과 8개 에피소드 전체가 공개된 직후 총 99개국에서 애플TV플러스 시청 순위 10위권에 드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이 걷힌 상태에서의 <케이팝드>에 대한 사후 평가는 다소 엇갈렸다. 일부에서는 과거의 팝 스타와 현재 K-팝 음악의 결합이 보여준 의외성과 화려한 무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나,4) 협업한 외국 가수와 K-팝 가수 간의 화학적인 결합이 부족했으며 특히 중견 외국 가수들이 K-팝 문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주저하는 것 같다는 비판도 나왔다.5) 실제로, <케이팝드>에서 가수들이 보여준 합동 무대는 분명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처음에 기대했던 적극적인 장르 혼합이나 외국 팝스타들의 과감한 K-팝 배우기 시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특히 전설적인 팝스타들과 K-팝 가수들의 퍼포먼스가 잘 결합되지 않은 부분이 눈에 띄는데, 이는 해외 팝스타들이 적극적으로 K-팝 콘텐츠에 참여하기보다는 일종의 보여주기 식으로 함께 했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반면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시작된 <파세 아 라 파마>에 대한 라틴 아메리카 해외 팬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이 프로그램은 첫 방송부터 동 시간대 스페인어 방송 시청률 1위를 기록했으며, 이후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며 해당 지역 수용자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6) 특히 이 프로그램은 타깃 시청자이자 K-팝의 주요 소비층인 18~49세 성인 시청자 사이에서 더욱 높은 인기를 누리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7) 여기에는 K-팝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 콘텐츠 특유의 긴장감과 참가자들의 성장 서사, 무대에서 보여주는 풋풋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퍼포먼스, 현지의 전설적인 음악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깊이 있는 조언을 통한 시청자의 공감 등을 잘 재현해 낸 것이 큰 역할을 했다. K-팝 콘텐츠가 글로벌 수용자들에게 갖는 호소력을 잘 이해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 <파세 아 라 파마>의 접근법은, 글로벌 팝스타와 K-팝 아이돌 그룹의 결합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가지고도 K-팝 문화와 스타일에 대한 해외 제작진과 참가자들의 이해가 부족해 엇갈린 반응을 얻었던 <케이팝드>와 대조된다.

나가며

<오징어 게임>이 한국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로 글로벌 수용자의 주목을 받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면, <케데헌>은 K-팝 관련된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큰 관심을 받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K-팝과 그것을 둘러싼 문화가 중요한 콘텐츠 소재이자 형식이 되었다고 해도 콘텐츠의 성패는 결국 그 세계를 얼마나 충실히 이해하느냐의 여부, 그리고 그것을 글로벌 보편성과 K-팝적(的) 특수성을 잘 결합해 수용자의 취향에 맞게 재현해 낼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케데헌>의 성공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규탁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국제학과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언론정보학과에서 석사 학위, 美 조지메이슨대학교(George Mason University)에서 문화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글로벌 K-컬처 센터 센터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 선정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류탐색』(공저, 2024), 『Z를 위한 시: Post-BTS와 K-pop의 미래』(2023), 『갈등하는 케이, 팝』(20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