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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시험대에 오른 게임사의 위기관리 능력,
사회적 문제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최근 미국에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낙태권 판결 문제가 게임사로 옮겨붙었다.
각 게임사가 입장을 발표하고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고 양가적인
대응을 한 소니가 비판에 직면했다. 게임 커뮤니티가 이러한 태도에 더욱 분노한 것이다.
전쟁을 비롯해 성소수자와 장애인 문제 등 게임사가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사례는 흔해졌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정치·사회적 이슈는 입장에 따라 판단이 첨예하게 갈린다.
이에 따라 게임사의 이슈 관리 능력도 중요해지고 있다.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할 리스크로 부상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게임사의 최선의 대응은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1사회적 문제와 게임산업

인재 다양성 확보를 위해 게임업계는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다양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은 다양한 상품의 개발에 유리하고, 빠른 시장 변화에 적절한 대응 능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ESG 경영과도 이어지기 때문에 경영 과제로 여겨진다. 일례로 EA는 ‘영향 보고서’(Impact Report)에서 ‘인사 리더’와 ‘기술 역할’1 의 인종 간 비율을 공개하여 구체적으로 가치를 이행하고 있음을 공시했다.

1
인사리더 : 한 명 이상의 정규직 직원을 관리하는 직원
기술역할 : 기술 제품의 개발 및 제공을 감독하는 직무

게임사의 사회적 책임이 커지는 가운데,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 확보는 조직 내부 경영 과제도 만들어냈다. 구성원의 다양성이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닝아웃(Meaning-Out)2 트렌드와 맞물려 심화되었다. 이는 사내의 충돌과 갈등에만 머물지 않고 시장에 전달하는 기업의 메시지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2
자신의 정치, 사회적 신념이나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EA는 프라이드먼스(Pride Month)3 동안 전사적으로 LGBTQ+4 커뮤니티를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레인보우 로고(Rainbow Logo)를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EA의 경영진은 ‘레인보우 워싱(RainbowWashing)’5으로 비난받을 것을 우려해 로고의 사용을 취소했다. 그러자 이에 반발한 EA의 직원들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파업에 돌입하여 경영진의 방향을 돌렸다.

3
1969년 6월 뉴욕에서 성소수자들이 경찰 단속과 체포에 맞서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해 매년 6월을 성소수자 인권의 달로 지정한 것이다. 애플 등의 기업들은 이를 기념해 ‘프라이드 에디션’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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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Lesbian, 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 성소수자 전반(Queer) 또는 성 정체성 갈등을 겪는 자(Questioning) 등 남성과 여성으로 규정지어지지 않는 소수의 성 정체성 전반을 아우르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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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고민 없이 사익 추구 목적으로 무지개 이미지를 사용하는것을 비판하는 표현이다. 과거 헐리우드에서 유색인종 캐릭터를 백인이 연기하게했던 것을 지칭하는 화이트 워싱(Whitewashing)에서 파생되었다.

이처럼 게임사의 사회문제에 대한 대응은 기업 안팎으로 파급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게임 타이틀뿐만 아니라 기업의 행실까지도 게임 커뮤니티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게임사들을 휩쓴 사건이 발생했다. 미연방대법원이 산모의 낙태권리를 보장한 ‘로 대 웨이드(Roe VS Wade.)’6 판결을 파기한 것이다.7 정치 및 종교적 입장에 따라 이 판결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으로 나뉘었고, 문화계 전반을 넘어 미국 사회 전반의 주요 이슈로 등극했다. 하지만 낙태권리와 게임사의 연결고리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이 어려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낸 장본인은 글로벌 게임산업의 리딩 그룹 중 하나인 소니(Sony Interactive Entertainmen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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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3개월 내 낙태를 산모의 판단에 맡기며, 의사의 소견에 따라 임신 6개월 내 낙태를 합법으로 규정한 1973년 미연방대법원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여성의 낙태 권리가 미국 수정헌법 14조상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7
미연방대법원은 “미국 헌법이 낙태권을 구체적으로 언 급하지 않았다”라며 로 대웨이드 판결을 폐기했다. 이에 따라 낙태권리는 각 주 정부 및 의회의 권한이 되었다.

