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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다양화되는 장애인용 게임 컨트롤러...
우리 모두를 위한 유의미한 변화의 시작

글로벌 게임산업 동향

장애인의 게임 플레이를 위한 접근성 컨트롤러들이 시장에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MS의 ‘엑스박스 어댑티브 컨트롤러’는 사용자의 장애 양상에 맞는 컨트롤러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끔
다양한 주변기기 연결을 지원한다. 페달형 스위치를 연결해 발로 게임을 이용하거나,
외부 연결식 버튼을 통해 자세 변경이 필요 없는 플레이 환경을 구축할 수도 있다.
삶의 어느 시점부터는 장애 혹은 그에 준하는 신체 조건을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임을 생각해 보면,
이런 접근성 기기의 등장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입장에서도 반가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1게임 스트리머 ‘록키(Rocky)’의 이야기

<서든어택>이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FPS 게임들이 오랫동안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생존을 두고 펼쳐지는 끊임없는 머리싸움은 게임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마저 재미있을 정도고, 마치 영화 속 특공대원처럼 상대를 잡아내는 고수들의 영상은 때때로 멋지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순간적인 기민한 판단과 흔들림 없이 적을 쫓는 조준이 매우 긴박한 순간과 맞물려 흥분을 자아낸다.

미국의 게임 스트리머 록키 스타우튼버그(Rocky Stoutenburgh)처럼 오직 게임 실력만으로 세간의 주목을 끄는 경우도 많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과 마치 핵을 쓰는 듯한 예측사격은 웬만한 노력으로 흉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는 2020년 미국 e스포츠 구단 루미노시티 게이밍(Luminosity Gaming)에 크리에이터로 입단했으며, 현재 트위치와 유튜브에서 총 12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손 대신 입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록키 스타우튼버그 출처: GuinnessWorldRecords

록키의 닉네임 ‘RockyNoHands’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할 수 없는 사지마비 장애인이다. 19살이던 2006년에 친구와 레슬링을 하다 경추가 손상되는 사고를 당했고, 그 이후로는 목 아래쪽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입으로 조작하는 게임 컨트롤러로, 이후 전업 게이머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2장애인을 위한 게임 컨트롤러

2.1. 쿼드스틱 FPS

록키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신체 조건에 적합한 컨트롤러가 있다면 장애는 게임 플레이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종류의 접근성 장비들이 이미 시중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지마비 환자의 게임 플레이를 지원하는 쿼드스틱 FPS 출처: QuadStick

록키가 사용 중인 컨트롤러는 미국 하드웨어 업체 쿼드스틱(QuadStick)에서 사지마비 환자들을 대상으로 개발한 제품이다. 마우스피스 끝부분에 들숨과 날숨을 감지하는 호흡 센서가 장착되어 있다. 마우스피스를 문 채로 고개를 움직이면 캐릭터의 시선이나 방향이 바뀌고, 센서를 대상으로 들숨이나 날숨을 쉬면 그에 할당된 입력값이 입력된다. 키보드와 마우스의 기능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장비인 만큼 제대로 쓰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완벽하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 각종 콘솔과 PC를 지원하며, 가격은 기본형 모델 기준 550달러다.

2.2. 8비트도 라이트 SE

근력이 약해 기존 컨트롤러를 사용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8비트도(8BitDo)에서 최근 출시한 ‘라이트 SE(Lite SE)’ 컨트롤러를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다. 이 기기는 척수성 근위축증1을 앓고 있는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조작에 큰 힘이 필요치 않으며, 트리거 버튼까지 모두 상판에 배치돼 있어 바닥에 놓고 사용해도 게임 이용에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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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이 점차 약화되는 희귀 유전성 신경근육질환

8비트도의 고민감도 게임패드 라이트 SE 출처: 8BitDo

가격은 35달러로 장애인 컨트롤러가 상당히 고가라는 점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또 일반적인 게임 컨트롤러와 외형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점도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와 닌텐도 스위치를 지원하며, 1-2시간 충전하면 블루투스 무선연결로 18시간 동안 이용이 가능하다.

