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코로나19 팬데믹 아래서 메타버스는 시대상으로 떠올랐다.
그 기대는 현재에도 유효할까.
기대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열광적이던 지난 수년간과 비교하면 온도가 낮아졌음이 발견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메타버스 시대를 이끌 핵심 주자로 주목받았던 게임산업에서는 메타버스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점검해 봤다.
“메타버스(metaverse)”라는 단어는 여전히 무엇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가상의 공간, 상호작용, 현실과의 결합 등 많은 요소들이 메타버스의 일부분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메타버스를 명확하게 이해시킬 명제를 제시한 이는 없다. 그러다보니 메타버스를 바라보는 이들의 인식도 제각각이다. 우리 삶의 미래상이라며 낙관하는 시선과 또 하나의 버즈 워드(buzz word)일 뿐이라는 관점이 부딪치는 상황이다.
그런데 게임업계에서는 메타버스를 다른 분야보다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소프트웨어 개발사 퍼포스(Perforce)가 게임 개발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49%는 NFT가 게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거나 아예 없을 것이라고 응답했다.1 반면 메타버스에 관해서는 56%가 실제로 파급력 있는 기술이라고 확신한다고 응답했다. 부정적응답은 39%로 NFT 대비 10%p 적었다. 퍼포스는 게임 개발자들이 메타버스에 대해서 NFT 대비 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로 “몰입적이고 재미있는 경험”을 추구하는 게임과 메타버스의 지향이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2
업계의 메타버스에 대한 상대적 호의는 메타버스를 설명하는 개념들이 모두 게임 영역에서는 이미 익숙하거나, 비슷한 형태로나마 구현된 사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업계는 메타버스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불신은 드러낼지언정, 게임을 촉매로 하여 메타버스가 제시하는 미래 생활상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분위기다.
게임산업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주요 기업의 경영진은 여전히 메타버스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메타버스의 구체적인 개념을 제시하거나 실현 가능성을 전망하기보다는 메타버스와 게임 간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메타버스라는 표현이 대중에 본격적으로 알려지던 당시에도 메타버스를 설명하는 요소들이 이미 일부 게임 장르에서는 익숙한 개념이라는 다수의 지적이 있었다. 가상의 공간, 상호작용, 그리고 현실과의 결합 등 메타버스를 설명해 온 개념들이 이미 게임에서는 보편적으로 다루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성공적인 가상현실 공간으로 평가받는 멀티 플레이어 온라인 게임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의 개발자 필립 로즈데일(Philip Rosedale)은 메타버스가 대부분 허세와 과장이라며 경계의 태도를 내비치면서도, 단순히 거짓으로 치부하기에는 업계가 미래 변화상을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고민해 볼 사안이라는 입장에 서 있다.
로즈데일은 향후 메타버스의 도래에 준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몰입형 온라인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컨드 라이프>의 핵심 요소인 이용자 간 협력, 경험 생성, 공유 환경 구축, 이용자와 가상공간 사이의 상호작용이 메타버스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로즈데일은 <세컨드 라이프>에 그 어떤 타겟형 광고도 없다며, 누군가가 이용자의 행위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환경은 메타버스의 구축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메타버스에 가장 근접한 플랫폼으로 불리는 온라인게임 <로블록스(Roblox)>의 다니엘 스터만(Daniel Sturman) 최고기술책임자 역시 메타버스에서 공유 경험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로블록스>는 이용자가 스스로 게임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할 수 있어, 게임이자 게이밍 플랫폼으로도 기능한다. 스터만은 이용자가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경험을 주고받는 것이 메타버스가 추구하는 미래상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스터만은 이용자 간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관리(moderation)”가 매우 중요한데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게임 내 경제가 붕괴하지 않도록, 부정행위가 확산하지 않도록 규칙과 질서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로블록스>의 주 이용자층이 어린이와 미성년자층이라 이용자 스스로 선을 지키기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범죄 피해자가 되기 쉽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로즈데일이 플랫폼 제공자의 개입을 지양하는 방임적 입장인 것과는 상반되는 관점이다.
게임 엔진 플랫폼 유니티(Unity)의 존 리키텔로(John Riccitiello) 최고경영자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SF 팬임을 밝히며 메타버스란 개념을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통용되는 메타버스란 표현은 지금까지 본 가장 크게 오용되고 남용되는 것으로,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메타버스가 사람들의 삶을 크게 뒤바꿀 파격적인 무엇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인터넷이나 게임이 한 단계 발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리키텔로는 메타버스가 기존의 인터넷 환경에서 발전한 것으로, 비실시간에서 ‘실시간’으로, 2D 중심에서 ‘3D’로, 일방향 정보 전달에서 ‘상호작용형 정보의 교환’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라고 보았다. 디지털 개체는 현실의 공간과 더욱 연결되고, 인터넷 활동은 지금보다 훨씬 사회적인 행위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덧붙였다.