EA의 레인보우 로고 출처: EA(2021.06)

2중요성 커진 기업의 사회적 이슈 관리 능력

2.1. 낙태권 판결 대응 메시지 관리에 실패한 소니

6월 초 미연방대법원의 판결문 초안이 유출되며 낙태권이 미국에서 헌법으로 보장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미국에서 낙태권을 옹호하는 입장의 우려와 반발이 표출되었다. 유비소프트(Ubisoft)처럼 다양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기업들 중 일부는 낙태권 지지 성명을 발표하며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8 이후 낙태권 지지를 선언하는 게임사가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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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소프트는 6월 16일 블로그를 통해 “유비소프트는 여성의 권리가 인권이고, 트랜스젠더의 권리가 인권이며, 모두를 위한 평등한 권리가 모든 사람이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고 번영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밝히며 낙태권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밝혔다.

소니의 자회사 인섬니악 게임즈(Insomniac Games)도 낙태권지지 입장을 밝힌 게임사 중 하나이다. 인섬니아 게임즈의 임직원은 자발적으로 5만 달러를 모금한 뒤, 소니의 사회공헌조직 플레이스테이션 케어(Playstation Cares)를 통해 대응금 5만 달러를 지원받아 총 10만 달러를 임신 자결권 지원 기관 WRRAP(Women’s Reproductive Rights Assistance Project)에 기부하고 인섬니악 게임즈 명의의 성명을 발표할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이 행보가 모기업인 소니와 사전에 상의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니는 들불처럼 번지는 낙태권지지 운동이 한쪽의 의견이 크게 표출되어 주류처럼 보이는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이에 따라 소니는 낙태권을 둘러싼 양쪽 입장을 모두 지지하며 리스크 회피하려는 전략을 전개했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케어가 인섬니악의 기부에 대응금을 집행하는 것을 승인하고, 낙태 금지 주에서 거주하는 임직원이 낙태를 희망할 시 낙태 허용 주로 여행을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섬니악 게임즈의 기부를 비난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소니는 낙태 금지를 지지하는 단체에게도 기부를 진행했다. 또 인섬니악 게임즈의 테드 프라이스(Ted Price) 대표에 따르면 소니는 인섬니악 게임즈의 직원들이 SNS에 기부와 관련해 언급하지 말고, 낙태권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자제해야 하며, 관련 의견을 표현하더라도 인섬니악 또는 소니를 언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소니의 양가적 태도를 증언한 전 소니 직원의 트윗 출처: Digitaltrends(2022.5.)

소니는 이 문제에 대해 기업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지 않으며 회피했다. 소니의 입장은 짐 라이언(Jim Ryan) CEO가 5월 12일 경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유출되며 알려졌다. 짐 라이언 대표는 이메일을 통해 “우리는 기업 안팎의 다양한 커뮤니티의 다양한 의견 차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며 법원 판결을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이메일 유출과 테드 프라이스의 발표에 따라 게임 커뮤니티는 크게 반발했다. 낙태 권리를 옹호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 모두의 비난을 받게 되었다. 소니 산타모니카 스튜디오에 근무했던 셰이나 문(Shayna Moon)은 소니가 이전에도 갈등이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 양가적으로 대응했다고 언론에 증언하며 논란이 커졌다. 갈등은 게임 커뮤니티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인섬니악 게임즈와 모기업 소니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며 임직원 커뮤니티에서도 낙태권 찬반과 기업의 대응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확산되었다.

게임 커뮤니티와 사내의 갈등은 지금까지 소니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며 관리해왔던 기업이기에 실망감이 더해진 결과이다. 소니는 2020년 미니애폴리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사망한 사건9 이 일어나자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인종차별 항의 운동 “#Black Lives Matter”를 지지하는 트위터를 게시했으며, 그해 10월에는 연대를 강조하기 위해 PS4에서 “#Black Lives Matter” 대시보드 테마를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또한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에서 게임 판매 중단과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서비스 중단이라는 과감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또한 소니와 인섬니악 게임즈는 엑스박스(Xbox) 타이틀 <헤일로(Halo)>의 개발사이자 임신 자결권을 지지하는 1세대 스튜디오로 알려진 번지(Bungie)를 인수한 바 있어 세간에서는 소니가 낙태 문제에 있어서는 임신 자결권을 지지할 것이라 평가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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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5일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출동한 미니애폴리스 경찰국 소속 경찰관이 용의자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8분 46초 동안 무릎으로 목을 눌러 살해한 사건으로,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라는 의미의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 시위 ‘#Black Lives Matter’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게된 계기가 되었다.