2.3. 엑스박스 어댑티브 컨트롤러

쿼드스틱 FPS나 라이트 SE 같은 제품들은 각각 특정 유형의 장애 극복을 목적으로 개발됐다는 점에서 범용성 혹은 유연성에 한계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고갯짓과 입술 움직임은 물론이고 호흡 컨트롤에도 어려움이 없어야만 원활한 사용이 가능하고, 후자의 경우는 양손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에 한해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따라서 그 여집합에 속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손을 움직일 수 없는 데다 목을 가누기도 힘든 사람이라면 자신의 몸 상태에 맞는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다양한 주변기기로 맞춤형 컨트롤러 구성을 지원하는 XAC 출처: Microsoft

이럴 때 당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제품이 바로 MS의 ‘엑스박스 어댑티브 컨트롤러(Xbox Adaptive Controller, XAC)’다. 2018년 출시된 XAC는 사용자의 신체 상태에 맞춰 다양한 주변기기를 연결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일종의 허브 컨트롤러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꺼번에 다수의 버튼을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페달형 스위치를 활용해 손가락 대신 발로 커맨드를 입력할 수 있고, 사지가 굳은 사람이라면 외부 연결식 버튼을 아예 손이나 팔 인근에 배치함으로써 자세 변경이 필요 없는 플레이 환경을 구축할 수도 있다. XAC는 엑스박스 원 이후 버전의 엑스박스 콘솔기기와 PC를 지원하며, 가격은 주변기기를 제외한 본체만으로 100달러다. 그러나 각자의 상황에 맞는 주변기기를 구매하다 보면 전체 비용이 상당하다는 점은 단점이다.

2.4. 인에이블드 플레이

2022년 1월 미국, 영국, 가나 등 6개 국가에 공식 출시된 ‘인에이블드 플레이(Enabled Play)’는 앞서 소개된 장애인용 컨트롤러의 장점을 결합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쿼드스틱 FPS나 라이트 SE에 비해 다양한 기기에 사용 가능하며, 장애 유형에 따라 접근성이 나뉘던 기존 컨트롤러의 단점을 극복했다. 컨트롤러 이용을 위한 학습 과정도 훨씬 적다. 또 XAC처럼 다양한 주변기기를 연결해 이용자에게 최적화된 환경 구축도 가능하다. 미국 기준 249.99달러이다.

인에이블드 플레이의 개발자 알렉스 던(Alex Dunn)은 팬데믹 기간 동안 장애가 있는 동생이 집에 머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게 되자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게임 컨트롤러 개발을 시작했다. 초기 기획은 음성명령 기반의 컨트롤러였으나, 청각장애인 등 다양한 장애인을 만나면서 이용자의 머리 움직임, 표정, 실시간 말투 등을 마우스나 조이스틱 입력 신호로 전환하는 현재의 방향으로 선회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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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으로 개발자가 된 알렉스 던은 음성명령 인식 프로그램 등 장애인 게이머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한 바 있으며, 2020년 스냅 킷 디벨로퍼 챌린지(Snap Kit Developer Challenge)에서 2개 부문 수상 경력도 갖고 있다.

인에이블드 플레이 시연하는 알렉스 던 출처: The Washington Post(2022.08)

CPU와 RAM 등으로 구성된 보조장치를 PC나 콘솔의 입력장치로 연결하는 형태로, 연결된 스마트폰을 통해 이용자의 얼굴 표정 등 움직임과 음성을 인식하는 구조이다. 워싱턴 대학 엔지니어와 언어학자가 2006년 발표한 보컬 조이스틱(The Vocal Joystick)을 기반으로 만들어 ‘우’, ‘아’ 등 비언어적 음성도 입력 신호로 감지한다. 이로써 청각장애인도 이용이 가능하다.

AI 머신러닝도 도입되었는데, 사전의 어휘 등 기 입력된 단어를 학습 데이터로 삼지 않고 사용자의 행동을 분석하고 예측하는데 도입되어 이용자의 신체적 입력값의 정확도를 높이도록 했다. 이용자의 평소 입모양이나 표정, 자세 등이 학습 데이터가 되는 것이다. 알렉스 던은 최대한 단순하게 설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컨트롤러 자체가 학습해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을 지양하고 함께 작업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기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장애인 게임 이용자뿐만 아니라 언어치료분야에서도 호평이 나오고 있다. 언어치료사들은 일부 장애인에겐 필수품인 AAC(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보완대체의사소통) 기기 대비 인에이블드 플레이가 단순한 구조로 사용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데이비슨 커뮤니티 스쿨의 언어병리학자 줄리아 프랭클린(Julia Franklin)은 비싸고 부피가 크고 사용성이 제한되는 기존 AAC 기기의 분명한 대안이라고 평가하며3 “AAC 시스템을 배우는 것부터 상당한 장벽이지만, 인에이블드 플레이는 개개인이 자신의 신체 활동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장점을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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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엔드 AAC 시스템은 6,000~ 1만 1,500달러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모바일 AAC앱은 49.99~299.99달러 수준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인에이블드 플레이를 통해 “게임의 장애인 접근성 기능이 ‘이지 모드(easy mode)’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의견이 지지를 받았다.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 레딧(Reddit)에 이러한 의견을 게시한 ‘더실리올드윌리(thesillyoldwilly)’는 “게임의 접근성은 게임 구성요소를 간략화하거나 저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인 솔루션을 통해 신체건강한 게이머와 동일한 경험을 하고 같은 성과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게시했고, 상당한 양의 추천과 동의 의견을 받았다. 뇌성마비 아동을 돌보는 일을 하는 익명의 사용자는 “인에이블 플레이가 게임을 시작으로 그들의 삶을 바꿀 것”이라고 평가했다.

