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더 익스피리언스’라는 이름으로 자사 콘텐츠의 화면 밖 체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진행해 왔다. 2022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약 980평의 대규모 <기묘한 이야기> 체험 공간을 설치한 게 대표적이다. <기묘한 이야기> 주인공이 된 참여자가 직접 호킨스 연구소에 들어가서 수면 실험에 응하고 관련 임무를 수행한다는 설정이다. 시리즈와 유사한 악몽의 세계가 전개되거나 괴물이 등장하는 등 3D를 활용한 상호작용 형식의 어드벤처가 전개된다. 체험을 종료한 뒤에는 80년대 미국 스타일로 꾸며진 인테리어 공간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식음료를 먹으며 굿즈를 구매하는 등 시간을 보낸다. <기묘한 이야기> 팝업은 44 달러($)의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해 캐나다 토론토, 프랑스 파리를 거쳐 2024년 핼러윈 시즌이었던 9~11월 우리나라 에버랜드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전개될 수 있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설치된 <기묘한 이야기> 더 익스피리언스
(출처: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더 익스피리언스 공식 홈페이지)
넷플릭스 최고 흥행작인 <오징어 게임>의 경우 보다 특색 있는 체험 이벤트를 진행했다. 시리즈 2편 공개를 앞둔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무려 456명이 참여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진행한 것이다. 사전에 유튜버나 인플루언서 등 SNS 영향력이 큰 사용자를 모집했고, 행사 당일 현장 참여자에게 시리즈 속 주인공과 동일한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게 한 뒤 게임을 진행하도록 했다.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공공장소에서 대규모 인원이 게임에 참여하는 기획이었던 만큼 관련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던 거리의 시민 다수의 관심까지 끌 수 있었고 SNS에 전파되며 시리즈 공개 전 충분한 화제를 일으켰다.
넷플릭스는 이런 화면 밖 체험 전략이 자사 브랜드 세계관 구축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보고 이를 상시로 전개할 수 있는 테마파크 ‘넷플릭스 하우스’도 개장했다. 디즈니랜드,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유사한 상설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이달 첫 개장한 필라델피아점의 경우 약 3,000평에 달할 만큼 대규모다. 이곳에서는 <기묘한 이야기>와 <오징어 게임>은 물론이고 <웬즈데이>, <브리저튼>, <나이브스 아웃> 등 흥행 IP의 세계관이 체험 콘텐츠로 구현된다. 참여자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영상이나 작품 콘셉트를 계승하는 방 탈출 게임 등이 마련되고 식음료 매장, 공식 굿즈숍까지 설치했다. 넷플릭스 하우스는 다음 달 댈러스에 이어 2027년 라스베이거스에서도 문을 열 계획이다. 넷플릭스 최고 마케팅 책임자 마리안 리는 최근 개장한 필라델피아점을 찾아 “팬들이 이곳에 오면 익숙한 요소들이 분명 있겠지만 단순히 쇼를 (똑같이) 현실로 옮겨 놓기만 한 공간은 아니다”라고 설명하면서 “팬들은 우리가 그 이야기를 어디까지 확장해 나가고 있는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1)이라고 말했다.
2024년 일본 시부야에 있는 대형 츠타야 서점에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마지막 경기인 산왕전을 모티브로 한 농구 코트가 재현됐다. 방문자가 직접 북산 소속 농구선수가 돼 슛을 쏘는 역동적인 포즈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구현했는데, 사방을 둘러싼 스크린을 통해 경기 장면까지 재현하면서 현장감을 한층 강화했다. 같은 건물에는 사전 예약으로 입장 가능한 식음료 매장도 마련됐는데 안 선생님 얼굴 모양의 빵 등 콘셉트에 맞는 여러 먹거리를 판매하며 팬들의 환심을 샀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공식 굿즈숍이 워낙 큰 인기를 끌면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을 순회했는데 이곳에도 작품 포스터, 북산의 붉은색 농구 유니폼, 등장인물 피규어, 키링 등을 판매하는 공식 굿즈숍이 설치돼 방문객을 줄 세웠다.