PS4가 무료 배포한 #Black Lives Matter 대시보드 테마 출처: TheVerge(2020.10.)

이처럼 소니는 그간 사회적 문제에 대해 단호하고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고, 이는 기업에 대한 평가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이번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대응에서는 사회적 문제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회피하는 전략을 전개했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소니의 새로운 전략은 실패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2.2. 소니와 유사한 실패 경험한 디즈니

사회적 문제의 리스크를 회피하려다 자승자박의 꼴에 빠진 것은 소니 이전에 디즈니(Disney)도 경험한 바 있다. 플로리다주에서 “게이 언급 금지법”10이 발효되자, 디즈니 파크(Disney Park)의 조쉬 다마로(Josh D`Amaro) 회장과 임직원들은 법안 반대 서명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플로리다주는 디즈니랜드의 세금 감면 혜택을 제외할 수 있다는 압박을 넣었고, 본사인 월트 디즈니 컴퍼니(Walt Disney Company)는 디즈니 파크의 임직원들의 서명운동을 저지했다. 이로 인해 사내 갈등 및 외부 항의에 시달린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밥 체이펙(Bob Chapek) CEO는 게이 언급 금지법에 대해 침묵을 강요한 것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발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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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주에서 입법된 법안으로 유치원~초등학교 3학년에게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관한 교육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디즈니의 “게이 언급 금지법” 침묵 기조에 항의하는 직원들 출처: : CNN(2022.4.)

하지만 CEO의 사과에도 갈등은 이어졌다. “게이 언급 금지법” 지지자들은 분노했고, 디즈니의 플로리다 리조트 계획 및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며 기업 활동의 직접적인 위기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즈(NewYork Times)는 “누구도 불쾌하지 않게 하려는 디즈니의 노력이 모두를 잃을 위기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디즈니의 사례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기업의 대응이 반대 입장의 소비자들의 불만을 넘어 사내 갈등을 야기하고 가시적인 기업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한다.

3줄어드는 점이지대, 차악보다 나쁜 침묵

사회적 문제로 인해 나타나는 임직원과 계열사 간의 갈등은 게임산업에 특히 치명적일 수 있다. 게임산업은 뛰어난 인적 자원을 확보한 거점 스튜디오와 협력을 통해 게임이 개발되기 때문이다. 각 스튜디오는 창의성을 위해 독립성이 부여되는 경우가 많고, 성과에 따라 통폐합되거나 주요 프랜차이즈 제작 담당 스튜디오가 변경되는 경우도 많아 경쟁 구도가 형성되기도 한다. 때문에 개별 스튜디오를 넘는, 전사 차원의 일괄된 공유가치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산업의 위상이 높아지며 사회적 책임 이행 기대도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는 더욱 중요해진다. 자칫 스튜디오간, 모기업과 스튜디오 간의 이견이 기업의 메시지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게임인더스트리닷비즈(GamesIndustry.biz)의 롭 파헤이(Rob Fahey) 에디터는 소니의 이번 사태도 모기업과 스튜디오간 충돌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대중들에게 가시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업이 사회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관리하지 못한다면 충돌과 갈등이 반복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특정 이슈에 대한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현재의 환경에서 임직원들의 돌발행동을 부추길 수 있고, 이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중립적 입장 또는 회피적인 입장은 오히려 매우 정치적인 태도로 읽힐 수 있다. 이는 문화·정치적 충돌로 인한 사회적 문제의 대응에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는 특징에 따른 것이다. 즉, 점이지대는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기업의 신중한 침묵은 섣부른 선택보다 나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산업이 사회적 문제를 적절히 관리하는 첫걸음은 사회적 문제 대응에 있어 중립적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침묵은 더 이상 금이 아니다. 전략적 모호성보다는 명확한 지침과 이를 임직원에게 설득하는 것이 위기관리의 첫 걸음이라는 것을 주의해야한다.

참고자료

  1. CNN - 3 things Disney should do after its ‘Don’t Say Gay’ blunder, 2022.4.15.
  2. Digitaltrends - Why players want game studios to take strong social stances, 2022.5.28.
  3. Gamesindustry.biz - EA issues Pride statement after employee pushback, 2022.6.3.
  4. Gamesindustry.biz - There’s no hiding from the culture wars, 2022.05.20.
  5. The Verge - Sony doesn’t want you to know that it’s donating $100K for reproductive rights, 2022.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