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게임을 제작하는데 참여한 이들을 기록하고 기리는 게임 크레딧(game credits)은 업계 종사자에게 있어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업계에서 게임 크레딧을 대하는 태도는 그 중요성에 비해 저조하여,
부실한 크레딧 반영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종종 일어나며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IGDA(International Game Developers Association)에서
특별이익단체(Special Interest Group)를 구성하고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특히 ‘#MyFirstGameCredit’ 운동이 화제가 되며 게임 크레딧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다.
게임 개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자신의 경력을 증명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성취를 확인하고 보람을 느끼는 대상이기도 하다. 게임 개발자로서 개인의 역사가 게임 크레딧을 통해 증명되는 것이므로, 특히 업계에 첫 발을 들인 신입 종사자는 자신의 첫 게임 크레딧에 큰 의미부여를 하곤 한다.
그에 비해 업계에서 게임 크레딧을 다루는 방식은 상당한 불만을 자아내고 있다. 가장 많은 비판은 게임 크레딧에 제대로 개발참여자를 기록하지 않는 부분이다.
업계에서는 게임 크레딧에 담을 개발자 개개인의 인적사항을 보통 게임 개발 막바지에 수집하곤 한다. 그러다보니 중도에 프로젝트에서 이탈하거나 최종 점검 및 추가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크레딧에 기록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계약직은 크레딧에 포함하지 않는 업계 관례도 여전히 만연해 있어 기대와 달리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개발자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더 악질적으로는 개발사가 의도적으로 특정 인원을 크레딧에서 제외하는 일도 있다. 회사와 갈등을 일으켜 중도에 개발에서 빠지거나, 프로젝트와 상관없는 이유로 해고되는 경우에도 대부분 크레딧에서 빠진다. 크레딧에서 이름을 빼는 것이 일종의 징계로 활용되는 사례도 가끔 발생할 정도다. 게임 전문매체 코타쿠(Kotaku)에서 업계가 게임 크레딧을 직원의 보상이나 처벌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칼럼을 발표하기도 했다. 게임 크레딧 문제는 현존하는 업계의 어두운 일면이라 할 수 있다.
크레딧을 만들고 보여주는 방식 역시 문제다. 각 인원의 정확한 기여 내역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개괄적인 직무 카테고리로 뭉뚱그려 기록하는 일은 흔하고, 직무나 이름이 잘못 적히는 일도 적지 않다. 게임 개발과 직접 연관이 없는 직무의 인원을 기록할 영역이 없어 “특별 감사(Special Thanks)” 카테고리에 전부 집어넣는 건 흔한 사례다. 마케팅이나 서포트 팀 등 크레딧에서 제외되는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직무도 있다.
크레딧을 하나의 동영상 파일로 제작하는 관습도 문제다. 한 번 만들어지면 수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록의 수정이 필요한 경우는 많으나, 레이아웃과 크레딧을 보여주는 시간 등 종합적인 수정이 필요해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 제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에 개발사는 크레딧 부분에서 수정이 필요함에도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서양의 경우 결혼 후 이름이 바뀌는 일이 많기 때문에 크레딧이 개발자 개인의 포트폴리오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
기존의 PC나 콘솔 기반의 패키지게임과 달리, 크레딧을 게임 내에 노출하기 어려운 온라인 및 모바일 기반의 라이브 게임 확산도 업계가 크레딧에 소홀해진 원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제 게임 개발자협회 IGDA는 게임 크레딧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게임 크레딧 문제를 전담할 특별이익단체(Special Interest Group, 이하 SIG)를 구성하고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IGDA은 이전에도 게임 크레딧 제작 지원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제공한 바 있다. 그러나 법적 효력이 없는데다 홍보도 잘 되지 않았다. 2014년 8월 업데이트를 마지막으로 상당기간 방치되어있기도 했다. SIG의 첫 번째 작업은 기존 게임 크레딧 가이드라인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1쪽의 요약본을 업데이트한 것이다. 2021년 9월 발표되었고, 이후 16쪽 분량의 가이드라인 원본을 최신 업계 상황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특히 모바일 게임 및 라이브 서비스 게임 활성화로 인해 소홀해진 크레딧 관리 환경에 대해서 SIG의 소속 인원들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GDA의 게임 크레딧 SIG가 발표한 가이드 출처: IGDA(2022.11.)