3 게임의 포용성 확대

사람은 누구나 삶의 어느 시점부터는 장애 혹은 그에 준하는 신체 조건을 감수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유전적인 요인이나 사고로 남보다 일찍 그 시점을 마주하는 사람도 있고, 노후가 되어서야 몸이 불편해지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든 비장애인이 장애인으로 전환되는 숙명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서, 게임의 접근성 개선을 위한 하드웨어 차원의 실험들은 비장애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반가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지금 당장은 키보드와 마우스, 혹은 게임패드를 사용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접근성 하드웨어를 개발하려는 시도는 게임 관련 업계 입장에서도 고객 유지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고, 그 상업적 타당성은 게임 이용 인구의 노령화가 진행될수록 더욱 짙어질 것이다.

또한 이미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게임 접근성 향상은 삶의 질 자체를 개선하는 계기로서도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에 작년 2월에는 우리나라 국립재활원에서 <누구나 게임을 할 수 있다>라는 제목의 장애인용 게임 보조기기 개발 및 활용 매뉴얼이 발행되기도 했는데, 그 제작 과정에 참여한 뇌성마비 장애인들은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된 후 자존감 강화, 가족간 소통 확대, 사회적 경험 축적 등 다양한 측면에서 긍정적 변화를 경험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현재 상용화된 접근성 장비들만으로는 장애인의 게임 이용을 폭넓게 지원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은 다양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가격마저 비싸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쿼드스틱 FPS의 경우는 단순히 거치대만 추가하더라도 가격이 650달러로 뛰고 블루투스 옵션까지 선택할 경우 100달러가 추가된다. XAC의 경우도 본체 가격만 보자면 그리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용자의 장애 양상에 따라 다양한 주변기기를 추가로 구매하다 보면 전체 비용은 어느새 1,000달러를 훌쩍 넘어서기 십상이다.

해결책은 수요 증대에 있다. 더 큰 수요는 기존 제품의 단가 인하와 새로운 게임 컨트롤러의 등장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자면, 장애인용 게임 컨트롤러는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메타버스 시대의 정확한 구현상과 대중화 시점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나, 그 시대가 언젠가 도래할 것임은 쉬이 예견할 수 있다. 이때 디지털 가상세계에 인간이 들어가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가상세계 아바타를 조작하는 방법이 많아질수록 유리하다. 특히 얼굴 표정과 제스쳐, 음성을 인식하는 인에이블드 플레이의 경우, VR의 과제 중 하나로 꼽히는 컨트롤러 문제를 해결할 단초가 될 수 있다. 현재의 키보드와 마우스, 조이스틱 등의 입력장치들이 시야를 가로막는 HMD(Head mounted Display) 착용 상태에서 이전과 같은 효용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임의 장애인 접근성 문제는 포용 가능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게임산업의 숙제이자, 모두가 평등하게 게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인권 차원의 문제이며, 물리적‧신체적 현실과 교차하는 가상세계의 가능성 확대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이에 게임산업의 접근성 향상을 위한 고민은 새로운 사업 확장의 단초가 되리라 전망해 본다.

참고자료

  1. Guinness World Records - The gamer who plays Fortnite with his mouth and smashes records, 2019.9.6.
  2. New Mobility - The QuadStick FPS, 2021.7.27.
  3. PC Magazine - Up Close With the Microsoft Xbox Adaptive Controller, 2018.6.11.
  4. Washington Post - The latest video game controller isn’t plastic. It’s your face, 2022.8.1.
  5. Wired- A Father’s Quest for an Accessible Game Controller, 2022.7.19.