리키텔로는 가상공간에서 이용자 개개인을 구현하는 “아바타(avatar)”가 메타버스에서 필수불가결하다는 주장에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의복이나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e커머스 분야에서는 아바타가 대신 착용하고 외형을 살펴야하기 때문에 필요하겠지만, 이와 같은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메타버스 내의 활동에서 아바타는 오히려 불편을 유발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리키텔로는 “호텔 체크인을 할 때 아바타를 쓴다면 카드를 꺼내 결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냥 ‘확인’ 버튼을 누르면 끝날 문제”라고 꼬집었다. 메타버스의 실현에 있어, 가상공간의 구축과 그 안에서 이용자가 존재하기 위한 매개체, “아바타”의 필요성 자체에 의문을 던진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게임 사업부문의 필 스펜서(Phil Spencer) 최고경영자는 메타버스를 다소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인물로 꼽힌다. 스펜서는 “비디오게임 제작자들은 매력적인 세계를 만들어 왔고 사람들이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했다”고 지적하며, 현재의 메타버스를 “대충 만든 비디오게임”이자, “그다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회의실 같은 느낌”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 외에도 게임 및 미디어, IT업계의 인플루언서 중에는 메타버스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견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소셜미디어 스냅(Snap)의 에반 스피겔(Evan Spiegel) 최고경영자는 메타버스가 “컴퓨터 안에 사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한 뒤 가장 하고싶지 않은 일이라고 꼬집었다. 애플(Apple)의 월드와이드 마케팅 부사장인 그레그 조쉬악(Greg Joswiak)은 메타버스를 “절대 쓰지 않을 단어”라고, 디즈니(Disney)의 밥 차펙(Bob Chapek) 최고경영자는 자사에서 메타버스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차펙의 경우 메타버스라는 표현이 “차세대 스토리텔링” 정도의 표현과 진배없는 모호함이라고 덧붙였다.
페이스북(Facebook)은 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면서까지 메타버스에 온 힘을 집중하고 있다. VR 헤드셋에 전폭적인 투자, SNS를 토대로 한 몰입형 소셜 가상공간의 구축 등 많은 시도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메타는 대중에 메타버스의 의미와 가치를 성공적으로 전달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회사 역시 투자의 리턴 부재로 상당한 침체에 빠진 분위기다. 메타버스에 대한 업계의 날선 시각은 메타의 시도가 결실을 보기 전까지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우려된다.
게임산업 전문 저널리스트 딘 다카하시(Dean Takahashi)는 2022 게임비트 서밋 넥스트(GamesBeat Summit Next)의 세션 발표자로 나서 메타버스를 둘러싼 일련의 전개와 업계의 분위기, 자신의 생각을 선보였다. 딘은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가 전체 경제 규모의 약 20%에 달할 정도로 성장한 디지털 경제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며, 메타버스가 미래 디지털 경제의 혁신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시장 확대 등 기업에게 제공할 실질적인 기회가 있는한 메타버스에 대한 다양한 의견에도 투자와 관심이 이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이와 함께 딘은 게임 분야가 디지털 경제에서 발휘하는 실제 영향력에 비해 저평가 받고 있다며, 게임이 초기 메타버스 트렌드를 이끌 수 있다고 기대했다.
게임은 메타버스를 설명하는 많은 요소를 이미 성공적으로 구현해 왔다는 점도 지적했다. 아직 의문이 많은 메타버스의 효용성은 게임을 통해 입증될 수 있다고 보았다. 실체에 대한 갑론을박이 여전히 심한 메타버스의 개념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메타버스와 유사성이 높은 게임이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딘 역시 메타버스에 대한 낙관론에는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할 혁신이라고 하기엔 실체가 불분명하고, 노력에 소모하는 비용과 시간은 감당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그렇기에 딘은 그 누구도 의미있는 성과를 내지 못한 메타버스가 게임산업이 선도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게임은 불황에 강한 안정적인 산업으로 알려져 있고, 항상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 노력하는 혁신 마인드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업계를 비롯한 IT 전반의 경영진, 오피니언 리더들의 주장에서 확인되는 공통점은 메타버스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상 공간이 활용되는 분야는 게임이 아니어도 많다. 따라서 메타버스가 기술발전의 역사적 흐름속에서 당연하게도 도래할 것이라 본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메타버스가 기존의 개념을 발전시키며 새로운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는 데에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게임업계는 메타버스 관련 행보를 적극적으로 취하지는 않더라도, 메타버스가 추구하는 미래상에는 꾸준히 관심을 두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적어도 메타버스와 게임은 닮은 점이 많으므로, 메타버스와 게임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으며 서로 발전하는 것은 가능하리라 기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기반을 확실히 갖춘 게임산업이, 아직 뜬구름같은 메타버스의 좋은 출발점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다만 게임과 메타버스가 융합하는 일, 혹은 게임의 미래가 곧 메타버스라는 식으로 둘을 동일시하는 것은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게임은 “재미”를 추구한다는 명확한 방향성이 있다. 반면 메타버스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애초에 방향성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맞는지조차 알 수 없다. 게임업계에서는 메타버스를 게임과 동일시할 경우, 자칫 게임이 “재미”라는 핵심 가치를 잃어버릴까 경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