SIG는 크레딧 제작 및 사후 수정 작업 등을 지원할 기술적 해결책 마련도 추진 중이다. 단일 동영상 형태의 크레딧 대신, 유니티(Unity)나 언리얼(Unreal) 등 게임엔진을 활용해 크레딧 정보가 담긴 JSON 파일1을 수정하면 자동으로 게임 크레딧에 반영해주는 개발 툴 등을 고려하고 있다. IGDA는 특히 기술적 솔루션이 특히 크레딧 관리 역량이 부족한 중소 개발사의 크레딧 제작 및 수정 능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트위터(Twitter) 등 소셜 미디어를 주 무대로 진행되는 캠페인 ‘#MyFirstGameCredit’도 최근 성과 중 하나다. 오랜 기간 크레딧 문제는 게임업계 근로자 개인의 문제로 인식되어 왔다. IGDA는 이런 개인들을 지원해 왔으나, 업계에서는 크레딧을 중요한 권리라고 인식하지 않아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았다. 이 캠페인을 통해 업계 근로자들에게 문제의식을 제공하고 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업계 인식을 높이고 있다.
IGDA의 #MyFirstGameCredit 캠페인 출처: Twitter(2022.4.)SIG가 게임 크레딧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게임업체의 능동적인 노력이다. SIG의 대표자인 케이티 골든(Katie Golden) 회장은 게임 크레딧을 담당하는 사람이 해당 게임의 총책인 총괄PD인 경우가 많은데, 일반적으로 총괄PD는 너무 바빠서 크레딧에 제대로 신경쓰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골든회장은 개발 스튜디오 내에게 게임 크레딧 업무를 전담할 인력을 배치하는 등 게임업체의 투자 및 지원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게임 크레딧은 게임 제작에 협력하는 사람들 개개인에게 해당 게임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는, 그 게임에 대해 제작자로서 최소한의 권한을 보장할 수 있는 인증이다. 상당히 많은 개발자들이 ‘#MyFirstGameCredit’ 캠페인에 호응을 보내온 이유라 할 수 있다. 반면 업계에서는 크레딧을 그저 개발자들이 기분을 내기 위한 것 정도로 취급하는 듯하다. 여기서 발생하는 온도차가 현재 크레딧을 둘러싸고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크레딧 문제는 북미 게임산업 노조 확산 움직임에 기여하고 있다. 북미 게임산업의 노조 확산 움직임은 라이엇 게임즈(Riot Games) 와 블리자드(Blizzards) 등 일부 게임사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불이 붙었지만,2 QA(Quality assurance) 담당 근로자들의 노조 참여가 꾸준하다.3 낮은 임근과 긴 근무시간, 정식 고용이 아닌 계약직으로 QA 팀이 구성되는 업계 관행 등 QA 직무의 열악한 근로 환경이 원인이지만, QA 노조들은 QA 직무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근저에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QA 근로자는 소모품이자 쉽게 교체할 수 있는 인력이라는 인식이 상당히 많은 기업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또 QA 직무에 전문성이 필요 없다고 여겨 개발자 인턴이 인턴십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참여하는 등 게임 제작의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 크레딧은 QA 직무를 인정한다는 상징적인 조치가 될 수 있다.
게임 개발자 개개인의 권익을 더욱 강화하려는 시도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회사라는 중앙화된 조직 없이 개발자 개개인이 자발적인 연합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환경을 구축하여 게임 개발에 참여한 개인의 권익을 크게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구현할 기술적 솔루션으로서 주목받는 것이 바로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을 응용한 탈중앙화 자율조직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이다.
물론 이는 아직은 구상의 영역이지만, 게임 개발이 정말로 DAO라는 형태로 이뤄진다면 게임 개발에 참여한 개개인의 권익은 더 이상 게임 크레딧을 통해 별도로 관리할 근본 원인이 사라진다. 게임 개발에 참여한 개개인이 각자의 영역에서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고, 그에 대한 보상과 향후 권익은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가 보장하며, 참여자들의 활동은 빠짐없이 블록체인 상에 기록되어 누구나 이를 열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게임 크레딧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단순한 기록자료”로서의 가치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IGDA의 노력은 결국 게임 개발에 참여한 개개인의 권익 향상을 위한 첫걸음으로서, 게임 크레딧의 가치를 높이고 업계의 태도 개선을 도모하는 셈이다. 때문에 IGDA가 단순히 가이드라인 정비와 크레딧 제작툴 개발에서 더 나아가 기업과 개발자들의 의식 환기를 위한 켐페인을 추진하거나 크레딧 전담 인력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개발업계의 구조적 이슈로까지 이 문제를 끌어올리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