일본 시부야 츠타야 서점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전시
(출처: 츠타야 서점 공식 홈페이지)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전시 체험과 함께 화면에만 존재하던 가상의 물건을 실제 물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굿즈 전략’도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세계관에 빠져든 이들은 전시장을 찾은 뒤 그곳에 마련된 고품질 한정판 굿즈를 구매하며 다시금 작품에 결속할 기회를 얻고, 제작사와 배급사는 무시할 수 없는 추가 매출까지 확보하게 된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시리즈나 <극장판 주술회전> 시리즈 등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흥행한 작품들 역시 개봉 시점마다 시부야를 비롯한 일본 각지에서 굿즈를 동반한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전시를 열었다.
이로 인한 매출은 단순히 세계관을 즐기는 팬들의 애교스러운 후속 활동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시장조사 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상품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54억 1천만 달러(한화 약 7조 9,000억 원)로 추정되는데, 2030년에는 약 93억 6천만 달러(한화 약 13조 6,8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2)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 차지하는 게 피규어(38%)3)이고 유니폼과 티셔츠 등 의류가 그다음을 차지하는데, 이는 모두 <더 퍼스트 슬램덩크>, <극장판 귀멸의 칼날>, <극장판 주술회전>이 팝업 전시 등을 통해 취급했던 품목이다. <귀멸의 칼날>의 경우 단일 회계연도에 1,000억 엔(한화 약 9,400억 원) 이상의 캐릭터 상품 판매를 달성하면서 박스오피스 수익을 훨씬 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4)는 분석이 나올 정도라서, 작품 세계로 팬을 홀린 제작사와 배급사가 화면 바깥에서 벌이는 전시 및 굿즈 마케팅으로 다시 한번 거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구조를 확보하게 된 셈이다.
K-콘텐츠 역시 체험형 콘텐츠를 확대하는 양상이다. 좀비물 <지금 우리 학교는>은 지난해 가을 핼러윈 시즌을 맞아 용인 에버랜드에서 공포 체험형 콘텐츠 코스를 구성해 방문객을 맞았다. 참여자가 특수분장 전문가의 손길로 좀비 분장을 경험하고, 어두운 실내에서 좀비를 피해 탈출하는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지난 9월부터는 이곳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테마 존도 문을 열었다. 한옥 대문을 통해 입장한 뒤 영화 장면을 상영하는 대형 스크린과 캐릭터 포토존, 미션형 체험장, 굿즈숍과 식음료장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한 달 방문객이 15만 명을 넘어섰다5)는 보도가 나왔다. 팝업 성지로 불리는 성수동에서도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오징어 게임>의 ‘구슬치기‘, ‘보물 찾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오징어 게임: 더 익스피리언스’ 전시장이 마련된 바 있다.
에버랜드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 테마존
(출처: 에버랜드 보도자료)
이성민 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부교수는 “체험형 콘텐츠가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마케팅 전략은 아니지만 코로나 이후 오프라인 경험에 대한 기대치가 회복되면서 최근 들어 더 크게 확장되는 흐름인 건 분명해 보인다”라면서 “IP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걸 다중 감각으로 누리고 싶어 하는 게 팬들의 속성이라고 볼 때 넷플릭스를 비롯한 다양한 IP 비즈니스 기업들이 팬들의 본연적인 욕망을 건드리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과거에는 방송이라는 매스미디어 단위에서 유행하던 작품을 소비하는 문화였다면 이제는 각자 취향에 따라 세분화된 문화를 깊게 소비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라면서 “한 작품을 오랜 기간 서비스해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IP 비즈니스 기업으로서는 이런 상황에서 한 콘텐츠를 통해 동원할 수 있는 팬들이 어느 규모인지, 또 시장 규모는 얼마만큼 되는지 테스트해 볼 수 있는 만큼 당분간 이 같은 체험형 콘텐츠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 1) Alex Weprin Plus Icon(2025.11.11), ‘Inside Netflix House: A Big Bet On Experiential Entertainment’, <Hollywood reporter>
- 2) Grand View Research(2024.2), ‘Japan Anime Merchandising Market’
- 3) Research and markets(2024.2), ‘Japan Anime Merchandising Market Size, Share & Trends Analysis Report By Product (Figurine, Clothing, Books), By Distribution Channel (Online, Offline), And Segment Forecasts, 2024 – 2030’
- 4) Nova One Advisor(2025.4), ‘Japan Anime Merchandising Market Size, Share & Trends Analysis Report 2024-2033’
- 5) 배근미(2025.10.27),‘케데헌 속 세계 구현된 에버랜드, 한 달 간 15만명 찾았다’, <이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